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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205348 / 128쪽 129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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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영혼이 들려주는, 간간이 흐느끼고 울부짖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 도다리 숙회를 앞에 놓고 소주처럼 맑고 짜릿한 시인의 음성을 들었을 때처럼. 그러나 그는 소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코올보다 더 알코올 향을 풍기는, 숙취가 오래가는 시, 시인 오승철의 매력이다. 지독하리만큼 그는 시에 냉정하다. 한 땀 한 땀 한 편의 시조가 쓰이기까지의 시간은 일 년이 되기도 하고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오로지 머릿속에 저장해 놓는다. 한 문장 한 행이 뼈에 새겨지고 혈관으로 스며들어 자신의 육체가 되고 나서야 내놓는다. 그 푸른 망망대해를 건너온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아니고서야 그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그의 몸에는 침묵으로 버티는 수많은 영혼이 살고 있다. 팔딱이며 뛰는 혼魂의 심장이 시로 태어난다. 한 편 한 편의 시마다 치열하고 숭고한 아우라(Aura)를 풍기는 이유라 하겠다.
그렇게 그는 뼛속까지 시조 시인이다. 이십 대 초반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겨울 귤밭」(1981)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첫 시집 개닦이(1988), 한국시조작품상 「사고 싶은 노을」(1997),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사고 싶은 노을(2004), 두 번째 시집 누구라 종일 흘리나(2009), 중앙시조대상 「셔?」(2010), 세 번째 시집 터무니 있다(2015), 제6회 한국시조대상 「몸국」(2016), 8인 8색 시조집/80년대 시인들(2017)까지가 그의 굵직한 행보다. 오랜 시간 푹 달여 배지근한(감칠맛이 나는) 제주의 몸국 같은 시를 쓰다 보니 그는 과작으로도 유명하다. 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피그말리온 그가 바로 오승철이다.
시는 꺼내지 못한 긴 침묵과의 대화다. 여기에서 침묵은 접신이라 부를 수 있다. 그들은 대체로 비극일 때 목소리를 갖는다. 말할 수 없는 어떤 부조리의 순간들이거나 사건이다. 부조리의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불합리·배리(背理)·모순·불가해(不可解) 등을 뜻하는 단어로서,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침묵은 비극을 가장한 부조리라고 할 때 죽음은 부조리와 연결된 통로다.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을 때 침묵할 수밖에 없다. 침묵이 더 큰 죽음을 부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들게 하는 것, 권력의 힘. 그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침묵은 부조리와 교집합이 된다.
가장 확실한 침묵은 말을 하는 것(키에르케고르)이라고 했다. 오랜 금기를 깨는 말. 그러니까 시는 가장 확실한 침묵이다. 오승철 시인은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침묵을 꺼낸다. 누군가는 묻어버리고 싶고,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무덤 속 침묵이다. 잠들어 있는 침묵을 깨뜨려 파열에 들게 한다. 그를 통해 세상 밖으로 드러내길 간절히 원하는 혼이 불러주는 소리다. 사무치듯 흐느끼는 울음들이 저마다 침묵을 깨고 또 다른 침묵 속으로 걸어가 고요해지는 순간이다. 이승과 저승은 한 공간에 존재한다.
시를 쓰는 사람이 시조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현대시를 쓰는 시인들은 대체로 시조와는 거리를 둔다. 정형화된 형식으로 인해 고루하다는 편견이 있다. 시조라는 장르가 갖는 오랜 전통성 때문이기도 하다. 성리학과 유교의 관점에서 선비들의 유물이기도 한 시조는 세대를 건너오면서 사상이 무너지고 눈빛이 바뀌면서 구시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조의 세계에서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가 이어졌고, 지금은 파격적인 형식의 시조들과 시와 차별성을 구분하기 힘든 시조도 많다. 지금은 유연한 정형성을 갖춘 흐름으로 현대시조가 흘러가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출판사 리뷰
꽃의 존재론적 상징을 통한 식물적 상상력 오승철 시인의 이번 시집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공통 화소(話素)는 꽃이다. 이 꽃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개성적 시각과 마주치게 된다. 김소월이 ?산유화?에서 보여주었듯이 꽃은 아름다움의 표상을 넘어서서 존재론적 상징성까지를 지니게 된다. 즉, ‘꽃’은 피고 지는 것으로 생명의 원리를, 꽃씨가 만나고 헤어짐으로 사랑의 원리를, 탄생과 소멸로 고독과 존재의 원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꽃은 자연 속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의 표상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의 객관적 상관물이 된다. 식물적 상상력으로서의 ‘꽃’이 이미지를 통해 발현되는 양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진다. 첫째는 객체적 대상으로서의 꽃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조나 묘사인데, 이 경우 시인의 삶은 꽃과 깊은 관련을 맺지는 않는다. 둘째, 꽃과 관련된 시인의 관념이나 정감을 형상화하는 경우는, 시인의 삶이 꽃과 연관을 맺으면서 양자 간의 교호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셋째, 시인 자신이 지향하는 내면세계가 꽃에 투영되는 경우인데, 이 유형에서 시인은 꽃의 생리나 특성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들여 자신이 추구하는 내면적 가치와 꽃의 가치를 동일화시킨다. 따라서 이때의 ‘꽃’은 시인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표상하게 된다. 말하자면, 첫 번째 유형에서 세 번째 유형으로 갈수록 꽃은 시인의 삶 속에 깊이 투영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다음 시는 세 번째 유형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름철 내 노동은 종 하나 만드는 일 보랏빛 울음을 문 종 하나 만드는 일 가을 날 소리를 참고 향기로나 우는 종 -?야고? ‘야고’는 제주도 한라산 남쪽 기슭 억새밭 억새포기에 섞여 자라는 홍자색의 가을꽃으로 작은 종처럼 생겼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평시조(단시조)의 형식원리를 따르고 있다. 즉, 초장과 중장의 병치, 종장의 통사적 차단성이 그것이다. 초장의 제1, 2음보(“여름철/ 내 노동은”)와 중장의 제1? 2음보(“보랏빛 울음을 문”), 초장의 제3? 4음보(“종 하나 만드는 일”)와 중장의 제3? 4음보(“종 하나 만드는 일”)는 각각 병렬의 형식을 갖는다. 초장과 중장의 의미구조는 “여름철 내 노동은/ 보랏빛 울음을 문/ 종 하나 만드는 일”이 되는데, 이 경우 종장에서의 결구와 통사적 차단성이 단시조의 성패를 가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종장의 “가을 날/ 소리를 참고/ 향기로나 우는 종”은 절창이다. 시조가 노래였던 까닭에 한 음보 안의 음절은 자수(字數)가 아닌 음(절)량으로 설정되고 있지만, 이 작품은 한 글자를 빼거나 더할 곳 없이 완벽한 단시조의 정형을 보여준다. 중장의 “보랏빛 울음을 문/ 종 하나”는 시각(‘종’)을 청각화(‘보랏빛’)하면서 동시에 촉각화(입에 ‘문’)한 공감각의 진경을 보여준다. 초장과 중장에서 등가적(等價的) 형상을 열거하고 반복한 후 감각적 경험으로 전이시키는 양상은 단시조의 전범(典範)이라고 하겠다. 멀쩡한 오름 하나 건들고 가는 쏘내기야 가다가 다시 와서 또 건드는 쏘내기야 내 누이 사십구재 날 떼판으로 터진 꽃아 -?쇠별꽃? 이 작품 역시 초장의 제1? 2음보(“멀쩡한 오름 하나”)와 중장의 제1? 2음보(“가다가 다시 와서”), 초장의 제3? 4음보(“건들고 가는/ 쏘내기야”)와 중장의 제3? 4음보(“또 건드는/ 쏘내기야”)가 각각 병렬의 형식을 갖는다. 특히 “건들고 가는/ 쏘내기야”와 “또 건드는/ 쏘내기야”는 리듬의 양상으로 보나 의미 단위로 보나 서로 교환가치를 지닌다. 이 경우 독자의 시선은 종장으로 모여지는데, 화자의 아픈 기억을 건들고 가는 ‘쏘내기’는 “내 누이 사십구재 날/ 떼판으로 터진 꽃”으로 그려진다. 길가나 밭둑에서 흔히 자라는 쇠별꽃에 개인적인 서사를 입혀 누이의 부재로 인한 아쉬움과 허전함을 강조하면서 화자의 무의식 속에 무더기 무더기의 그리움으로 피어나게 하고 있다.
■시인의 말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또 한 번
시의 집을
허술히 묶어내는
이 낭패감이라니!
2019년 꿩 풀어놓은 어느 봄날
오승철
1부 유행가 한 리어카
꿩꿩, 장서방
들녘도 아이들도 마취에서 풀린 사월
서귀포 고근산 너머 괭괭 우는 굿판같이
어느 집
가난한 뒷뜰
장독대나 흔든다
압록강 단교斷橋
자 받게, 이 사람아, 아니면 따르던가
내가 니 보러왔지
누굴 보러 왔겠나
아, 얼른 이 잔 안 받어 팔 떨어지겠어
단둥과 신의주 사이 뚝 끊긴 철교처럼
삐걱이는 이 환상통아
팔 떨어지겠어
압록은 어디로 뜨고 가을만 흐르는 강
안고 파라 ,
아직 내가 이승의 노래일 때
돌아서면 남보다 더 낯선 내 사람아
아, 얼른 이 잔 안 받어
팔 떨어지겠어 썅
오키나와의 화살표
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칠십 여년 잠 못 든 반도
그 건너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 쑥부쟁이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언덕
그러나 못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굽이 끌려온 길,
갈 길 또한 아리랑 길
잠 깨면 그 길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
어느 과녁으로 날아가는 중일까
나를 뺏긴 반도라도
동강난 반도라도
물 건너 조국의 산하, 그 품에 꽂히고 싶다
*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조선학도병 740인의 위령탑 건립과 유골 봉환사업에 일생을 바쳤다.
낙장불입 2
가을날 감이파리 감빛으로 깊어지면
나무는 그 잎들과 허공에서 헤어진다
정선 땅 홍씨 할머니
그렇게 흘러든 연변
왜 왔냐 묻지 마라
왜 남았냐 묻지 마라
팔랑팔랑 예닐곱 살 할아버지 따라온 길
아리랑, 정선아리랑 내 길을 묻지 마라
강아,
두 아들도 국경 너머 보낸 강아
타관객리 한 생애 일송정 돌아들면
비암산 한 자락 끌고 혼자 가는 해란강아
아스*
은밀히 우리끼리만 통하는 말이 있다
한반도의 끝과 끝,
제주도와 함경도
칠십 년 등을 돌려도 입에 붙은 말이 있다
어느 변방에도 반골의 기질은 있다
누가 바꿔 살게 했나,
한라산아 백두산아
유목의 서러움 같은 방언들은 떠돌아
“아시야” 하고 부르면
“아스야”로 돌아올까
‘생기리’와 ‘부루’를 우리 말고 누가 알까
산 너머 어느 아궁이
불씨처럼 남은
그 말
* 아는 서울에선 ‘아우’, 제주에선 ‘아시’, 함경도에선 ‘아스’로 변했다.
쇠별꽃
멀쩡한 오름 하나
건들고 가는
쏘내기야
가다가 다시 와서
또 건드는
쏘내기야
내 누이 사십구재날
떼판으로 터진 꽃아
4만원
서울에선 하늘도 공짜가 아니라고?
중세유럽 주택세는
창문 수로 매겼다던데
고시촌 쪽방조차도 창 있으면 더 내라고?
까짓것
동안거 들듯 면벽하면 그만이지
때때로 물숨 뿜는 혹등고래도 아니고
한 달에 4만 원이면
사나흘 치 컵밥 값인데
그러나 그게 아녀, 세상은 그게 아녀
화마가 지난 자리 엇갈린 삶과 죽음
더 이상 떠밀릴 곳이 이승 말고 또 있다니
막장 같은 가슴에도 복권은 들어 있다
비틀비틀 골목 불빛
이끌고 온 그 사내가
토악질 다독이듯이 다독이는
서울의 밤
윤노리나무
한 때는
코뚜레로
소도 한 번 길들여 봤고
석수장이
메자루로
바위도 부숴봤고
잔칫집 상갓집 돌며 윷판도 흔들어봤다
삼천리 적막강산 바람 타는 윤노리나무
그 몸에 가락가락 윷가락이 없었다면
금이 간 반도의 허기
누가 달래줬을까
우리가 순례자로
돌아드는 백두대간
휴전선 철책 너머 종지윷 흩뿌리면
여보게, 볼기 탁 치며 응수하지 않겠는가
1부 유행가 한 리어카
꿩꿩, 장서방·12
압록강 단교斷橋·13
오키나와의 화살표·14
낙장불입?2·16
아스·17
쇠별꽃·18
4만 원·19
윤노리나무·20
두이레, 열나흘 굿·21
다시, 봄·22
만덕 객주·23
마삭줄꽃 불러들여·24
어느 저녁·25
세화오일장·26
2부 온 들녘 꿩 풀어놓고
꽃타작·28
꿩, 엎지르다·29
3일 평화·30
곱을락·32
어느 봄·34
임씨 올레·35
꿩꾹이·36
꿩을, 풀다·37
꿩·38
꿩 꿩·39
꿩꿩, 푸드덕·40
그러니까, 봄·41
북향화·42
3부 멧밥에 숟가락 걸듯
위미리·44
추석날 위미리는·45
서귀포·46
대설·47
걸명·48
남극노인성·49
막사발 하나·50
어느 카메라·51
목포항·52
유달산 낮 12시·53
팔공산·54
인사동·55
봄은 오고 꽃은 피어·56
4부 베갯머리 송사 같이
쇠뿔에 등을 걸고·58
천지간·59
해녀의 섬, 우도·60
유구무언·61
으아리꽃·62
월하정인·63
그래봤자·64
쓸데없이·65
노을새·66
석파시선암·67
가랑잎 성당·68
본전·70
선흘리 먼물깍·71
안건·72
어떤 연애질·73
■ 해설 | 김효선
긴 침묵과의 대화, 령靈과 혼魂·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