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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205423 / 128쪽 12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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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시조의 형식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일찍이 사설이 평시조의 틀을 해체하였고, 또한 평시조의 본래 모습도 근대에 와서 편의에 의해 굳어진 최소한의 약속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늘에 와서 평시조도 갇힌 형식에서 열린 형식으로의 실험과 발전이 요구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자각과 실험의식이 없는 시조 창작 행위는 이미 한참 전에 마감했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90년대까지 답습만 거듭되고 있는 데에 시조의 문제점이 있다. 「천내동川內洞 가을」은 내용의 참신함도 물론 돋보이는 가작이지만, 평시조의 형식을 일부 해체하고 하나의 새로운 틀을 시도했다는 데에 주의를 모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아무튼 80년대의 박기섭은 이 같은 실험정신으로 해서 주목받는 시인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시詩는 본디부터 존재한다. 그 시와의 괴롭고 고통스런 만남을 통해 나는 언어의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시조時調 3장章의 고적한 행간 속에 있다.
문단 한 귀퉁이 청석비탈에 시의 터앝을 연 지 만 10년이 지났다. 그간의 소출이라야 이것이 전부다. 딴은 정좌正座의 시를 고집하며 용심을 일궈 봤지만, 막상 털고 보니 쭉정이투성이다. 다만 염치없는 것이 아둔함이라 해도 엄습하는 허탈을 떨칠 길이 없다.
무릇 시인은 ‘칼’과 ‘물’과 ‘붓’을 늘 손닿는 곳에 두고 사는 사람이어니 이제 다시 내일의 절망을 위하여, 시의 자존을 위하여 잔을 들 일이다. 『키 작은 나귀 타고』 한 세상 건너는 법을 알 때까지.
삼가 이 시집을 환력을 맞으신 아버지와 또 그 곁에 앉으신 어머니께 바친다.
박기섭
1부 꿈꾸는 반도
강동降冬의 시詩
그러나 직립한다. 강동降冬의 사내들은
저 끝없는 황량에
결빙을 못질해도
견고한 뼈를 씻으며
불퇴전의
활을
든다
그렇다, 독毒은
그렇다, 독毒은 처음에 무슨 열매처럼
발갛게 잘 익어선 햇살 속에 주렁주렁,
아니면 저 하늘가에라도
열렸던 게 아니겠느냐
그런 게 아니겠느냐, 그러다 어느 순간에
저절로 빠개지고 속속들이 부서져서는
마침내 인간의 폐부에라도
엉겨 붙은 게 아니겠느냐
그렇다, 그 뒤로 독毒은 하늘로는 못 오르고
더는 빠개지거나 부서지지도 못하고
잔기침 가래침에 섞여
솟구치는 게 아니겠느냐
한천寒天
한천寒天에
칼 한 자루
거꾸로 박혀 있다
어느 일순이면
떨어져 뇌수에 박힐
눈부신
단죄를 꿈꾸는
저 살의殺意의 충만 !
관계
네가 자수정이면
나는 터지는 먹물
질척여 늪이 되는
그 맹목의 어둠 속에
그렇다, 나는 한사코
너를 닦으며 절명한다
못
1
숱한 담금질 끝에
직립의
힘을 고눠
마침내 일어서는
견고한
자존의 뼈
스스로 극한의 빙벽을
이를 물고 버틴다
2
못을 친다,
저 생목生木의
건강한 육질을 밀어
그 환한
정수리에
굵은, 대못을 친다
한 시대 처연한 꿈이
앙칼지게 박힌다
3
닫힌 저 엄동의
난만한
못통 속에는
끝내
상하지 않고
온전한 야성들이
첨예한 긴장의 한끝을
서느렇게 벼린다
꽃밭에서
볼비는 아편 묻은 하나씩의 실핀이다
일테면 또 그것은 실핀 끝의 전율이다
벙그는 꽃밭 언저리, 저 난만히 번지는 독성毒性!
꿈꾸는 반도
1
그냥 산이어선 안돼, 그냥 그런 산이어선
스스로 골짜기를 팬, 그런 속살의 아픔을 아는,
그 온갖 푸나무 자라고 새떼 깃드는 그런 산
마을과 마을을 감싸고 남북 천 리를 달리는,
엔간한 철조망이나 까짓 지뢰밭쯤은
가볍게 발등으로 차버리고 휘달리는 그런 산
2
그냥 물이어선 안돼, 그냥 그런 물이어선
스스로 등판을 찢는, 그런 피의 고통을 아는,
수천 척 직립의 벼랑을 뛰어내리는 그런 물
무수한 골짝과 골짝 그 무지와 황량을 돌아
적의의 날 선 칼을 혀끝으로 다스리며
마침내 스스럼없이 만나 몸을 섞는 그런 물
천년의 하루
가령 저 선사先史의 땅 설원雪原 만릿벌을
아니면 또 수천 리 저무는 그 산협 길을
뉘 없이 우리 둘만이 무장 걸어서 간다면?
아아, 저 끓는 남빛 그 시원始原의 바다에서
장엄하게 해는 뜨고 다시 지는 대삼림大森林을
눈부신 적동색 갈기를 휘날리며 그렇게!
나의 돌도끼엔 야성의 피가 번지고
너는 또 뭇짐승의 생육生肉을 찢어 말리며
아득한 천년의 하루를 그리 살아나 간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