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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3133228 / 260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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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40년 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말이 되었다
선교사보다 한글성경이 먼저 들어온 나라
세례를 받기 위해 선교사를 요청한 나라
자발적 사경회를 통해 부흥한 나라
이 특별한 나라에 나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하나님이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말씀하시기 시작했을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은둔과 미지의 나라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들의 품에는 한 권의 성경이 있었다. 그 성경은 특별히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었다. 선교사가 한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그 후 성경을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선교의 역사에서는 일반적인 일.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이미 번역된 한글성경을 들고 이 땅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정식으로 선교를 시작한 땅도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그 한글성경은 누가 번역했으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한글성경과는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이 이미 조선 땅 한양에 퍼져 있었고, 그 한글성경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어 세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1885년, 미국에서 요코하마를 거쳐 제물포로 들어와 선교 사역을 시작한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스크랜턴(William Scranton) 모자는 세례를 줄 선교사를 기다리고 있는 조선인들을 만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우리가 한글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미 또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이 이 땅에 있다니… 도대체 이 성경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세계 2천 년 선교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이 놀라운 한글성경 전래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만약 그것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왜 두 가지 버전의 성경을 번역하게 하신 것일까? 그리고 그 두 버전의 성경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유독 이 땅, 이 민족에게 그런 기적을 베푸셨을까? 하나님은 과연 이 땅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셨던 것일까?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글성경 번역 가운데 일어 난 놀라운 기적과 그 기적을 통해 일어난 하나님의 일하심을 추적해 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한글성경이 어떻게 번역되고 전파되었는지, 한국, 일본, 중국의 역사 현장을 누비며 생생한 현장 취재로 작성되었다.
- 본문 중에서
지금을사는사람들이, 이유를알수없는고난을겪을때, 삶이힘들어살아가야하는이유와목적을상실했을때, 절대적존재에게존재이유를묻고싶어하는것처럼백씨역시아마도그이유를그가읽고있던책성경에서찾으면좋겠다는, 그런희망을가졌을지도모른다. 그렇게1874년의어느가을, 고려문에서있었던백씨와존로스의만남은놀라운기적의시작이되었다.
왜냐하면후일그만남을통해한사람이변화되었고, 그한사람을통해의주의여러사람이복음을듣게되었으며, 그들을통해최초의한글성경이번역되었고, 지역이그리고나라가변화되기시작했기때문이다. 하나님은그렇게시간이라는당신의영역가운데에서수없이많은하루하루의어느하루에, 한사람과또다른한사람의간절한만남을통해민족을변화시키는계획을이행하고계셨다.
백씨는위험을무릅쓰고가져온성경을그의아들에게주었는데, 그의아들은몇년동안그성경을읽고감화되어아버지에게성경을건넨그외국선교사를찾아먼길을떠났다. 그리고마침내존로스선교사를만나성경을번역하는일에참여하게되었고, 인쇄된성경을들고지금의북한땅의주를거점으로주변지역에성경을퍼트리게되었다. 그는갖은고문과옥고를치르고전재산을잃고도성경을전하는일을멈추지않았던, 조선의사도바울로불리는백홍준이다. 34-35P
산성을내려와후문쪽출구로나서기전에커다란돌비석이세워져있다. 일보과(一步跨)라는한자가새겨진것이눈에띄었다. ‘한걸음만가면닿는다’라는뜻으로조선과중국의거리를표현한말이다. 그렇다. 우리는그한걸음을그때나지금이나떼기가어렵다. 의주상인들은그곳에서강을건너고려문에서장사를했고, 번돈혹은구입한물건을갖고다시의주로돌아갈수있었다. 하지만그들이성경을품에안고다시의주로돌아가기는힘들었다. 그것은목숨을걸어야하는일이었다. 이미대원군의쇄국정책으로인해많은천주교인들의목이잘려나갔다. 서양사람과접촉한조선인도처벌을받았고, 성경을반입해들어오다붙잡히면갖은고문을당해야했다. 그때의시대상황이그렇게어두웠다.
손에닿을듯한땅, 왜우리는저곳에갈수없는것일까? 마음이먹먹해졌다. 하지만민족이전세계로흩어지는아픔, 분단의치명적인상처를경험한이민족을통해이루시려는하나님의계획이분명히있을거라는믿음이내겐있다. 그래서한편으론가슴이뛰기시작했다. 언젠가하나님이우리를통해그일을이루실때, 어쩌면그때가되어서야하나님의계획을알게될것이다. 45-46P
또한명의의주사람이있었다. 백홍준과함께의주를떠나진리를찾아잉커우까지간백홍준의동향친구다. 그역시조선인최초의세례자이며성경번역에참여했다. 그러나그의이름은알려지지않고있다. 매킨타이어는성경을전해듣고세례를받고자한이청년을보고기쁜동시에염려스러웠을것이다. 복음을듣고복음의사람이되고자하는것은기쁜일이나, 당시조선에서는서학을하는것이알려지면사형에처해졌으므로자칫의욕만앞선섣부른판단이아닌지염려가된것이다. 그래서매킨타이어는세례받길원하는그마음이진정으로하나님의인도하심에서온것인지, 그리고그에게목숨을걸만큼절박한것인지그진정성을확인하고싶었을것이다. 매킨타이어는그의주사람에게세례를받고자한다면고향에돌아가부모의허락을받아오라고했다.8그러자그는1월의칼바람과영하수십℃의추위를뚫고고향으로돌아갔다.
아마도매킨타이어는그를위해계속기도하지않았을까? 그가부모의허락을꼭얻어돌아오기를, 하나님이그와동행하여주시길, 그리고그의마음이변하지않기를. 기도의응답이었을까? 아니면하나님의계획하심과예비하심이었을까? 그는끝내세례를받기위해매킨타이어의요구대로부모의허락을받고다시돌아왔다. 여태껏한번도들어보지못한, 고통스런삶의문제를해결할수있는그도(道), 그진리를발견한이름모를그는그렇게영하수십℃를오르내리는만주의눈보라를뚫고왕복600km 가까운거리를다녀온것이다. 오늘날발달된도로사정으로도120시간가까이걸리는길이다. 당시도로사정과열악한환경등을고려할때족히240시간은걸렸을것이다. 하루8시간씩걷는다고했을때왕복30일이걸리는거리다.
그의마음은어땠을까? 손과발은꽁꽁얼어갔고, 얼굴은칼바람으로아팠을것이다. 살을에는추위를뚫고걸으며그는무슨생각을했을까? 성경에서읽은예수님의사랑을생각하지않았을까?
그는세례받기로결심하기까지숱한고민의밤을지새웠을지도모른다. 도대체왜예수님은자신의십자가를지고골고다언덕을향해올라가셨을까? 하나님의아들이라면위대한능력을발휘해나쁜놈들을혼내주고자신이누구인지증명했어야하지않을까? 도대체왜예수님은바보처럼아무런저항조차하지않고그고통을감당하셨을까? 나는지금껏이혼란스럽고가난하고고통스러운세상을끝내버리는도를찾지않았는가.그런강한힘과능력과는거리가먼예수님이과연우리의구원자가될수있을까? 과연내가서양신을믿어도될까?
그가그런고민을했든, 아니면성령의임재하심가운데강권적으로예수님을영접하게되었든, 그는예수님의사랑외에는답이없다고생각하지않았을까? 그는결국그여정을끝내고조선인최초의세례를받은사람이되었다. 54-55P
나는잉커우역에서버스를타고시내로이동한뒤, 시내에서다시택시를타고‘잉커우기독교회’로향했다. 1879년조선인수세자들이세례를받은교회는우장장로교회인데그곳은140년가까운세월이흐르는동안흔적도없이사라졌고그자리에잉커우기독교회가세워졌다. 잉커우기독교회는중국삼자교회로중국정부의감시를받는교회다. 중국은아직기독교의포교와전도가자유롭지않다. 그래서두종류의교회가공존하고있는데, 하나는앞서말한삼자교회이고, 다른하나는지하교회다.
어쨌거나나는그곳에서나마당시의조선사람들, 우리믿음의선배들이세례를받았던그때를묵상하고싶었다. 그들이그먼길을가서세례를받고자했던그마음, 그절박함이무엇이었는지느끼고싶었다. 그리고그들이한글성경을번역하면서어떤감동을받았을지떠올려보고싶었다.
한국인최초의세례자들은동시에한글성경의최초번역자들이기도하다. 그들은세례받기로결심했을때극심한고난을각오했을것이다. 심지어죽음까지도. 그만큼그들은간절했고절박했다. 오늘날은성경이흔하고, 성경을읽고듣는것이편리해졌지만, 성경의의미와세례의의미를잃어가는안타까운시대다. 그런시대를살아가는우리에게한국인최초의세례자들이성경과세례에대해가졌던마음, 그간절함과절박함은많은것을생각하게한다. 그간절함과절박함은지금의한국교회와우리에게너무나필요한것이기에그렇다. 80-81P
1회조선장로교총회의첫안건은무엇이었을까? 교회를크게짓는것이었을까? 전도활동을더열심히하기위해어떤목표를세웠을까? 놀랍게도총회가조직되자마자처음으로한일은선교사파송이었다.블레어(W. Blair) 목사는 “새로운한국교회(장로교)의첫모임(독노회)은사실상선교사를보내는모임이었다”고회고하고있다.식민지상황에서세워진한국교회는놀랍게도가장먼저선교를꿈꿨던것이다. 해외선교사파송에서성경의영향을부정할수없다. 당시많은장로교조선사역자들은평양신학교에서공부했거나공부하고있었다. 평양신학교는네비우스선교정책과관련하여설립되고육성되었다고한다. 따라서네비우스가강조한사경회제도의연장선상으로신학교커리큘럼이짜였다.한글성경보급을통해하나님을이미깊게만난한국교회의영성은이렇듯사경회를통해자라났다.
1913년은나라를빼앗겨일제의식민통치가행해지던때다. 더구나당시조선장로교는전세계에서가장작은교단이었으며, 복음을받은지40년도안되었다. 그런우리가우리보다먼저복음을받아들인중국으로복음을들고나간것이다. 선교적으로볼때혁명적인사건이아닐수없다.
당시에동양인이선교를나간일은없었다. 조선이처음이었다. 조선은동양인으로서처음으로동양에선교사를파송한나라였다. 약함이강함을이기는순간이었으며, 패러다임이전환되는순간이었다. 만주, 시베리아, 일본, 중국등에있던한인디아스포라를위해파견된선교사는있었지만, 한인이아닌타국의사람을위해해외로선교사를파송한일은당시로선파격에가까운일이었다.박태로, 김영훈, 사병순선교사와그의가족들이중국으로파송되었다.
1912년, 가장먼저파송이결정된박태로선교사는당시큰교회의목사였다. 교인100여명의재령읍교회위임목사였다. 지금으로따지면대형교회목사로그는영향력있는노회임원이기도했다.그런그가총회의명령에따라선교사로떠난것이다.188-191P
1. 기적의 시작
2. 조선과 청(淸)의 국경 고려문을 통해 성경이 전해지다
3. 예비하신 주의 일꾼, 의주 상인
4. 한글성경을 위한 불씨, 존 로스와 토마스
5. 한글성경 번역의 태동, 잉커우
6. 우리말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7. 또 다른 버전의 한글성경
8. 말씀이 말씀이 되다
9. 부흥
10. 성경책 한 권 들고 선교를 떠나다
11. 한국과 네팔 T부족의 평행이론
12. 통일과 회복, 그리고 유라시아를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