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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행작가가 쓴 현대 여행기록의 빛나는 모범

콜린 더브린 저 | 황의방 역 | 마인드큐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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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434077 / 536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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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행작가”가 쓴
“현대 여행기록의 빛나는 본보기”

아홉 권의 여행기를 저술한 이 책의 저자 콜린 더브런은 ‘여행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춘 프로 여행가다.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불굴의 도전 정신은 찬양할 만하다. 아시아 전문 여행가로서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가능한 그는 이런 조건과 능력과 의지, 열정 덕에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행작가’로 불리고 있다. 이 책은 2003~2004년에 걸쳐 총 240여 일간(사스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던 해 봄에 여행을 시작하여 북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서 중단되었다가 이듬해 같은 계절에 계속된다) 계속된 저자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실크로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육로를 따라 한 여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 육로는 중국의 심장부에서 시작해서 중앙아시아의 산지를 지나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이란 평원을 가로질러 쿠르드족이 사는 터키 남부로 들어가는 길이다. 콜린 더브런은 8개월 동안 1만1,200킬로미터를 여행했다. 각 지역의 버스나 트럭, 승용차, 당나귀가 끄는 수레, 낙타를 이용해서 그는 중국인들의 전설적인 조상인 황제(黃帝)의 무덤에서 융성했던 고대 항구 안티오크까지 여행했다. 이 여행이 그가 40년에 걸쳐 한 여행 가운데 아마 가장 어렵고 야심적인 여행이었을 것이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가로지르면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긴 광대한 네트워크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한다는 것은 교역과 군대 이동의 통로뿐만 아니라 사상과 종교, 발명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이 풍요롭고 놀라운 과거와 더불어 격동의 대륙인 아시아의 오늘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콜린 더브런의 여행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의 문장의 아름다움이다. 또다른 특징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로 하여금 그에게 말하도록 하는 그의 재능이다. 《실크로드》에서 그는 갖가지 모습의 이슬람 국가들과 인민들을 만난다. 이 책은 또한 문화혁명 후에 변화된 중국도 다루고 있다. 또 과격한 민족주의와 불만이 서린 국경선도 다룬다. 진정한 경계선은 정치적으로 그어진 경계선이 아니라 종족과 인종, 언어와 종교가 만드는 경계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현대를 맞아 변화하고 있는 구세계에 대한 장엄하고 중요한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행작가”가 쓴
“현대 여행기록의 빛나는 본보기”


아홉 권의 여행기를 저술한 이 책의 저자 콜린 더브런은 ‘여행가’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춘 프로 여행가다.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불굴의 도전 정신은 찬양할 만하다. 아시아 전문 여행가로서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가능한 그는 이런 조건과 능력과 의지, 열정 덕에 ‘생존하는 가장 위대한 여행작가’로 불리고 있다. 이 책은 2003~2004년에 걸쳐 총 240여 일간(사스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던 해 봄에 여행을 시작하여 북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서 중단되었다가 이듬해 같은 계절에 계속된다) 계속된 저자의 여정을 다루고 있다.

《실크로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육로를 따라 한 여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 육로는 중국의 심장부에서 시작해서 중앙아시아의 산지를 지나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이란 평원을 가로질러 쿠르드족이 사는 터키 남부로 들어가는 길이다. 콜린 더브런은 8개월 동안 1만1,200킬로미터를 여행했다. 각 지역의 버스나 트럭, 승용차, 당나귀가 끄는 수레, 낙타를 이용해서 그는 중국인들의 전설적인 조상인 황제(黃帝)의 무덤에서 융성했던 고대 항구 안티오크까지 여행했다. 이 여행이 그가 40년에 걸쳐 한 여행 가운데 아마 가장 어렵고 야심적인 여행이었을 것이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가로지르면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긴 광대한 네트워크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한다는 것은 교역과 군대 이동의 통로뿐만 아니라 사상과 종교, 발명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이 풍요롭고 놀라운 과거와 더불어 격동의 대륙인 아시아의 오늘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콜린 더브런의 여행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의 문장의 아름다움이다. 또다른 특징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로 하여금 그에게 말하도록 하는 그의 재능이다. 《실크로드》에서 그는 갖가지 모습의 이슬람 국가들과 인민들을 만난다. 이 책은 또한 문화혁명 후에 변화된 중국도 다루고 있다. 또 과격한 민족주의와 불만이 서린 국경선도 다룬다. 진정한 경계선은 정치적으로 그어진 경계선이 아니라 종족과 인종, 언어와 종교가 만드는 경계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현대를 맞아 변화하고 있는 구세계에 대한 장엄하고 중요한 기록이다.

저자는 실크로드 여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곳에 가야 하는 백 가지 이유가 등장한다. 그곳의 인간들과 접촉하고 싶어서, 빈 지도를 인간으로 채우고 싶어서, 그곳이 바로 세상의 심장이니까, 변화무쌍한 신앙의 형태를 접하고 싶어서, 내가 아직 젊기 때문에, 그래서 흥분을 갈망하니까, 내 신발로 먼지에 자국을 내고 싶어서, 내가 늙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서…….”
하지만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것은 유령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어려움에 대해서 피력한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의 심장부를 관통하지만, 그 길은 공식적으로는 이미 사라져버렸다. 분명치 않은 경계선, 지도에도 등재되지 않은 민족들 같은 그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따라서 어디서건 헤매기 일쑤이다. 그러니 그 여럿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은 1만1,200킬로미터 이상 뻗어 있는 먼 길이고, 군데군데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중국 시안(西安)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안티오크까지 가는 도중에 저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브라질로 가려고 애쓰고 있는 황이라는 남자, 낟알을 가려내는 체를 완성하려고 애쓰는 대학생 돌콘, 어릴 적 애인을 나망간에서 만나기를 희망하는 여인 마무다, 인도로 가기를 원하는 라브랑의 승려,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바히드, 그리고 인터넷을 고독에서 벗어나는 생명선으로 삼고 있는 화가 겸 시인 아미랄리…….
그러나 저자의 눈에 비친 실크로드는 옛날 대상(隊商)들이 교역하며 영화를 누리던 곳이 아니었다. 그 대부분은 헐벗고 가난한 쇠락해진 마을에 불과했다. 마지막 목적지에서 더브런은 공식적인 경계선 수백 킬로미터 이전에 벌써 그 나라에 도착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 또는 반대로 수백 킬로미터를 더 가서 그 나라에 비로소 도착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실크로드 자체가 이렇게 국경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종족들 간의 융합을 조장했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실크로드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 소개

  • 저자 : 콜린 더브린
지은이 : 콜린 더브런 (Colin Thubron)
여행 작가, 소설가. 1939년에 런던에서 태어났다. ‘여행가가 갖추어야 할 모든 조건을 갖춘 프로 여행가’로 불린다.
그가 가장 먼저 쓴 여행기는 《다마스쿠스의 거울》, 《예루살렘》 등 중동을 여행한 기록이었다. 1982년에 KGB의 감시를 받으면서 러시아와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지역을 여행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시베리아》,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등의 여행기를 썼다. 또 중국의 오지들을 여행한 뒤 《철의 장막 뒤에서》(1989)를 출간했다(호손든 상, 토마스 쿡 여행상 수상). 이후 8년에 걸쳐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아시아의 잃어버린 심장》을 썼고, 이어서 이 책 《실크로드》를 출간했다. 《황제》, 《잔인한 광증》(1985년 실버펜 상 수상), 《추락》 등의 소설로 독자들의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더브런은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으며, 지금도 여행과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옮긴이 : 황의방
1969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부터 1975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다. 1975년에 언론자유실천운동으로 해직되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주필을 역임했다. <콘티키>, <드레퓌스>, <환상을 만드는 언론>, <세계를 더듬다>,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살아 있는 길, 실크로드 240일>,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황의방
1969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영문과 졸업. 1969~1975년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다. 1975년 언론자유실천운동으로 해직된 뒤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주필을 역임했다. 《콘티키》, 《드레퓌스》, 《환상을 만드는 언론》 등과 콜린 더브런의 또다른 책인 《시베리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머리말

[옮긴이의 말]
단순히 여행을 좋아한다고 여행가라는 호칭을 가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여행기 몇 권을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해야 그런 호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겁 없이 모험에 뛰어드는 용기,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 해박한 지식, 그리고 치밀한 정보 수집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훌륭한 여행가가 되어 훌륭한 여행기를 써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콜린 더브런은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훌륭한 여행가다. 그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끈질기고 용감한 추적 의지는 찬양받아 마땅하다. 역자로서는 그의 문장마저 간명하고 분명해서 번역하기 좋았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실크로드는 세계 최고(最古)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비단이 교역되던 세계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교역로다. 기원전 수천 년에 이미 동서양을 이어주던 문화의 통로이기도 하다. 실크로드가 교역로로서 빛을 잃게 된 것은 나침반의 발명으로 해상 교통이 발달하면서부터다. 지금은 항공교통까지 발달했으니 실크로드의 교역로로서의 가치는 더욱 줄어들었을 터다.
저자는 중국 시안을 출발해서 터키의 안티오크까지 1만 2천 킬로미터 가까이 되는 길을 여행했다. 그는 시안의 비림(碑林)에서 네스토리우스파 신부 알로반의 행적을 새긴 비석을 찾아내고(당나라태종이 이방의 종교 기독교를 수용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항복한 로마 군단 장병들의 후예를 찾기 위해 중국 서부의 오지 마을을 헤매기도 한다. 마침 그 무렵 사스(SARS)가 중국에 번져, 가는 곳마다에서 검문을 당하다가 결국은 격리수용되고 만다. 이 수용소에서 만난 타클라마칸의 오지 마을 청년을 통해 저자는 그곳 오지에도 인터넷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그는 이동전화로 약혼녀와 대화를 나누는 청년을 만나기도 하고, 이란에서는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성소 안으로 몰래 들어가 종교적 열정으로 광란상태에 빠진 사람들 속에 섞이기도 한다. 테헤란의 팝 화가를 만나기도 하고, 이란의 여대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불법으로 설치된 접시 안테나를 통해 서방의 문화와 접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는 또 암살단 종파의 근거지 유적을 찾아 험한 산속을 헤매기도 한다. 암살단 종파는 하산이라는 사람이 11세기에 창설한 이슬람의 이단 종파로, 험한 산 계곡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암살단을 각지로 파견해서 자기네들이 보기에 제거해야 할 인사로 보이는 사람들을 암살했다. 그들은 150년 동안이나 이런 무시무시한 암살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들은 산속에 멋진 정원을 차려놓고 그곳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젊은 여자들과 즐겼다고 한다. 그들은 하시시(대마초)에 취했다고 해서 하샤신(hashashin)이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암살자(assassin)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의 근거지를 함락시키고 파괴한 사람들이 몽골 군이라고 한다. 몽골의 정복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저자의 여행은 지중해에 면한 터키의 항구 안티오크에서 끝난다. 실크로드의 종점(혹은 시점)이었던 이 도시는 서양에서 한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인구 50여 만의 대도시였다. 저자는 실크로드의 빛과 그림자를 이 쇠락한 도시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장엄한 역사의 조락이다.
2003~2004년에 걸쳐 총 240여 일간 진행된 그의 여정(사스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던 해 봄에 여행을 시작하여 북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이듬해 같은 계절에 계속된다)은 낙타, 택시, 트럭, 달구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발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이 여정을 통해 중국 서부에서 로마 군단의 자취를 찾았고, 켈트족의 미라를 직접 보기도 했다.
1만여 킬로미터의 그의 긴 여정은, 역사는 인간들 자신과 그들의 삶의 지속이라는 것, 소통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의외로 강하다는 것, 권력의 통제가 아무리 강해도 세계는 어떻든 서로 소통한다는 것(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위성방송 등 소통 수단이 발달해서 소통을 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 특히 젊은이들은 세상의 변화에 더욱 민감하다는 것 등을 생생하면서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그의 이 기록에 의해, 13세기의 마르코 폴로의 실크로드는 이제 21세기의 콜린 더브런의 실크로드가 되었다.

책 속에서

- 노인들은 무정한 가장행렬을 대하듯 이 변모하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마오쩌둥 모자에 해어진 헝겊 슬리퍼를 신은 그들은 길모퉁이나 공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변화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응시하곤 했다. 그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전과 일본 침략 시대에 태어나서 대약진운동 시대의 기근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용케 살아남은 그들이 이제 필요 없는 존재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머리칼이 하얗게 센 그들의 얼굴은 역사로 인해 주름살이 잡혔거나 텅 비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가끔 그들은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여유만 있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댔고 햇볕을 쬐려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올렸다. 가끔 그들의 표정이 평화로워지고 심지어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떤 행복한 기억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칠까 궁금했다.(25p)

- 고고학자 오렐 슈타인은 로프 사막의 전망대를 조사하다가 배달되지 않은 편지들을 발견했다. 소그드어로 쓰인 이 메시지들은 그 연대가 서기 313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 편지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종이 위에 쓰인 최초의 편지들이다. 글씨는 먹으로 쓰여 있다. 한 편지는 오래 잊혀진 아내의 넋두리를 담고 있다(“당신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개나 돼지의 아내가 되는 게 낫겠어요!”).
(52p)

- “그분들은 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죠. 농부였으니까요. 그분들은 내가 들에서 일을 돕기를 바라셨지요.” 그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쨌든 나는 갔지요. 하지만 열일곱 살 때 나는 다시 떠나야 했습니다. 공산혁명이 일어났고,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요. 처음에 나는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에 정부가 내게 결혼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들은 승려들이 다른 사람들과 같게 되기를 바랐지요.”(97p)

- 사실 만리장성은 진정한 방어요새로서는 의미가 없었다. 훈족, 몽골족, 만주족은 거의 마음대로 장성을 넘나들었다. 중국학자 오윈 래티모어는 만리장성이 건설된 건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인들을 그 안에 가두기 위해서였다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만리장성은 아마 그 물리적인 방어능력보다는 엄청난 그 상징성에 의미를 두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야만성과 문명, 빛과 어둠을 갈라놓는 선이었다. 그것은 몸서리쳐지는 부정의 행동이었다. “저 너머에는 우리와 다른 인종이 살고 있다.” 만리장성은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했다. 죽은 사람들을 성벽을 따라 묻었다. 사막에서 횡행한다는 귀신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인들이 죄 지은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내쳤듯이, 중국인들은 천자의 제국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만리장성 밖으로 내던졌다. 반대자, 죄인, 그리고 심지어는 어리석은 자들까지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을 ‘정화’했다.(141p)

- 그러나 중국의 불교는 개방적이었다. 여기서 그 창시자의 완성을 향한 엄격한 여행은 신비의 구름 속으로 빠져들었고, 수많은 신들로 부서졌다. 불교는 민간신앙을 흡수하기도 했다. 몇몇 성소의 경우에는 천장에 힌두교의 신들과 연꽃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 심지어 머리가 아홉 개인 용과 도교의 온갖 신들─날개 달린 유령과 말, 인간의 머리를 한 새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신선─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왕모는 떨어지는 꽃보라 속으로 불사조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달렸다. 이처럼 이곳에서 꿈꾸는 저세상은 안정된 것이 아니었다. 동물과 인간, 이승과 저승이 우주의 회오리바람 속에 뒤섞이고 신앙 간의 경계가 휩쓸려 사라지는 혼돈의 세계였다. 동굴 249호에 그려진 궁전은 힌두교 인드라의 궁전일까, 아니면 황제(黃帝)의 장원일까?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147p)

- 하지만 여기서 나온 문헌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문화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경건한 불경 원고는 다른 용도로 쓰인 종이를 덧붙여 빳빳하게 했는데, 이 덧붙인 종이가 불경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해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것들은 물목, 유언장, 법률 문서, 사적인 편지 등이었다. 중국의 가요와 시도 나왔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기록한 문서도 나왔다. 생리통을 완화해달라는 기도와, 심지어 죽은 당나귀에 대한 제문도 있었다. 예법편람의 한 편지는 간밤에 술에 취해 무례한 행동을 한 것을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한 여승이 검은 소를 물물교환으로 얻었는가 하면, 다른 여승은 노예를 유산으로 남겼다. 어떤 사람은 차와 술이 벌이는 논쟁을 글로 쓰기도 했다. 중국어로 된 엄청난 양의 기도문 옆에는 산스크리트어, 티베트어, 위구르어, 소그드어, 코탄어, 투르크어로 된 문서들도 있었다. 유대-페르시아어로 쓴 편지, 파르티아어로 된 마니교 성경, 위구르 문자로 쓰인 터키 탄트라교 경, 심지어 네스토리우스파 사제 알로반이 장안으로 가져온 성경 사본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다양한 언어와 인종의 흔적이 나타나 있었다.(153p)

- 나는 머릿속에서 그의 이 말과 씨름을 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이 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동포들은 중국인들이 냉담하고 억제되어 있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이 집을 짓는 것을 봐도 그걸 알 수 있어요. 직사각형 아니면 정사각형뿐이지요.” 그는 두 손으로 입방체를 쌓아 올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우린 꽃처럼 집을 지어요.” 모스크의 꽃 같은 돔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음악가들이에요. 심정적으로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구요!”(177p)

- “당신은 베일을 쓰지 않죠?” 볕이 뜨거운 지금도 그녀는 맨머리였다.
“난 여전히 당원이에요. 내가 머리를 가린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그녀의 분노가 되살아났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도 엄마예요. 난 내 아이들을 신자로 키우고 싶어요. 신은 우리 동포들에게 아주 중요해요. 그들은 매우 가난하거든요. 우리가 신에게 의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도시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삶은 너무 힘들거든요. 그리고 당은 우리에게 뭐 해주는 게 없고.”(233p)

- 그는 어릴 적부터 마나스에 대해 배웠다. 구전되는 설화 속에서 신격화된 이 초인적인 창건자는 그의 민족에게 정체성을 주는 원천이었다. 그 외에 내세울 키르기스인이 누가 있었겠는가? 제정 러시아는 그들을 가파르고 격리된 계곡들에 정착시키고 여러 부족으로 나눔으로써, 그들이 민족의 개념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내려온 그들의 족보를 외울 수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나라였다(칭기즈도 그의 족보를 외울 수 있었다). 1924년 스탈린이 그들의 경계선을 정해주었다. 스탈린은 강압적으로 그들을 집단화했고, 그들의 언어를 적는 문자를 만들었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인근에 그들의 인척 카자흐인들과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 많은 외래어를 차용해 사용하게끔 했다. 이제 소련의 비전은 사라졌고, 그들은 반신화적인 민족의 개념에 집착하고 있다.(251p)

- 원래 마나스 이야기는 여러 개의 서사시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언어와 경계선을 정한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이었던 것처럼, 전해오던 이 전설을 음유시인들에게서 수집하고 그것을 수정해서 더욱 발전시킨 사람들 역시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키르기스인들을 터키계의 다른 이웃 민족들과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 키르기스 민족국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스탈린의 작품이었다.(283p)

목차

실크로드 여행지도/ 8
저자의 노트/ 11

1. 새벽/ 13
2. 수도/ 22
3. 만트라/ 82
4. 하늘 아래 마지막 문/ 115
5. 남로(南路)/ 156
6. 카슈가르/ 221
7. 산속 통로/ 240
8. 사마르칸트로/ 285
9. 옥수스 강을 건너다/ 339
10. 애도(哀悼)/ 399
11. 몽골의 평화/ 448
12. 안티오크로/ 509

실크로드 관련 연표/ 526

옮긴이의 말/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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