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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기 모더니즘 작가로 페소아를 높이 사는 이유는 바로 ‘복수성’의 창조 때문이다. 그는 단일한 나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고유한 이름과 전기(傳記)를 지닌 수많은 인격체로 분화시켜 그들에게 글을 쓰는 임무를 부여했다-MD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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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638227 / 616쪽 137 x 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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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포르투갈 최고 시인, 리스본의 영혼 페르난두 페소아
작가 사후에 편집된 기념비적 고백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가진 것도 없다. 어느 우주를 향해 어느 손을 내밀 것인가? 우주는 내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20세기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불안의 책』은 이미 두 차례나 번역 출간되었으나 이탈리아어 판본과 독일어 판본을 중역한 것으로, 포르투갈어 원전을 완역한 것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판본이 유일하다. 『불안의 책』은 페소아가 생전에 완성한 작품이 아니라 사후 연구가들이 유고 더미에서 찾아낸 미완성 원고를 엮은 책이다. 그 때문에 편집본마다 수록된 텍스트의 수와 배열 순서가 다른데, 문학동네는 페소아 연구가로 유명한 리처드 제니스의 포르투갈어 편집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페소아는 수많은 이명(異名)을 통해 ‘하나’의 ‘나’가 아니라 동시에 여러 공간에서 실재하는 ‘복수’의 존재를 구현한 모더니스트다. 페소아가 1913년부터 1935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약 20년의 세월 동안 틈틈이 공책이나 쪽지에 기록한 단상들을 모은 고백록인 『불안의 책』은 ‘회계사무원 베르나르두 소아르스의 작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페소아가 자신이 창조한 소아르스를 묘사하고 소개하는 짧은 머리말과 소아르스가 ‘사실 없는 자서전’이라는 표제 아래 써내려간 481개의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481개의 텍스트 속에는 작가가 일평생 추구했던 내면의 성찰과 감각적 사유가 깊이 배어 있는 까닭에,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는 반(半)이명으로 분류된다.
‘사실 없는 자서전’에 드러나는 중요한 특징은 세밀한 관찰력과 섬세한 감정, 날을 세운 감각이다. 밀도 있게 촘촘히 박힌 소아르스의 감정돌기들은 지나가는 바람결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의 스치는 몸짓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의 촉수는 ‘불안(desassossego)’의 정서 또한 깊이 감지한다. 회계사무원 베르나르두 소아르스가 사무실과 월세방, 리스본의 거리를 오가며 깊은 사색에 잠겨 써내려간 조각난 글에는 그의 불안이 알알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외로움이나 고통이거나, 권태 혹은 두려움, 무기력함 혹은 공허함일지 모른다. 결국 불안은 다양한 감정에 동요하는 존재의 흔들림을 표현한 단어로 독자에게 닿는다.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14쪽)
영혼에 미소를 띠고 도라도레스 거리와 이 사무실, 이 사람들 사이에 한정된 인생을 고요히 받아들인다. 먹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고 잘 곳이 있고 꿈꾸고 글을 쓸 약간의 시간이 있는데 무엇을 더 신에게 요구하며 운명에게 바라겠는가? (31쪽)
나는 내 마음속에 다 그려지지 않은 몸짓들과, 내 입술에 올릴 생각조차 못했던 말들과, 끝까지 꿈꾸지 못하고 잊어버린 꿈들이 담긴 우물이다. (86쪽)
나는 자유롭고 길을 잃었다.
느낀다. 열기로 몸을 떤다. 나는 나다. (95쪽)
오로지 꿈만 꾸었을 뿐이다. 꿈만이, 오직 그것만이 내 인생의 의미다. 내면의 삶이 아닌 다른 것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아픔들은 내 안으로 향하는 창문을 열고 거기 있는 것들을 바라보느라 나 자신을 잊어버릴 때 가라앉곤 했다. (126쪽)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개념이므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150쪽)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쳐가는 영원한 행인이며, 우리 자신 말고 다른 풍경은 없다. 우리 자신도 우리 것이 아니기에 우리 것은 조금도 없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가진 것도 없다. 어느 우주를 향해 어느 손을 내밀 것인가? 우주는 내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164쪽)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석양은 그저 석양일 뿐인데 그것을 보러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리스본을 떠나 중국까지 간 어느 누구보다 강렬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내 안에 자유가 없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179쪽)
우리는 죽음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제 삶의 잠이고, 진정으로 우리인 것의 죽음이다. 죽은 자들은 태어나는 것이지 죽는 게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우리는 죽은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삶이 시작된다. 잠과 삶의 관계는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자는 중이고 현재의 삶은 꿈이라고 말할 때, 이는 비유나 시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로 그러하다. (231쪽)
신이시여, 맙소사,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나는 몇 명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이 간격은 대체 무엇인가? (275~276쪽)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한. (277쪽)
인생이 자발적으로 준 것 이상을 인생에 요구하지 않는 자, 해가 있을 때는 해를 쫓아다니고 해가 없을 때는 어디가 됐든 온기를 찾아가는 고양이처럼 본능에 의지해 살아가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다. 상상력을 위해 자신의 개성을 포기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기 좋아하되 모든 감정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 다른 이의 감정의 겉모습만을 구경하는 이가 행복한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했기에 빼앗길 것도 없고 가진 것이 줄어들 일도 없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다. (296~297쪽)
우리가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보는 곳에서 없어지는 것은 우리 안에서도 없어진다. 과거에 누군가 있던 동안 우리가 봤던 모든 것은, 그것이 떠날 때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간다. (355쪽)
나는 포르투갈어로 쓰지 않는다. 나 자신으로 쓴다. (544쪽)

목차
머리말
사실 없는 자서전
해설 | 불안과 공허, 무능과 무기력을 파헤치는 영원한 조각내기
페르난두 페소아 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