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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식탁 위의 문학 기행 2

김남천, 백석, 최재영 저 | 가갸날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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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949213 / 224쪽 128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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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평양냉면의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정을 집대성하였다.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냉면에 관해 수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이미지를 한데 수집해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냉면가冷麵家’가 표기된 〈기성전도箕城全圖〉(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회화식 지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와 같은 귀중한 자료를 포함한다.
냉면은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준 우리 음식 가운데 매우 독특한 음식이다. 또한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하는 소울 푸드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점을 정리하는 데는 물론, 냉면이 왜 우리의 소울푸드인지 음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이제 평화의 상징이 바뀌었다. 비둘기가 아닌 평양냉면이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외신이 보도한 국내 내티즌들의 반응이다. 아직은 우여곡절이 있어 보이지만 판문점 냉면 만찬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장밋빛 평화 무드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은 그 어떤 드라마틱한 순간에도 한 가지 음식이 이처럼 세계인의 괌심을 끈 적은 없을 것이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주인공은 단연 평양냉면이었다.
냉면이 갑자기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은 왜일까? 단순히 역사적인 만찬의 주메뉴였기 때문일까? 냉면은 그 같은 소임을 맡을 만한 문화적 자산과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다.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스토리텔링이 가장 풍부한 소울 푸드는 단연 냉면이다.
냉면은 드물게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기도 하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임에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또한 본시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의 문화 속에는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냉면은 왜 특별한가

냉면은 오랜 역사를 자랑할 뿐 아니라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箕城全圖〉(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일반 서적 가운데는 이 책에서 최초로 수록 소개) 속에는 흥미롭게도 ‘냉면가冷麵家’가 표기되어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3차례에 걸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세기, 20세기초, 그리고 6·25 전쟁기다.
냉면은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준 독특한 음식이다. 그 기록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평뽕족’이라는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진정한 평뽕족이 되는 길: 평양냉면의 역사를 꿰뚫는 일부터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일부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냉면에 관해 수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이미지를 한데 수집해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냉면배달부인 중노미들의 곡예 부리듯한 배달 모습을 담아낸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은 당시 얼마나 냉면 배달이 성업하였는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우리 음식 배달문화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사람이 압출기 위에 거꾸로 매달려 면을 뽑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의 그림 2점도 눈길을 끈다.
‘평뽕족’들은 '평부심'(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을 즐긴다. 이 책은 평뽕족 입문자에서 평양냉면의 역사까지 꿰뚫는 진정한 ‘평뽕족’으로 가는 데 더없이 유익한 책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점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양냉면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버킷리스트에 ‘평양 가서 냉면 먹기’를 적어두었다면 냉면이 왜 우리의 소울푸드이며,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 조용히 음미해 볼 일이다.

책을 펴내며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소울 푸드를 하나만 들라 하면 주저 없이 냉면을 꼽겠다. 냉면은 우리 음식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천여 년의 역사를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냉면은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본디 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냉면은 국수보다 더한 공력을 필요로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수고로움을 딛고서야 마침내 냉면 한 그릇의 소중함은 의미를 얻는다.
시인 백석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는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온다고 노래했다. 이토록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냉면은 본시 겨울 음식이었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꽁꽁 언 김치 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 만 냉면을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정경이 지금이야 낯설 수밖에 없지만, ‘혀를 울리는 쩌르르한’ 냉기로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냉면의 문화 속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글귀가 보인다. 다름 아닌 ‘냉면가’ 표기다. 대동문, 부벽루 등의 명승지와 함께 냉면집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같은 시기에 평양을 여행한 실학자 유득공은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과 돼지 수육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적었다. 그만큼 냉면이 널리 유행하였고, 겨울에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냉면이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냉면집은 평양에 제일 먼저 들어서고, 이어 서울로 진출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서서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도시화가 촉진됨에 따라 1910년대 후반 무렵 평양에는 큰 규모의 냉면 거리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다시 한 번 평양냉면은 경성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진군해 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배달 음식의 천국이라 일컬어진다. 그 뿌리는 20세기 초반 평양과 경성에 들어선 냉면집이었다. 중머리라 불린 냉면 배달부들이 한 손에 배달 음식이 담긴 큰 목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곡예하듯 자전거를 운전하는 이색적인 모습은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으로 남아 있다.
수천 년, 수백 년을 이어온 음식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다. 음식은 곧 그 문화를 배태해 낸 민족의 삶과 문화의 젖줄이다. 우리의 혼이 깃든 음식이자 가장 오랫동안 밥상의 주인공이었던 밥이나 김치는 다른 음식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밥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또 아무리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김치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다.
냉면은 주식의 대용이 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다. 냉면이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었음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삼십대 젊은 층에도 냉면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스스로를 '평뽕족’(‘평뽕’이란 평양냉면의 중독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부르며, 냉면집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지난 4월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등장한 옥류관 냉면 때문이다. 거무스름한 면의 빛깔과 다진 양념을 보고 아연실색한 평뽕족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스레 ‘정통’ 논쟁이 불붙게 되었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이 평양냉면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으며, 북한의 평양냉면은 그 원형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은 해방과 한국전쟁기에 남으로 이주한 평양 사람들에 의해 뿌리를 내렸다. 이른바 평양냉면의 제3차 진군이다. 평양냉면의 3차 진군에 의해 그 이전까지 수십 년 아성을 누리던 냉면집들은 경쟁에서 도태되었다.
평양냉면은 지금 가장 ‘핫’한 음식이 되었다. 해외에서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더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조만간 평양냉면의 제4차 진군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서울과 평양의 평양냉면 가운데 누가 이길까. 미리부터 조바심이 나고 자못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평양냉면의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정을 집대성하였다. 얇은 책 한 권에 집대성이란 표현은 과한 듯 여겨질 수 있지만, 냉면이 등장하는 의미 있는 1차자료를 망라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오늘의 북한 평양냉면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이 두 편 실려 있다.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을 즐기는 ‘평뽕족’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평양냉면을 둘러싼 논쟁점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곳에는 해설을 첨부해 두었다.
“이제 평화의 상징이 바뀌었다. 비둘기가 아닌 평양냉면이다.”
외국 언론이 전한 한 국내 네티즌의 말이다.
버킷리스트에 평양냉면을 적어두는 일은 작지만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일 것 같다.

저자 소개

  • 저자 : 김남천, 백석, 최재영
지은이 : 김남천
1911년 평남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고,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31년에 제적되었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출옥 후에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에도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 임화·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

8.15 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해주 제일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활동을 주도하였으며,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1953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로동당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지은이 : 백석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은이 : 최재영
안양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에서 Fuller Theology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D.MIN.GM) 과정을 마쳤다.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 소재 The Light of Glory Church 담임목사로 있으며, 동북아시아 선교와 통일운동을 병행하는 단체인 미국‘New Korea Vision 2020’대표, 미국 손정도목사학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머리말



우리 음식 문화 가운데 소울 푸드를 하나만 들라 하면 주저 없이 냉면을 꼽겠다. 냉면은 우리 음식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천여 년의 역사를 꼽는 연구자들도 있다.
냉면은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음식이다. 꾸미와 고명을 얹은 채 웅숭깊은 냉면 국물 속에 똬리를 튼 면발의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본디 국수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냉면은 국수보다 더한 공력을 필요로 한다. 형언할 수 없는 수고로움을 딛고서야 마침내 냉면 한 그릇의 소중함은 의미를 얻는다.
시인 백석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는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이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온다고 노래했다. 이토록 공력이 많이 가는 음식을 서민이고 양반이고, 궁중에서고 두루 즐겼다.
냉면은 본시 겨울 음식이었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내릴 때 ‘꽁꽁 언 김치 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 만 냉면을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정경이 지금이야 낯설 수밖에 없지만, ‘혀를 울리는 쩌르르한’ 냉기로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던 역설의 지혜가 냉면의 문화 속에는 담겨 있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의 평양 모습을 그린 〈기성전도〉 속에는 매우 흥미로운 글귀가 보인다. 다름 아닌 ‘냉면가’ 표기다. 대동문, 부벽루 등의 명승지와 함께 냉면집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다. 같은 시기에 평양을 여행한 실학자 유득공은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과 돼지 수육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고 적었다. 그만큼 냉면이 널리 유행하였고, 겨울에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 순조 임금은 냉면을 궁궐 밖에서 테이크아웃해 오게 했다.
냉면이 우리 음식 가운데 가장 먼저 상업화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냉면집은 평양에 제일 먼저 들어서고, 이어 서울로 진출하였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시작된 냉면집은 서서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도시화가 촉진됨에 따라 1910년대 후반 무렵 평양에는 큰 규모의 냉면 거리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다시 한 번 평양냉면은 경성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진군해 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배달 음식의 천국이라 일컬어진다. 그 뿌리는 20세기 초반 평양과 경성에 들어선 냉면집이었다. 중머리라 불린 냉면 배달부들이 한 손에 배달 음식이 담긴 큰 목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곡예하듯 자전거를 운전하는 이색적인 모습은 나혜석과 안석영의 드로잉으로 남아 있다.
수천 년, 수백 년을 이어온 음식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다. 음식은 곧 그 문화를 배태해 낸 민족의 삶과 문화의 젖줄이다. 우리의 혼이 깃든 음식이자 가장 오랫동안 밥상의 주인공이었던 밥이나 김치는 다른 음식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 밥은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또 아무리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다 할지라도 김치만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는 없다.
냉면은 주식의 대용이 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음식이다. 냉면이 오래전부터 식도락가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었음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냉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삼십대 젊은 층에도 냉면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
냉면 마니아들에게 냉면이란 단연 평양냉면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스스로를 '평뽕족’(‘평뽕’이란 평양냉면의 중독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부르며, 냉면집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지난 4월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등장한 옥류관 냉면 때문이다. 거무스름한 면의 빛깔과 다진 양념을 보고 아연실색한 평뽕족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스레 ‘정통’ 논쟁이 불붙게 되었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이 평양냉면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으며, 북한의 평양냉면은 그 원형을 상실했다는 주장이다.
남한의 평양냉면집들은 해방과 한국전쟁기에 남으로 이주한 평양 사람들에 의해 뿌리를 내렸다. 이른바 평양냉면의 제3차 진군이다. 평양냉면의 3차 진군에 의해 그 이전까지 수십 년 아성을 누리던 냉면집들은 경쟁에서 도태되었다.
평양냉면은 지금 가장 ‘핫’한 음식이 되었다. 해외에서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더불어 유사 이래 가장 큰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조만간 평양냉면의 제4차 진군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서울과 평양의 평양냉면 가운데 누가 이길까. 미리부터 조바심이 나고 자못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평양냉면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평양냉면의 탄생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정을 집대성하였다. 얇은 책 한 권에 집대성이란 표현은 과한 듯 여겨질 수 있지만, 냉면이 등장하는 의미 있는 1차자료를 망라했다는 점을 표현한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1부는 김소저와 김남천의 글로 대표되는 평양냉면을 예찬하고 자부심이 묻어나는 글이다. 2부에서는 냉면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냉면이 등장하는 최초의 옛 기록에서부터 최근까지의 글을 통해 냉면이 어떻게 탄생하고 이어져왔는지를 살핀다. 3부는 냉면을 다룬 문학작품을 모았다. 눈길이 가는 것은 1917년에 발표된 유종석의 〈냉면 한 그릇〉이다. 근대문학전집 속에 들어 있다 해도, 음식사 연구에서는 그 존재조차 모르다시피 하던 작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4부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평양냉면 기행이다. 오늘의 북한 평양냉면의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글이 두 편 실려 있다.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을 즐기는 ‘평뽕족’에게는 더없이 유익한 책이 될 것이다.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출처를 명확히 해두었기 때문에 평양냉면을 둘러싼 논쟁점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곳에는 해설을 첨부해 두었다.
“이제 평화의 상징이 바뀌었다. 비둘기가 아닌 평양냉면이다.”
외국 언론이 전한 한 국내 네티즌의 말이다.
버킷리스트에 평양냉면을 적어두는 일은 작지만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일 것 같다.



책 속에서


꽁꽁 언 김치죽을 뚜르고 살얼음이 뜬 진장김칫국에다 한 젓가락 두 젓가락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이요, 상상이 어떻소! -17쪽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 “차나 마시러 갈까” 하면, “여보, 차는 무슨 차, 우리 냉면 먹으러 갑시다.” 하고 앞서서 냉면집을 찾았다. 모든 자유를 잃고 그러므로 음식물 선택의 자유까지를 잃었을 경우에 항상 애끓는 향수같이 엄습하여 마음을 괴롭히는 식욕의 대상은 우선 냉면이다. -21쪽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38쪽


평양에서는 당시 냉면이 크게 유행하였다. … 조선 후기의 평양성을 그린 〈기성전도〉箕城全圖에 ‘냉면가’(냉면집)가 표시되어 있을 정도다. 19세기 초중엽 서울에서 생활한 조두순은 “이웃집 고운 여인네 새로 배운 음식 솜씨 뽐내니 평양냉면이 사람의 목구멍을 즐겁게 해주네”라고 노래하였다. -58쪽


비운의 황제 고종은 냉면 마니아였다. … 고종이 냉면을 찾으면 나인들이 궁궐을 나가 대한문밖 국수집에서 사리를 사왔다. 면만 테이크아웃한 것이다. 고명과 육수는 궁궐 수라간에서 만들었다. 임금이 좋아하는 음식을 궁궐에서 모두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온 이유는 그 시절에 그만큼 외식업이 발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67쪽


일제강점기 냉면집의 특색은 배달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처럼 음식 배달업이 발달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 뿌리는 100여 년 전의 냉면 배달부에서 시작된다. 냉면 배달부를 지칭하는 ‘중머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이채를 띠는 직업이었다. 화가 나혜석과 신문 만평으로 유명한 안석영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중머리의 배달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한 손으로 냉면 그릇과 주전자를 가득 얹은 목판을 받친 채 나머지 한 손만 가지고 자전거를 운전하는 모습이다. -91쪽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버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 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 - 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03쪽

옥류관에 오면 일단 ‘국수(랭면) 맛’을 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난간으로 나가서 대동강 ‘풍경 맛’을 봐야 합네다. 세 번째로는 밖으로 나가서 옥류관 ‘건물 맛’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옥류교로 이동해 시원한 대동강 ‘바람 맛’을 보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옥류약수터 ‘약수 맛’을 보면 됩니다. 그래야 옥류관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맛보신 겁네다. -195쪽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평양냉면 예찬

사철 명물: 평양냉면 김소저
냉면 김남천
냉면의 ‘고향’은 평양
평안도는 냉면 나라 차상찬
국수 백석
평양랭면 제일이야

2부 냉면의 역사를 보듬다

평양 찬샘골에서 유래한 평양냉면
첫 기록 속의 냉면은 자장냉면
다산 정약용, 냉면을 부러워하다
메밀국수의 등장
냉면 테이크아웃은 언제 시작되었나
전국 요리로 진화하다
냉면집 깃발이 철을 만난 듯
냉면 레시피와 조리법
동치미 국물 냉면은 별맛
냉면 배달부의 천국: 불경기 중의 냉면 대풍년
MSG 냉면의 역사: 아지노모토의 상술에 놀아나다
눌러 먹고 사는 사람
서울냉면
냉면은 평화의 상징

3부 냉면, 문학이 되다

냉면 한 그릇 유종석
냉면 김랑운
유경식보柳京食譜 이효석
유령의 종로 이태준
복덕방 영감 이태준
비밀 가정 탐방기: 냉면 배달부가 되어 야광생

4부 냉면 기행

조선 명물 평양냉면 유지영
38선을 넘어 찾은 평양냉면집 선우진
눈물로 삼킨 옥류관 냉면 심혜진
북한의 별미를 찾아서 최재영

부록 세상의 모든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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