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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시간 문득 멈춰선 그곳에 잠시 나를 내려놓다

이효석, 백석, 이상 외 저 | 홍재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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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330002 / 220쪽 145 x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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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우리 문학을 빛낸 큰 별들의 휴식 에세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문인들의 소확행

이효석, 백석, 이상, 한용운, 이태준, 정지용 등 우리 문학을 사로잡은 큰 별들이 피서지에서 보낸 글을 엮은 휴식 에세이. ‘출세’와 ‘욕심’이 아닌 ‘느림’과 ‘비움’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꿈꾸었던 문인들의 이야기는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선물한다. 문인이기에 앞서 삶의 선배로서 삶의 요소요소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우리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책 여기저기에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1930~40년대 피서지 풍경과 낭만, 서정 역시 짙은 페이소스를 낳는다. 80여 년의 시공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피서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닌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자 새로운 도약의 기회였다. 이에 한가한 곳을 찾아가 삶을 되돌아보며 재충전하기도 했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장소와 성찰 방법만은 그들의 개성처럼 천차만별이었다.

출판사 리뷰

‘출세’와 ‘욕심’이 아닌 ‘느림’과 ‘비움’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었던 우리 문학의 큰 별들이 피서지에서 보내온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문장 1941년 8월 5일 오전 8시 50분. 만해 한용운은 서울발 원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만원 승객으로 인해 차 안 공기는 후끈하고 불결했지만, 환갑을 넘긴 만해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다음 날, 원산 갈마역에서 내린 만해는 명사십리(明沙十里)로 향했다. 명사십리는 그 이름 그대로 가늘고 흰 모래가 십 리에 걸쳐 있고, 해송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천혜의 해수욕장이었다. 또한, 해안 남쪽에는 서양인 별장 수십 호가 있고, 해수욕 절기에는 동경, 상해, 북경 등지의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피서할 만큼 당시 최고의 휴양지였다. 그곳에 이르러 만해는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급히 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명사십리와 인근에 있던 송도원 해수욕장을 오가며 해수욕을 했다. 그만큼 만해는 피서의 일환으로써 해수욕을 즐겼다. 심지어 해인사 순례 길에도 짬을 내 해운대에 들렀을 정도였다. 〈명사십리〉라는 글을 보면 만해가 ‘모든 방면으로 시끄럽고 성가시던 서울을 뒤로 두고’ 모처럼 명사십리 바닷가에서 얻은 마음의 평화가 글 곳곳에 배어 있다. 특히 ‘짓궂은 물결은/ 해죽해죽 웃으면서/ 한 발로 모를 차고/ 한 발로 샘을 짓는다’라는 대목에 이르면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미소 짓는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하다. 이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던 근엄하고 엄숙한 만해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친 마음과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했던 문인들의 행복 통신 8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잔잔한 서사와 진한 서정의 페이소스! 《성찰의 시간》은 이효석, 백석, 이상, 한용운, 이태준, 정지용 등 우리 문학을 사로잡은 큰 별들이 피서지에서 보낸 글을 엮은 휴식 에세이다. ‘출세’와 ‘욕심’이 아닌 ‘느림’과 ‘비움’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꿈꾸었던 문인들의 이야기는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선물한다. 책 여기저기에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오롯이 펼쳐지는 1930~40년대 피서지 풍경과 낭만, 서정 역시 짙은 페이소스를 낳는다. 80여 년의 시공간의 흐름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름 해수욕장은 어지러운 꽃밭이다. 청춘을 자랑하는 곳이요, 건강을 경쟁하는 곳이다. 파들파들한 여인의 육체, 그것은 탐나는 과실이요, 찬란한 해수욕복, 그것은 무지개의 행렬이다. 사치한 파라솔 밑에는 하얀 살결의 파도가 아깝게 피어 있다. 해수욕장에 오는 사람들은 생각건대 바닷물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청춘을 즐기고자 함 같다.” ─ 이효석, 〈계절〉 중에서 그들에게 있어서 피서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닌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자 새로운 도약의 기회였다. 이에 한가한 곳을 찾아가 삶을 되돌아보며 재충전하기도 했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즐겨 찾는 장소와 성찰 방법만은 그들의 개성처럼 천차만별이었다. 예컨대, 만해 한용운 같은 이는 해수욕을 통해 심신을 단련했고, 이효석은 날마다 손수 만든 밤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지고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가 외로움을 즐기는 방법으로 피서를 했다. 또한, 춘원 이광수는 시원한 돌베개 하나에 의지해 순전히 집에서 더위를 피했고, 이상은 요양을 위해 지인의 고향에서 여름을 보내며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는 〈산촌여정〉을 썼다. 문인이기에 앞서 삶의 선배로서 삶의 요소요소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우리 앞에서 직접 이야기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꿈을 찾아 정처 없이 내닫고 싶은 마음, 한정 없이 간 곳에 필연코 찾는 꿈이 있으려니 짐작됩니다. 혹 없을지도 모르지요. … (중략) … 사람이란 천생 외로운 물건입니다. 외로운 속에서 모두 각각 자기의 꿈을 껍질 속에 싸가지고 궁싯궁싯 서글픈 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 이효석, 〈바다로 간 동무에게〉 중에서 “인생이란 결국 물가의 모래 위에 써 놓고 가는 허무한 기록인가. 하지만 그것은 바닷물에 씻기고 또 씻기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좀 더 크게, 좀 더 길게 써 놓고 가려고 애쓰며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 노천명, 〈해변단상〉 중에서 그들은 크고 허황한 꿈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확행’을 꿈꾸었다. 생각건대, 그들 역시 거기서 진정한 삶의 기쁨과 존재의 의의를 느꼈으리라. 이제 곧 피서 시즌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친 마음과 몸을 위로할 소중한 기회다. 나아가 그것을 기회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름휴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문인들이 그랬듯이 나만의 ‘소확행’을 이뤄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 소개

  • 저자 : 이효석, 백석, 이상 외
이효석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은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작은 경향문학의 성격이 짙어 ‘동반자 작가’로 불렸다. 첫 창작집 『노령근해』를 통해 자신의 프롤레타리아 이념을 추구하는 문학적 지향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 무렵부터는 순수문학을 추구하여 향토적, 이국적, 성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1933년부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여 이 해에 「돈(豚)」 「수탉」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1936년 「산」 「분녀」 「들」 「메밀꽃 필 무렵」 「석류」, 1937년 「성찬」 「개살구」, 1938년 「장미 병들다」 「해바라기」, 1939년 「황제」 「여수」 등의 단편을 발표하며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 갔다. 『화분』(1939), 『벽공무한』(1940) 등의 장편도 발표했는데,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일어로 장편소설 『녹색의 탑』(1940)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쓰기도 했다.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이효석문학관이 건립되어 있다.

백석
1912년 7월 1일(음력 추정) 평북 정주군 갈산면 익성동 1013호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 이봉우(李鳳宇)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난 시인 백석(白石)의 외모는 한눈에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을 봐도 그의 모습은 매우 모던하다. 서구적 외모에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면 그의 머리 모양은 참 특이하다. 1930년대에 그런 머리를 할 수 있는 감각이란 얼마나 현대적인가? 옛사람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는 시쳇말로 외모와 문학을 새롭게 디자인한 모던 보이이자 우리말의 감각을 최대치로 보여 준 시인이다. 본명은 기행(夔行)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연(基衍)으로도 불렸다. 필명은 백석(白石, 白奭)인데 주로 백석(白石)으로 활동했다.
1918년(7세), 백석은 오산소학교에 입학했다. 동문들의 회고에 따르면 재학 시절 오산학교의 선배 시인인 김소월을 매우 선망했고, 문학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9년 오산 고등보통학교(오산학교의 바뀐 이름)를 졸업하고 1930년 ≪조선일보≫의 작품 공모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을 응모,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문단에 데뷔한다. 이해 3월에 조선일보사 후원 장학생 선발에 뽑혀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한다.
1934년 아오야마학원을 졸업한 뒤 귀국해 조선일보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성 생활을 시작한다. 출판부 일을 보면서 계열잡지인 ≪여성(女性)≫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일보≫ 지면에 외국 문학 작품과 논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1935년 8월 30일 시 <정주성(定州城)>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창작 활동을 시작하는 한편 잡지 ≪조광(朝光)≫ 편집부에서 일한다.
1936년 1월 20일 시집 ≪사슴≫을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다. 1월29일 서울 태서관(太西館)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발기인은 안석영, 함대훈, 홍기문, 김규택, 이원조, 이갑섭, 문동표, 김해균, 신현중, 허준, 김기림 등 11인이었다. 1936년 4월,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의 영어 교사로 옮겨 간다.
1940년 1월 백석은 친구 허준과 정현웅에게 “만주라는 넓은 벌판에 가 시 백 편을 가지고 오리라”라는 다짐을 하고 만주로 향한다. 1940년도에 들어와 백석은 한국 현대시 최고의 명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힌다. 시적 반경도 역사적·지리적·정신적으로 대단히 깊고 넓어지기 시작한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신의주에서 잠시 거주하다 고향 정주로 돌아가 남의 집 과수원에서 일한다. 1946년 고당 조만식 선생의 요청으로 평양으로 나와 고당 선생의 통역 비서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김일성대학에서 영어와 러시아어를 강의했다고 전해진다. 그해 10월 ≪학풍≫ 창간호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발표한 것을 끝으로 남한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취한 1988년까지 그의 모든 문학적 성과와 활동이 완전히 매몰되고 만다.
한국전쟁 직후 백석은 평양 동대원 구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외국 문학 번역 창작실’에 소속되어 러시아 소설과 시 등의 번역과 창작에 몰두한다. 1962년 10월 북한의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96년 1월 7일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김해경)
이상(李箱, 1910-1937)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은 1932년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구인회의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우하며 문단과 교우를 맺었으며 이태준의 주선으로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를 연재하였으나 난해함에 항의하는 독자들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이상의 문학에는 억압되고 좌절된 욕구를 가진 무력한 자아의 불안과 공포 및 탈출 시도, 그리고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한 자기 분열과 비합리적인 내면세계가 그려져 있어 흔히 난해한 초현실주의적인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기존 문학의 형태를 해체하여 이전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로 구축한 작품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책 속에서

꿈을 찾아 정처 없이 내닫고 싶은 마음, 한정 없이 간 곳에 필연코 찾는 꿈이 있으려니 짐작됩니다. 혹 없을지도 모르지요. … (중략) … 사람이란 천생 외로운 물건입니다. 외로운 속에서 모두 각각 자기의 꿈을 껍질 속에 싸가지고 궁싯궁싯 서글픈 평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 이효석, <바다로 간 동무에게> 중에서

현실과 꿈 사이에 거리가 있고 그 거리가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한 이 심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은 갖가지 욕심과 감정을 이럭이럭 정리할 수 있는 것이나 … (중략) … 늘 가슴을 빠지지 태우고 가만히 눈물을 흘리면서 실마리가 진할 때까지 그대로 참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밖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 이효석, <바다로 간 동무에게> 중에서

산천도 인물과 다름없다. 시대와 환경을 잘 만나야 그 이름이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다.
- 최서해, <해운대> 중에서

인생이란 결국 물가의 모래 위에 써 놓고 가는 허무한 기록인가. 하지만 그것은 바닷물에 씻기고 또 씻기는 동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좀 더 크게, 좀 더 길게 써 놓고 가려고 애쓰며 허덕이고 있지 않은가.
- 노천명, <해변단상> 중에서

근심이 나를 제외한 세상보다도 훨씬 큽니다. 갑문을 열면 폐허가 된 이 육신으로 근심의 조수가 스며들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메소이스트’ 병마개를 아직 뽑지 않으렵니다. 근심은 나를 싸고돌며, 그러는 동안 이 육신은 풍마우세로 저절로 다 말라 없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 상, <산촌여정> 중에서

여행이란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고 사무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정(旅情)을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이다. … (중략) … 그도 계획을 한다거나 결의를 한다면 벌써 여정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깐, 한 번 척 느꼈을 때는 출발이다.
- 이육사, <산사기> 중에서

제가 그물을 떠나 놓고 그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 사람의 장난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지어서 괴롭게 만들어 놓고 괴로워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이 인생 본래의 사는 재미인지 모른다.
- 계용묵, <정릉일일> 중에서

목차

프롤로그 문인들의 소확행 ─ 문득 멈춰선 그곳에 잠시 나를 내려놓다

PART 1 쪽빛 바다에서 나를 만나다
─ 바다, 강에서 보내온 소확행 통신

피서지의 하루 ─ 이태준
동해(東海) ─ 백석
명사십리(明沙十里) ─ 한용운
소하일기(銷夏日記) ─ 이효석
처녀 해변의 결혼 ─ 이효석
바다로 간 동무에게 - 이효석
인물보다 자연이 나를 더 반겨주오 : 피서지 통신① ─ 이효석
계절을 다시 역행하는 듯하오 : 피서지 통신② ─ 이효석
관북의 평야는 황소 가슴 같소 : 피서지 통신③ ─ 이효석
해초 향기 품은 청춘의 태풍 : 피서지 통신④ ─ 이효석
비응도의 쾌유 ─ 채만식
백마강의 뱃놀이 ─ 채만식
어촌점묘(漁村點描) ─ 강경애
천렵(川獵) ─ 계용묵
동해 사장(沙場)의 신비한 밤 ─ 김상용
여름과 물 - 최서해
해운대 ─ 최서해
해변단상 ─ 노천명

PART 2 푸른 솔숲에서 나를 만나다
─ 산, 고향집에서 보내온 소확행 통신

가장 시원한 이야기 ─ 정지용
산촌여정 ─ 이상
산사기 ─ 이육사
정릉 일일 ─ 계용묵
피서의 성격 ─ 계용묵
향산기행 ─ 노천명
금강산 정조(情調) ─ 현진건
산가일기 ─ 노자영
세심천의 달밤 ─ 노자영
여름날의 추억 ─ 노자영
고향의 여름 ─ 노자영
여름밤 농촌의 풍경 점점(點點) ─ 강경애
여름 풍경 ─ 채만식
돌베개 ─ 이광수
삼방에서 : 피서지 통신① ─ 유치진
석왕사에서 : 피서지 통신② ─ 유치진

에필로그 냉면 한 그릇의 행복 ─ 김남천, 〈냉면〉

원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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