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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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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061624 / 380쪽 / 508g / 140 x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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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맘대로 하라 그래! 난 더 잃어버릴 것이 없어!” 모든 것을 잃고 떠나온 곳에서 발견한 자연의 원초적인 힘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대개 2005년 이후 십여 년 집필되었으며, 경기도의 전원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토박이였던 김인선은 마흔 무렵 집안이 쫄딱 망한 후 산자락 마을에서 지내게 되면서 뜻밖에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도시의 바쁘고 시끄러운 일상을 견디기 어려워하던 그는 산과 들에 핀 온갖 식물의 이름을 불러주고 새들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연을 재발견한다. 자연에 대한 그의 연민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여서, 병상에 누운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꽃 한 송이도 꺾지 못해 망설이고, 버려진 개며 닭과 오리들을 보살피는 것은 물론,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며 길가의 죽은 고라니까지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그의 글 속에서 자연은 정다운 존재일 뿐 아니라 때때로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어오기도 하는데, 까마귀는 “맘대로 하라 그래! 난 더 잃어버릴 것이 없어” 하고 울고, 붓꽃은 “이승의 바깥은 이승이더라구요” 하고 선문답처럼 비밀을 털어놓는다. 물아일체의 경지일까,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 살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심지어 징그러운 벌레들까지도 그에게 사색의 대상이 된다. 그 밖에 소일거리로 오이며 고추를 기르는 나날, 밭농사를 지으면서 벌어지는 동네 사람들 사이의 신경전, 산길을 달리는 기쁨, 장을 보거나 버스를 기다리면서 만난 낯선 이들과의 정담도 김인선의 독특한 프리즘을 통과하면 서정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고, 소박하면서도 신비로운 한 편의 수필로 탄생한다. “둥둥 떠다니는 수밖에/ 허공의 뒷골목으로 달빛으로 누더기를 깁는/ 길 잃은 귀신들과 어울려“ 이토록 낭만적인 괴담이라니 각 부의 뒤쪽에는 저자가 ‘괴담’이라고 이름붙인 기이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었다. 말년에 그는 현대판 《금오신화》를 염두에 두고 괴담집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미완성으로 남게 된 원고의 일부를 추려 이 책에 실은 것이다. 〈물귀신들의 봄〉 〈중음신〉 〈시인의 죽음〉 〈고갯마루의 염정 미스터리〉 〈참외장수〉 〈엉덩이에 대한 추억〉 등이 그에 해당하는데, 공포를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환상적이고 비일상적인 경험이 주를 이룬다. 저자는 느닷없이 일상에 출현한 불가해한 존재들과 부조리한 상황, 미스터리한 장소들에 대해 자못 진지한 말투로 눙치며 현실과 몽환, 실재와 헛것의 경계를 어렴풋하게 만든다. 낯설면서도 일상적인 새로운 경지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괴담이라는 형식은 당혹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김인선의 괴담 속에서는 선녀나 신선, 잡귀 같은 기이한 존재들도 인간과 다를 바 없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다. 수영선수처럼 자유형과 접영을 섞어 하던 물귀신들은 겨울이 되어 저수지가 얼면 수면 아래 갇히는 신세가 되고, 기억을 잃은 중음신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괴로움에 자학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저 죽은 채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보람 없는 죽음보다 더 서글픈 건 세상에 없다.” 자기실현적인 예언과 죽음의 그림자 김인선은 남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로 돈을 벌기도 했지만 평생 신용불량자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인 생활고에 시달렸다. 글에서도 그런 모습이 종종 위악적으로, 또는 실없이 해학적으로 묘사된다. 그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나무 꼭대기나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 열렸다가 썩어버린 호박이나 값이 떨어져 수확되지 못한 채 얼어버린 배추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연상하며, 한바탕 울고 싶은데 눈물마저 마음대로 나오지 않음을 한탄한다. 반대로 생활고에 시달리며 친구에게 음식과 연탄을 청하는 내용을 마침표 없는 타령조로 우스꽝스럽게 늘어놓기도 하고, 현실을 외면한 채 전래동화나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상상의 세계에서 터무니없이 행복한 공상을 펼치기도 한다. 한편, 이상하게도 김인선의 글에는 마치 자신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시종 죽음의 그림자가 서성이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그것들은 계속해서 달아나고, 사라지는 것들에 홀린 그는 그것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궁금해한다. 실제로 책 곳곳에서 죽음이라든가 영혼, 사후와 내세에 대한 생각이 드러난다. 여러 편의 글에서 그가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 동네에서 마주치던 노인들, 함께 뒷산을 산책하던 충성스러운 개들, 정성스레 돌보던 닭이나 오리들이 떠나가며 죽음이 항상 가까이 있음을 환기시킨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은 상당한 분량으로 서술되었는데, 영면하는 순간에 대한 묘사는 저자가 가진 죽음에 대한 생각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김인선은 작품 속 인물의 입을 빌려 “한 시인이 진정한 시인으로 사는 것은 첫 시집을 내기 직전까지”라고 말하며, 요절한 시인에게 “그대의 저렴한 단명을 설워 마소. 시의 완성은 무명無名이려니” 하고 직접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는데, 이제 그 위로를 그 자신에게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부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작가’ 김인선을 오래 기억해주길 바란다.

저자 소개

“문득 내가 잃어버린 게 오리가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을 비롯해 몇몇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했다. 사람이 많은 곳과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과 매일 출근해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으며 ‘인스퍼레이션’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금세 그만두곤 했다. 
마흔이 넘어 집안이 쫄딱 망한 이후 경기도 산자락 마을에서 지냈는데, 타고난 낙천가인지라 괴로운 생활에서도 나름 즐거움을 찾았다. 소일거리로 밭농사를 지으며 남들이 하찮아 하는 개와 닭과 오리를 돌보고 새의 언어를 연구하고 곤충의 행태를 관찰하면서 태평할 수도, 한심할 수도 있는 세월을 보냈다. 
오페라 해설지 번역으로 푼돈을 벌고 온라인에서 닉네임으로 글을 썼으나 곤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명인 채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책 속에서

P. 118 식물은 새벽녘과 해질녘에 잠깐 사람이 알아듣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내게는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성인聖人이고 성인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제가 들은 것처럼 그럴듯하게 거짓부렁을 하는 사람들이 시인이다. 그러면, 우리같이 시인의 그 거짓부렁을 듣고, 그거짓부렁을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또 거짓부렁을 하는 사람은 대체 무엇이냐? 암튼 내가 잠깐 읽은 어떤 시인의 말을 빌리면, 저녁에 보는 호박한테서는 순하고 밥 잘 먹고 일 잘하는 시골 아주머니의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단다.

“삼시세끼 안 거르고 똥 잘 싸믄 고거시 극락이여 ! 알거써!”
-〈호박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P. 59 밭 모양이 농부를 닮는 것 같다. 밭이 캔버스라면 농부는 화가지 싶다. 나는 가끔 동네 밭을 그림처럼 감상하곤 한다. 오이밭, 깨밭, 가지밭, 녹두밭, 배추밭, 총각무밭, 마늘밭. 심은 것 따라 밭 모습이 다르다. 분위기도 다르다. 또 그 밭 임자 따라 같은 것을 심더라도 밭 분위기가 다르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다르고 저녁 어둠이 내리는 모습이 다르다. 같은 풍경을 그려도 화가마다 구도가 다르고 빛깔이 다르고 붓질이 다르듯이.
-〈할머니는 시인〉 


P. 70 나는 의성어 교육에 상당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획일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까마귀는 까악까악 또는 까르르까르르 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까록까록이나 쿨럭쿨럭으로 들리기도 한다. 개구리도 마찬가지. 보통 개구리가 개골개골 운다고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걀걀, 그갤그갤, 스웨웨웨웻, 스웨웨웻 하고 울기도 한다. 유아나 초등학생한테 의성어교육을 시킬 때, 아이들을 이미 정해진 의성어에 적응시키지 말고, 자신의 귀에 들리는 그대로 충실하게 듣도록, 기왕이면 자신만의 의성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해 전부터 해오고 있다. 이것이 자연을 깊이 이해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고 또 상상력이나 언어감각을 발달시키는 데도 무척 중요하지 않겠는가. 동물들이 내는 비분절음은 인간에게 굉장한 감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걸 미리 만들어놓은 기성 언어로 제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의성어론〉 


P. 82 거미는 내 방에서 가장 조용하고 품위 있는 부족이다. 내가 거미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놈들의 거주에 최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놈들은 돈벌레처럼 나대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연민을 자아내지도 않으며, 나방처럼 수선스럽지도, 말벌처럼 음험하지도, 귀뚜라미처럼 뚱딴지같지도, 개미처럼 집요하지도, 노린재처럼 약빠르지도, 딱정벌레처럼 갑갑하지도, 흡혈모기처럼 표독하지도, 파리처럼 외설스럽지도 않다.
-〈거미〉 


P. 84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살아 있는 것 속에 있는데,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달아난다. 달아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뿐이다. 나는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일찍 나온 잠자리〉

목차

春
물귀신의 봄 011
수선화 014
호박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017
꽃을 꺾지 못했다 1 019
꽃을 꺾지 못했다 2 023
나도 산동백을 보았다 029
벚꽃잡음雜吟 034
진달래의 호출 036
쇼핑일기 038
돈이 좋다 044
늙은 연인들 047
밭이 사라졌다 051
안 주무시고 뭐 해요 055
할머니는 시인 058
개구리 구출기 063
홀딱 벗고 067
의성어론 069
까마귀어 연구 071
똥싸개밭 074
거미 078
일찍 나온 잠자리 084
저녁 085
호랑지빠귀 노래하는 밤에 087
어떤 이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089
이승과 저승 사이의 샛길 090
올빼미부인 096

夏
뜸부기 101
북어대가리와 고추밭 결투 103
북어대가리의 도발 109
백숙에 대한 명상 114
엘리제를 위하여 117
심소저 환생기 121
장마에 도라지꽃을 보다 129
광고 132
달리기를 권유함 135
시인의 자세 142
어떤 시인 144
첫사랑 145
할머니와 애호박 151
파리와 모기 152
파리 154
혐오 156
아이러니 157
붓꽃 158
영계의 아우라 160
홍수 165
시인의 죽음 169
고갯마루의 염정 미스터리 177
중음신 186

秋
서글픈 타령 199
박꽃 203
쓸데없는 궁금증 205
꽃밭의 학살 206
태풍 ‘나비’가 불어오던 날 210
추석날 214
아직 초록이 많이 남아 있는 가을산을 오르며 218
꼬리박각시 220
잠자리가 내 머리 꼭대기에 와 앉았다 225
열정 227
환멸 228
민달팽이 229
먼 길 가는 동무에게 232
어떤 신선 233
미자의 계곡 235
엉덩이에 대한 추억 238
까마귀와 사내 246
참외장수 251

冬
《토정비결》을 읽는 밤 257
입동일기 260
착각 261
흑염소와 낙엽 262
달빛 아래 산책 266
어제 시장에 김치를 사러 갔다 269
물오징어와의 불화 272
이백 원 274
할머니의 향기 279
ㅅ형과 달리아 284
여행 299
직박구리를 아시나요 302
죽은 강아지 이야기 304
고라니 309
겨울 근황 313
미루나무 316
오리 318
샤갈의 닭 323
사라진 사내 327
잘 가라 똥순이 334
아버지의 임종 336
부엉이 351
공동묘지에 가보셨나요? 353
송운 357
박새 358
생강나무 359

해설
내 친구 김인선 김대현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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