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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의 미래 걷는사람 희곡집 5

한진오 저 | 걷는사람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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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128449 / 312쪽 140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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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한진오
저자 : 한진오
제주도굿에 빠진 제주 토박이다. 굿을 직접 사사받고 연구를 병행하면서 문학, 연극, 음악, 미디어아트 등 전방위적 예술작업을 벌여 왔다. 2005년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연출상, 2008년 ‘1만 8천여 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전국공모전’ 대상, 2011년 ‘한국방송대상 지역다큐멘터리 라디오 부문 작품상’ 등을 받았다. 『이용옥 심방 본풀이』(공저)를 비롯한 여러 편의 연구서 저술에 참가했고, 2018년 미디어아트 퍼포먼스 〈사라진 것들의 미래-사남굿 설문대〉 등의 총연출을 맡았다. 2019년 제주의 신화 이야기를 담은 책 『모든 것의 처음, 신화』를 펴냈다.

머리말

작가의 말
파도를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물져 오는 파도와 쉼 없이 불어오는 바람의 발원지를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제주, 섬에서 태어나 물 밖 세상은 겪어보지 못한 채 머리가 굵었다. 그 덕분인지 바다는 널따란 종이가 되고, 바람은 보드라운 붓이 되어 상상의 노트를 선물해줬다. 문학 소년을 꿈꾸던 사춘기의 열망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80년대 끝물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탈춤반 활동을 하며 장구채를 손에 쥔 것이 졸업 후로도 이어져 30대 중반까지 마당판을 전전하는 광대로 살았다. 광대의 삶은 자연히 고향에 대한 탐문으로 나를 이끌었다. 70여 년 전 다섯 살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고아가 된 어머니의 이력 속에 4·3이 잠복해 있었고, 그 아픔을 달래는 것이 하루도 그치지 않은 이 섬의 굿판인 사실도 광대의 삶 속에서 알게 되었다. (중략)
다섯 편의 극본에는 내게 주어진 광대로서의 소명이 관통하고 있다. 광대로서의 소명이며 제주 사람의 숙명이기도 한 나의 모든 작업은 ‘주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에 뿌리를 둔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정치적 변방이라는 삶의 조건은 제주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스런 현실의 돌파구를 주술에서 찾게 했다. 제주를 일러 1만 8천 신들의 고향이라고 부르다시피 섬사람들은 곳곳에 신성을 부여해 삶의 의지처로 삼았다. (중략)
이렇게 내 작업의 원천은 오롯이 제주의 굿 속에 있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굿판에 머무를 듯하다. 아직은 예술적 소양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작정한 만큼 스스로의 기대에 답하는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준 도서출판 ‘걷는사람’에 답례하는 마음으로 게으름 없이 걸어가야겠다.
굿처럼 아름답게….
2020년 1월 한진오

책 속에서

노인 저분이 섬의 심장이며 여신일세. 비바람 속에서 내게 말하시더군. 섬의 심장께선 세상이 생겨날 때
부터 이곳에 계셨대. 많은 생명들을 낳고 품었다는군. 그러나 우리 인간들만 달랐다는군. 인간들 은 욕망의 끝을 모르는 존재들이래.

노인이 잠시 밭은기침을 하는 사이에 섬의 심장 맥박 소리가 울리고 땅이 흔들린다. 맥박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맥박 소리를 따라 암벽이 금 가기 시작한다. 놀라는 물음표를 노인이 다독인
다.

노인 그리 놀라지 말게나. 섬의 심장께선 몸소 보여주시려는 것일세. 사라진 것들의 미래를 말이네.
다시 밑바닥이 없는 호수 속으로 사라지실 걸세. 나 또한 저분과 함께하고 싶네.

그사이 섬의 심장 맥박 소리는 점점 빨라지고, 소녀의 그림도 점점 빛을 잃어 간다.
-「사라진 것들의 미래」 중에서


환 근데 어르신, 굿을 하면 효험이 있을까요?

노인1 게메이. 알 수 없주. 겐디 굿이라는 건 꼭 바라는 만큼 뒈고 안 뒈고를 떠낭 잘못을 빌려고 허는
거주.

환 잘못요?

노인1 아, 제주 섬에 이런 재난이 닥친 이유야 과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이 알앙 풀어낼 문제고. 우린 사람
덜이 무슨 잘못을 헤도 크게 헤시난 천지신명이 진노허 동티가 낫다고 보는 거주. 게난 바라는 건 둘째 치고 잘못을 먼저 빌어야 뒐 거 아니라.
-「숨을 잃은 섬」 중에서


소리1-여 나무와 풀은 모두 어디에 있니?
코러스들 다리는 어찌 되었나요?
소리1-여 새와 짐승은 모두 어디로 갔니?
코러스들 다리는 어찌 되었나요?
소리1-여 옷을 다 지었니?
코러스들 다리는 어찌 되었나요?
소리1-여 나와의 약속을 묻는 거야. 옷은 어찌 되었어?
코러스들 다리를 보여주소서. 그리하면 옷을 바치겠나이다.
소리1-여 나무와 풀, 새와 짐승들, 모두가 너희를 대신해 죽었어.
코러스1 당신의 몸을 감쌀 옷감이 되었나이다.
소리1-여 너희들은 또 다른 잘못을 저질어.
코러스2 당신과의 약속 때문이었나이다.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소리1-여 내가 바란 건 온 생명이 함께 사는 거야.
-「숨을 잃은 섬」 중에서


떡집 아이고, 시리떡 다 뒛져. 찜기 김빠지는 소리만큼 시원헌 것도 엇어예. 삼춘, 경 안 허꽈?
나 인생도 저렇게 시원허게 뚫려시문 좋으켜만은. 예? 복에 겨운 소리? 삼춘이야말로 사름 속
모른 소리 허지 맙써. 이 추석 대목에 삼춘네 알바 불러가멍 눈코 뜰 새 엇이 바쁜디 코빼기도
안 비치는 서방 생각만 허민 터져분 송편 속만큼이나 복통 터졈수다. 요 대목에 솔짝 도망가수게.
나가 맨날 웃으멍 일허난 살만헌 거 닮지예? 말도 맙써. 놈덜은 꿀떡같이 사는디 나 인생은 완전
개떡이우다. 개떡. (뒤돌아보며) 야, 김군아. 송편 담을 박스에 채울 솔잎 시치라. 시리떡은 나가
꺼내켜.
-「이제 와서」 중에서


대표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뜻이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이 불량위패들을 박살내는 의식을 거행하겠습
니다. (관객들을 보며)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의 질서를 수호하는 60만 제주도민 여러분! 지금부터
4·3폭동 주범들의 불량위패 박살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달군 대표님. 불량위패가 뭐꽈?

대표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불량위패를 모른다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6년 전 우리 제주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룡 (큰소리로) 4·3폭동이우다!

대표 예, 맞습니다. 유사 이래 가장 악랄하고 무자비했던 폭동이지요. 그럼 누가 일으켰습니까?

무룡 그거야 당연히 북한괴뢰도당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폭도덜이 벌린 거 아니꽈게.

대표 딩동댕! 고무룡 어르신. 역시 반공용사답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폭동을 미화하고 왜곡시켜
말도 안 되는 4·3특별법을 제정한 것도 모자라 국가 추념일까지 제정하는 망국적 사태가 벌어졌다
이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달군 정부에서 허는 것도 잘못된 거우꽈? 대표님이 존경헤 마지않는 대통령님께서 정헌 거 아니꽈?

대표 저분 누굽니까? 뭘 그렇게 따져요. 여기가 애국대회장이지 토론장입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4·3폭동 바로잡자 이겁니다.

무룡 맞수다. 야당부터 시작헤서 시민단체다 뭐다 허는 빨갱이덜을 전부 때려 잡아뒙니다게.

대표 맞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욱 분통 터지는 일은 저 4·3평화공원 위령실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위패 속에 남로당 빨갱이들의 위패가 버젓이 걸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그냥 놔둬서야 되겠
습니까?
-「실명풀이-꽃사월 순임이」 중에서

목차

이제 와서
광해, 빛의 바다로 가다
사라진 것들의 미래
실명풀이-꽃사월 순임이
숨을 잃은 섬
해설 : 사라지는 섬을 위한 비념 - 김동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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