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
갱여운
-
강현숙, 김경란, 김근아, 김은주, 박경란, 박선영, 박혜란, 정명희
-
수전 손택
-
주지현
- 16,920
- 16,650
- 15,120
- 18,900
출판사 리뷰
장의, 산 자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죽음의 의식 장의업은 그늘진 감정을 다룬다. 의사가 병에 의존하고, 변호사가 범죄에 의존하고, 성직자가 두려움에 의존하듯이, 장의사는 죽음에 의존한다. 하지만 ‘장의(undertaking)’, 곧 죽음을 ‘맡은(undertake) 일’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의식’이다. 누구라도 일단 죽으면 장의사가 그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장의사가 보여주는 친절은 오로지 살아 있는 자를 위한 것이다. 장의는, 그 누구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산 자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죽음의 의식이라고, 시인 장의사는 말한다. 죽음과 삶에 대한 사색―관념적이면서 현실적인 저자는 매년 이백여 명의 주민들―여기에는 저자의 가족도 포함된다―을 묻으면서 묻고 깨달은 죽음과 삶의 의미를 사색한다. 시인이자 장의사로서 그의 사색은 때로는 관념적이며 때로는 현실적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은 몸’을 돌보면서, 죽은 인간의 몸에 대해 사색한다. 전쟁터의 주검을, 사고를 당한 주검을 소독하고, 보존하고, 때로는 복원까지 하면서 집으로 보내는 것, 비용이 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산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하느님 또는 신들 또는 뭐든 저 밖에 있는 것에게 맡기고 나서 묻거나 태우기 위해서는, 죽은 사람이 거기에, 장례식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속도로 그들을 보내주려는 것 때문이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죽은 사람들 때문에 당황하는데, 이것은 죽음이 집에서 장례식장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불쾌한 것―저자는 죽음/장례식장과 똥/수세식 변기를 나란히 언급한다―을 정기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사라지자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능력도 잃었다. 이렇게 ‘밖으로 밀려난 죽음’은, 우리의 필멸성을 무시하는 것이고 우리의 본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아버지 또한 장의사였고 모든 것에서 위험을 보았다. 그의 아버지 그리고 저자 또한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치료하는 유일한 치료제는 ‘믿음’뿐이다. 이는 저자의 어머니가 말한 것이다. 저자는 아버지의 두려움과 어머니의 믿음 사이에서 미리 마련되어 있지 않은 답을 여전히 찾고 있다. 모든 죽음에는 어떤 ‘구원’이 있어, ‘사랑의 죽음’에서도 그러하다. 때로는 ‘시’가 사랑을 부활시킨다. 저자는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에게서 숨고 싶었다. 늘 낭비라 의심받는, 죽은 자를 추모하는 땅을 산 자의 여흥을 위한 땅과 결합―그는 골프장과 묘지를 결합한 골프추모공원을 계획한다―해 보기도 하면서, 어머니를 추모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는 걸 애써 외면하려 한다. 어느 시점에서는 놓아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위로의 말’로, 그는 가끔 웃고 가끔 울며 어머니를 추모한다. 저자가 장의사로 일하는 타운에는 옛 묘지로 이어지는 오래된 다리가 있다. 저자는 무너져 버린 다리를 복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장례와 묘지의 의미를 되새긴다. 장례 행렬은 죽은 자를 강 건너 다른 차원의 주민으로 귀속시키는 여정이지만, 다리로 이어지는 강 건너 묘지는 산 자로부터 약간만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묘지는 죽은 사람을 사라졌지만 잊히지는 않은 존재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기억되고 싶기 때문에 기억한다. 저자의 지인인 한 시인은 통상 건강염려증을 지녔다고 말해지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는 남들보다 ‘필멸성의 맛’에 예리한 감각을 지닌 자, 자신의 존재 안에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는 상태의 씨앗을 더 잘 감지하는 재능을 지닌 자이다. 우리가 죽을 날을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인생의 중간 지점을 계산해서 그 나이를 알아보려 했다. 중년의 균형과 시야로 과거와 미래를 좌지우지해 보려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살고 있는 그 순간’임을 깨닫는다. 구름이 달의 얼굴 앞에 떠 있고, 사랑은 위로를 주는 그 순간.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자로서, 저자는 생명의 가치와 죽음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고 ‘누가 존재하게 되고 누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가’ 하는 실존적 관심사를 둘러싼 쟁점들을, 우리의 최고의 본능, 가장 훌륭한 직관, 가장 명료한 지성으로, 온 인류에 참여해 해결하기를 호소한다. 관은 무엇을 하는가? 관은 일종의 손잡이 역할로 죽은 자를 옮기고, 수평을 유지하고, 몇백 파운드를 튼튼하게 담는다. 그런데 가장 좋은 관에도 ‘우리가 묻고 싶은 모든 것들’ 그러니까 상처와 용서, 분노와 고통, 칭찬과 감사, 공허와 고양감은 절대 다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사업을 아주 신중하게 한다. 죽음과 삶에 대한 저자의 마지막 사색은 자신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는 ‘내 장례를 위한 짧은 지침’에서 자신의 장례가 이월에 있기를 바란다. 자신이 처음 아버지가 된 달,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달인 이월. 그는 자신이 있었다고 말해줄, 어쩌면 있다고 말해줄 증인을 원한다. 사람들이 물으면 결국 슬픈 날이었다고, 추운, 잿빛 날이었다고 말해 줄 증인. 하지만 결국 준비된 자는, 자신의 장의를 맡은 자는 자신이 아니라 너희들이라 말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죽음은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검은 천사, 잔혹한 수확자, 밤도둑, 개자식이다.’ 문제는 죽음이 모든 산 자의 미래이자 피할 수 없는 실존 사건이라는 점! 토마스 린치는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에서 장의업계에서 일하는 자신의 내밀한 기억과 풍부한 경험을 명석한 문장으로 펼쳐낸다. 나는 ‘시인 장의사가 마주한 열두 가지 죽음과 삶’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단숨에 읽었는데, 덕분에 장의업이라는 ‘음침한 비즈니스’의 이면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죽음의 후광에 둘러싸인 삶의 희극과 비극을 새삼 분명하게 깨달았다. 책을 다 읽은 뒤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이 책이 수수께끼와 같은 죽음을 현실로 끌어당겨 거듭 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장석주/시인, 인문학 저술가
되풀이해 미안하지만, 이것이 내 사업에서 중심이 되는 사실이다―당신이 일단 죽으면, 당신에게 또는 당신을 위하여 또는 당신과 함께 또는 당신에 관하여 도움이 되건 해가 되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리가 주는 어떤 피해나 보여주는 친절은 살아 있는 사람들, 당신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는―그것이 정말로 누군가에게 사건이 되는 것이라면―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산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 당신의 죽음이 안겨주는 슬픔 또는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당신의 죽음으로 인한 손실 또는 이득은 그들의 것이다. 기억의 고통과 기쁨은 그들의 것이다. 장의 서비스에 대한 청구서는 그들의 것이고 그 돈을 지불하기 위해 우편으로 보내는 수표도 그들의 것이다. p.27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는 동네의 모든 아버지들과 마찬가지로 무적이었다. 아버지가 죽는다는 것은 나의 십 대에는 허구였고, 이십 대에는 공포였고, 삼십 대에는 유령이었고, 사십 대에는, 사실이었다. p.54-55
노인을 묻을 때 우리는 알려진 과거를 묻는다. 가끔 실제보다 나았을 수도 있다고 상상하는 과거지만, 어쨌거나 과거이고, 그 일부에는 우리가 살았다. 기억은 압도적 주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위안이다.
하지만 유아를 묻을 때 우리는 미래, 모양이 없고 알려지지 않았고, 장래성과 가능성이 가득하고, 우리의 장밋빛 희망들이 강조하는 결과를 낳을 미래를 묻는다. 슬픔에는 경계가 없고, 한계가 없고, 알려진 끝이 없고, 모든 묘지의 모퉁이와 담장 근처 등 변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은 아기 무덤들은 절대 슬픔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지 않다. 어떤 슬픔은 영원하다. 죽은 아기들은 우리에게 기억을 주지 않는다. 우리에게 나쁜 꿈을 준다. pp.107-108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두려움에 대한 현재 알려진 유일한 치료는 믿음뿐이다―누군가 여기에서 책임을 지고 있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경계선을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 p.115
상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괴로움이다. 다리를 절뚝이게 되지도 않고, 분명한 흉터도 없다. 좋은 주차장 자리나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하는 스티커도 발부되지 않는다. 그래도 심장은 마찬가지로 부서진다. 영혼은 곪는다. 이 상처는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도 있다. p.130
‘누군가가 책임을 지는’ 세상이라도 모든 끝이 행복한 결말은 아니다. 또 모든 발언이 축복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죽음에는 어떤 구원이 있다. p.147
모든 죽음은 나를 작게 만든다고 말한 사람은 부고를 접할 때마다 얻게 되는, 이번은 내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나일 것이라는 앎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묘지는 죽은 사람을 가까우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에, 소중하지만 약간 먼 존재로, 사라졌지만 잊히지는 않은 존재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p.229
그는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누가 그러지 않을까. 그러나 그 삶의 상실이 낫을 들고 자신의 뒤를 밟고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p.243
내가 죽을 날을 알고 싶었다. 보험을 나에게 유리하게 들고, 후회를 시작할 시기를 정해 놓고, 예전 연인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될 것 같았다. p.265
만일 과거는 나이 든 사람들이 다시 찾는 땅이고 미래는 아이가 꿈꾸는 땅이라면, 출생과 사망은 그 땅들과 접한 두 바다다. 그리고 중년은 그들 중간의 순간이며, 우리가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때다. 시야가 어느 쪽으로도 툭 트인 경계선이다. 우리는 갈망보다는 경이로 가득 찬다. 두려움은 줄고 걱정은 는다. 이런 것은 중년의 증상 가운데 몇 가지에 불과하다. 늙은 사람은 회고록을 쓰고, 젊은 사람은 이력서를 쓴다. 중년에는 늘 날씨에 대한 논의로 시작하는 일종의 일기를 쓴다. 우리가 사는 곳은 현재이며, 출생과 사망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다 …… 잠을 잘 자고, 모든 시제의 꿈을 꾸고, 잠을 깨면 곧바로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pp.273-274
건물들이 폭파되고 비행기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때, 또는 전쟁에서 이기거나 질 때, 이때는 죽은 사람들의 몸이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는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들을 다시 보내주려는 것이다―우리 자신의 조건에 맞게, 우리 자신의 속도로. 너는 허락, 용서, 우리의 존경 없이는 떠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작별 인사를 할 기회를 원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p.349
가장 좋은 관에도 그것은 절대 다 들어가지 않는다―우리가 그 안에 묻고 싶은 모든 것은. 상처와 용서, 분노와 고통, 칭찬과 감사, 공허와 고양감. 누가 죽을 때의 말끔하지 않은 그 느낌들. 그래서 나는 이 사업을 아주 신중하게 한다. p.366
이제 너희가 할 일이다―나의 장례는―내 일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죽음은 너희가 떠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p.377
내가 정말로 원한 것은 증인이었다. 내가 있었다고 말해줄. 여전히 미친 소리로 들리지만, 어쩌면 내가 있다고 말해줄.
사람들이 물으면, 결국 슬픈 날이었다고 말해줄. 추운, 잿빛 날이었다고.
이월이었다고. pp.
감사의 말---9
장의, 산 자를 위한 의식---15
아버지의 죽은 몸---41
밖으로 밀려난 죽음---65
두려움과 믿음---93
사랑의 죽음과 구원 그리고 시---121
어머니의 위로의 말---151
죽은 자와 산 자의 거리---199
필멸성의 맛---239
내가 살고 있는 그 순간---263
누가 존재하게 되고 누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가---287
우리가 관 안에 묻고 싶은 모든 것들---339
내 장례를 위한 짧은 지침---367
작가의 말---379
옮기고 나서---3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