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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949251 / 240쪽 128 x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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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의 저자는 약학박사다. 누구나 여행하고 여행기를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다. 이 땅의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생을 헌신해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린 가슴과 쓸쓸함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시되 자식에게는 의지할 수 없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세대다. 저자는 그 가운데서도 특출난 존재이지 싶다. 그는 어림잡아 1년에 아침은 350번, 저녁은 300번 남짓 부친과 식사를 함께한다. 30년 전 모친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부친과 함께 식사하는 게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은 늘 시간의 문제였다. 떠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절실하게 ‘일상의 풍경’을 지키고도 싶었다. 타협이 쉽지 않은 속에서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부인의 말을 핑계 삼아 때때로 못 이기는 척 비행기를 타곤 했다.
저자의 선배인 시인 임종철은 저자에게 ‘대충대충 한다, 건성건성 한다는 없다’며 저자가 자기 삶 앞에 얼마나 정직한지를 회고한다. 저자에게 성실히 ‘걷는다는 것은 삶의 일상’이다. 그런 그에게 ‘여행은 걷는 삶의 보완재’라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자유롭지 못해서일까. 막상 집을 떠나고 나면 그는 더욱 절실하게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쉬운 시간만큼 그 시간을 고마워하고, 여행지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려 노력하고, 함께한 사람들의 배려에 눈물겨워한다. 때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을 학대해가며 수백 킬로미터를 걷기도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여행은 떠나는 것이자 떠남으로써 완성되는 그리움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지리산 블루스〉는 프로 여행자의 냄새가 물씬하다. 강의나 교육이 없는 날 홀연히 떠나 지리산 종주하기를 십수 년째 해오고 있어서일 것이다. ‘천왕봉 일출은커녕 지리산 자락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이라는 유쾌한 유머 한켠에는 ‘천왕봉 새끼신령’으로서의 자부심도 묻어난다. 이렇듯 여행기 전편에는 저자 특유의 유머가 넘쳐난다. 평생의 업業인 ‘재미있게 강의하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내공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 공기의 절반은 담배 연기’라니, 남다른 통찰력과 유머가 느껴지지 않는가.
여행기는 마치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저자가 즐기는 낮술이라도 한잔 나누는 느낌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는 유유자적 ‘타파스’ 맛 기행을 선보인다. 일본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제주에서도 미식과 탐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늙은 부모를 모셔야 하는 베이비부머의 숙명은 해방과 함께 귀국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부친의 고향마을을 찾아 부친의 삶의 생채기를 위로해드리는 감동적인 일본 여행에서 더할 수 없는 보람으로 승화한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산업화 역군의 한 사람으로 일생을 달려온 한 ‘늦깍이 문학청년’의 기행문이다. 그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시되 자식에게는 의지할 수 없는, 베이비부머 세대 가운데서도 특출난 삶을 살고 있다. 한 해 365일 가운데 300일 이상을 홀로 남은 구순의 부친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래서 그에게 여행은 늘 시간의 문제였다. 떠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절실하게 ‘일상의 풍경’을 지키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타협이 쉽지 않은 속에서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부인의 말을 핑계 삼아 때때로 못 이기는 척 비행기를 타곤 했다.
그는 약학박사다. 저자의 선배인 시인 임종철은 저자에게 ‘대충대충 한다, 건성건성 한다는 없다’며 저자가 자기 삶 앞에 얼마나 정직한지를 회고한다. 저자에게 성실히 ‘걷는다는 것은 삶의 일상’이기에 ‘여행은 걷는 삶의 보완재’라는 것이다.
여행기는 저자 특유의 유머가 넘쳐난다. 저자가 평생의 업業인 ‘재미있게 강의하기’를 위해 남달리 애써왔을 뿐 아니라 좌중의 분위기를 살려내는 유머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마추어임을 자처하지만 그는 강의나 교육이 없는 날 홀연히 떠나 지리산 종주하기를 십수 년째 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리산 블루스〉에서는 프로의 냄새가 물씬하다. 가장 맛깔스러운 내용은 최근에 다녀온 스페인 기행이 아닐까 싶다.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 유유자적 맛 기행이라 할 수 있는 ‘타파스’를 즐기는 모습이며, 저자만의 통찰력으로 ‘바르셀로나 공기의 절반은 담배 연기’라고 내뱉는 유머가 압권이다. 구순의 부친을 모시고 부친이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일본의 고향 마을을 다녀오는 글은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여운을 안겨준다.
서평
이 책의 저자는 약학박사다. 누구나 여행하고 여행기를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다. 이 땅의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생을 헌신해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린 가슴과 쓸쓸함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시되 자식에게는 의지할 수 없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세대다. 저자는 그 가운데서도 특출난 존재이지 싶다. 그는 어림잡아 1년에 아침은 350번, 저녁은 300번 남짓 부친과 식사를 함께한다. 30년 전 모친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부친과 함께 식사하는 게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은 늘 시간의 문제였다. 떠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절실하게 ‘일상의 풍경’을 지키고도 싶었다. 타협이 쉽지 않은 속에서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부인의 말을 핑계 삼아 때때로 못 이기는 척 비행기를 타곤 했다.
저자의 선배인 시인 임종철은 저자에게 ‘대충대충 한다, 건성건성 한다는 없다’며 저자가 자기 삶 앞에 얼마나 정직한지를 회고한다. 저자에게 성실히 ‘걷는다는 것은 삶의 일상’이다. 그런 그에게 ‘여행은 걷는 삶의 보완재’라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자유롭지 못해서일까. 막상 집을 떠나고 나면 그는 더욱 절실하게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쉬운 시간만큼 그 시간을 고마워하고, 여행지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려 노력하고, 함께한 사람들의 배려에 눈물겨워한다. 때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을 학대해가며 수백 킬로미터를 걷기도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여행은 떠나는 것이자 떠남으로써 완성되는 그리움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지리산 블루스〉는 프로 여행자의 냄새가 물씬하다. 강의나 교육이 없는 날 홀연히 떠나 지리산 종주하기를 십수 년째 해오고 있어서일 것이다. ‘천왕봉 일출은커녕 지리산 자락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이라는 유쾌한 유머 한켠에는 ‘천왕봉 새끼신령’으로서의 자부심도 묻어난다. 이렇듯 여행기 전편에는 저자 특유의 유머가 넘쳐난다. 평생의 업業인 ‘재미있게 강의하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내공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 공기의 절반은 담배 연기’라니, 남다른 통찰력과 유머가 느껴지지 않는가.
여행기는 마치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저자가 즐기는 낮술이라도 한잔 나누는 느낌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는 유유자적 ‘타파스’ 맛 기행을 선보인다. 일본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제주에서도 미식과 탐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늙은 부모를 모셔야 하는 베이비부머의 숙명은 해방과 함께 귀국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부친의 고향마을을 찾아 부친의 삶의 생채기를 위로해드리는 감동적인 일본 여행에서 더할 수 없는 보람으로 승화한다.
책머리에
‘일상의 풍경’은 그렇다. 어림잡아 1년에 아침은 350번 정도, 저녁은 300번 정도 아버지를 모시고 식사를 한다. 쉽게 말해 출장이나 피치 못할 개인 일정을 제외하고는 웬만하면 아침저녁을 같이 먹는다는 뜻이다.
30년 전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황망 중에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자연스레 아버지와 함께 식사하는 게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여행은 그래서 늘 시간의 문제였다. 직장에 얽매여서, 돈이 없어서, 일이 많아서, 체력이 감당이 안 되어서, 떠나는 걸 불편해 해서, 낯을 몹시 가려서,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다.
프리랜서, 돈 잘 버는 마누라, 천성적인 게으름, 타고난 체력, 떠돌이의 혼, 총무 역할 전문가, 눈치코치 3개 국어에 덤으로 혈액의 절반은 술로 채웠다.
늘 떠나고 싶었다. 그만큼 더 절실하게 ‘일상의 풍경’을 지키고도 싶었다. 타협이 쉬울 리 없었다.
하여 떠나는 자체가 어려웠다. 아버지를 모시는 일의 한 축을 충실히 담당했던 집사람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말을 불현듯 꺼내면 그럴 때 못 이기는 척 비행기를 타곤 했다.
집 나와서 폼나게 비행기를 타든, 평범하게 기차에 오르든, 아니면 그냥 두발로 걷든 일단 떠났으면 그게 여행이지 별건가 싶다. 떠나기 전까지 노심초사하다가도 막상 떠나면 오직 그 시간만큼은 자유로웠다. 시간이 아쉬웠다. 아쉬운 만큼 그 시간이 고마웠고, 그 시간과 함께 숙성되어 가는 사람들의 정이, 배려가 눈물겨웠다.
시간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번듯한 여행이라고 내세울 게 없다. 이 책이 초보 여행자의 감상일 수밖에 없는 연유다. 그럼에도 책으로 엮을 용기를 낸 것은 여행이건 일상이건 결국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에서다.
일생을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여행은 누님과 함께 좌우 호위무사가 되어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온 일본 여행이다. 해방전에 일본에서 태어나신 아버지께서는 단 한 번도 태어나신 곳을 가보지 못하셨다. 그 깊은 생채기를 보듬어드린 특별하고 어려웠던 ‘귀향’의 감동이 내 가슴 속에도 소중히 아로새겨져 있다.
아버지께서는 올해 9순을 맞으셨다. 이 몇 줄의 여행기가 아버지와 다시 여행을 떠날 가능성의 끈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행은 떠나는 것, 떠남으로써 완성되는 그리움 같은 그것!
2018년 여름 초입에
어떤 귀향
서론이 길구나!
조용필의 19집 〈헬로〉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내가 이 앨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가수나 노래 때문은 아니다. 단지 이 땅의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었으며 한때 민주화의 투사들이었으나 어느 순간 외로운 아버지이자 수구꼴통의 꼰대로 바야흐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소위 베이비부머(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들의 쓸쓸한 심정을 그린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가 가사를 쓴 〈어느 날 귀로에서〉란 곡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이후 자력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곤 없는 문화 사각지대의 원시인으로서 음악성 어쩌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 더도 덜도 말고 바로 그 베이비부머의 일원으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셔야 하되 애들에게는 의지할 수 없다는, 그래서 대책 없이 노년을 맞고 있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헌사(《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송호근 저, 도서출판 이와우, 2013)의 바로 ‘그들’ 중 한 명이 나였던 것이다.
이 글은 어느 날 귀로에서 서성이는 한 베이비부머가 부친 돌아가시기 전에 부친이 태어나신 곳日本 岐阜縣 岐阜市을 한 번 모시고 다녀오겠다는 작은 염원을 오랜 기다림 끝에 이루고 돌아온 ‘짧은 귀향歸鄕’을 정리한 것이다.
기한 만료로 폐기된 여권을 다시 만들다
며칠 짬을 내 부친과 누님을 모시고 부친의 출생지였던 일본 기후岐阜를 방문했다.
어쩌면 여차여차한 이유로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사연은 식민지시대 우리 조상들의 가슴 아픈 삶의 피할 수 없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 그 뉘라 소설 속에서나 봄직한 아픈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으랴.
부친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해방과 함께 귀국하신 후에는 다시는 태어난 땅을 밟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번 여행은 쉽게 가볼 수 없었던 부친의 출생지, 70여 년 인고의 세월을 넘어 원초적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십 수 년 전 이런 방문을 염두에 두고 어렵사리 부친을 설득해 거의 1년여에 걸쳐 여권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부친은 이런저런 이유로 흔쾌히 나설 준비가 안 되었다며 끝내 귀향길을 나서지 않으셨다. 애써 만든 여권은 첫 장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기한 만료가 되어 폐기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고령에 따른 거동의 불편함은 한층 가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이 성사된 것은 어렵사리 유학 생활을 마무리한 조카의 공이 컸다. 남들보다 다소 늦게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조카는 주목할 만한 평가를 받으며 지난(2013년) 3월 동경공대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카의 졸업식 참석을 빌미로 마음속에 묵혀두었던 일본 방문을 다시 거론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조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누님과 조카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거듭 권유하였더니, 의외로 선선히 여행에 나설 것을 동의해 주셨다.
좀 서비스가 나쁘면 어때?
4월 중순으로 일정이 잡히자 부랴부랴 새로 사진부터 찍어 부친의 여권을 다시 만들었다. 비행기 표는 아들 녀석이 인터넷을 뒤져 구해 준 저가 항공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노인 모시고 가는 길이니 안전하게 국적 항공사 편을 선택하라는 친구의 강력한 경고가 있었지만,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저가 항공사의 티켓 값은 거의 절반 수준, 장거리가 아니니 제주도 가는 기분으로 가도 별 문제가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구나 축구 선수 박지성이 뛰고 있는 QPR의 구단주가 에어아시아Air Asia의 소유주라니, 이왕이면 박지성의 연봉에 조금이나마 기여하자는 치기까지 약간 양념을 쳤겠다! …
비행기는 한 시간 남짓을 날아 나고야名古屋 중부국제공항에 무사히 안착했다.
장어와 돈가스
해외 자주 나갈 일 없는 어리바리한 촌놈이 여행가방 찾는 과정에서 벌인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도착 환영식쯤으로 여겨야겠다. 한국인에게 무척 친절할 것이라는 지인의 말대로 가볍게 입국심사를 받고 나가니, 아침에 동경에서 신칸센으로 달려온 조카가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고향 방문에 어떻게든 기여를 하고 싶었던 조카는 유학 생활의 빠듯한 여건 속에서도 시간을 짜내었다. 옛날 주소를 적은 쪽지 하나만 달랑 들고 이번 방문지인 기후 시를 미리 답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게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그런 정성이 바탕이 되어 실제 방문으로 연결된 것이다. 말인즉슨 이번 여행의 성과는 할아버지와 외손자의 따뜻한 교감이 일궈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볼 수 없었다던 공항에서 기후로 바로 가는 급행 전철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 땅에서 가장 맛있는 것으로 정평 있는 장어うなぎ를 먹고 가야 한다는 조카의 주장에 따라 일단 나고야 역으로 이동했다.
역에서 조금 떨어진 도심의 무슨 백화점인가 꼭대기 층에 있는 식당가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오후 3시를 넘겼으니 제아무리 유명한 음식점이라고 해도 별 불편 없이 식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식당 앞에 진치고 앉아 있는 대기자들의 길고 긴 행렬을 보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정도는 당연히 기다릴 가치가 있다는 조카의 거듭된 의견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1시간 30분이나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일, 과감하게 근처에 위치한 돈가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알고 보니 나고야가 자랑하는 별미는 바로 돈가스였다. 꿩 잡으려다 닭 잡은 꼴이 아니라 외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장어집이라니 맛은 있을지 모르나,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은 자명하다. 그 대신 육즙이 독특하게 살아 있는 두툼한 철판 돈가스와 삿포로 생맥주 한 잔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거듭 들었다.
기후 시에 입성하다
끝내 아쉬움을 토로하는 조카의 장어집 예찬을 뒤로 하고 다시 나고야 역으로 이동해, 거의 지체 없이 기후행 급행 전철에 올랐다.
부친의 기억에는 당시 공업지구였던 도시의 특성상 미군기의 전략적 공습으로 기후 역 주변은 거의 불에 타 폐허 상태였다. 그 기후 역이 요즘 흔히 보는 대규모 역사 개발의 전형으로 환골탈태하여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일본 통일의 위업을 눈앞에 두었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본향답게 역 앞 광장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완성되었다는 오다의 황금상이었다.
기후 역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는 편리한 연결 통로를 이용해 근처에 위치한 비즈니스호텔 일 크레도에 체크인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부친은 호텔 뒤편 주차장 언저리에 마련된 흡연실을 썩 마음에 들어 하셨다.
집에서라면 저녁 드시고 8시 뉴스 시청하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이지만, 이번 여행길이 어떤 길인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쉽게 잠들기는 어차피 어려운 법, 가볍게 한잔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부친 역시 흔쾌히 따라 나서셨다.
산보 겸 동네 구경하는 기분으로 잠시 호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식 주점 이자까야 체인 두어 곳을 두고 저울질하다 덜 기다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 자리를 잡았다. 일본 사케에 오뎅이며 꼬치류 등 몇 가지 익숙한 안주를 주문했다. 부친과 함께 이번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는 조촐하지만 편안한 의식을 치렀다.
여행 목표 초과 달성!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난 부친은 담배 피러 내려가신 김에 근처 이곳저곳을 다 둘러보고 오셨다. 이미 신발 끈까지 단단히 조여 놓으신 상태였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친의 출생지와 초등학교를 찾아 나섰다. 많이 바뀌긴 했으나 비교적 번잡하지 않은 시골 동네라 옛날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거리를 부친은 기억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셨다. 지팡이에 의지해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기시는 부친을 부축해 부친이 다닌 초등학교木え本小學校부터 방문했다. 새로 들어선 건물이며 오랜 세월 탓에 방전되었던 기억의 회로망을 재충전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는 부친의 감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부친의 만족스런 표정을 카메라에 담은 다음, 근처에 자리한 부친의 출생지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집을 찾았다. 부친은 어디에 세탁소가 있었고, 어디에 문구점이 있었고 하는 기억의 세포가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린 듯이 깨어나는 모양이었다. 조카가 옛날 주소지를 사전에 답사해 두기는 했지만, 부친은 스멀스멀 멀어져간 기억의 조각을 더듬어 옛 집 자리를 찾아냈다.
다행히 옛 지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친은 옛 집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빠져드시는 모습이었다. 살짝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모습을 본 듯도 했다. 얼마쯤의 시간이 흘렀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해맑아 보이는 부친의 모습을 행복한 눈길로 응시하노라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만 됐다. 이젠 돌아가자.”
계면쩍은 듯 돌아서시는 부친을 설득해 기념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렇지만 뭔가 허전했다. 부친을 부축하여 바로 근처에 자리한 작은 찻집으로 들어섰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추억의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부친과 더불어 감회의 여운을 음미했다.
부친께서 살던 동네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의 미군 공습으로 쑥대밭이 된 곳이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패전 전부터 줄곧 이 동네에서 산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그런 설명을 듣긴 했지만, 조카는 못내 아쉬운지 사람들만 눈에 띄면 달려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골목에서 담소를 나누던 몇몇 할머니들과의 대화 끝에 이 동네에서 비교적 오래 사신 분을 한 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그분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작은아버지(부친의 바로 아래 동생)의 초등학교 친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부친의 초등학교 동창생이 근처에 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우리는 부친의 동창생인 나가세長瀨光輝 씨의 집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노년의 부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부인은 자초지종을 듣고 안에 기별을 넣었다. 잠시 후 나가세 씨가 놀란 모습으로 나타났다. 부친과 통성명을 하는 찰나의 시간이나 흘렀을까. 나가세 씨와 부친은 감격의 포옹으로 서로를 얼싸 안았다.
시골 마을에서 특별한 일상의 변화 없이 조용히 살아가던 노부부에게는 생각지도 않던 큰 사건이었다.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며 나가세 씨는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자식들 다 시집 장가보내고 두 내외만이 살고 있었다. 나가세 씨의 부인이 커피를 내왔다.
부친과 나가세 씨는 이내 옛이야기로 빠져 들었다. 몇몇 선생님과 동창생들의 이름이며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왔다. 당시는 성적순으로 급장을 지명했다고 한다. 가장 성적인 좋았던 부친이 일본 친구들을 제치고 급장 명찰을 달았다는 이야기가 새삼스러웠다. 나가세 씨는 어느 날 부친이 체육시간에 발을 심하게 다쳐 자신이 부친을 양호실에 부축하고 간 일화도 기억해 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억력과 함께 둘의 대화는 샘솟듯이 끝도 없이 분출되었다.
여행 말미에 누님은 이 극적인 해후를 두고 '나가세 씨가 부친의 오늘 방문을 위해 고맙게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하였다. 그만큼 나가세 씨를 만난 일은 이 여행의 백미요, 망외의 소득이었다. 많이 망설였지만 참 잘 떠난 여행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우리는 갑자기 오는 바람에 빈손으로 방문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귀국 후 누님이 그날 찍은 사진과 부친의 감사 서신에 더해 일본인들이 좋아한다는 김을 조금 준비해서 보내드렸다)과 부친의 소중한 추억을 불러일으켜준 뜻밖의 해후에 거듭 고마움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친도 그랬지만, 나가세 씨 역시 헤어지는 게 몹시 서운한 모양이었다. 집 바깥으로 나와서도 큰길까지 한참을 따라 나왔다. 둘은 다시 한 번 뜨거운 포옹으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이별 의식을 치렀다.
택시를 타고 나오는데 부친은 여전히 상기된 모습이었다. 미처 나누지 못한 옛이야기가 생각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조금 전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중고교 시절에 공부 잘하는 조선인을 일본 학생들이 얼마나 시기 질투했는지도 들려주셨다. 동급생 일본 왈짜에게 끌려가 봉변을 당한 일도 여러 번이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도 표정이 그리 밝을 수가 없었다.
아뿔싸!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샤워실 문을 여는 순간 몸이 굳고 말았다. 굳이 넘겨다보면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과히 높지 않은 칸막이를 두른 샤워 부스가 마찬가지 구조의 화장실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편하게 비누칠은커녕 소리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투숙객은 모두 젊은 여성들뿐이었으니까!
스스럼없이 제 할 일 다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포위되어 화장실 가기도 포기했다. 방문 꼭꼭 걸어 잠근 채 우리는 끝내 숨쉬는 것조차 속으로 삼켜야 했다. 쉴 새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누구를 향한 저주를 밀교의 주문마냥 중얼거리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24쪽
조용필의 19집 〈헬로〉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내가 이 앨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가수나 노래 때문은 아니다. 단지 이 땅의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었으며 한때 민주화의 투사들이었으나 어느 순간 외로운 아버지이자 수구꼴통의 꼰대로 바야흐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소위 베이비부머(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들의 쓸쓸한 심정을 그린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가 가사를 쓴 〈어느 날 귀로에서〉란 곡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
그렇다. 더도 덜도 말고 바로 그 베이비부머의 일원으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셔야 하되 애들에게는 의지할 수 없다는, 그래서 대책 없이 노년을 맞고 있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헌사(《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송호근 저, 도서출판 이와우, 2013)의 바로 ‘그들’ 중 한 명이 나였던 것이다. -45쪽
드디어 저녁 투어의 시작인 첫 번째 식당, 카탈루냐 산 레드와인에 이 집만의 타파스가 나온다. 올리브유에 넣고 조리한 크지만 맵지 않은 고추와 하몽 등을 딱딱한 빵 위에 올려 한입에 먹는다. …
어느 식당엘 가도 거의 예외 없이 큼직한 돼지 뒷다리가 눈에 띄게 진열되어 있고, 직접 잘라주기도 한다. 굳이 와인이 아니라 우리 식의 소주 안주로도 아주 제격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출발 전에 유적지 관광보다 하몽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식당에서는 앤초비의 원재료인 튀긴 생멸치에 샐러드, 토마토, 양파, 올리브를 곁들여 먹었다. 직접 제조했다는 화이트 와인을 자랑한다. 매장 내에 Vino Rose(로즈 와인), Tinto(레드 와인), Blanco(화이트 와인)라고 라벨이 붙어 있는 큼지막한 오크통이 자리 잡고 있다. 튀긴 생멸치를 통째로 내놓고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 식당은 가이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별 모양 문양이 예쁜 라벨을 부착한 레드 와인이 나쁘지 않았다. 팡콘토마테Pan con Tomate가 별미다. 구운 빵에다
생마늘을 잘라 문지르고 그 위에 토마토를 으깨 문지른 다음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리고 먹는 전통 음식이다. 원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도록 해 맛은 물론이고 재미도 쏠쏠했다. 스페인 소시지인 초리초, 이태리식 소시지인 살라미, 하몽 두 가지 등 네 종류의 돼지고기가 구미를 돋운다.
네 번째 식당에서는 다시 화이트 와인이다. 새 주둥이처럼 생긴 유리잔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 흘리지 않고 돌아가며 먹는방식이 이 집의 전통이란다. 각종 치즈에 문어를 오븐에 구워 으깬 감자 소스 바른 것, 구운 감자에 매운 소스 뿌린 것 등을 내놓았다. 이런 자리라면 절대 사양할 일이 없지. 최전방 철책 사단에서 단련된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두 순배를 도는데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와인을 비워내 일행들의 환호를 받았다. -79쪽
휴지 한 장 떨어져 있지 않고, 침을 함부로 뱉지 않으며, 껌을 씹다가 들키면 아직도 태형이 시행된다는, 질서와 준법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한 곳이 싱가포르다. 그런데 한 꺼풀만
더 들여다보면, 한 발자국만 더 뒷길로 들어가 보면 찔러도 피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이 사람들의 온 몸에서 온기가 돈다. 뒷골목은 우리네 뒷골목처럼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가히 흡연자의 천국이다. 택시는 마음먹은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방향을 바꾼다. 우하하하, 하향평준화면 또 어떤가. 기분이 상쾌해진다. -201쪽
천왕봉 일출은커녕 지리산 자락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 -239쪽
1부 어떤 귀향
미안하다, 올레여!
어떤 귀향
2부 비 오는 바르셀로나, 타파스의 추억
바르셀로나 공기의 절반은 담배 연기다
동굴과 자유의 섬 마요르카
그라나다, 로열 채플과 알함브라의 변주곡
숨은 가우디 찾기, 사그라다 파밀리아
3부 지리산 블루스
3월에 내리는 눈
두 도시 이야기
지리산 블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