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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송종찬 저 | 삼인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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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4361726 / 308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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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러시아의 문화 예술, 문명의 감수성에 대한 섬세한 수용 “러시아로 떠나는 나를 향해 꼭 가야만 하느냐고 물었다. 가고 싶다고 했다. 누가 기다리고 있느냐며 그대는 다시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춥고 햇살 드문 곳에서 어떻게 지낼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냥 견디어보겠다고 했다. 그곳은 아주 드넓어 길을 잃거나 어쩌면 돌아올 수 없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프롤로그에서의 진술처럼, 반공 교육을 받고 학창시절 냉전까지 경험한 송종찬 시인에게 러시아는, 그 시기를 지나온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동경과 공포, 경외와 적대감 같은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그곳에서 시인의 시선과 감성으로 혁명가 레닌과 크룹스카야, 이네사의 행적을 좇으며 사랑과 혁명이라는 키워드를 읽어내기도 하고, 깊고 맑은 바이칼호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슬라브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정령에 대해 상상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제정러시아 시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이의 동선을 오갔던 수많은 예술가와 혁명가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러시아인의 면면에 흐르고 있는 사랑과 기다림에의 열정을 소구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톨스토이의 작품들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구체적으로 소환되어 저자의 소회를 돕는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표피적 감각으로 외국의 문물에 대한 인상을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육화하고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주관적인 해석과 수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의 풍부한 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효과적으로 동원된다. 예컨대 혹독하고 긴 러시아의 겨울밤, 저자는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생각에 갔던 것을 떠올리고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들을 소환하면서 러시아가 겪은 역사와 그것에 연동된 러시아인의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비범하게 성찰하는 것이다.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이 빛났던 것은 내일을 알 수 없는 현재성에 있었다. 1차 세계대전, 혁명, 내전이 차례로 이어지던 시기로 늘 죽음의 그림자가 따라 다녔다. 전쟁과 혁명이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빛났고 이별은 참혹했다. 고난은 사랑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고 비극적인 사랑은 불멸의 사랑을 완성했다.” 그뿐 아니라 사랑을 위해 정적과의 결투를 벌이다가 부상을 당해 죽은 러시아 국민시인 푸시킨의 삶과 자살을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한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삶을 돌아보고 거기에 자신의 자의식을 섬세하게 대입하면서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문학의 책무와 구원의 가능성 등을 심도 있게 탐문한다. 이 책이 단순히 이국의 문물에 대한 인상비평에 머무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기술했듯 저자는 러시아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서의 겸양을 끝내 잃지 않는다. 러시아에서의 체험을 책으로 묶으면서 자신이 느낀 소회를 저자는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작은 몸으로 채울 수 없고, 시로 노래할 수 없었던 광활한 대륙을 위해 산문의 발자국을 더해 본다. 다가서면 멀어지고 보면 볼수록 아득해지던 시베리아.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며 눈보라처럼 떠돌았건만 북국은 여전히 낯설기만 할 뿐, 누군가가 러시아에 대해 물어온다면 차라리 모른다고 대답하리라. 그리고 침묵할 것이다. 대륙의 밀실에 갇혀 지내던 네 해 동안 내가 보고 찾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저자는 4년여 동안 러시아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지만 누가 러시아에 대해 물어온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거라고 말한다. 이 말은 러시아에 대해 온전히 안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일 터이다. 그의 겸양처럼 책 속에서 저자는 러시아를 단정하거나 자신의 추정을 섣부르게 확인하기보다는, 성실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러시아의 내밀한 속살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는 데 집중한다. 그것은 어쩌면 시인으로서 그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시베리아로 표상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와 동경의 근거를 지켜내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에 대해 함부로 단정하는 순간, 동경과 신비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남도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외 러시아어 시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이 있다.

책 속에서

러시아는 장편의 나라다. 긴 겨울과 대륙의 빈 공간을 시로 채우기에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많은 시인이 절명한 이유는 광활한 시간과 공간을 시로 다 채울 수 없어 좌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이긴다는 의미는 견딘다는 것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공항이나 경기장에서 미동도 없이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서 인내의 DNA가 남다름을 느꼈다.
학창시절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마다 러시아 장편소설을 읽을 계획을 세웠지만 한번도 제대로 완독하지 못했다. 사람의 이름들이 헛갈리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진도가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소설책은 책의 기능을 상실하고 이내 라면냄비 받침대로 쓰이곤 했다. 러시아의 19세기 소설은 왜 그토록 길고 복잡했을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넘지 못할 거대한 산맥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생가를 찾아가던 날 이슬비가 내렸다.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 도스토엡스카야역에서 내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따라가면 나오기 때문이었다. 모스크바의 도스토예프스키 울리차 2번지는 그가 태어나 16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아버지는 자선병원 의사로, 도스토예프스키는 병원에 딸린 작은 숙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거리와 역은 찾기 쉬웠는데 생가를 쉽게 찾지 못해 동네 사람에게 물어봐야 했다. 러시아인은 작가의 생가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지 특별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던 집 그대로가 박물관이 된다. 도스토예프스키박물관만 해도 그가 태어난 모스크바, 수용소생활을 한 옴스크, 죽음을 맞이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다섯 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작가를 대접하는 나라도 드물다.
쥐가 돌아다닐 것 같은 입구, 삐걱거리는 문, 창틀에 내려 쌓인 먼지 등 생가에 들어서자 우울한 분위기가 밀려왔다. 버려진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찾던 자선병원은 생과 사를 가르던 경계였다. 가장 밝아야 할 유년시절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쪽방의 작은 창문 사이로 회색빛 장면을 보며 자랐다. 그의 생가에서 본 것은 유품이 아니라 우울한 과거와 누렇게 변한 침묵이었다. -2부 중 <기억의 집>에서


다시 강풍이 불었다. 이번에는 눈보라를 동반한 북풍이었다. 강심까지 얼어붙고 그 위에 차곡차곡 눈이 쌓였다. 들과 강의 경계가 사라져 평평하게 되었다. 추운 날에는 새도 날지 않았다. 먹이를 찾아 짐승들도 내려오지 않았다. 겨울강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화지를 내밀 뿐 숙제를 주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백지를 보면서 작심하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강이 보이는 창가에 컴퓨터를 가져다 놓고 몇 날 며칠 자판을 두들겼다. 뭔가 나올 것 같은데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다. 보드카를 마시며 강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촛불을 켜놓고 온갖 폼을 잡아 보았다. 하늘은 가장 쉬운 언어로 또박또박 불러주는 데 받아 적을 수 없었다. 어쩌다 몇 자 적고 잠이 들면 밤새워 쓴 시들을 눈발이 이내 지워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소득 없이 진눈깨비를 보면서 12월을 보냈다. 1월 중순에 접어들자 맹추위가 닥쳐왔다. 추운 날에는 대게 눈은 내리지 않고 햇살이 비췄다. 글 쓰는 것을 포기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지인 몇 명을 집으로 불러 새벽 3시까지 보드카를 마시다 잠이 들었다. 깨어 보니 일요일 낮 12시였다. 눈을 비비고 강을 바라보았다. 설원 위에 햇살이 비치는데 강 한가운데 보일 듯 말 듯 점 하나가 있었다. 작은 점은 미동도 없었다. 강의 중심으로 난을 치듯 발자국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묵화였다. 텅 빈 캔버스가 점 하나로 꽉 차게 보였다. 화룡점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겨우내 나는 한 편의 시도 쓰지 못했는데, 설원 위에 단 하나의 발자국으로 수묵화가 그려지다니 놀라웠다.
털모자를 눌러쓰고 강으로 내려갔다. 겨울 햇살에 눈은 수정처럼 빛났다. 빙판 위를 걸으며 수국을 떠올렸다. 수국이 있던 자리의 눈을 헤쳐보았다. 단단한 얼음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눈밭에 어린아이처럼 러시아어로 미르(Мир, 평화)와 류보비(любовь, 사랑)이라고 써보았다. 눈 위에 두 발로 새기는 글자는 지워지기 쉽지만 순결했다. 누군가가 빌딩 위에서 강을 내려다볼 때 사랑과 평화는 반짝일 것이다. 발자국을 따라 강심까지 걸어갔다. 국방색 점퍼를 입은 낚시꾼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의 발 옆에는 싸구려 보드카 한 병과 담배가 놓여 있었다. 입가에는 김이 서리고 콧수염에는 고드름이 맺혀 있었다. 옆에서 한참을 보아도 물고기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얼음 구멍에 낚싯줄을 내렸다 올렸다 반복할 뿐 올라오는 것은 없었다. 시를 낚지 못하는 나처럼 그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 못한 것 같았다. -3부 중 <겨울 수묵화> 중에서

목차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시베리아로 가는 길 018/안가라강에 울리던 기적 소리 025/신의 눈물방울 같은 032/네바강의 달빛 039/심심해서 그리운 알타이 048/흑해의 숨결 같은 파도 057
혁명이란 무엇인가 065/떠나지 않는 여행 075/평원의 해바라기 083/발트해의 작은 몸부림 092/국경의 밤 102

겨울밤 눈은 내리고
대지를 적시는 신의 음성 112/한 장의 그림으로 남는 여행 120/손 끝에 미치다 130/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38/기억의 집 146/내일이 없는 사랑 153/겨울밤 라라의 사랑이야기 160/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168/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178/돈강에 뜨는 별 186

겨울을 건너가는 법
내 마음의 횡단열차 196/가도 가도 지평선 204/이름을 떠올리기만 하여도 213/백야에 쓰는 편지 220/수녀원에 촛불을 밝히다 230/겨울 수묵화 240/레닌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247/사랑이 꽃피는 시간 254/돌아오지 않는 봄 262/내가 사랑한 겨울나무 270/남 몰래 흘리는 눈물 같은 280/꺼지지 않는 불꽃 288/겨울을 건너는 법 296
에필로그 | 이별연습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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