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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413998 / 132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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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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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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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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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15,750
- 10,800
- 25,200
- 16,200
- [시리즈] 현대시세계 시인선 [101]
출판사 리뷰
화가이자 시인인 하재숙은 추억을 그린다. 언어와 추억의 색채가 버무려진 시들은 선명하고 여운이 깊다. 시 「이사할 때」를 보면 시인의 단출한 삶이 엿보인다. 찰그랑 소리를 내는 현관의 대나무 문발과 신발장 위 물 담긴 질항아리 뚜껑에 놓인 꽃 한 송이. 짧은 복도에 늘어놓은 미술 작품 서너 개를 지나면 안방에 ‘파랑 내 초상화’가 걸려 있고 침대 옆에는 비닐에 인쇄된 통일신라 김생의 글씨도 있다. 이사할 때마다 가져가는 그 추억 어린 사물들. 빠뜨리지 않고 챙겨가는 그 사물들처럼 시인은 자신의 가슴 안에서 늙지 않는 기억을 추억의 물감으로 그려간다. 그 중 몽골 테렐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군대 가서 사고로 죽은 외사촌 오빠가 손가락 끝으로 몇 개의 별자리를 찾아주던 추억을 떠올리는 맑은 사랑의 시(「테렐지에서」)는 가슴을 저리게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지만 하재숙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사는 것은 앞으로 이사를 몇 번 더 하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고, 그때마다 가져가는 몇 개의 소박하지만 소중한 사물과 추억이 전부일 것이다. “서로의 밥에 설켜 있는 줄”(「밥값」), 그 인연의 줄을 섬세하고 맑게 풀어나가는 시인에게서 선하고 맑은 단출한 삶과 추억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다. 하재숙 시인은 화가답게 빛과 색채에 민감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기억을 역광에 배치함으로써 시간을 뚫고 살아나는 입체적 감각으로 되살리고 있다. 시적 계기로써 기억의 힘을 보여주는 이번 시집에는 또 하나의 비감하고 숭고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해서 더딘 걸음이라 평가받을지라도 시작에 임하는 그의 진정성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 그래서 개인 역사의 기록으로서 ‘출사표’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하재숙 시인은 역광으로 비추는 시론, “아는 것만을 쓰고 경험한 것만이 진실에 가깝다”를 주목한다. 이 말은 뒤집으면 ‘앎과 경험에의 열정’이 곧 진정한 생의(生意)이고, 시작의 원동력이라는 말과 같다.
새우젓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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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짙은 베란다 구석
나는 그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내 몸통은 위로 올라가며 약간 휘었다
다른 이들에게 불리기는 새우젓 독
두터운 입술은 다른 항아리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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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엔 이름 모를 어느 도공의 풀잎도 그어져 있다
그저 곡선일 뿐이다
빠르게 휘어졌다
휙! 휙!
거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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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나의 무엇을 간직하고 싶었을까
삼십 년 이상 베란다 창고나 구석에서
두터운 먼지를 이고 지냈다
며칠 전 그녀는 무슨 결단인지
나를 닦고 닦아 자기 방에 들여놓았다
미지의 일을 바로 지금으로 끌어대듯
몸 안에는 무언가 빈 그릇을 괴고
작은 화분으로 키를 맞추었다
열대성 넝쿨식물 ‘스킨답서스’라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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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이 고향이었던 이파리들이 무성히도 넘실거렸다
바람이 불어오면 흔들릴 준비도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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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의자에서
바라보기 좋은 곳에 나는 놓여졌다
줄기는 내 옆구리 위를 살짝 내려뜨리고 있다
그녀가 농익은 녹색에 취해 있다
모든 음식에서 소금 간을 빼어도 흡족해했다
난
매일 아침 그녀와 만난다
잠시 눈길을 마주한다
내가 치워진 자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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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바퀴 돌리고 나간
밑둥 자국 위로
햇볕이 고요히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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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재희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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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재희야
네가 간 지 오늘이 일 년이지만
난 너를 잊을 수가 없구나
네가 정말 나와 인연이 있다면
내게서 다시 태어나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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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다락방에서 읽은
엄마의 일기장 중간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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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십육 세에 시집 오셔서 구십 세에 돌아가셨지만
나보다 스물네 살이나 많았던
큰딸 재희 언니를 늘 간직하고 사셨지요
언니는 6·25 전란 중에 엄마를 마중 나가다가
북한군 총에 맞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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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을 덮으며
난 환생한 언니가 되어
공부도 잘하고 자수도 잘 놓는
집안의 기쁨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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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본 지 사십여 년
엄마의 마지막 인연인 나는
이순이 넘은 지금
엄마의 모습을 많이 닮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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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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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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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 들어설 때
걷어 올리는 게 있다
찰그랑 소리 내는 대나무 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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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 위에는
물 담긴 넓은 질항아리 뚜껑에
희고 작은 자갈들
초승달 모양으로 놓고
그 위에 가끔 꽃 한 송이 놓곤 했다
한여름 수련이 제일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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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복도에는
졸작들이 서너 개 늘어서고
안방으로 들어서면서
파랑 내 초상화가 걸려 있다
너무 고와 골방신세였으나
나이 들면서 몇 년 전
안방으로 입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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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옆 길게 늘어진
비닐에 인쇄된 통일신라 김생 글씨는
세월과 충격에도 자신 있다고
번쩍 빛을 반사하고 있다
-
이번 이사에도 안방부터 시작해서
문발까지를 걷어내면 되는 것이다
-
다음 이사에는
훨씬 더 간추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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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카카오톡·13
재희 언니·14
새우젓 독·16
조문·18
봄·19
홍성 장날·20
이사할 때·22
앵두·24
장사항에서 봉포항까지·26
슬픈 망토·28
먹 갈기·30
신문을 들며·32
색계(色戒)의 바다·34
엄마의 입원실·36
무제·37
밥값·38
제2부
물 위의 솟대·43
일몰이 닮았다·44
예학명(?鶴銘)·46
가을 낙산사·48
수정을 이루는 시간·49
전람회 리뷰·50
곱돌산·52
빈집·54
마리아니스트 성당·55
열무김치·56
57세·58
첫사랑·59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60
문학수업·62
길·64
제3부
새침한 저녁·69
어느 뒤뜰·70
청광리·72
시래기두름·74
속초·76
고인에 대하여·78
나비·79
대봉감·80
한 잔·81
가진항에서·82
Hey!·83
춘곤을 허리에 매고·84
겨울·86
시 짓는 일·88
꿈·90
제4부
봄의 소리·93
슈테판 츠바이크의 안경·94
밤치기·96
졸작들·98
카피와 오마주 사이·99
주인 화백은 어디 갔을까·100
붉은 시월·102
풍선·104
동주 님·106
아가야·107
Born Free·108
너의 연기(緣起)·110
쑥스런 사연·112
테렐지에서·114
오해를 산책하다·116
해설 생의(生意_)에 반짝이는 기억의 역광(逆光) / 백인덕·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