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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태종실록 재위 11년 새로운 해석, 예리한 통찰

시리즈 : 이한우의 태종실록 [12]

이한우 저 | 21세기북스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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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0981860 / 592쪽 / 1,073g / 152 x 22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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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난세를 치세로 바꾼 18년의 역사, 그 치열한 기록이 펼쳐진다!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형제들을 살육하고 왕위에 오른 ‘피의 군주’, 조선의 설계자라 평가받는 정도전을 죽인 ‘냉혈한’… 그에 대한 이해는 즉위 이전의 비정한 면모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태종의 자취를 좇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오랜 기간 언론인으로 활동하던 저자는 최근 역사 저술가로서 매진하며 우리 사회의 기본을 밝혀줄 고전 번역에 힘쓰고 있다. 군주의 리더십 함양의 필독서인 『대학연의』를 비롯해 『논어로 대학을 풀다』 등 ‘사서삼경’ 등을 번역해온 저자의 시선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로 이동하여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기에 이르렀고, 그 성과를 묶어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등 ‘이한우의 군주열전(전6권)’ 시리즈를 집필했다. 이러한 행보에서 나아가 조선의 여러 왕 중에서도 가장 먼저 『태종실록』을 번역한 이유는 그만큼 태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큰 통찰을 주는 군주인 까닭이다. 나는 왜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하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탐구해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물론 이런 이유만으로 방대한 실록 번역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삶에 대한 그리고 세계에 대한 깊은 지혜를 얻고 싶어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실록 중에서 『태종실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다. _본문 중에서 태종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부터 왕이 되기까지 냉혹한 혁명가의 모습을 보였지만, 재위기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상왕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외교 전략을 펼치고 관제개혁에 힘쓰는 등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기 위해 현실 정치의 영역에서 다양한 족적을 남겼다. 우리가 태종에 집중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태종실록』 곳곳에는 세종의 한글 창제의 밑바탕이 된 민본정치의 기조가 담겨 있는데, 저자는 예리한 시각으로 이러한 부분을 짚어내며 태종의 정치철학을 드러낸다. 이처럼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세종을 비롯하여 조선 왕조 500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태종을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자, 우리 역사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군주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올바른 번역, 치밀한 해석, 섬세한 역주… 우리에겐 친절한 실록 완역본이 필요하다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실록 원문의 편년체 서술을 따라 1년 단위로 책을 구성하여 재위기간 18년의 기록을 18권의 책으로 엮는 방대한 시리즈이다. 실록을 처음 읽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문 번역 과정을 친절하게 담았고, 실록에 등장하는 인물?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기존 번역물의 오류를 바로잡고 저자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냈다. 번역본과 함께 한문 원문을 책에 실었고, 독자들에게 한문 읽기의 묘미를 전하고자 ‘원문 읽기를 위한 도움말’을 통해 저자만의 번역 노하우를 소개한다. 기존의 공식 번역은 한자어가 너무 많고 문투도 낡았다. 게다가 역주가 거의 없어 불친절하다. 전문가도 주(註)가 없으면 정확히 읽을 수 없는 것이 실록이다. 특히 실록의 뛰어난 문체가 기존 번역 과정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점을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_본문 중에서 고위 공직자들의 논문 표절과 무단인용 문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저자는 최근 연구부정행위검증 민간기관인 연구진실성검증센터에서 실시한 논문표절 예비검증에서 모범 사례로 꼽혔다. 특히 인용문 번역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번역에 대한 저자의 철학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결과다.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태종에 대한 탐구를 넘어『조선왕조실록』을 편집?요약본만으로 읽어온 독자들과 기존 공식 번역에 아쉬움을 느껴온 독자들 모두에게 실록을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역사의 진면목이 살아 숨 쉬는 우리 고전을 만나다 “또 이르기를 ‘공양군(恭讓君-공양왕) 때를 당해 용사(用事)하는 자들은 공(公)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 것을 꺼려했다’라고 했으니 그때 우리 태조께서는 나라의 수상(首相)이 됐으므로 모르긴 하지만 용사자(用事者)란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모르겠다.”_본문 중에서 명나라 진련이 이색의 비명을 지어 보냈는데, “공양군 때를 당해 용사하는 자들은 공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 것을 꺼려했다”라는 내용이 문제가 되었다. 태종은 이 ‘용사자’가 태조가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고, 비명의 찬자인 하륜은 지탄받게 된다. 하륜은 이숭인과 이종학의 죽음을 거론하면서 정도전, 남은에게 탄핵이 집중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왕조 건국에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정도전은 폐서인이 되었다. 태종 11년에 발생한 이색 비명 논쟁은 사실상 태종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했다. 태종은 이 사건으로 많은 세력들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군주의 덕목은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고전 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한우의 태종실록』은 우리의 고전에 담긴 선조들의 살아 있는 정신을 발견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저자 소개

○雅號 黙谷
○慶南 山淸 生
○大邱大學校 國語國文學科 및 同 大學院 卒業(文學博士)
○現 Uzbekistan Nizami 師範大學 韓國語文學科 敎授
○謁聖科擧 及第 및 全國漢詩白日場 多數 入賞
○大統領表彰, 南岡敎育賞 受賞
○敎員任用考試 漢文科檢討委員 歷任
○敎員任用考試 國語科採點委員 歷任
○高卒檢定考試 漢文科出題委員 歷任
○漢文敎科書 檢定委員 歷任
<論著 및 譯書> 澤堂李植文學硏究, 崔孤雲傳硏究, 明心寶鑑, 大學, 中庸, 論語, 千字文쓰기敎本 外 多數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 석사 및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뉴스위크 한국판》 《문화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낸 뒤 문화부 학술 및 출판 담당 기자로 일했다. 
독일 뮌헨에서 연수를 하던 중 이론보다 한 사회의 ‘기본’의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대한민국의 뿌리, 조선의 뿌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7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완독했고, 그 성과를 묶어 『태종 조선의 길을 열다』 등 ‘이한우의 군주열전(전6권)’ 시리즈를 펴냈다. 
태종과 세종의 정치 철학에 영향을 준 송나라 학자 진덕수의 『대학연의』를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 한문 공부를 위해 사서(四書)의 해설을 겸한 번역서를 집필했고 5년에 걸친 작업은 『논어로 대학을 풀다』 등 ‘이한우의 사서삼경(전4권)’ 시리즈로 완성됐다. 경전 공부로 단련된 한문 지식을 기반으로 『대학연의(상?하)』를 출간했다. 이 책으로 인해 ‘리더십’에 새로이 눈떴고, 사대부의 심신 수양서가 아닌, 군주의 리더십 함양의 필독서로써 『논어』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언론인의 길을 접고 ‘논어등반학교’를 열어 일반인을 상대로 『논어』를 강의하며 『한서』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도록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고전 번역이 아니라 지난 100여 년간 단절된 한문 번역 문화를 온전히 되살림과 동시에 우리 고전에 담긴 살아 있는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 밖의 저서로는 『조선을 통하다』 『슬픈 공자』 『왜 조선은 정도전을 버렸는가?』 『고려사로 고려를 읽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의 의미』 『해석학적 상상력』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P. 215~216 “지금 상국(上國-중국)의 진련(陳璉)이 지은 이색의 비명(碑銘)을 보고 또 하륜(河崙)과 권근(權近)이 지은 글을 보니 모두 국초(國初)의 일을 말했다. 권근의 글에 이르기를 ‘이(?)와 초(初)의 무리를 (중국에) 보낸 것으로 꾸몄다[誣]’라고 했으니 이는 윤이(尹?)와 이초(李初)의 일로 그 당시 신민(臣民)들이 모두 놀랐던 일인데 지금까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일이다. 권근의 글이 이와 같다면 이는 허위로써 사실을 삼은 것이니 사관(史官)이 쓴 글도 잘못된 것이다. 또 이르기를 ‘청주(淸州)에서 문초받을 때, 공의 정성(精誠)이 하늘을 감동시켜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친 변(變)이 있었다’라고 했으니 이는 대개 윤이와 이초의 일로서 고황제(高皇帝)께서도 말씀한 바이고, 본국(本國)에서도 떠들썩했던 일이니 어찌 거짓이 있겠는가? 또 풍수(風水)의 재변(災變)은 어느 시대나 없는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반드시 이색의 일에 감동된 것이겠는가? 또 이르기를 ‘공(公)은 부처를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공이 벽사(?寺)에 있었던 일을 내 눈으로 직접 본 바인데 권근이 어찌 그 진부(眞否)를 알겠는가? 또 이르기를 ‘공양군(恭讓君-공양왕) 때를 당해 용사(用事)하는 자들은 공(公)이 자기를 따르지 않는 것을 꺼려했다’라고 했으니 그때 우리 태조께서는 나라의 수상(首相)이 됐으므로 모르긴 하지만 용사자(用事者)란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 모르겠다.”_ (태종 11년 신묘년 6월 무오일 기사) 


“하륜과 권근은 모두 나의 충신인데 어찌 우리 태조를 비방했겠는가? 이색(李穡)이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과 본래 틈이 있었고 하륜과 권근은 모두 이색의 문인(門人)이기 때문에 보복하려고 생각한 것일 뿐 실상은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또 사직(社稷)에 관계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보복하는 것은 대신(大臣)의 도리가 아니다. 권근은 이미 죽었으니[物故] 추후에 죄줄 수 없고, 하륜은 이미 집에서 침체(沈滯)해 국정에 참여해 듣지 않으니 경 등은 다시 말하지 말라.” (태종 11년 신묘년 7월 경신일 기사)  접

“개국의 공은 남은(南誾)이 많았으니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힘써 아뢴 일이 있었으나 정도전(鄭道傳)은 개국할 때에도 일찍이 한마디 말도 없었고, 그 뒤에 적서(嫡庶)를 분변할 때에도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고, 고황제(高皇帝)에게 득죄(得罪)함에 이르러서는 굳이 피하고 가지 않고 사(私)를 끼고 임금을 속였고, 흉포(凶暴)한 짓을 자행해 그 몸의 허물을 없애고, 이숭인(李崇仁) 등을 함부로 죽여 그 입을 멸했으니 죄가 공(功)보다 크다. 마땅히 전민(田民)을 적몰(籍沒)하고 자손을 금고(禁錮)하라.”_334쪽 (태종 11년 신묘년 8월 신묘일 기사) 

 

목차

[재위 11년]
들어가는 말
일러두기
태종 11년 신묘년 1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2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3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4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5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6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7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8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9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10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11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12월 원문
태종 11년 신묘년 윤12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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