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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6026662 / 208쪽 12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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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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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 페트먼, 유진 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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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 10,800
- 27,000
- 19,800
- 15,300
출판사 리뷰
흔히들 문학의 제왕은 시(詩)라고 합니다. 삶의 기록을 남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집을 남기는 것만큼 인문학적인 감성으로 충만한 인생이 있을까요? 그래서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벼슬길에 나아가 어느 직위, 어느 직급에 있더라도 항상 문인으로서의 풍모를 유지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현재에도 그러한 삶의 자세들이 이어진다면 좀 더 따뜻한 공직자, 인간미 넘치며 국민을 사랑하는 행정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세상의 흐름이 변하여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범 사례와 같은 한 권의 책이 나와 우리 공직자와 국민들, 그리고 그의 한 가정에 따스하면서도 올곧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새집을 지으면』
시집에서 저자는 인생의 순간마다 늘 마음의 중심이 되어주던 부모님과 스승들의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그리고 평생을 두고 소명으로 여기던 공직자로서의 삶에 대한 감회와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본인이 물려받고 후손들에게도 물려줄 유지를 시집을 통해 남기고 있습니다.
시의 정신은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거짓이 없다.)’입니다. 백 마디의 말을 하는 것보다, 억만금을 물려주는 것보다, 진실하고 올곧은 공직자의 길을 걸어온 선대의 유지를 이어가고 이어받는 모습을 시집으로 남기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를 떠올리면서 『새집을 지으면』을 읽다 보면, 선비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는 저자의 은은한 인문학적 묵향(墨香)에 독자들도 물들고, 시집 속에서 공직자로서 좋은 귀감을 삼을 대상을 마주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깊어 가는 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계절, 특별히 올곧은 삶과 공직자의 궤적을 따르기를 꿈꾸는 분들에게 이 시집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프롤로그
시인의 말
우리 모두는 오늘도 책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을 어떤 책으로 쓰고 있을까
이 한 생 마감하는 그날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그날
그 책은 나오자마자 사과상자로 들어갈까
간직하고픈 몇 권의 인문학 책으로 남을까...”
(시, ‘인문학적 삶’ 중에서)
33년의 공직을 무사히 마친 것이 저의 노력과 능력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 아내, 아이들, 후배, 동료, 이웃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하나씩 시로 만들어 이 책의 ‘가족, 고향, 이웃, 환생, 동체대비’ 편에 담았습니다.
삶의 족적과 주장이 일치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에 부끄럽지 않도록 내가 먼저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살지 않고, 정말 살기 위해 애쓰는 몸부림을 ‘새 집을 지으면, 선비’ 편에 담았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아버지를 보내신 후 이제야 조금 안정을 찾으신 어머니가 또 우실까봐 걱정입니다. 마지막까지 시집 발간을 망설인 이유입니다.
그래도 이쯤에서 제 삶의 족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외람되이 저자연보라는 구질함을 책 뒤에 붙인 이유입니다.
남은 삶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의지도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후기(後記)를 대신하여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지인들에게 약속했던 말들을 올렸습니다. 인생의 큰 변곡점에서 제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되새김질하여 앞날의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투명한 햇빛이 은행나무 잎을 맑게 물들이는
2018년 늦은 가을
효우정에서 정재근 올림
에필로그
*
네 분의 부모님 중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의 상례를 치르며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고,
내 삶의 미래 모습에 대해 다짐도 하였습니다.
이 시집은 그저 살아오지 않고 정말 살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쳐온 저의 기록이며, 앞으로도
그저 살아지는 것을 거부하고 진정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분 상례 후 지인들께 보낸
서신으로 다시 한 번 제 삶에 스스로 족쇄를 채웁니다.
공직자가 대과 없이 은퇴한다는 것에 대하여
사랑하는 선배, 동료, 후배 공직자 여러분!
제 선친(鄭 承자 基자)께서는 수의사로서 지방공무원이셨습니다. 1983년 제가 공무원이 되어 고향 논산시(당시 논산군)로 수습하러 갔을 때 선친은 군의 축산계장에서 도청 축정과로 자리를 옮기신 직후였습니다.
군청 친구 분들은 정 사무관도 아버지가 한 일을 경험해 봐야 한다면서 90cc 오토바이 뒤에 저를 태우고 집집마다 다니며 새끼돼지에게 뇌염 예방주사를 놓게 했습니다. 집 뒷마당 후미진 곳으로 두엄냄새 맡으며 돼지막을 찾아가서 꿀꿀거리는 새끼돼지 목에 주사기를 쿡 찌르면 녀석들은 깜짝 놀라 꽥 소리와 함께 움찔하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주민 삶의 공간에 깃들어 사는 살아있는 것들과의 뭉클한 첫 교감은 제 공직생활 내내 늘 저를 현장에서 주민과 함께하는 지방공무원이어야 참 공무원이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지방행정을 하는 현장공무원인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선친께서는 농업연구관으로 퇴직할 당시 집 한 채 제대로 장만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큰 긍지를 느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단 하나는 부모님께서 그토록 살아보시고 싶었던 도청 관사에, 당시 국장이 되어야만 살 수 있었던 그 관사에서 하루라도 주무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충청남도 기획관리실장이 되었을 때 오래되어 낡고 교육여건도 좋지 않아 남들은 외면하는 도청 관사에 일부러 들어갔습니다. 이사하던 날 날이 어둑어둑해져도 당신들 집으로 가시지 않는 부모님께 “마루에다 이불 두텁게 펴면 주무실 만할 겁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두 분이 바람 숭숭 들어오는 낡은 집 마룻바닥에 누워 밤늦도록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시며 연방 “좋다 참 좋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만일 공직가치를 저버리고 무슨 일을 당하면 두 분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10월, 하늘 좋은 가을 어느 날, 제 평생의 스승이자 공직생활의 멘토이신 아버지가 당신께서 생전에 스스로 마련하신 유택에 누우셨고, 저는 구청에 사망신고를 하였습니다. 정부혁신의 좋은 사례로 제가 소개하던 제도인 상속재산조회도 신청하였습니다. 문중의 공동명의에 이름을 올리신 것 외에는 당신 개인 소유의 땅 한 뙈기 없이, 또 어느 한 곳에도 밀린 대금 하나 없이 깨끗이 정리하시고, 두 분 사시던 대전의 작은 아파트 하나 남긴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공직자가 어떠해야 한다고 다들 이야기합니다마는, 퇴직하고 나서 진정 어떻게 살아야 선비의 삶을 사는 것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제가 현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전부터 불편하셨는데 아들 나랏일 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봐 참고 참으시다 제가 은퇴하니 그제야 병원에 가셨던 것이었습니다. 병상에서 자꾸 쇠잔해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30년 후의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한 번이라도 손을 더 잡아드리려고 애쓰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일은 선친께서 사셨던 은퇴 후의 삶을 그 아버지의 그 아들로 당신처럼 다시 살아내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삶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묵묵히 실천하는 삶이면서도 동시에 은퇴한 공직자가 숙명적으로 지녀야 하는 긍지 반 불편 반이 공존하는 삶일 것입니다.
25년 전 선친께서는 퇴임식 때 당신께서 말씀하시려던 원고를 제게 보여주시면서 좀 고쳐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말은 다 고치더라도 “대과 없이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준 선배, 동료, 후배 공무원에게 고맙다”는 말은 고치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압니다. 공직자가 대과 없이 공직을 마무리한다는 것의 의미를... 공적가치를 수행하는 공무원은 본질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직업이기에 공직을 잘 마무리하면 평생 직장생활 하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니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황망한 중에 조의를 표하시러 멀리에서 오셨는데 식사라도 제대로 하셨는지 챙기지도 못했습니다. 꽃으로 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친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훌륭한 공무원 후배들에게 실컷 절을 받으셨으니 선친의 새로운 여행은 분명 행복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공직생활이지만 힘을 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데, 또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공직자가 되시기를 마음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부디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저도 알고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배, 동료, 후배 공직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6년 10월
불효자 정재근 올림
■ 이 글은 선친 상례 후 행정안전부 직장 동료에게 보낸 감사서한입니다.
성공한 인생에 대하여
노부모를 고향에 남겨두고 외국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나랏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늘 무엇인가에 짓눌려 있는 듯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독일로 떠나오기 직전 제 아내는 “아빠가 자꾸 잠만 주무시는 것 같아...”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저의 빙부께서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평생 초등교육에 헌신하셨습니다. 제 아내는 어렸을 때 친구들로부터 아빠한테 얘기해서 조회 때 훈시말씀을 짧게 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았다고 합니다. 늘 아이들 잘되기를 바라며 평생을 사셨기에 누구보다도 노파심이 많으셨던 빙부님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22년 전 외동딸을 저에게 맡기실 때는 이것저것 걱정이 많으셨는지 말씀이 길었습니다. 그러던 빙부께서 주무시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5월 3일 빙부(崔 秉자 昊자)께서 새로운 여행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제일 먼저 아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것인지가 걱정되었습니다. 마침 그때는 이곳 베를린에 와서 2개월간의 호텔생활을 끝내고 집을 막 구해 이사를 했던 터라 아내는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알리기 전에 저녁부터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 근처 일식당에 가서 생선초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주변에 전화해서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태연한 척 하려 해도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서 늘 아내에게 마음을 들키곤 했기에 행여 아내가 눈치라도 챌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저에게 위로받기 전에 다른 사람이 불쑥 아내에게 말을 해서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해서 “내 전화 배터리가 다 되어서 직장에서 당신 전화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면서 아내의 전화를 받아 전원을 꺼놓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여보, 당신 아버지... 장인어른... 돌아가셨어.” 아내는 이내 침대에 엎어졌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들썩이는 아내의 등을 토닥거려 주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 “처남이 여러 가지 상의할 게 있어서 당신 전화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면서 전화기를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원래 3일장으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던 장례 절차가 아내의 전화 이후 4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내는 지금 바로 출발할 테니 기다리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저 역시 부녀간의 정이 남달리 두터웠고 생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의 딸이 남편 직장을 따라 외국에 온 탓에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보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발인 날짜를 하루 늦춰서라도 우리 내외가 도착하기를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망히 귀국한 저희 부부를 주변에서 너무나도 큰 위로와 격려로 맞아 주셨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가 받은 것보다 주는 것이 많지는 않다 할지라도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받은 감사와 은혜는 평생을 두고도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은 무게로 다가옵니다.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공이란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다. 당신이 이곳에 살다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이다.”라고 한비야 님의 에세이집 『그건 사랑이었네』에서
. 성공이 그런 의미라면 저의 빙부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있는 많은 제자들을 기르셨기에 분명 성공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제 아내를 세상에 내놓고 잘 키우신 것이야말로 빙부님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의 아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당신의 검박한 생활을 통해 가르쳐 주셨기에 지금의 저희들이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빙부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던 제 아내를 놓아두고 새로운 여행을 떠나실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대전에 근무할 때는 제 집과 처가가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일 년에 딱 두 번 추석날과 설날만 잠깐 방문했던 저를 불효자라고 생각하시면서 떠나셨을까요? 아니면, 우리 사위 아무 걱정 없이 나랏일에만 전념할 수 있으려면 처가가 번거롭지 않게 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실천하신 것에 만족해하셨을까요? 그러고 보니 아내는 결혼 후 지금까지 한 번도 친정을 들여다봐달라고 말을 꺼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딸 같아 지금이라도 빙부님께 따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처가에 못다 한 효도를 대신하려 합니다.
이제 랄프 에머슨의 말처럼 “나는 무엇 하나라도 세상에 보태고 있는지, 또 무엇을 세상에 보태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당신처럼 저도 제가 낳은 두 아들을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적어도 이웃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냄으로써 세상에 보탬이 되려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저희들을 따뜻이 보듬어 주셨던 여러 지인들이 제게 바라는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으려 합니다. ‘자네는 나랏일을 열심히 잘 해서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게’라고 무언으로 말씀하시는 그 뜻을 깨달으려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성공의 꿈을 조금씩 펼쳐 나가렵니다. 다시 한 번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아버님, 당신의 소중한 딸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2010년 5월 장인어른을 떠나보내며
베를린에서 정재근 올림
■ 이 글은 빙부상례 후 충남도청과 행정안전부 직장 동료에게 보낸 글입니다. 또한 이 글을 고국을 떠나 외국에 근무하면서 마음 한편에 부모님께 늘 죄송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외교관들에게 올립니다. 글의 일부 내용으로 인해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사시는 분들이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처가살이는 오랜 관습입니다. 율곡 선생도 외가인 강릉에서 자라고 공부했습니다.
시인의 말 ------------------------·4
제1부 새 집을 지으면
새 집을 지으면 1 ·15 ---------- 시작노트·159
새 집을 지으면 2 · 17
새 집을 지으면 3 · 19
새 집을 지으면 4 · 20 ---------- 시작노트·159
제2부 가족
<가족_아내>
소중한 사람 · 25 ---------- 시작노트·160
거울 · 27 ---------- 시작노트·161
그리움 · 29 ---------- 시작노트·163
공항의 하늘 · 30 ---------- 시작노트·163
아내 · 31 ---------- 시작노트·163
적멸보궁 · 32
첫눈 · 33
삼행시 1 · 34 ---------- 시작노트·164
삼행시 2 · 35 ---------- 시작노트·165
삼행시 3 · 36 ---------- 시작노트·165
<가족_아들>
가연 (佳緣) · 38 ---------- 시작노트·166
아들아 고마워 · 39 ---------- 시작노트·167
아들 · 42
국화 아들 · 43
<가족_아버지, 어머니>
어머니와 아들 · 45 ---------- 시작노트·168
손가락 편지 · 48 ---------- 시작노트·169
이사 · 50 ---------- 시작노트·170
빚 · 51
도시의 새벽 · 52 ---------- 시작노트·171
만취 · 53 ---------- 시작노트·171
어머니 · 54
어버이날 하루 전에 · 55 ---------- 시작노트·171
귀향 · 57 ---------- 시작노트·172
<가족_할아버지, 할머니>
유산 · 59 ---------- 시작노트·172
전설 · 60 ---------- 시작노트·173
행복 · 62
유품 · 63
제3부 고향
고향 · 67 ---------- 시작노트·174
봄 · 68
내 생에 의미 있었던 그날 · 69
향수 · 71 ---------- 시작노트·176
행복2 · 73 ---------- 시작노트·176
제4부 이웃
찜질방 · 79 ---------- 시작노트·177
1988년 소시민의 2017년 · 81
지하철에서 · 83
네팔 공항 · 86
라오스의 시골길 · 88
모든 사람들이 · 89
번역가의 꿈 · 90
편견 · 92
옆집 강아지 · 93
나인(Nein) · 94 ---------- 시작노트·177
제5부 선비
인문학적 삶 · 99 ---------- 시작노트·178
선물 같은 만남· 102
행정자치부에 告함 · 104 ---------- 시작노트·179
수상소감 · 109 ---------- 시작노트·180
약팽소선 · 110 ---------- 시작노트·180
역 이 (逆 耳) · 111
뒤로 가는 기차 · 112 ---------- 시작노트·180
이현부모 · 114 ---------- 시작노트·181
삶 · 115
형이하학과 형이상학 · 116
해바라기 · 117
사양이지절 · 118 ---------- 시작노트·181
둔촌 이집과 석탄 이양중의 절의를 기리며 · 119
숙후조당 · 120 ---------- 시작노트·183
후조당에서 자며 · 121
연향 · 122 ---------- 시작노트·184
고향을 그리워하며 · 123
제6부 환생
낙엽 · 127
환생 · 129
대모산 · 130 ---------- 시작노트·185
복실이 · 131 ---------- 시작노트·186
바둑이 · 132 ---------- 시작노트·186
사리탑 · 135
방생 · 136
섭리 · 138
정동진 · 139
어느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 140
제7부 동체대비
동체대비 · 145 ---------- 시작노트·186
적적성성 · 146
응진전 · 147
여름 산사 · 148
세상 · 149
지리산 종주 · 151 ---------- 시작노트·187
네팔 · 153
공감 · 154
연민 · 155
詩作 노트 · 157
後 記 · 189
연 보 · 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