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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나는 악인이었는지 모른다

시리즈 : 걷는사람 시인선 [15]

정덕재 저 | 걷는사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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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128555 / 134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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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초등학교 6학년 수업 시간에 국어책을 잘 읽는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출발이었다. 보문산 자락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문학회에 들어가 3년 내내 시를 썼다. 20대 중반이었던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이름 석 자를 아주 잠깐 알린 뒤 시를 멀리했다. 
이후에는 방송 원고와 영상 관련 글을 팔이 빠지도록 썼다. 대부분 밥벌이를 위해 키보드 앞에 앉았지만 가끔은 알레그로로 자판을 두드렸다. 멀리 오니 돌아가고 싶었던지, 시가 그리웠다. 
뒤늦게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을 냈다. 그사이에 여기저기 칼럼과 르포와 여러 종류의 글을 썼고 전자책 『고딩 아빠 잡설』을 내기도 했다. 10대 중반에 시작한 글쓰기를 50대까지 이어 왔다. 열심히 읽고 쓰고, 생각을 많이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오늘은 후회하고 내일은 반성하며 계속 쓸 수밖에. 

머리말

벽에 박힌 못과 책상 앞 의자는 옷걸이였다. 벽에 못을 박은 지 오래됐다. 시가 옷걸이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 함부로 구겨지는 세탁소 옷걸이의 운명 혹은 슬픔일지라도, 매달린 삶은 늘 위태롭기에.
2019년 10월
정덕재

책 속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죽은 사람은 죽어야 하느냐
잊지 못해
잊히지 않는
떠나지 못한 영혼이
육개장 안에 풍덩 빠져 있는데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말고
죽은 사람 살려내야 한다며
육개장 웅덩이에 지푸라기라도
내려보내야 하지 않는가
썩은 동아줄을 잡은 십 분 남짓의 기억이 흔들려
차마 맛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 「장례식장 육개장을 먹으며」 전문


머리카락이 추풍낙엽의 시대를 맞으면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얼굴에 대한
시선의 합리적 분배를 위해
얼굴을 바라보는
상악과 하악의 관상을 위해
거울의 안녕을 위해
나는 날마다
머리를 쓰다듬기 전에
수염을 어루만진다
- 「분배의 정의」 전문


바른 자세로 앉으면 불편하다
삐딱한 자세로 앉으면 편안하다
바른 자세를 기억하는 뼈와 근육이
수시로 삐딱한 자세를 간절하게 원한다
바른 것은 관념이고
삐딱한 것은 무의식의 습관이다

프랜차이즈 식당 바르다 김밥에 가면
바른 자세로 시작해
삐딱한 자세로 그릇을 비운다
등을 기댄 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방되고
의자의 물성이 바뀌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자세다
- 「바른 자세와 삐딱한 자세」 전문


연애시 한 편 쓰지 않은 이유는
원고료를 주지 않아서
연애편지 한 장 쓰지 않은 이유는
마감이 없는 투고라서
연애시 한 편 쓰지 않은 이유는
어설픈 시인의 존재가 발각될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어서
연애편지 한 장 쓰지 않은 이유는
우체통에 넣을 수 없는
빈약한 새가슴이라서

사랑이 글로 쓰인다면
사랑은 머무르지 않지
- 「오래됐지만 구겨져 버려질 것 같은 연애시 2」 전문


종갓집 숙부가
출산율을 걱정한다
구순의 할머니는
손자며느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다며
한숨을 십 리 밖까지 내쉰다
뼈대 있는 가문보다 자손을 귀하게 여기는 건
소비자가 줄어든다며 걱정하는
자본가들이다

존재가
소비다
- 「소비자로서 인간」 전문

목차

1부 세월은 아침이 돼도 오지 않아
보스턴오뎅
냄비받침의 역할
시카고치과 가는 길에 서독안경점 주인의 고민
1235를 아시나요
내 이름은 택배물품
개와 인간
입술에 닿는 잔
주비와 거미의 노래 지워지지 않는 1을 들으며
시골 읍내에서 횡단보도 신호 바뀌기 3초 전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우측상단
바람을 품은 사내
연말에 술 마시기 좋은 날을 찾는다면
분배의 정의

2부 늦어도 좋아 봄밤에 만나
미스 김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
계면활성제
그녀였다
장미
구술녹취의 선입견
나무의 고백
글쎄, 꽃마중은
오래됐지만 구겨져 버려질 것 같은 연애시 1
오래됐지만 구겨져 버려질 것 같은 연애시 2

3부 숲이 깊어지면 나무의 걱정도 깊다
납세자로서 인간
소비자로서 인간
음주자로서 인간
성격이 바뀐 나무
나무의 걱정
분노의 꾸지뽕
낙하산 없는 바람
고독한 벌목
모두의 숟가락
장례식장 육개장을 먹으며
바른 자세와 삐딱한 자세
혈압계를 찾으며
웹 소설을 읽는 50대 시인
시어는 없다
약 치는 풍경
학살의 골령골

4부 침침한 것은 눈 때문이 아니라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1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2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3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4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5
시의 비만을 줄이는 식이요법 6
신동엽 시비를 지나며
바늘이 있는 시계
조선왕조실록에 첨가함
멀어지는 손들
잠들고 싶어
침침하다
잎이 서운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소멸
4월의 눈
하루살이 잡기
새벽 풍경
신음
이별의 시대가 고독해서

해설
불에 타거나 바다를 루거나 움찔 신호등에 반응하는 일
- 김병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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