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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25530727 / 396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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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신과 인간에 대한 고뇌는 영원한 숙제다! 지방 소도시 형사계의 남경호 형사. 그는 고시 준비를 한답시고 절간에 틀어박힌 적도 있고, 한때는 글에 미쳐 이 나라의 신춘문예 제도가 있는 신문이란 신문에는 모조리 투고도 했으나, 가난은 그를 그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손쉬운 대로 경찰에 들어왔다가 눌러앉아버린, 하루하루가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을 보내던 중 살인사건 하나를 맡는다. 영생기도원에 얼마 전 들어와 숙식하던 민요섭이 뒷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살해 동기를 알 수 없는 이 사건의 단초를 찾기 위해 남 경사는 민요섭이 다녔던 신학대학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민요섭은 촉망받던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어느 순간 실천신학에 깊이 빠져들면서 급진과 이단으로 교의(敎義)의 근간을 흔들어대며 교수들과 싸우고 학교를 뛰쳐나가 버린다. 남 경사는 어렸을 적 전쟁고아였던 민요섭이 선교사인 알렌 목사에게 입양된 후 알렌 댁의 가정부로 반평생을 보낸 육순의 할머니를 만난다. 민요섭을 돌봐준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민요섭은 알렌 목사가 남겨준 사택도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스스로를 위해서는 양말 한 켤레 속옷 한 장 여분으로 지니는 법이 없었고, 방학이면 고아원에서 무료봉사를 하거나 나환자촌에서 지낼 정도로 착한 아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신학대학을 뛰쳐나간 민요섭은 공사판과 교회를 전전한다. 교회에 나가서는 돈을 쫓는 부조리한 목사와 신앙을 욕하고 싸웠으며, 공사판에서는 일하며 번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도왔다. 어느 하숙집에 기거한 민요섭은 그 집의 고등학생 아들인 조동팔을 만난다. 조동팔은 민요섭을 존경과 믿음으로 쫓아다니며 민요섭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신과 새로운 신앙’에 대해서 뜻을 같이하게 된다. 민요섭과 조동팔은 가난 없는 세상, 거짓 없는 하나님의 세상, 말씀에 구속받지 않는 신앙을 만들고자 했다. 남 경사는 민요섭의 발자취를 쫓기 위해 대전, 인천 등을 돌아다니며 그가 남겨둔 노트 몇 권을 가져와 읽었다. 남 경사는 노트에 쓰인 소설을 통해 민요섭이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신,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알아간다.『사람의 아들』은 신의 아들 ‘예수’와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가 등장하는 액자소설로, 남 경사는 민요섭이 마치 아하스 페르츠와 닮아 있음을 느낀다. 신은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자비롭고 사랑 넘치는 그 신이 맞는가? 야훼가 예언한 바에 따라 동방박사 세 명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돌아오는 길에 검붉은 별 하나를 보게 된다. 그들은 원인 모를 공포와 전율에 사로잡혔다. 불길하면서도 음험한 유혹의 빛이었다. 그 시각 샴마이학파 율법사 집에서 진정한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가 태어난다. 아하츠 페르츠는 열 살 밖에 안 됐음에도 토라를 거의 암송할 정도였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유대에서 제일가는 랍비로 기르고자 했다. 열두 살 되던 해, 아하스 페르츠는 동네 꼬마들이 놀려대는 데도 아랑곳 하지 않는 중년 사내 테도스를 만난다. 굶주려 보이는 그에게 빵과 고기를 건네주며 아하스 페르츠는 테도스가 자신을 메시아라고 떠벌리며 다녀서 아이들이 놀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테도스는 아하스 페르츠에게 “네가 한줄도 빼놓지 않고 외우고 있는 토라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것 같니?”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테도스는 아하스 페르츠를 빈민가와 지하감옥, 처형장을 데리고 다니며 배고픔에 굶주린 사람들, 고통에 힘겨워하는 사람들, 신을 애타게 찾지만 도와주지 않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지금 이 순간도 수천수만의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미신에 젖은 채 고통 속에 헛되이 죽어가고 있다, 라고 말한다. 열두 살의 나이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열여덟 살의 아하스 페르츠는 육신도, 지식도 완전히 성숙해 있었다. 그는 욕망에 눈 떠 아삽이라는 동네 부호의 젊은 아내를 유혹하고 스스로 성년의 여러 죄악들에 앞질러 빠져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내를 팔아 산 아브라함의 부귀와 형의 축복을 훔친 야곱의 간사한 지혜를 비방하다 돌팔매에 쫓기는가 하면, 다른 날은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을 몰살시키고, 수많은 성읍에서 숨 쉬는 것은 모두 없애도록 조상들을 부추긴 야훼의 잔혹을 비꼬다 고발당하기도 했다. 아하스 페르츠 앞에서 늙은 제관들과 은수사들은 머리를 흔들고 탄식하며 물러났고, 뼈대 있는 율법사나 서기관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그렇게도 열렬히 믿고자 했던 신을 끝내 잃어버리게 된 자의 공허감 때문이었을까? 그는 뒷골목의 여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고 거리의 건달들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홀연히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 땅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뒤 십 년의 세월 동안 아하스 페르츠는 ‘신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이집트를 시작으로 중근동, 바벨로니아, 페르샤, 인도, 다시 서쪽으로 로마를 돌아다니며 ‘참된 신’을 찾고자 세계를 더듬는다. 그러다가 평생 해를 알려고 뚫어져라 해만 봐서, 두 눈의 동자가 타버렸다는 장님의 “정녕 해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들이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가진 어떤 추상일 뿐이오.”라는 말에 아하스 페르츠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본인 역시 자기가 골몰하여 걸어온 지난 십 년이 그대로 탄식할 만한 헛됨의 세월이었다면, 신을 논리와 지식으로 붙잡으려는 현재의 노력 또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몸과 마음의 낭비로만 보였다. 마침내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 뒤 아하스 페르츠는 고향의 광야, 쿠아란타리아에서 단식과 묵상에 잠겨 참된 신의 부름을, 십 년 동안 애타게 찾아 헤맸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 ‘위대한 신성(神聖)’과의 대면을 기다렸다. 마침내 한 외침이 우레처럼 그를 흔들어 깨우며 그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온 ‘위대한 신성’을 만난다. 위대한 신성은 하루 낮 하루 밤을 그와 함께 하며 기나긴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후 광야를 벗어난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를 다섯 번에 걸쳐 만난다. 첫 번째 만남은 바위산 기슭에서였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천상의 기품이 서려 있음을 느꼈다. 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다는 예수에게 아하스 페르츠는 배고픈 자들에게 빵을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예수는 “사람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한다. 아하스 페르츠는 인간은 영원히 결핍과 갈구하는 것이 숙명인가, 라며 한탄한다. 아하스 페르츠는 허약한 육체와 영혼으로 고통 받고 방황하는 인간을 위해 빵과 기적과 권세를 요청하였으나 예수는 자신의 권능을 자랑하기 위해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것은 아니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의 요청을 거부한다. 예수는 아하스 페르츠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아하스 페르츠 역시 예수가 약속한 구원의 허구성을 보고 그를 거부하기로 결심한다.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를 제거할 음모를 진행한다. 그리고 예수가 인간적인 구원을 기어이 거부하자 로마의 힘을 빌려 그를 처형하고 만다. 아하스 페르츠는 기약 없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끝없이 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고 전해진다. 책 속으로 “하나님께 벌 받을 소리 마시우. 그 착한 애를…… 그 애는 철들고부터 양말도 신지 않고 겨울을 나는 아이라우. 헐벗은 이웃을 생각해서 말이우. 언젠가 눈이 몹시 오던 날은 길가에 엎드린 거지에게 윗도리를 벗어 주고 속옷 바람으로 덜덜거리며 돌아온 적이 있었지. 어지간한 목사님도 꾸중을 하셨을 정도였으니까. 이건 참말이우. 그런데 그 착한 애를…….” _p.51 ‘어찌하여 선악을 불문하고 인류에게 재난은 닥쳐오는가’, ‘부유한 자, 힘센 자, 권세 있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무(無)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세상에는 전부인가. 가난한 자, 병든 자, 버림받은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어찌하여 무(無)인가’, ‘세상은 믿기 위한 미신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종교야말로 그 같은 미신의 가장 기교로운 형태가 아닐는지’ _p.71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이 그토록 자비롭고 사랑에 넘친 분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애매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아담은 감히 선악과를 따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원죄의 굴레를 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 자유가 꼭 주어져야 했다면, 금지규범을 만들지 않아야 했지요. 그랬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땄더라도 죄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_p.110 “그렇습니다. 저는 다만 사람의 아들일 뿐입니다. 여인의 몸에서 나고 성을 물려준 아버지가 있는. 저는 제 종족의 신에 절망하고 고향과 나라를 떠나 의롭고 온당한 새로운 신과 그 가르침을 찾고 있었습니다.” _p.166 ‘아아, 저 장님이 두 눈을 잃은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눈을 잃어버렸음에 분명하다. 내가 지난 십 년 동안 세계의 끝까지 떠돌며 그렇게도 많은 신들을 만난 것은 해를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오래 쳐다본 저 장님의 노력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 뜨거운 햇볕이 그의 눈동자를 태워버린 것처럼 내가 본 그 수많은 신들의 교의와 신화는 내 마음의 눈을 막아버렸다. 이제는 나 또한 신의 존재를 인간의 관념이 빚어낸 어떤 추상 이상의 것으로 의심하게 되고 말았다……. _p.267 “그러나 나는 그를 따를 수가 없었소. 그는 스스로 만든 것이니 스스로 허물 수 있었으나, 나는 그에게서 전해 받은 것이라 내 힘으로는 허물 수 없었소. 또 실천에 있어서도 그는 언제나 망설임과 회의로 초입에서 머뭇거렸으니 돌아나가기 쉬웠으나 나는 이미 너무 깊숙한 곳까지 빠져들어 다시 돌아갈 길이 없었소. 나는 가망 없는 논리로 그와 맞서기보다는 그와 함께 걸은 긴 세월에 기대어 그를 붙들어 보았소….” _p.389
“하나님께 벌 받을 소리 마시우. 그 착한 애를…… 그 애는 철들고부터 양말도 신지 않고 겨울을 나는 아이라우. 헐벗은 이웃을 생각해서 말이우. 언젠가 눈이 몹시 오던 날은 길가에 엎드린 거지에게 윗도리를 벗어 주고 속옷 바람으로 덜덜거리며 돌아온 적이 있었지. 어지간한 목사님도 꾸중을 하셨을 정도였으니까. 이건 참말이우. 그런데 그 착한 애를…….” _p.51
‘어찌하여 선악을 불문하고 인류에게 재난은 닥쳐오는가’, ‘부유한 자, 힘센 자, 권세 있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무(無)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세상에는 전부인가. 가난한 자, 병든 자, 버림받은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전부였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어찌하여 무(無)인가’, ‘세상은 믿기 위한 미신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종교야말로 그 같은 미신의 가장 기교로운 형태가 아닐는지’ _p.71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이 그토록 자비롭고 사랑에 넘친 분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애매한 자유를 우리에게 주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아담은 감히 선악과를 따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원죄의 굴레를 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 자유가 꼭 주어져야 했다면, 금지규범을 만들지 않아야 했지요. 그랬다면 아담이 선악과를 땄더라도 죄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_p.110
“그렇습니다. 저는 다만 사람의 아들일 뿐입니다. 여인의 몸에서 나고 성을 물려준 아버지가 있는. 저는 제 종족의 신에 절망하고 고향과 나라를 떠나 의롭고 온당한 새로운 신과 그 가르침을 찾고 있었습니다.” _p.166
‘아아, 저 장님이 두 눈을 잃은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눈을 잃어버렸음에 분명하다. 내가 지난 십 년 동안 세계의 끝까지 떠돌며 그렇게도 많은 신들을 만난 것은 해를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오래 쳐다본 저 장님의 노력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 뜨거운 햇볕이 그의 눈동자를 태워버린 것처럼 내가 본 그 수많은 신들의 교의와 신화는 내 마음의 눈을 막아버렸다. 이제는 나 또한 신의 존재를 인간의 관념이 빚어낸 어떤 추상 이상의 것으로 의심하게 되고 말았다……. _p.267
“그러나 나는 그를 따를 수가 없었소. 그는 스스로 만든 것이니 스스로 허물 수 있었으나, 나는 그에게서 전해 받은 것이라 내 힘으로는 허물 수 없었소. 또 실천에 있어서도 그는 언제나 망설임과 회의로 초입에서 머뭇거렸으니 돌아나가기 쉬웠으나 나는 이미 너무 깊숙한 곳까지 빠져들어 다시 돌아갈 길이 없었소. 나는 가망 없는 논리로 그와 맞서기보다는 그와 함께 걸은 긴 세월에 기대어 그를 붙들어 보았소….” _p.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