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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헤치기 쉬운 삶

정다운 저 | 파란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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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756330 / 173쪽 124 x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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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아무도 잘못한 게 없으나 누구나 외로울 것이다 정다운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파헤치기 쉬운 삶?이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정다운 시인은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나는 그때 다 기다렸다?를 썼다. “정다운의 시집은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시인은 삶에서 찾아드는 굴욕과 고통, 폭력과 기만의 순간을 불행의 언어로 맞붙잡아 끝까지 피투성이 싸움을 그려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격은 타자에게 입사하여, 끔찍하게 깨지고 망가진 자의 체험과 추체험, 그러니까 밑바닥에 고여 있던 상처나 얼룩처럼 번져 나간 일상의 비루함과 지리멸렬함을 한껏 들어 올려 매만지면서, 환멸과 절망도 하나로 붙여, 날것 그대로 표출하는 저 언어의 쓰임에서도 발생한다. 전쟁 같은 삶과 죽음의 그림자들, 설명할 길이 없는 “이상한 일”과 “감은 눈꺼풀 속에 떠다니는 시간”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반복해서 비끄러매는 첫 시(?강이 끝났다?)에서 시작하여, 일상의 은밀한 폭력과 강제된 허위를 미래의 시간까지 달려가 자기 처벌에 대한 입김도 놓치지 않고 불어넣고야 마는 마지막 작품(?곧?)에 이르기까지, 페이지를 열고 또 닫으며 작품을 읽는 내내, 우리는 이 시집의 화자가 토해 내는 팽팽한 긴장과 고통을 일상 속에서, 일상적인 어투로, 직접 체험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고, 망각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들의 운명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과 학대의 통증을 삶의 여러 장소에서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경험한다. 그러나 시집이 뿜어내는 아픔과 고통의 정체는 오히려 폭력을 기술하면서, 폭력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행위, 나아가 이로 인해 야기되는 다소 기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종의 충격에도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비열하고 미천하고 배제되고 은폐되고 추방당한 것들은 그리하여 그것을 기록하는 자와 그것을 직접 경험한 자 사이의 공교로운 사건처럼 시집 안에서 자주 엉켜 교호하며, 그렇게 빚어지는 교란의 틈으로 흘려보내는 고유한 목소리의 공간에 우리를 표류하게 한다. 일상은 뒤집히고, 삶의 기대치와 열망은 부서지고, 안전하다고 믿었던, 혹은 그렇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삶을 지켜 주던 단단한 표피들은 서서히 찢겨 나간다. 그 순간, 고통을 회피하려는 본성은 기각되고 ‘쾌(快)’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격정과 감성, 열망과 신음이 우리의 단단한 통념 저 배면 위로, 그러니까 둥둥, 떠오른다.”(이상 조재룡 문학평론가의 시집 해설 중에서.)

저자 소개

정다운 서울 출생. 2005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 등단.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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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기뻐서
곧 사랑에 빠질 거라고
세상이 조용하다고
손을 잡고
숲속으로 걸어갔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개뿔도 모르면서

책 속에서

평화공작소

양팔을 벌리고 땅 위에 누워 보는 게 어때
구름이 굴러떨어질 듯 가깝다던데
등 밑이 젖으면 몸에서 풀 냄새가 나고
그때 양들이 걸어오는 게 어때
두 주먹을 펼쳐 주면 손바닥에 코를 박고
천천히 풀을 뜯어먹지 않을까
그들의 입안에서 풀물 든 내 일부가 갈리는 거야
그 입놀림을 보고 있자면 왜 여기 와야 했는지
기억이 날지도 몰라 너무 화를 내지 않았니
남을 욕하고 탓하고 때처럼 밀려 나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니 행복의 일기를 15분씩 쓰면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따라해 봐
녹색을 쳐다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것의 엉덩이까지 보고 있자면
노래진 털에 방울방울 매달린 똥구슬뿐인데도
양이란 하얗고 문제없는 동물이니까 다시
버리고 살기 사소한 걸 사랑하기
빈 손바닥에는 뿌리가 끌려 나간 붉은 자국들
한 가닥도 남김없이 다 처먹었어
여전히 배고픈 양 한 마리가 눈치도 없이
더 달라고 보채게 될 거야
조용히 해 미친 양아 여기 주인공은 나야 *


위로가 그렇게 소용없다

실어증 자식을 둔 옆집 여자가 말했다
나는 고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지?
아냐 내 아이는 수시로 고함을 질러
귀를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 고함 소리 때문에 여러 번 놀란다고
그 아이의 벌린 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견딜 수 없지만 견디는 거야

옆집 여자는 말했다 어깨를 대충 두들기며
너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봐
밥상을 놓고 앉았기 때문에 너희는 식구지
다른 사람과 한번 살아 본다고 해서
그게 더 낫다는 보장은 없어
넌 잘하고 있어 이상한 것들 사이에서
잘 버티고 있어 너에겐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이 여자는 나를 핥아 주는 모양이다 침이 식으면
시원하고 덜 아픈 것도 같다 서로의 인생을 미워해 주고
아파트 복도 끝에 나란히 앉아 귤을 까먹었다
술을 나눠 먹었다 손톱을 칠해 주었다
여자의 쓰레기봉투 안에는 박카스 병들이
나의 쓰레기봉투 안에는 스타킹이 들어 있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하는 부모와
올이 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청소년이 경쟁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떠날 기회가 혼자 살 기회가
막장 영화에서 보면 계모는 내 아빠이며 내 애인인 놈 들과
딸이며 동생인 아기들 틈에서 협박하지
너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애를 채워 넣으면 그만이야,
말도 방구도 아니고
김치 싸대기를 맞아야 할 소리였지만
나는 넣어질 동생이 불쌍해서 이 집에 남기로 했다라는 스토리
언젠가 살인이 나도 정상참작될 스토리
그거랑 비슷하다고 해 두자

옆집 여자가 차를 바꾸고 남편을 대여하고
자식의 입을 들여다보며 다 안다 다 안다고
거짓말을 멈춘 적이 없듯이
말 못 하는 그 아이의 불안이
오줌처럼 바닥에 흐르지 않은 적이 없듯이
우리는 매일 밤 복도로 기어 나와
조용히 주저앉아 있었다
두 개로 뚫린 콧구멍과 다를 바 없이

모 책에 보니 이런 말이 있었다
아무리 달콤하게 위로를 해 준다 해도
당신이 삼 일 후에 똑같이 괴롭다면
그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혀로 위로하는 사람 말고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아
어쩌나 삼 일 후에도 우리는 행복해져 있지 않았다
아무도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줄 건 위로밖에 없었다
행복이 모든 사람의 목표인 건 아니었다 *


각자의 세상

어떤 연애는 우화 같다
예를 들어 그는 나쁜 나라에서 태어났다
의사였으며 사람을 여럿 살렸다
애인이 한 무리의 짐승들에 둘러싸여 난자당했을 때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했다 기구 기술 기도
쏟아진 걸 도로 담을 순 없었다
자신의 두 손을 잘라 내고 싶었으나 가족이 애원했다
살라고 했다 살려면 떠나라고 했다
그의 몸은 그렇게 이곳으로 왔다

그해 봄 버스 안에서 그는 나를 만난다
눈이 마주친 사람을 끝까지 볼 줄 아는
어리고 용감한 사람의 등장이었다
버스 안으로 꽃잎이 날아드는 빤한 인트로를 보고도
어쩌면 다른 이야기가 될 거라며 덮지 못했다

축제엘 가고 싶었다 토마토 축제
문신도 해 보고 싶었다 그의 이름
쇼핑을 하다가 맥주를 마시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몸에 묻히고 싶은 게 없었고
약속하고 싶은 게 없었으며
꽃도 맥주도 사 주지 않았다
그는 그냥 나를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울었다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선물이 받고 싶어서
인생의 고비가 여기인 거 같아서
그는 나에게 혀를 넣고 나를 움켜쥐고는
옥상으로 데려가 보여 준다 피가 말라붙고
짐승의 혀만 살아 움직이는 기괴한 곳
불타고 환했으며 가루가 되어 단단해지는 곳
그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옥상에서는 세상의 한쪽만 보였다

내 방에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린 다른 것을 보고 있다고
내 방은 숲도 사막도 아니고
환상이 터지는 분홍 벽지도 없지만
식은 침대
좋아하는 의자 정도가 있을 뿐이지만
발이 시리면 양말을 신고
낙서 위엔 사진을 붙이면 되었다
그가 와 준다면 청소를 하고
과자도 까고 속옷을 갈아입었을 것이다
더 가까이 붙어 앉아
웃기지도 않은데 웃음이 났을 것이다

그는 오지 않는다
피곤하다고 어쩌다 기막히게 멋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자기변명으로 가득 찬 멍청한 카드 한 장을 남기고서

실연의 기분은 견디기 어렵다
졸지에 내가 보는 세상은 음란하고 폭력적이 되었다
다정했던 날들은 벗겨지고 맞은 뒤에야
구석으로 기어가 쉴 수 있었다
밤새 천장에 묶여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가슴 두 쪽만이 대롱거렸다
아무도 핥아 주지 않아 가여웠다

이제 돌아가는 건 글렀다
많은 이야기의 주제처럼 어쨌든 나아가야 한다
나약한 자는 약에 빠지고
조악한 자는 더 비틀리면서
바깥은 보는 대로 변해 갈 것이다
다음에 내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왜 이만큼밖에 해 줄 수 없는지
보여 줘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방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두 인물은
운이 좋으면 같은 곳에서 늙어 가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른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되겠지
자기만의 불완전한 세상을 감시하느라 피곤해지겠지
아무도 잘못한 게 없으나
누구나 외로울 것이다 *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강이 끝났다 ? 13
익힘 - 16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 - 18
그 숲엘 갔다 - 20
꿈인 줄 알았네 - 22
막하막하 - 25
기어오르지 마 - 28
언더독 - 30
프로작의 올바른 예 - 32
위로가 그렇게 소용없다 - 35
평화 공작소 - 38
열렬한 인간 - 40

제2부
닐스의 여기저기 - 45
먹통 - 48
냉동실 안에서 - 50
살아남았으면 된 거야 - 52
알바로가 나를 구해 줄까 - 54
샅샅 - 58
보급형 - 60
설치류 - 62
시간이 필요해 - 64
B컷 - 66
개 주인들 - 68

제3부
파헤치기 쉬운 삶 - 73
Plutoed - 76
잭보다 콩나무 - 79
드디어 금요일 - 82
아는 병은 괜찮은가 - 84
태풍엔 신문지 - 86
조립 인간 - 88
조용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의 어려움 - 91
꼬치꼬치 - 94
장래 여행자 - 96
고소당하지 않는 연애 - 98
허락 없이 좋아해요 - 100
각자의 세상 - 102

제4부
이게 정말 도움이 되나요 - 109
살이 찌게 될 거야 - 112
네일을 준비하는 자세 - 115
납작 - 118
유전이다 - 120
밥 먹는 우리 둘 - 122
도로 남 - 124
장례 희망 - 125
난 아직도 네가 좋아 - 128
발 발 무슨 발 - 130
곧 - 132

해설
조재룡 실패하는 로망, 폭력과 주이상스의 기억술 -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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