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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 임시정부 수립 ․ 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 인물이야기, 약산 김원봉!
- 일제 강점기, 현상금이 가장 높았던 독립운동가 김원봉!
- 영화 <암살><밀정>, MBC 드라마 <이몽>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삶
생각과 행동 사이가 가장 짧았던 행동파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삶을 되짚어본다!
출판사 리뷰
일제 강점기, 현상금이 가장 높았던 독립운동가 김원봉! 독립운동가의 대표로 꼽히는 백범 김구보다 현상금이 더 높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일제가 얼마나 김원봉을 두려워하고 그 이름에 치를 떨었는지 알 수 있다. 의열단의 의백, 조선민족혁명당의 서기, 조선의용대의 대장, 한국광복군의 부사령관, 임시정부의 군무부장 등 김원봉은 역임한 직위만도 10개가 넘는다. 이렇듯 김원봉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항일 투쟁을 전개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그 때문에 해방 후 돌아온 조국에서도 김원봉을 기다리는 것은 테러와 정치적 모략이었다. 항일 운동 당시에도 해방 후 조국에 돌아와서도 김원봉은 통일된 정부 수립을 주장했고, 민족의 분단을 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승만, 김구보다 뒤늦게 귀국한 김원봉은 좌우 이해관계 속에서 정치적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고, 친일파 경찰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었다. 결국 김원봉은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김구의 제의를 받아들여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지도자가 모여 통일을 논의하는 연석회의에 참가를 결심했으며, 그 이후 남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영화 <암살><밀정>, 드라마 <이몽>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삶 오늘날까지 김원봉은 스스로 북으로 넘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에 남아 북쪽 고위 관료로 활동했던 김원봉이지만, 북한에서도 김원봉의 존재는 몇 년 안 가 사라진다. 김원봉의 행적과 죽음에 관해서는 아직도 정확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 공산주의자가 아닌데 북에서 살아가려고 했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임시정부 수립 및 의열단 창단 100주년의 해를 맞아, 드라마를 통해서 김원봉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잊힌 존재였던 김원봉이라는 독립운동가를 다시 알아보는 좋은 기회다.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판단은 보류하더라고 누구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던 무력 투쟁 독립운동의 대명사 김원봉의 삶을 돌아보고, 김원봉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어린이를 위해 풀어 쓴 김원봉 인물이야기가 김원봉을 삶을 기억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문 열어! 자, 옜다, 너희는 여기가 딱이다!”
원봉이 걷어 온 일본의 국기, 일장기를 똥 속으로 처박아 버렸다.
아이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국기는 일본을 대신하는 거다.
그런 국기를 똥 무더기 속에 처박아 버렸으니, 그것도 일본 왕의 생일날!
누가 그랬는지 금방 밝혀졌고 김원봉과 친구 윤세주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본문 10~11쪽-
의열단 활동을 하며 23회의 폭탄 투척 사건을 일으킨 김원봉에게
일본은 100만 원, 오늘날의 약 320억 원에 해당하는 현상금을 걸었다.
이봉창과 윤봉길 등의 굵직한 사건을 주도한 한인애국단의 당수 김구에게는
60만 원, 오늘날의 약 200억 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이 엄청난 액수는 일본이 이 두 사람을 그만큼 무서워했다는 뜻이고,
이 두 사람이 조선 독립에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본문 105쪽-
억압당하는 우리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온몸을 던졌고, 오늘날 우리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는 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던 수많은 조선 청년에게 독립의 확신을 심어 주었던
김원봉을 기억해 우리만이라도 김원봉에게 상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졸업할 팔자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만나다 7
조선이 사라졌다
산처럼 살 테니 물처럼, 별처럼 살아라
적을 이기는 길은 적의 방법을 아는 것
김좌진, 이시영 선생을 만나 싸우는 법을 배우고 의열단을 꾸리다 23
아무리 칼보다 펜이 강하다지만
조선 청년들의 학교, 신흥무관학교
천하의 일을 맹렬하게 해내겠어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라
신채호 선생을 만나 의열단의 정신적 옷을 얻다 47
계속되는 불운에 흔들리다
신채호 선생이 제대로 된 의열단의 옷을 입혀 주다
일본의 눈엣가시, 갈수록 커지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조선의 정신, 의열단
조선 독립을 위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중국 지도자를 만나다 65
중국도 분명히 일본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정의를 향한 맹렬한 싸움, 그 마지막
몇 명의 무장 조직보다는 군대가 필요해
부인 박차정을 만나 안팎으로 조선의용대를 이끌다 77
일단 중국을 도와야 그들도 도와주지 않을까
이제 군대를 키워야할 때
부인을 만나 안과 밖에서 발맞추어 싸우다
조선의용대를 이끌고 김구 선생과 만나 무게를 견주다 92
정식 군대, 조선의용대 총대장 김약산
머리를 쓰는 전투 부대, 조선의용대
김구 선생을 만나다
한국광복군이 되어 독립전쟁에 임하다
광복 후 고국에서 친일파 노덕술을 만나 북으로 가다 111
꿈에 그리던 그날, 대한 독립 만세
해방된 조국의 현실에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사명을 찾아
친일파와 한 하늘 아래 살아가기 힘들어지더라
김원봉 연표 132
작가의 말 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