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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607357 / 288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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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유년의 온기>
쏟아진 폭설로 천지가 백색의 운해(雲海)처럼 드리워진 1493년의 겨울철이다. 11월 14일 아침의 햇살이 산안개처럼 슬며시 퍼질 무렵이다. 전라도 담양부(潭陽府) 기곡리 상덕마을의 19살의 유생(儒生)인 송태(宋泰)의 집 안방에서다. 갓 출생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산야의 적막을 내몰며 산울림처럼 퍼진다. 안방에는 송태의 팔촌 형수와 송태의 어머니가 산모를 돌보고 있다. 송태의 어머니와 팔촌 형수가 방문을 열며 송태를 부른다. 들뜬 기류에 휩쓸리듯 단숨에 송태가 산실로 내닫는다.
팔촌 형수는 장성에 사는 37살의 송흠(宋欽)의 아내이다. 송태의 아내에게 산기(産氣)가 내비치자 송태의 어머니가 그녀를 불렀다. 송태의 팔촌 형수가 송태를 향해 경이로운 정감을 내뿜듯 말한다.
“아기가 시아주비를 닮아서 눈부시게 고운 옥동자예요. 사내 아기라 울음소리도 얼마나 우렁찬지 마음이 흔들릴 정도예요.”
송태가 고맙다는 표정으로 갈대처럼 경건하게 허리를 숙여 응답한다.
“형수님께서 돌봐 주셔서 정말 감사하외다.”
송태의 눈에 비친 아기의 용모도 눈부실 정도로 훤하다. 송태가 중얼대듯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천지신명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처럼 소중한 아기를 보내 주셔서 말입니다. 정성을 다해 잘 키우겠습니다.’
송태가 기쁨을 드러내듯 새끼줄에 고추를 끼운 금줄을 사립문에 내두른다. 세상에 통지하듯 사내 아기가 출생되었음을 알리는 표시물이다. 외부인들의 사사로운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물이기도 하다. 가마솥에는 아기를 목욕시킬 끓인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살갗이 얼어붙을 듯 매서운 추위임에도 송순(宋純)의 출생으로 훈훈한 분위기다. 사립문에 금줄을 두르고서도 송태는 취한 듯 경이로움에 잠겨 있다.
(…)
호반 서쪽의 일부에 하얀 모래가 은가루처럼 펼쳐져 있다. 모래 위에 송흠이 손가락으로 커다랗게 한자(漢字)를 줄줄 쓴다. 신선이 선동에게 말하듯 송흠이 송순을 향해 말한다.
“내가 모래에 손가락으로 쓴 것처럼 너도 손가락으로 써 봐. 완전히 모양이 비슷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써 봐. 이 글들은 ‘논어’라는 책의 제1편 학이(學而)의 첫 구절이야. 오늘 하루의 공부는 이게 전부 다이니 정신을 집중시켜야 돼. 위의 3줄은 한자이고 아래 3줄은 언문이야. 언문은 세종 임금이 만드신 우리 글자야.”
學而時習之 不亦說呼(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呼(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呼(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친한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가 되지 않겠는가?
송흠이 장검을 휘두르듯 백사장에 손가락으로 글자를 써서 송순을 지도한다.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게 신기한지 송순이 연신 즐거워한다.
(…)
<상충하는 기류>
여름철의 열기가 들끓는 냄비처럼 따가운 1519년의 6월이다. 길가의 수양버들의 가지마다 매미가 매달려 울음을 쏟아 낸다. 용소(龍沼)에서 목욕하듯 들을수록 귀와 마음이 후련해질 지경이다.
송순은 이틀 전인 초순에 종9품인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제수되었다. 승문원은 외국 교류의 숨결 같은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송순은 과거에 급제하면서 3살 연하의 설 씨와 혼인했다. 아내의 본관은 풍경이 그림처럼 수려한 전라도 순창이다. 경복궁에서 남쪽으로 2.3리 떨어진 청계천 부근인 서린동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공기의 흐름이 호수의 물결처럼 부드러운 곳에 집을 구했다. 퇴직한 선비로부터 구입했기에 가옥이 잘 닦인 거울처럼 깔끔한 편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집 둘레로는 돌담이 성곽처럼 펼쳐져 있다. 집 뒤란에는 맑은 우물이 자리 잡고 있다. 두레박으로 푸면 남실대는 맑은 샘물을 언제든 접하게 된다. 빨래터는 집에서 0.5리 거리의 청계천에 넓게 마련되어 있다. 하늘의 공기처럼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원래의 집 주인이 가꾸던 화초들이 화단 곳곳에 물결처럼 남실댄다.
이제 갓 조정에 드나드는 햇병아리 같은 관리인 송순이다. 송순의 마을은 농촌에 가까울 정도로 논밭이 잘 발달되어 있다. 아마도 인근에 흐르는 청계천 탓인 모양이다. 바람의 길목을 제공하듯 집들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 그리하여 언제든 귀가하면 송순의 마음이 탁 튀고 평온해진다.
송순은 상승기류로 다가드는 매처럼 조광조 주변의 기류에 관심이 끌린다. 자신보다 11살의 연상인 신진 사림의 영수이지 않은가? 나이와 취향까지 도토리의 키처럼 비슷하여 왕으로부터 잔뜩 신뢰받지 않는가?
훈구파 중신들에게 맞불을 놓을 듯 대적할 세력을 찾는 왕이었다. 반정의 공로로 조정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을 불편하게 한다. 비상시에 대비하려는 듯 견제 세력은 필요하다고 여기는 중종이다. 연산군 때에 산사태에 깔리듯 사화로 많은 사림이 피해를 입었다. 공격당한 사림들이 유배를 가거나 사사되어 목숨을 잃었다. 중종은 반정 이후의 정치적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저자의 말
유년의 온기
장성에서의 수련
담양의 산하
꿈꾸던 등과
상충하는 기류
사가독서
당당한 풍도
면앙정
휘감기는 먹구름
가야금을 벗하여
순리의 흐름
자연으로의 회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