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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887162 / 204쪽 / 328g /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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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벌리 로버츠 가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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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 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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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여기에 들풀들의 노래가 있습니다. 들풀들의 향기가 있습니다. 들풀들의 순결이 있습니다. 들풀들의 소망이 있습니다.
들풀들은 마침내 가녀린 손을 높이 들고 승리를 합창할 것입니다.
들풀들은 자유합니다. 왜냐하면 들풀들은 어느 누구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가 그들 안에 영원한 소망을 품게 만듭니다.
오늘도 들풀들은 하늘을 향해, 산을 향해, 사막과 메마른 땅을 향해, 세상을 향해, 인생들을 향해 이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왕궁보다 들을 사랑하셨던 주님, 아침에 돋는 풀이라 생을 정의한 모세, 그 풀꽃을 노래한 시인, 그 들풀의 모습으로 초향(草香)을 풍기는 목양의 삶! 이 책은 그 이야기를 시처럼 노래하고 회화처럼 그려 나가는 책이다. 이 속에 기독교의 본질과 현대 교회 회복의 열쇠가 있다. _ 소진 진우정 교수
본문 중에서
저에게 주어진 반장의 일을 잘 감당하려고 하는 것은 섬김의 중요한 도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고 세상 속에서 소금의 맛을 내야 참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반장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 안에 있는 다양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마을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섬길 것을 당부했습니다. 다수의 마을 임원이 교회 성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밭둑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막걸리 한 병 놓고 한 숨 쉬고 있는 농부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여전할 것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선(善)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졌던 성직자들에게서 자기들 속에 있는 똑같이 추악한 탐욕의 모습을 봄으로 진리와 생명마저 걷어차 버린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 제 삶의 환경입니다. 발에 끌리는 치렁치렁한 인위적 권위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한 알의 감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울고 웃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주님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빛 은실로 만든 참 권위의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참 권위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_ 36-37p
구원을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님 때문에 아주 간단합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나님은 우리를 천지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을 때, 어떻게 이런 선택이 가능할까요? 분명한 것은 예정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정설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한번 예정된 것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정설 위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시간적으로나 과정적으로 복잡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롬 10:13). 얼마나 간단합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천지창조 이전에 택함을 받게 됩니다. 똑바로 서서 두 손을 입에 대고 하늘을 향해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부르면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마 18:3). _ 46-47p
동물을 비롯한 모든 자연 세계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에게 완전히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폭력 행사는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신념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엄청난 폭력을 가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언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오히려 주님은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사랑하시고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돌보고 먹이시는 분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말씀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만민(萬民)에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모든 피조물(파세 테 크티세이[π?σ? τ? κτ?σει])”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들 대부분도 “모든 피조물(every creatur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KJV, RSV, NIV). 이 말씀에 의하면, 복음을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게도 전파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한글로 성경을 번역할 때, 복음을 사람이 아닌 강아지에게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이런 번역이 생긴 것 같습니다. 주님은 복음이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로 확장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한 것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것도 사랑해야 합니다. _ 62-63p
요즘 농촌에는 또 다른 울타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귀촌자들 때문입니다. 이 분들이 농촌에 와서 집을 건축하고 나서 바로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일을 합니다. 농촌에는 원래 울타리가 없었습니다. 있기는 했어도 단지 경계의 의미이지 분리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부자일수록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가 얼마나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도 울타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욥 1:10)”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욥을 위해 울타리를 둘렀기 때문에 욥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울타리는 욥과 그의 집, 그의 모든 소유물을 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는 보이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울타리입니다. 이 울타리 때문에 사탄이 욥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울타리를 허무는 만큼 사탄은 욥을 시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속 시원하게 답하지 못하는 영원한 질문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사탄을 이 지상에 남겨 두고 계신 것일까? 하나님은 천사가 죄를 범했을 때, 왜 그를 아예 없애버리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으면 지금 우리가 원죄로 인해 고통하지 않아도 되는데 ….”
이것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와 사탄 사이에는 하나님의 울타리가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가 없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혼돈과 파괴로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울타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거합시다. _ 103-104p
어둠이 없는 빛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침묵이 없는 소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소리는 침묵이라는 배경 속에서 표현됩니다. 침묵이 없이는 소리도 없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경건한 자들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소리를 통해서보다는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마 6:6). 하나님의 대화 방법은 침묵입니다. 우리를 은밀한 침묵 속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십니다. _ 152-153p
개역개정 성경 잠언서에 ‘정직’이라는 단어가 31번 나옵니다. 잠언은 31장으로 되어 있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한 번은 정직하자라는 함의(含意)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혹은 인정받기 위해서 우는 척, 웃는 척, 죽은 척, 배운 척, 가진 척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거짓입니다. 죽은 척하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척한 것이 아니라 진짜 죽으셨습니다. 이런 진실한 죽음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_ 188-189p

저에게 주어진 반장의 일을 잘 감당하려고 하는 것은 섬김의 중요한 도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고 세상 속에서 소금의 맛을 내야 참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반장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 안에 있는 다양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마을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섬길 것을 당부했습니다. 다수의 마을 임원이 교회 성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밭둑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막걸리 한 병 놓고 한 숨 쉬고 있는 농부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여전할 것이라는 절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선(善)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졌던 성직자들에게서 자기들 속에 있는 똑같이 추악한 탐욕의 모습을 봄으로 진리와 생명마저 걷어차 버린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 제 삶의 환경입니다. 발에 끌리는 치렁치렁한 인위적 권위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한 알의 감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울고 웃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주님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빛 은실로 만든 참 권위의 옷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참 권위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_ 36-37p
구원을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님 때문에 아주 간단합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나님은 우리를 천지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었을 때, 어떻게 이런 선택이 가능할까요? 분명한 것은 예정이 예수 그리스도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정설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한번 예정된 것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정설 위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시간적으로나 과정적으로 복잡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롬 10:13). 얼마나 간단합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천지창조 이전에 택함을 받게 됩니다. 똑바로 서서 두 손을 입에 대고 하늘을 향해 “예수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부르면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마 18:3). _ 46-47p
동물을 비롯한 모든 자연 세계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에게 완전히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폭력 행사는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이러한 신념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엄청난 폭력을 가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언제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오히려 주님은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사랑하시고 공중의 참새 한 마리도 돌보고 먹이시는 분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 말씀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만민(萬民)에게”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모든 피조물(파세 테 크티세이[πάσῃ τῇ κτίσει])”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들 대부분도 “모든 피조물(every creatur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KJV, RSV, NIV). 이 말씀에 의하면, 복음을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에게도 전파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한글로 성경을 번역할 때, 복음을 사람이 아닌 강아지에게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서 이런 번역이 생긴 것 같습니다. 주님은 복음이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 세계로 확장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한 것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 속한 것도 사랑해야 합니다. _ 62-63p
요즘 농촌에는 또 다른 울타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귀촌자들 때문입니다. 이 분들이 농촌에 와서 집을 건축하고 나서 바로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일을 합니다. 농촌에는 원래 울타리가 없었습니다. 있기는 했어도 단지 경계의 의미이지 분리의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부자일수록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고 대문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가 얼마나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을까요?
하나님도 울타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욥 1:10)”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욥을 위해 울타리를 둘렀기 때문에 욥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울타리는 욥과 그의 집, 그의 모든 소유물을 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는 보이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울타리입니다. 이 울타리 때문에 사탄이 욥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울타리를 허무는 만큼 사탄은 욥을 시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속 시원하게 답하지 못하는 영원한 질문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사탄을 이 지상에 남겨 두고 계신 것일까? 하나님은 천사가 죄를 범했을 때, 왜 그를 아예 없애버리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으면 지금 우리가 원죄로 인해 고통하지 않아도 되는데 ….”
이것에 대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와 사탄 사이에는 하나님의 울타리가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하나님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가 없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혼돈과 파괴로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울타리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거합시다. _ 103-104p
어둠이 없는 빛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침묵이 없는 소리가 있을 수 있을까요? 소리는 침묵이라는 배경 속에서 표현됩니다. 침묵이 없이는 소리도 없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경건한 자들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소리를 통해서보다는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기도에 응답하십니다(마 6:6). 하나님의 대화 방법은 침묵입니다. 우리를 은밀한 침묵 속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십니다. _ 152-153p
개역개정 성경 잠언서에 ‘정직’이라는 단어가 31번 나옵니다. 잠언은 31장으로 되어 있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한 번은 정직하자라는 함의(含意)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혹은 인정받기 위해서 우는 척, 웃는 척, 죽은 척, 배운 척, 가진 척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거짓입니다. 죽은 척하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은 척한 것이 아니라 진짜 죽으셨습니다. 이런 진실한 죽음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_ 188-189p
하늘 땅 물 벗 _ 4
1부 하늘
감동 _ 12 너머 _ 16
둘로스 _ 20 만물극필귀원 _ 24
어메이징 _ 29 참 권위 _ 33
창조 _ 38 할머니와 신용 카드 _ 43
행복이란 _ 48 황공 _ 53
2부 땅
강아지 꼬리 _ 60 개똥벌레 _ 65
꿈과 고난 _ 70 밭 _ 75
불신 _ 80 비교 _ 85
숫자 _ 90 오해 _ 95
울타리 _ 101 일 _ 105
3부 물
돌 _ 112 물 _ 117
복수초 _ 121 소리 _ 125
씨앗 _ 130 올해만 _ 134
옹달샘 _ 139 자연으로 돌아가라 _ 143
침묵 _ 148
4부 벗
고통하는 사랑 _ 156 나라면 _ 161
담당 _ 166 변신 _ 171
병아리의 죽음 _ 176 절망과 원망 _ 180
척 _ 185 하모니 _ 190
행복마을 _ 195 화해 _ 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