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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263030 / 372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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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한날 한시에 부모를 역병으로 잃고 원산의 군수 공장에서 고된 삶을 이어가던 환과 낙, 서은 삼 남매의 앞에 화려하게 나타난 고모의 존재. 고모 아오마츠(靑松) 부인은 젊은 시절 어미와 아비의 죽음을 뒤로하고 일본에서 경성으로 부임온 아오마츠 백작의 후처로서의 화려한 삶을 살았다. 백작의 죽음으로 얻은 막대한 부는 아모마츠 부인의 화려한 삶의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허영과 화려함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자격지심과 아쉬움이 후계자를 구실로 조카들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생면부지의 고모로부터 아버지 백일광(白一光)의 과거지사를 전해들은 환은 제 아비가 누이를 떠나야 했던 심정과 결심을 헤아리면서도 두 아우 낙과 서은의 고생을 끝내기 위해 철저하게 고모의 대리인으로 분해 경성의 푸른 소나무 저택으로 향한다. 경성 최고의 저택에서의 삶은 이전에는 도저히 꿈꿔볼 수 없었던 삶이었다. 고모의 요구로 경성제대 의대를 다녀야 했던 환과 연희전문 문학부를 다니던 동생 낙과 달리 서은은 여자로서의 삶으로 길들여진다. 경성에서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대저택의 유일한 후계자로서 고모의 뜻을 따라야 했던 환은 동생들이 저택에서의 안정적 삶을 대가로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그런 형의 사고를 가장한 희생으로 내심 형의 자리를 탐내던 낙은 드디어 저택의 유일한 후계자 도련님이 되는데…. 한편, 서은은 오빠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고모로부터 여자로서의 길을 강요당하지만, 스스로 그 길을 깨고자 한다. 오빠들과 달리 고모는 서은이 가졌던 배움에 대한 열망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오빠의 책을 읽고 고모가 붙여준 가정교사 나오코를 졸라 배움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몰래 키워나간다. 서은의 가정교사이자 이화여전 학생인 나오코는 어린 시절 아모마츠 부인에게 이끌려 부인에게 길들여지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다. 그런 나오코에게 제자이자 한낱 시골뜨기에 불과한 서은의 재능은 스스로를 자해할 만큼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데, 누구도 짐작지 않았던 서은의 재능에 아파한 존재는 나오코뿐만이 아니었다. 장난같이 시작되었던 낙의 서은의 작품 훔치기가 세 사람의 생을 파국으로 몰고간다. “나에게 아비는 어미였고, 어미도 어미였다. … 그래서 어미는 애를 낳고 삼칠일도 지나지 않아 다시 일터로 갔다. 매운 경성 연기가 뼈마다 섞여 시렸다. 그래도 일터로 갔다. 남편은 담뱃재 쌓아가는 일 외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다 죽어가는 늙은 시모는 목소리와 눈빛만은 독하게 살아 있어, 시대 변한 줄도 모르고 제 미덕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일하다가 젖 물릴 시간이다 싶으면 집에 가서 젖을 물리고 다시 일을 하러 왔다. 시모는 젖 물리는 광경을 보다가 끌끌 혀를 찼다. 저도 계집이면서, 저도 젖가슴이 있으면서, 저도 남편이라는 작자를 낳은 계집이면서. 젖을 물리고 있는 계집도 싫어했고, 젖을 세차게 빨고 있는 계집도 싫어했고, 그 옆에서 아우를 구경하고 있는 계집도 싫어했다. 그 근본 없는 혐오를 혐오했다. 어미는 시모에게서 눈을 돌렸다. ‘언제쯤 가시나!’ 젖을 물리다가 그런 생각이 들면 어미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늙은이를 앞에 두고 장사 지낼 날만 기다리게 된 제 신세도 슬펐고, 어느새 그런 생각이 잦아지는 것도 슬펐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액자형 플롯’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소설 속 소설은 여인 삼대(三代)가 서로 물고 물리며 시대를 끌어나가는 모습에서 그 자체로도 한 편의 소설이 내놓아도 좋을 만큼 호소력과 의미를 담고 있다. 한편, 삼 남매의 의식의 흐름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의식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탄탄하게 묘사되었다. 어찌보면 온전한 안락과 풍요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아버지의 의식을 그대로 이어 그 정의롭지 못한 삶을 괴로워하는 환. 형과 달리 화려함을 욕망하지만 형 환의 존재로 인해 더 나아갈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동생 낙. 형의 의도적인 죽음에 비로소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 현재를 최대한 즐긴다. 낙은 그 풍요로도 모자라 동생 서은의 작품을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기로 하면서 결국 모두의 삶을 비극적 파국으로 몰고 간다. 서은은 시대와 상황이 허락하지 않음에도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순박하면서도 당찬 인물이다. 호기심과 열정은 고모조차 결코 꺾을 수 없었고,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모든 상황과 사물을 내면으로 끌어들여 동일시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여기에 아모마츠 부인이 된 고모 백송연과 아버지 백일광의 일생과 둘의 삶을 관통하는 의식의 흐름, 나오코와 홍주라는 양면적 삶에 내재된 심리적 갈등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넘어 현재의 서사로 끌여들여도 충분히 공감할 만큼 현실적이다. 단숨에 읽고나면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한 듯 아름답고 처절하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며 풍요로워지고, 너희들의 아비, 그러니까 일광이는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가기 시작했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기에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성격. 내가 그 성격에 진저리냈던 것은, 허투루 똑똑했기 때문이었다. 네 아비는 똑똑하고 영리했으나 그 올곧음 때문에 많은 욕을 봤다. 기울던 나라가 폭삭 사라지고 외국인들이 종로를 걸어 다니고 일본인들이 총칼을 차고 다니는데도, 한성이 경성이 되었는데도, 네 아비는 죽어도 대한 독립 만세를 하겠다고 거리를 쏘다녔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고, 지하에 숨어 뭔가를 꾸미고, 흔히 말하는 ‘독립 뭐시기’였다.
그때쯤, 나는 무엇을 했을 것 같으냐? 나는 결혼을 준비했다. 네 아버지 일광에겐 알리지 않았지. 일광이 알았더라면 나는 정말로 새벽에 목이 찔려 죽었을지도 몰랐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가난이 나는 지긋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졌다. 아름다워지고 아름다워져서, 마침내 푸른 소나무 집에 산다는 늙은 일본인 백작이 나를 탐할 만큼. -1장. 건곤일척 중
제 얘기를 하는 것도 모르는 어린것이 눈을 깜빡, 하더니 울음을 멈췄다. 눈물로 부푼 양 뺨이며 붉어진 눈두덩이 햇빛으로 또렷했다. 어린것의 뺨 위에 분내가 솔솔 날 것 같은 솜털이 돋아 있었다. 무심코 그것을 만져보고 싶어 손을 뻗는데, 박해관이 휙 몸을 돌렸다. 어린것의 얼굴이 저리로 멀어졌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아오마츠, 라고 불러주세요.”
“아니지. 백송연 아닙니까.”
“…과거의 이름이지요.”
“일광의 누이.”
몇 년을 잊고 살았던 이름이 해관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는 딸의 등을 토닥이고 제 몸을 들썩이며 방안을 빙빙 돌아다녔다.
“아우의 소식을 알고는 계시고?”
“모릅니다.”
“이러니 어찌 아우고 누이라고 할까.”
먼저 누이이고 아우이기를 끊어내자고 한 것은, 그 걸쭉한 피를 담장에 뿌렸던 일광이 아니었나. 송연은 해관의 물음에 그때를 떠올렸다. 비린내가 났었다. 바람이 불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년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의 송연은 조금 더… 아름다웠었다.
남매의 연을 끊어내자던 일광의 편지가 소의 피에 젖어 찢어지듯 찢어진 인연이었다. 해관에게서 그 말을 들으리라 생각도 못 했던 터였다. 그래서 말문이 막혔다. 자신을 한 번 바라봐주지 않는 태도에서부터 치욕을 억누르고 있던 송연이었다. 일광을 들먹이며 제 탓하는 해관의 앞에 아무 반박도 못 하는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2장 왕후장상 중
서은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책상에 앉았다.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있는 노트를 폈다. 노트에 흑연이 뭉개져 군데군데 그림이 흐려져 있었다. 서은은 입김을 불어 흑연을 털어냈다. 그리고 연필꽂이에서 잘 깎인 새 연필을 들어 그림을 완성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아이는 입이 없는 채로도 말을 할 줄 아는데 입을 그리면 되레 그 말이 멎을 것 같았다.
글을 쓰자. 아이의 입을 막는 대신, 글을 쓰자.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서은은 쥐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고 책상의 서랍을 열었다. 원고지 뭉텅이가 가득했다. 그중 한 뭉텅이를 들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친구야, 넌 그 거리에서 매일 무슨 이야기를 듣고 어떤 것을 보았니? 얘야, 네 동생의 이름은 뭐니? 네 할머니는 어째서 네가 어머니를 닮은 것을 고까워하니?
서은은 책상에 납작 엎드려 종이 안의 여자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강보에 싸인 제 동생을 꼭 끌어안은 채, 아이는 말을 한다. 언니 같은 사람들은 오지 마!
‘나에게 아비는 어미였고, 어미도 어미였다.’
아이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첫 문장을 그렇게 말했다. -3장. 동상이몽 중
자유란 무엇일까. 드나드는 것을 아무도 개의치 않아 하는 것이 자유라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이가 서은이었다. 어딜 가나, 서은은 거절당하지 않았다. 아오마츠 부인이 호위하는 계집애. 양녀는 아니면서, 정체가 뚜렷하지 않은 미궁 속 어린 계집애. 죽은 백환과 만악의 백낙은 알지만, 백서은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는 그녀가 쓴 글에도 서은의 이름은 없다. 고이 묻은 서은의 숨결과, 잉크와 지문과 울음과 희열이 있는데, 이름은 없다. 글은 온통 서은인데, 세상은 만선을 만악이라고 불렀다. 백서은이 아니라 백낙(落)의, 낙(樂)도 아닌 낙(落)의 것이라 알았다. 결국 백낙(落)은 없는 사람인데…. 존재하지 않는 것에 온통의 자유를 빼앗긴 기분은 생각보다 비참하고, 상상 이상으로 더러웠다. 애당초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게 무언가를 빼앗긴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저 어이없고 황당할 뿐이었다. -5장. 인지위덕 중
1장. 건곤일척(乾坤一擲)
소나무 저택
푸른 소나무, 백송연: 희다
2장. 왕후장상(王侯將相)
악惡, 착着
푸른 소나무, 박홍주: 붉다
3장. 동상이몽(同床異夢)
칼 위를 걷다
푸른 소나무, 백환: 돌아오다
4장. 상전벽해(桑田碧海)
도련님의 탄생
푸른 소나무, 백낙: 즐기다
5장. 인지위덕(忍智威德)
참음이 덕이다
푸른 소나무, 백서은: 숨기다
6장. 입신양명(立身揚名)
찬란의 찰나
7장. 주객전도(主客顚倒)
가면의 두께
8장. 유종지미(有終之美)
파국의 미학
푸른 소나무의 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