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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손윤탁 저 | 에영커뮤니케이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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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887124 / 216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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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데살로니가교회는 좋은 소문으로 인하여 칭찬받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쓴 13권의 서신 중 첫 번째 편지인 데살로니가전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책입니다. 선교학자의 눈으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풀이한 『그날』은 종말의 날이 다가올수록 ‘선교의 긴급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기 쉽게 구성하였습니다. 매 장마다 외울 말씀, 부를 찬송 그리고 구체적으로 묵상할 수 있도록 ‘선교를 위한 기도와 실천 과제’까지 실었습니다. 가정 예배나 구역과 그룹을 위한 성경공부 교재로도 유용할 것으로 알고 이에 추천합니다. - 정영택 목사 | 교육목회실천협의회 대표, 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

저자 소개

  • 저자 : 손윤탁
저자 : 손윤탁
1976년 2월, 부산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남여자상업고등학교, 우암초등학교, 대신초등학교, 배정초등학교에서 1989년 2월까지 교사로 봉직하였다. 영남신학교 부산신학사(현 부산장신대학교)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신학석사), 세계선교대학원(선교학석사), 대학원에서 신학박사(Th.D.) 학위를,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철학박사(Ph.D.) 학위를 취득하였다.
밀양신보 논설위원,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 영남신학대학, 대전신학대학교 등에서 20여 년 동안 겸임 및 초빙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한국선교교육재단, 네팔새언약신학교(NNCC), 총회 WMTC(World Mission Training Center) 이사장과 한국순교자기념선교회 장학위원장, 한국기독교직장선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 서울노회 성서신학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효목중앙교회, 중곡동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고, 현재 남대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그는 학자로서도 세계선교연구회와 한국선교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94년 『구약성경의 산책』(도서출판 삼성) 이후 『나라별 충효순례』(충효국민운동본부, 2003), 『선교적 교회 직분론』(미션아카데미, 2006), 『한국 교회와 선비 정신』(도서출판 케노시스, 2012), 『땅끝까지 끝날까지』(한국장로교출판사, 2013), 『나그네 인생길』(따스한이야기, 2017), 『교회다운 교회』(예영커뮤니케이션, 2018) 등 20여 권의 저서를 출판하였다.

책 속에서

바울의 전도에 대한 유대인들의 방해가 대단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이른 바울 일행이 세 안식일 동안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므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는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행 17:1-4).
그러나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저잣거리의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소동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행 17:5-9) 바울은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밤을 이용하여 데살로니가를 탈출하여 ‘베뢰아’로 떠납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기록한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이렇게 떠나온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 대한 애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이지만 바울은 자신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게 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테네를 지나면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냅니다. _ 13p
교인을 생각하는 자신을 바울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살전 2:7)”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대리모’로서의 유모보다는 ‘젖을 먹인다.’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영어로 번역된 ‘A nursing mother’의 의미는 양모나 유모의 의미도 있지만 ‘직접 젖을 먹여서 키우는 어머니’라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는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심정 내지는 자세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개 어머니들은 아무리 화가 나도 자녀에게 젖꼭지를 물릴 때에는 화를 누그러뜨립니다. 그리고 여유를 가집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배앓이를 한다든지 설사를 한다든지 푸른똥을 싸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본능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로서 존경과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을 가졌고, 누구에게나 영광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만 그것을 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살전 2:6).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지만 바울과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과의 관계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벧전 2:2)’을 먹여야 하는 어머니와 자녀의 자리라는 점을 전제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_ 40-41p
우리말로 ‘때’와 ‘시기’는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헬라어는 그 의미가 다른 말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두 단어 모두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때라는 단어는 크로노스(Χρόνoϛ)로, 시기라는 말은 카이로스(Χαιρόϛ)로 표기하였습니다. 우리말로 쉽게 표현하면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주어진 기회를 의미하는 ‘시기’로 번역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된 구속사적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하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 시간이나 세속적 시간으로 크로노스(Chronos)라고 해석합니다. 가끔 이 두 단어를 구분하여 설명하느라 크로노스는 끝없이 지나가며 목적 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으로,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이라고 이야기함으로 크로노스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간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크로노스라는 시간을 카이로스로 알고 모든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알고 의미 있게 사용하며, 주어진 시간의 뜻을 발견하고 그 목적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_ 100p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시고 친히 우리들과 함께하시려는 것입니다. 신구약성경을 관통하는 핵심이 바로 이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6일 동안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마지막 날에 그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십니다. 그와 교제하며 함께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유혹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되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버립니다. 범죄한 인간들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홍수 시대에 노아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창 21:22), 이삭에게도(창 26:24) 그리고 야곱에게도(창 28:15) 함께하심을 보여 주고 함께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디발의 가정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억울한 누명으로 옥에 갇히게 된 요셉에게도(창 39:2, 3; 23), 팔순의 나이에 부름을 받은 모세에게도(출 3:12),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나(수 1:5, 9) 자격이 없노라고 핑계하는 기드온에게도(삿 6:16) 하나님은 똑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_ 109-110p
축도(祝禱)란 말을 그대로 설명하면 ‘축복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축복 기도’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선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 기도는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자녀 후손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어른으로서, 손위 사람으로서, 불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그들의 복을 비는 행위가 축복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축도는 사제로서, 사도로서, 목사로서 단순한 축복을 위한 기원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의 권위’로 강복(降福)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축복 기도와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축원합니다.’라는 용어는 축복을 위한 기도 용어입니다. 그럴 때에 축원하는 이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축도는 복을 비는 기도가 아니고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을 향한 ‘복의 선포’이기 때문에 바울의 축도가 성경에는 모두 “있을지어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에 목사가 손을 들고 하는 축도는 목사가 비는 기도가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사실 ‘Benediction’이라는 단어를 ‘축도’라고 번역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원하노라.”, “있을지어다.”라는 ‘복의 선포’, ‘강복 선언’이라고 번역해야 혼란이 없습니다. _ 127-128p


언제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εν Χριϐτοϛ)’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하며, ‘그리스도로부터의’ 복을 강조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도 절대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뿐 아니라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포함합니다.
‘은혜와 평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있게 됩니다. 모든 복의 출처와 통로를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은혜와 평강의 근거는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의 그릇된 재림관을 지적하는 편지를 쓰고 있음에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살후 1:2).”라고 선언함으로 사실상 이 편지는 축도로부터 시작합니다. _ 138p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이라고 하지만 이름만 그리스도인일 뿐, 전혀 믿음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믿음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안에는 부당하고 악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염소가 아님에도 양이 염소의 흉내를 내듯이 그 모습이 악하고 부당할 때가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러한 것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설득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영적 사역인 기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한 기도와 함께, 악한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도록 ….
물론 본문이 의미하는 본래적인 뜻은 “모든 사람이 다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for not everyone believes the message)”, “모든 사람이 다 신앙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_ 193p

목차

들어가는 말 · 5

제1부 데살로니가전서
1. 두고 온 성도들에 대한 애정(1:1-5) · 012
2.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자(1:6-10) · 021
3. 하나님을 기쁘시게(2:1-5) · 030
4. 젖 먹이는 어머니의 심정(2:6-12) · 039
5. 자랑스러운 면류관(2:13-20) · 047
6. 굳게 선 너희로 말미암아(3:1-10) · 056
7. 바울의 소망과 간구(3:11-13) · 064
8.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4:1-8) · 072
9. 자기 손으로 일하라(4:9-12) · 081
10. 자는 자들과 살아남은 자(4:13-18)\t · 090
11.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리니(5:1-8) · 098
12.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셨으니(5:9-11) · 106
13. 성도의 기본적인 삶(5:12-22) · 115
14.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5:23-28) · 125

제2부 데살로니가후서
1. 당연한 감사(1:1-4) · 136
2. 대적하는 자들(1:5-9) · 145
3. 주 안에서 누리는 영광(1:10-12) · 154
4.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도(2:1-4) · 163
5. 불의와 심판(2:5-12) · 172
6. 재림을 기다리는 자(2:13-17) · 180
7. 기도로서의 교제(3:1-5) · 189
8. 일하기 싫어하거든(3:6-12) · 198
9. 형제와 같이 권면하라(3:13-18)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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