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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의 사람 공부 우리 시대의 언어로 다시 공부하는 삶의 의미, 사람의 도리

퇴계 이황 저 | 이광호 역 | 홍익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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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0656878 / 256쪽 140 x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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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퇴계학의 최고 권위 이광호 교수가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진짜 사람답게 사는 법’ -인간 완성의 학문에 대한 갈증에 답하다 퇴계는 49세부터 70세까지 무려 53회나 몸에 병이 있고 노쇠하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올렸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병약한데다 당쟁의 참화에 섞이고 싶지 않은 신념 때문이었지만, 그보다는 초야에 묻혀 자신이 꿈꾸는 학문의 와성에 더 목말랐기 때문이었다. 이 책 『퇴계의 사람 공부』에는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당대 최고 지성의 단호한 신념과 끝없는 사색,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어 그것 자체로 ‘사람됨의 길’을 발견하게 된다. 주자학상과 퇴계학 학술상을 수상한 퇴계학의 최고 권위자로, 『성학십도』와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를 펴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 완성의 길에 대한 현대인들의 갈증에 답하고 있다. 점점 사람다움의 의미를 상실해가는 현대사회에서, 퇴계가 남긴 삶의 자취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신선함을 준다.

저자 소개

李滉 : 1501 - 1570
본관은 진보(眞寶),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으로 경북 예안(禮安) 출생이다. 1523년(중종 18년)에 성균관에 입학하고, 1534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부정자(副正子).박사(博士).호조좌랑.정언(正言) 등을 거쳐 형조좌랑으로서 승문원 교리를 겸직하였다. 1542년에 검상(檢詳)으로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사인(舍人)으로 문학(文學)교감(校勘) 등을 겸직, 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때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고 응교(應敎) 등의 벼슬을 거쳐 1552년 대사성에 재임, 1554년 형조.병조 참의에 이어 1556년 부제학, 2년 후 공조참판이 되었다. 1566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예조판서, 1568년(선조 1년)에 우찬성을 거쳐 대제학을 지내고 이듬해 은퇴,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했으며, 특히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는 퇴계와,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한 기대승(奇大升)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은 사칠분이기여부론(四七分理氣與否論)의 발단이 되었다. 
그의 학풍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 .정구(鄭逑) 등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이루었고, 이이(李珥)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畿湖學派)와 대립하였으며, 그의 학설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고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단양(丹陽)의 단암서원(丹巖書院), 괴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 예안의 도산서원 등 전국의 수십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역자 소개

1948년 문경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계성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를 마쳤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 교육과정 4년,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당시 한국고등교육재단지원)에서 한문교육과정 5년을 마쳤다. 태동고전연구소 연구교수와 소장, 한림대학교에서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동향철학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근사록 집해1,2》, 《이자수어》 등의 번역본이 있으며, 유학의 학문론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유학의 진리를 인식하고 실천하는 보편적인 현대의 인문학으로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도의에 뜻을 둔 우리나라 학자들 가운데 세상의 환란을 당한 사람이 많다. 이는 땅이 좁아 사람들이 경박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스스로 힘쓰는 학문도 다하지 못함이 있어서 그렇다.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학문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너무 높게 자처하고, 시대를 헤아리지 않고서 세상을 경영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 『퇴계집』, 권16, 서, 「답기명언(答奇明彦)」) p.10

군자의 학문은 자기를 위할 뿐이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장식(張栻, 1133~1180)이 말한 ‘인위적으로 위하는 것이 없이 그러한 것’이다. 예컨대 깊은 산 무성한 숲에 있는 난초는 종일토록 향기를 피우지만 자신이 향기를 발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난초의 이러한 삶이 군자가 자기를 위한다는 뜻과 똑같다.
- 『퇴계전서』 4, 언행록, 권2, 유편(類編) p.11

퇴계는 몸에 병이 있고 노쇠하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려 53회나 사직을 청했다. 국가에서는 사직을 허락해서 선비가 염치를 존중하고 의리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리의 실현이다. 그렇다면 의리란 무엇인가? 일의 마땅함을 의미한다. 일의 마땅함이란 무엇인가?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자신의 내면에서 빛나는 천리에 합당한 행위를 말한다.
-p.125

사람들이 퇴계를 흔히 ‘주자학의 집대성자’라고 말하지만, 퇴계와 주자는 인간적 성격은 물론 학문하는 자세에서 매우 다르다. 주자는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데 비해 퇴계는 겸허하고 온유하다. 주자의 학문이 광대하고 무궁한 데 비해 퇴계의 학문은 정밀하고 자세하고 요점을 매우 중시한다.
-p.141

성인은 자연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선비는 현인처럼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자연에 대한 퇴계의 사랑은 병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그의 자연 사랑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지리학자 못지않게 산의 전체 모습과 구석구석의 아름다움까지 자세하게 묘사하고, 산에 대한 이전 사람들의 기록을 종합하여 평가하고, 자신의 새로운 이해를 추가하여 산수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p.188

율곡은 23세 때 도산을 방문하여 시를 주고받았으며, 이후 편지를 통해 『대학』과 『중용』에 대한 많은 문목(問目)을 올리고 『성학십도』에 대한 토론도 했다. 율곡은 퇴계를 스승으로 존경했지만, 퇴계와 성격이 다르고 학문적 지향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퇴계 만년에 질문한 편지의 문목에 대해서는 칭찬보다 질책을 많이 받았다.
-p.243

목차

들어가면서 _ 이황은 누구인가

1장 사람됨의 학문을 총정리하다
마음을 읊다
주세붕이 보내준 시에 답하다
하루를 돌아보며
한서암을 짓고
기꺼운 시골살이
도를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
조용한 곳에서 수양해야지
완락재
시습재
한평생을 읊다
주자의 편지는 사람됨에 절실하다
《주역》으로 밝힌 자연의 이법
자신을 성찰하다
선현들의 마음 공부
사람됨의 학문을 총정리하다
마음을 공부하려면 《심경》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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