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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862276 / 288쪽 124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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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글을 미룰 수 있지만 밥을 미룰 수는 없는 법!
맵고 짠 요리로 인생을 미리 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몰래 감춰뒀다가 미운 이는 절대로 안 주고
예쁜 사람에게만 내어주고 싶은,
소설가 이현수의 45가지 진국의 향토 요리
단단하고 웅숭깊은 문장, 뛰어난 직관과 안목으로 포착한 삶의 편린들을 빛나는 결정체로 빚어내는 작가 이현수의 음식산문이 난다에서 출간되었다. 그동안 문단에 요리 좀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틈틈이 요리와 책, 삶에 관한 폭넓은 칼럼을 써온 작가가 조선일보에 2년간 연재한 글을 모았다. 그동안 눈앞의 산해진미에 홀려 전통 음식을 홀대하진 않았는지, 이대로 가다간 그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향토 음식 조리에 관한 기록을 작정하고 남겼던 참이었다. 이현수는 요리마다 그 시절에 얽힌 기억과 인연을 재료삼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입맛을 절로 다시게 하는 문장을 따라 우리 식탁 풍경을 여행하다보면 어느새 요리가 곧 인생이라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몸살처럼 생각나는 엄마표 요리에 이정웅 화가의 담담한 색채가 그리움을 더해준다.
무주댁은 우그러진 양은 냄비에 고사리조기찜을 자작자작 잘도 끓였다. 깊은 밤 베개를 안고 무주댁의 집으로 숨어들면 물큰하게 풍기던 술지게미 냄새. 젓가락으로 바른 조기의 연한 살점을 고사리로 휘휘 감아 내 입으로도 한 숟갈 쏙, 당신도 술안주로 한 숟갈 쏙.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홀로 부르는 무주댁의 기나긴 노래에 별도 달도 숨죽이던 그 밤들. _21~22쪽
꼭 이맘때, 학교 파하고 집에 오면 뚜껑이 닫힌 연탄불 위에서 뜬비지찌개가 은근하게 끓고 있었다. 봄동겉절이와 달래무침 등 봄나물 일색인 식탁에 뜬비지찌개를 올리면 별안간 밥상이 수런거리며 그들먹해진다. 뜨거운 밥에 봄동겉절이를 넣고 찌개를 훌훌 끼얹어 비비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 청국장처럼 오래 발효시킨 뜬비지는 생비지보다 부드럽고, 고소한 콩비지의 향이 봄나물의 풋내를 잡아주기 때문에 뜬비지찌개는 초봄에 어울리는 요리일 뿐만 아니라 소화에도 그만이다. _27~29쪽
그날 설거지를 도우며 노종부의 갈퀴 같은 손을 봤다. 작가의 필력이 무르익으면 설렁설렁 써도 글에 윤기가 흐르듯 손맛도 그러하다. 눈 감고 양념을 대강 넣어도 간이 딱딱 맞는다. 나는 그걸' 간의 신'이 내린 손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손은 항상 물에 불어서 울퉁불퉁하고 못났다. 고운 손을 가진 사람이 요리를 잘한다고 하면 그건 100퍼센트 거짓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_42쪽
일이 꼬일 때나 글이 풀리지 않을 때면 시골에서 올라온 콩을 쟁반에 들이붓는다. 식탁에 앉아서 고요히 콩을 가리면 인생사 여러 길섶을 가만가만 더듬는 것 같다. 올콩과 썩은 콩, 되다 만 콩을 하나하나 분류하는 은밀한 시간. 그러다보면 막힌 곳이 힐끗 보이기도 한다. _52쪽
이맘때 먹기 좋은 보리굴비를 한 두름 사면 쌀뜨물에 두 시간 정도 담가 염분을 빼야 된다. 찜통 속에 물과 청주를 넣은 후 찜기에 25분~30분 정도 찐다. 노리끼리한 굴비 기름이 흐르기 때문에 일회용 여과지나 무명 보를 깔고 찔 것. 갓 찐 보리굴비는 목장갑을 끼고 꼬리 부분을 잡아당기면 북어포처럼 살이 한 번에 쭉 찢어진다. 뜨거울 때 살과 뼈를 분리할 것. 보리굴비는 찜통에 쪄도 껍질이 까슬까슬하게 일어나고 살점이 쫀득해 입맛을 돋운다. 얼음을 넣은 녹차나 찬물에 만 밥과 함께 먹거나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일미다. 깨가 박힌 굴비 머리도 버리지 말고 오도독 씹으면 고소하다. _71쪽
꼭 이맘때부터 8월까지, 들판에서 일하던 마을 사람들은 밤이 되면 삼삼오오 새다리 밑으로 모여들었다. 칭얼대는 어린것에게 젖을 물린 아낙은 긴긴 숨을 토해내며 그 밤에야 등을 곧게 폈고, 사내들은 손전등을 켠 채 냇물에서 올갱이를 훑으며 하루의 땀을 씻었다. 올갱이는 야행성이라 밤이면 돌 틈에 새까맣게 붙어 있다. 뜨거운 쑥불에서 불티가 날고 반딧불이의 분주한 짝짓기가 시작되면 냇가에서 첨벙거리던 아이들이 돗자리로 몰려든다. 커다란 가마솥에선 이미 올갱이가 삶기고 있다. 새파란 입술로 오돌오돌 떨며 까먹던 올갱이의 고소하고 아릿한 맛, 1급수에서 서식하는 청정한 올갱이에서 우러나던 푸르스름한 육수, 가끔 씹히는 수제비의 쫄깃한 식감. 너나없이 올갱잇국에 밥을 말아 후후 불며 먹던 여름밤의 성대한 공동체 밤참. 아이들조차' 혼밥'을 먹는 쓸쓸한 시대, 그 맛을 대체할 음식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_82쪽
•작가의 말
고백한다.
나는 요리할 때마다 교활했다.
내 요리가 먹는 사람의 눈과 마음에 각인되게끔 치밀하게 계산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디서도 먹을 수 없는 엄마표 요리를 개발하느라 내 딴엔 노력했다. 훗날 너희가 어느 곳에 살든,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엄마표 요리를 몸살처럼 떠올리기를 바라며 통계피의 매운 향을 빌려오고 거피한 들깻가루를 흩어 뿌리고 뽀얀 잣알을 일일이 눌러 으깼다. 고기에 불맛을 입히기 위해 숯불과 같은 온도로 그릴의 버튼을 교묘히 조절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나쁜 머리를 바삐 굴려야 했으며 내 헐한 손을 쉼 없이 놀리는 고되고 지난한 과정이었으니, 설령 의도가 삿되었다곤 해도 진정성까지 의심하지는 말아라, 나의 아이야.
말에도 맛이 있다.
자, 그럼 여기서 고들빼기를 떠올려보자.
고들빼기라고 말하는 순간 쌉싸래한 맛이 입천장을 자극해 침이 괸다. 모든 음식은 저마다 여타 음식이 넘볼 수 없는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다. 고들빼기의 맛과 고들빼기라는 이름이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누구도 쌉싸래한 이 맛에 고들빼기 외의 다른 이름을 붙이지는 못하리.
다시마는 또 어떤가.
다시마라고 부를 때 혀끝에 부드럽게 말리는 발음. 고들빼기와는 다른 깊디깊은 암갈색. 그 기품 있는 암갈색이 다시마라는 이름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한 맛으로 다가와 쓰린 속을 달래준다. 석양이 지는 저녁 무렵에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 냄비 앞에 서 있으면 요리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게 보인다. 그건 물론 다시마다. 여러 야채와 생선이 어우러져 맛을 내는데 다시마만 퉁퉁 불은 몰골로 국물에 어중간하게 떠 있다. 내가 가진 바다의 맛을 모두 주었으니 제발 건져달라고 통사정하는 얼굴이다. 기꺼이 씹히지 못하고 국물 맛을 내는 데 잠깐 사용되다 버려지는 다시마는 그래서 그 이름이나 맛에 비릿한 슬픔의 기운이 감돈다.
그런가 하면 나이에 따라 미각도 달라진다. 십대와 이십대는 단맛에 홀리기 쉽고 삼십대와 사십대는 신맛이 당기고 오십대는 쓴맛에 혀가 움직인다. 이토록 간사한 혀와 입맛이라니……
새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 가운데 도도하게 오른 주요리에 시선을 빼앗긴다면 그대는 기운찬 젊은이가 분명하다. 밑반찬에 눈길이 가는 사람, 오로지 제 가진 한 가지 맛을 고수하며 식탁 가장자리에 줄기차게 오르는 밑반찬에 젓가락이 자주 간다면, 나는 그대가 진정 무섭다. 그대는 대단한 고수이거나 기운이 없는 사람, 천성적으로 사려 깊거나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 사람, 실패만 되풀이하는 운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이 글을 읽을 그대, 내 판단이 너무 혹독한가?
요리는 원래 혹독한 것이다. 냉정하게 밑간하고 두 번 이상 뚜껑을 열지 말아야 국물 맛이 유지되는 것도 있다. 하여, 요리가 곧 인생이다.
2018년 11월
이현수
작가의 말 ◆ 8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감잎초밥 & 충북 영동의 감잎초밥 ◆ 13
고사리조기찜 ◆ 19
뜬비지찌개 & 발효비지 ◆ 25
가죽자반 & 가죽장아찌 ◆ 32
종가의 부추김치 ◆ 38
진달래화전 ◆ 44
콩죽 & 쑥콩죽 ◆ 50
LA 다운타운 동파육 ◆ 56
두릅산적 & 두릅장아찌 ◆ 61
보리굴비 & 보리고추장굴비 ◆ 67
영계백숙 & 치킨수프 ◆ 73
올갱잇국 ◆ 80
국수 & 대구 누른국수 ◆ 86
청양고추멸치비빔장 ◆ 93
옹심이메밀칼국수 ◆ 99
메기매운탕 ◆ 105
명태회막국수 ◆ 111
해물찜 & 불곰탕 ◆ 117
프랑스식 후식 소르베 & 숭늉 ◆ 124
메인 요리 & 사이드 요리 ◆ 131
MIT 공과대학 기숙사의 배추전 ◆ 137
장터국밥 ◆ 143
옛날 부추전 ◆ 149
들깨미역국 ◆ 155
불고기 ◆ 161
갱시기 & 갱죽 ◆ 168
추풍령 감자탕 ◆ 174
짱뚱어탕 ◆ 181
간장게장 ◆ 187
복백불고기 ◆ 193
굴깍두기 ◆ 199
우거지된장국 ◆ 205
모둠전전골 ◆ 211
송화다식 ◆ 217
쌀강정 & 뽀빠이강정 ◆ 223
도렐 커피 ◆ 229
목장우유 ◆ 235
교동시장 깐 소라 ◆ 241
무말랭이밥 ◆ 247
냉이호박고지강된장 ◆ 253
병어조림 ◆ 259
우메보시주먹밥 ◆ 265
피시타코 ◆ 271
그린커리 ◆ 277
족발냉채 ◆ 2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