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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813936 / 128쪽 128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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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이은래 시인의 첫 시집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가 <푸른사상 시선 95>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굴욕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허위로 치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는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실제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시집이다.
시와 삶이 일치하지 않는 시인들도 있으나 진짜 시인이라면 둘 사이에 간극이 없거나 적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은래 시인은 둘을 일치시킬 줄 아는, 아니 천성이 그런 사람이다. 삶이 시의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언어는 의미를 전달함과 동시에 그것을 꾸미고 보태려는 속성을 지닌다. 과장과 허위의 언어는 그렇게 탄생하며, 삶보다 시를 앞세우려는 욕망도 그런 속성에 연결되어 있다. 시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게 바로 그 지점이다. (중략)
이은래 시인은 오래도록 기업체 사무직으로 근무했고, 여전히 사무실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일찍이 김기택 시인이 「사무원」이라는 시에서 사무직 노동자가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 의자와 일체감을 이룬 모습을 통해 사무원들의 비애를 형상화한 바 있지만 이은래 시인의 작품들에서는 그런 모습이 더욱 구체적인 형상을 하고 나타난다.
이은래 시인이 그려내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오로지 자본주와 주주의 이익에만 복무할 수 있을 뿐 자기 노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아래 언제든 버려지거나(「철제 금고 김차장」), “날마다 시계처럼 돌아가던 길”(「노랑이 김대리」)을 벗어나 저 세상에다 지친 몸을 부려놓기도 한다.
굴욕과 치욕을 감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시의 화자는 “주인의 그림자 뒤에서/온갖 냄새 나는 것을 다 핥”아주며 살아왔다. 그래야 주인이 던져 주는 뼈다귀라도 기꺼이 물고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유가 결코 지나친 비약이 아니라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겪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는 겪을수록 옅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두려움과 공포를 재생산한다. 하여 “다시 당신의 개가 되게” 해달라는 열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도록 만든다. 참혹하지만 이게 진실이다. 고개 돌리고 외면한다고 해서 있던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굴욕을 감내하는 삶을 살아가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걸 잊지 않는 것, 나아가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허위로 치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정확히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실체가 보이고, 누구의 손을 잡아야 할 것인지 떠올릴 수 있다. (중략)
이은래 시인의 언어는 어떤 소재를 선택하더라도, 그게 설혹 민중 친화적인 서사를 다룰 때라도 장황하거나 늘어지지 않는다. 가령, 1990년대 후반에 부천에서 있었던 철거 문제를 다룬 초기작 「삼정천의 봄」을 보더라도 담담하게 풍경만 제시하고 있을 뿐 새된 목청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언어와 감정의 절제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일환(시인) 해설 중에서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자욱한 최루에 맞서는
뜨거운 거리였다
가투를 치르다 다리를 다쳐
바지에 핏자국 배었다
골목길 달리는데
앞에서 검문 중이었다
누군가 옆에 와서 팔짱을 꼈다
편안하게 가요, 부부인 척하고
임신 중인 불룩한 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이가 피 묻은 바지 위로 몸을 붙였다
낯선 친절의 그늘에 숨어
골목을 나왔다
조심하세요
치마에 붉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고
인사도 못한 채 거리로 뛰어들었다
그 아득한 길을 지나와도
검문은 길목마다 나를 기다렸다
막다른 길에서 멈칫거릴 때
편안하게 가요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데
내 피 묻은 바지를 가리던
붉은 얼룩 치맛자락이 보인다
소금밥 바늘밥
밥그릇 앞에 두고
먹겠느니 못 먹겠느니 타령하지 말아라
밥그릇에는 밥보다 많은 소금이 들어 있다
새벽 출근해서
저녁도 거른 채 보고서를 작성하고
가족이 다 잠든 후에 젖은 몸으로 들어오는
땀내 나는 하루가 거기 있다
허기진 가계가 월급봉투에 중독되지 않도록
한 끼의 소금밥이
불안의 시간을 위로할 것이다
밥그릇에는 밥알보다 많은 바늘이 들어 있다
의자에 숨어 있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튀어나와 찌르던 바늘
수없이 바늘 박힌 하루가 거기 있다
바늘이 생살을 뚫고 들어가
등뼈를 세우는 힘이 되었듯
한 끼의 바늘밥이
무너지는 허리를 곧추세울 것이다
그러니 밥 한 그릇
소금 삼키듯 먹어라
바늘 삼키듯 먹어라
시인의 말
제1부 풀과 칼
곧게 세우기 위해 / 풀과 칼 / 사이에 갇히다 / 늦게나마 고마웠습니다 / 인드라망(網)의 구슬 / 그대 발바닥이 차가워질 때 / 발칙한 상상 / 내 헛된 꿈이 / 부생(浮生) / 사이 / 마야야학 / 삼정천의 봄 / 차(車) / 그다음에 / 파업 전철 / 농약 방구 / 모래성
제2부 마늘을 까며
크레인이 누운 날 / 요양원에서 / 섬 / 등 / 노래 / 철제 침대 / 선풍기 / 육성해비 내는 날 / 야맹증 / 눈물 한 방울 / 마늘을 까며 / 단팥빵 / 밥그릇을 깨다 / 공양 / 딴따라 허정재 / 눈물과 밥숟가락 / 사춘기
제3부 소금밥 바늘밥
자판기 / 소금밥 바늘밥 / 신입 사원 특강 / 업적 평가 / 유통기간 / 다시 개가 되고 싶은 개 / 화분이 나에게 / 연말정산 / 그믐달 / 아무 일도 아니었다 / 노랑이 김 대리 / 대타 장하나 / 경리부 미스 김 / 신나는 화장실 / 철제 금고 김 차장 / 낙지 안주 / 이유
제4부 풍경
풍경 / 별 1 / 별 2 / 바스러지는 것 / 모든 꽃은 진다 / 사진 한 장 / 죽는 일 / 노부부 / 만다라 / 나무의 소망 / 삼막사 가는 길 / 남해에서 / 하모니카 / 은혼(銀婚) /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결혼했으며,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랑할 것이다 / 콩나물과 복권
작품 해설:오래된 마음이 붙든 결곡한 언어들 - 박일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