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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

정찬주 저 | 한결미디어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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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161315 / 376쪽 139 x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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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순신의 동지, 명궁수 김억추 장수 이야기

출판사 리뷰

작가 후기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김억추 장수 영화 <명량>이 천만 이상의 관객이 관람하여 국민영화로 등극한 일이 있다. 나는 당시 이낙연 지사의 초대로 <명량> 감독과 목포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발간한 바 있으므로 이 지사께서 어떤 공통분모를 느끼고 초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자리는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말을 아꼈지만 영화 <명량>에 대한 내 나름의 판단은 분명히 있었다. 영화 <명량>과 내 소설의 차이점 중에는 이순신의 당파전술(撞破戰術)에 대한 해석부터 완전히 달랐다. 당파전술이 전선끼리 부딪치는 것도 되겠지만, 나는 화포(火砲) 사격으로 적선을 분멸(焚滅)시키는 것을 당파전술로 보았음이다. 왜냐하면 전선끼리 부딪치는 것은 바다 위에서 쌍방이 피해를 입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전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잘못인 강단사학자들이나 영화 <명량>의 오류는 전라우수사 김억추 장수의 위상을 폄하하고 왜곡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김억추를 평가 절하하는 듯한 《난중일기》의 두어 구절 때문에 김억추 장수를 고민 없이 무능하고 비겁한 장수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는 여러 사료와 관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나는 《선조실록》 《백사집》 《난중일기》 《연려실기술》 《현무공실기》 등을 참고한 바 김억추 장수를 새롭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라고 정했다. 나는 김억추 장수의 위상을 한마디로 평가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전라우수사 김억추 장수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통제사와 함께 눈부신 전공을 세우고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던 용장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특명으로 보낸 해적출신 왜군 선봉장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화살 1발로 죽임으로써 전선 13 대 133이라는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전세를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김억추 장수는 《난중일기》의 다음과 같은 두 구절 때문에 억울하게도 용장으로서 빛을 잃는다. 《난중일기》 정유년 8월 8일, 명량해전 전투 전에 나오는 구절이 첫 번째다.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萬戶)에나 적합할까 대장감이 못 되는 사람인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 구절은 이순신이 김억추보다는 김응남을 비난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순신을 사사건건 비난하고 원균을 옹호했던 좌의정 김응남이 못마땅하니까 김억추까지 싸잡아 비난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6일, 명량해전 결전의 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러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달아날 꾀만 내고 있었다. 김억추가 탄 배는 벌써 2마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이 구절 역시도 김억추는 전선 후미에서 질서를 잡는 후위장 역할을 하느라고 물러나 있었을 뿐이었고,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너무 앞서지 말라고 이순신이 걱정했을 정도로 왜선과 맞붙어서 싸웠던 것이다. 김억추 장수는 충(忠)과 효(孝)를 다했던 장수이다. 나는 김억추 장수가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장수 가운데 한 분이었다고 확신한다. 김억추 장수를 칭송하는 율곡 이이와 김명원과 이덕형, 유영경의 시를 보면 그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인물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것도 소설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저자 소개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왔다.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쌍봉사 옆 이불재(耳佛齋)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이순신의 7년』 『천강에 비친 달』 『인연』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다산의 사랑』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다불』 『만행』 『대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다인기행』 『뜰 앞의 잣나무』 『불국기행』,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머리말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김억추 장수

영화 <명량>이 천만 이상의 관객이 관람하여 국민영화로 등극한 일이 있다. 나는 당시 이낙연 지사의 초대로 <명량> 감독과 목포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을 발간한 바 있으므로 이 지사께서 어떤 공통분모를 느끼고 초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자리는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말을 아꼈지만 영화 <명량>에 대한 내 나름의 판단은 분명히 있었다.
영화 <명량>과 내 소설의 차이점 중에는 이순신의 당파전술(撞破戰術)에 대한 해석부터 완전히 달랐다. 당파전술이 전선끼리 부딪치는 것도 되겠지만, 나는 화포(火砲) 사격으로 적선을 분멸(焚滅)시키는 것을 당파전술로 보았음이다. 왜냐하면 전선끼리 부딪치는 것은 바다 위에서 쌍방이 피해를 입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전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잘못인 강단사학자들이나 영화 <명량>의 오류는 전라우수사 김억추 장수의 위상을 폄하하고 왜곡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김억추를 평가 절하하는 듯한 《난중일기》의 두어 구절 때문에 김억추 장수를 고민 없이 무능하고 비겁한 장수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는 여러 사료와 관점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나는 《선조실록》 《백사집》 《난중일기》 《연려실기술》 《현무공실기》 등을 참고한 바 김억추 장수를 새롭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라고 정했다.
나는 김억추 장수의 위상을 한마디로 평가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전라우수사 김억추 장수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통제사와 함께 눈부신 전공을 세우고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던 용장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특명으로 보낸 해적출신 왜군 선봉장 구루시마 미치후사를 화살 1발로 죽임으로써 전선 13 대 133이라는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전세를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김억추 장수는 《난중일기》의 다음과 같은 두 구절 때문에 억울하게도 용장으로서 빛을 잃는다. 《난중일기》 정유년 8월 8일, 명량해전 전투 전에 나오는 구절이 첫 번째다.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萬戶)에나 적합할까 대장감이 못 되는 사람인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 구절은 이순신이 김억추보다는 김응남을 비난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순신을 사사건건 비난하고 원균을 옹호했던 좌의정 김응남이 못마땅하니까 김억추까지 싸잡아 비난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6일, 명량해전 결전의 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러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달아날 꾀만 내고 있었다. 김억추가 탄 배는 벌써 2마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이 구절 역시도 김억추는 전선 후미에서 질서를 잡는 후위장 역할을 하느라고 물러나 있었을 뿐이었고,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너무 앞서지 말라고 이순신이 걱정했을 정도로 왜선과 맞붙어서 싸웠던 것이다. 김억추 장수는 충(忠)과 효(孝)를 다했던 장수이다. 나는 김억추 장수가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장수 가운데 한 분이었다고 확신한다. 김억추 장수를 칭송하는 율곡 이이와 김명원과 이덕형, 유영경의 시를 보면 그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인물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것도 소설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책 속에서

- “아이고메, 억추 성님. 그냥 바우가 아니라 원사석표(遠射石標))라고 새겨져 있그만요.”
“내가 병조 참지 앞에서 시재헐 때 사대(射臺)부텀 요 바우까정 여섯 냥짜리 화살 세 발을 쏴불고 난께 기념으로 판 글씬디 사람덜은 이 바우를 그냥 김억추석(金億秋石)이라고 부른갑드라.”
“지금까정 요 바우를 맞힌 사람이 성님밖에 읎응께 그러겄지라우.”
“그날 찬바람이 제법 불었는디 내가 운이 좋아서 맞혀 부렀제. 아마도 개본 화살로 쏘았으믄 바람 땜시 맞히지 못했을 것이다.”

- 김억추는 등에 멘 화살통에서 긴 화살을 하나 뽑았다. 함경도로 갈 때 이이에게 돌려받은 바로 그 장전(長箭)이었다. 김억추가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던 동생 김응추와 김기추에게 말했다.
“응추야, 기추야, 저놈만 거꾸러뜨리믄 승기를 잡을 수 있어야. 단번에 전세를 뒤집어불 수 있을 것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미친 들개맨치로 날뛰는그만요.”
“단 한 번은 멈출 때가 있을 것이다.”
“성님, 저놈이 움직이고 있응께 화포로 날려붑시다.”
“아니다. 내 화살로 확실허게 저놈을 죽여야 한다. 저 선봉장만 죽이믄 왜적 선봉대는 와그르르 무너질 것인께.”
마침, 구루시마가 소리치다가 지친 듯 안택선 층각장대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김억추가 기다리던 단 한 번의 순간이었다. 김억추는 온 힘을 다해 구루시마를 겨누었다. 김억추의 동생들은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성님은 반다시 저놈 숨통을 끊어불고 말 것이여.”
잠시 후 안택선을 공격하던 각 전선의 장수들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이순신도 눈을 부릅뜨며 신음 같은 소리를 뱉어냈다. 김억추의 손에서 화살이 떠나자마자 구루시마가 층각장대에서 굴러 떨어지더니 바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각 전선의 장졸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와아! 와아!” 

목차

교룡기 / 사신 길1 / 사신 길2 / 김억추석(金億秋石) / 화살로 충성하라 / 함경도 칼바람 /
무이보 / 투구와 갑옷 / 적호의 난 / 이이의 십만양병 / 이순신의 공 / 작별과 약속 / 보복작전1 /
보복작전2 / 남솔(濫率) / 형제 결의 / 왜군 침략 / 파천과 호종 / 갑산 전투 / 평양성 후퇴 /
명군 참패 / 평양성 타격 / 평양성 탈환 / 금의환향 / 우수영 / 판옥선 개조 / 명량으로 가는 바다 /
어란포, 벽파진해전 / 충(忠)과 효(孝) / 명량해전 / 남당포 전투 / 이별주

작가 후기 /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김억추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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