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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재위 10년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시리즈 : 이한우의 태종실록 [12]

이한우 저 | 21세기북스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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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0981853 / 608쪽 / 1,105g /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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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난세를 치세로 바꾼 18년의 역사, 그 치열한 기록이 펼쳐진다!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형제들을 살육하고 왕위에 오른 ‘피의 군주’, 조선의 설계자라 평가받는 정도전을 죽인 ‘냉혈한’… 그에 대한 이해는 즉위 이전의 비정한 면모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태종의 자취를 좇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저자는 최근 역사 저술가로서 매진하며 우리 사회의 기본을 밝혀줄 고전 번역에 힘쓰고 있다. 군주의 리더십 함양의 필독서인 『대학연의』를 비롯해 『논어로 대학을 풀다』 등 ‘사서삼경’ 등을 번역해온 저자의 시선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로 이동하여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기에 이르렀고, 그 성과를 묶어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등 ‘이한우의 군주열전(전6권)’ 시리즈를 집필했다. 이러한 행보에서 나아가 조선의 여러 왕 중에서도 가장 먼저 『태종실록』을 번역한 이유는 그만큼 태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큰 통찰을 주는 군주인 까닭이다. 나는 왜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런 이유만으로 방대한 실록 번역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그리고 세계에 대한 깊은 지혜를 얻고 싶어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실록 중에서 『태종실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다. _본문 중에서 태종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부터 왕이 되기까지 냉혹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였지만, 재위기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상왕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외교 전략을 펼치고 관제개혁에 힘쓰는 등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 우리가 태종에 집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종실록』 곳곳에는 세종의 한글 창제의 밑바탕이 된 민본정치의 기조가 담겨 있는데, 저자는 예리한 시각으로 이러한 부분을 짚어내며 태종의 정치철학을 드러낸다. 이처럼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세종을 비롯하여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태종을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자, 우리 역사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군주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올바른 번역, 치밀한 해석, 섬세한 역주… 우리에겐 친절한 실록 완역본이 필요하다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실록 원문의 편년체 서술을 따라 1년 단위로 책을 구성하여 재위기간 18년의 기록을 18권의 책으로 엮는 방대한 시리즈이다. 실록을 처음 읽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문 번역 과정을 친절하게 담았고, 실록에 등장하는 인물?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기존 번역물의 오류를 바로잡고 저자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냈다. 번역본과 함께 한문 원문을 책에 실었고, 독자들에게 한문 읽기의 묘미를 전하고자 ‘원문 읽기를 위한 도움말’을 통해 저자만의 번역 노하우를 소개한다. 기존의 공식 번역은 한자어가 너무 많고 문투도 낡았다. 게다가 역주가 거의 없어 불친절하다. 전문가도 주(註)가 없으면 정확히 읽을 수 없는 것이 실록이다. 특히 실록의 뛰어난 문체가 기존 번역 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을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_본문 중에서 고위 공직자들의 논문 표절과 무단인용 문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저자는 최근 연구부정행위검증 민간기관인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서 실시한 논문표절 예비검증에서 모범 사례로 꼽혔다. 특히 인용문 번역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번역에 대한 저자의 철학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결과다.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태종에 대한 탐구를 넘어『조선왕조실록』을 편집?요약본만으로 읽어온 독자들과 기존 공식 번역에 아쉬움을 느껴온 독자들 모두에게 실록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역사의 진면목이 살아 숨 쉬는 우리 고전을 만나다 “다시 민무휼을 여원군으로 삼고 민무회를 여산군으로 삼았다. 이보다 먼저 법령을 규정하기를 외척은 군을 봉하지 말라 했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이 말했다. 외척은 일을 맡길 수 없으니 마땅히 다시 봉군(封君)하는 것이 옳다.”_본문 중에서 태종은 재위기간 내내 외척을 견제했다. 조선왕조가 개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세력이 분산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병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력을 확대하던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태종을 불안하게 했다. 결국 태종 10년, 두 형제는 자진을 명받는다. 이러한 태종의 외척 및 공신 숙청이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지만, 세종대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군주의 덕목은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고전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우리의 고전에 담긴 선조들의 살아 있는 정신을 발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저자 소개

○雅號 黙谷
○慶南 山淸 生
○大邱大學校 國語國文學科 및 同 大學院 卒業(文學博士)
○現 Uzbekistan Nizami 師範大學 韓國語文學科 敎授
○謁聖科擧 及第 및 全國漢詩白日場 多數 入賞
○大統領表彰, 南岡敎育賞 受賞
○敎員任用考試 漢文科檢討委員 歷任
○敎員任用考試 國語科採點委員 歷任
○高卒檢定考試 漢文科出題委員 歷任
○漢文敎科書 檢定委員 歷任
<論著 및 譯書> 澤堂李植文學硏究, 崔孤雲傳硏究, 明心寶鑑, 大學, 中庸, 論語, 千字文쓰기敎本 外 多數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및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뉴스위크 한국판》 《문화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뒤 문화부 학술 및 출판 담당 기자로 일했다. 
독일 뮌헨에서 연수를 하던 중 이론보다 한 사회의 ‘기본’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대한민국의 뿌리, 조선의 뿌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7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했고, 그 성과를 묶어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등 ‘이한우의 군주열전(전6권)’ 시리즈를 펴냈다. 
태종과 세종의 정치 철학에 영향을 준 송나라 학자 진덕수의 『대학연의』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한문 공부를 위해 사서(四書)의 해설을 겸한 번역서를 집필했고 5년에 걸친 작업은 『논어로 대학을 풀다』 등 ‘이한우의 사서삼경(전4권)’ 시리즈로 완성됐다. 경전 공부로 단련된 한문 지식을 기반으로 『대학연의(상?하)』를 출간했다. 이 책으로 인해 ‘리더십’에 새로이 눈떴고, 사대부의 심신 수양서가 아닌, 군주의 리더십 함양의 필독서로써 『논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언론인의 길을 접고 ‘논어등반학교’를 열어 일반인을 상대로 『논어』를 강의하며 『한서』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도록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고전 번역이 아니라 지난 100여 년간 단절된 한문 번역 문화를 온전히 되살림과 동시에 우리 고전에 담긴 살아 있는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 밖의 저서로는 『조선을 통하다』 『슬픈 공자』 『왜 조선은 정도전을 버렸는가?』 『고려사로 고려를 읽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의 의미』 『해석학적 상상력』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P. 147 민무구(閔無咎), 민무질(閔無疾)에게 자진(自盡-자살)하라는 명을 내렸다. 성석린(成石璘), 김한로(金漢老), 설미수(?眉壽) 등이 행재소에 이르러 거가(車駕)를 수행한 신료들과 더불어 모두 경덕궁(敬德宮)에 나아와 반열(班列)을 지어 서서 막 소(疏)를 올리려고 하는데[進疏=上疏] 상이 물었다. “어째서 왔는가” 석린(石璘) 등이 대답했다. “신료들이 거가가 오랫동안 여기에 머무신단 말을 듣고 적당(賊黨)을 오래 둘 수 없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청하는 것뿐입니다.”_ (태종 10년 경인년 3월 계미일 기사) 


P. 197~198 “지금 소사(所司)가 지성의 죄를 청하는데 그가 범(犯)한 것은 본래 세자에게 ‘무구(無咎) 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이었으니 그 마음은 장차 세자에게 잘 보이려 함[求媚]이었다. 세자가 돌아와서 (그 말을) 나에게 고했기에 내가 가만히 지방으로 보냈다. 그러므로 안팎에서는 지성이 범한 바를 알지 못했다. 연전(年前)에 이무(李茂)가 그 직임(職任)을 뛰어서 그를 제수(除授)했기에 외방(外方)에 안치(安置)한 것뿐이다. 지성은 하륜(河崙)의 처족(妻族)이니 만일 그가 말한 것을 추궁하면 반드시 륜(崙)에게 미칠 것이다. 륜은 바탕은 좋고 겉으로 애쓰는 바는 적지만[多質少文] 충성하는 뜻이간절하고 지극한 사람이다. 나라에 이 사람이 없으면 되겠는가? 내가 매번 재변(災變)을 만나면 마음속에 스스로 경계하고 성찰하기를 ‘내가 비록 박덕(薄德)하나 두세 사람의 대신(大臣)이 나를 보좌하는데 힘 입는다’라고 한다. 헌사(憲司)는 어찌하여 급급하게 서두르는가 너희는 이 말을 밖에 누설하지 말라.” 마침내 명해 지성을 적몰(籍沒)해 노비로 삼았다._ (태종 10년 경인년 4월 정유일 기사) 


P. 418~419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 한옹(韓雍)이 백성을 편하게 할[便民] 열 가지 일을 진달했다. ‘1. 각역(各驛)을 안무(安撫)할 것. 2. 향리(鄕吏)의 봉족(奉足)을 쇄출(刷出)해 충군(充軍)하는 데 폐단이 있음. 3. 공아(公衙)의 구종(丘從)을 예전대로 해야 함. 4. 각 고을의 기인(其人)의 수를 감할 것. 5. 연례(年例) 별례(別例)의 재목을 감할 것. 6. 임내(任內)의 속현(屬縣)을 파할 것. 7. 관사(館舍)를 수즙(修葺-손질)할 것. 8. 혁거(革去)한 사사 노비(寺社奴婢)의 둔전세(屯田稅)를 감할 것. 9. 연호미(烟戶米)를 면제할 것. 10. 승도(僧徒)가 누락된 노비(奴婢)를 진고(陳告)해 환수(換受)하는 것을 금할 것.’_ (태종 10년 경인년 7월 계유일 기사) 


P. 580~581 서북면 도순문사 박은(朴?)이 아뢰었다. ‘의주 백성들이 지난해 농사를 실패했고, 금년에는 분명(奔命)으로 인해 지쳤사오니 청컨대 금년의 전조(田租)를 감면하소서.’ 상이 말했다. “한문제(漢文帝)가 전조(田租)를 줄여주어 백성들을 구휼해서 아름다운 이름이 후세에 전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사람이 적어서 전조가 대단히 적고 또 군국(軍國)의 일 때문에 조세를 감하지 못하나 의주(義州)는 다른 고을에 비할 바가 아니니 아뢴 대로 하라.”_ (태종 10년 경인년 11월 계미일 기사) 

목차

[재위 10년]
들어가는 말
일러두기
태종 10년 경인년 1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2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3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4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5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6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7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8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9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10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11월 - 원문
태종 10년 경인년 12월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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