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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아온 나날

조지 고든 바이런 외 저 | 피천득 역 | 민음사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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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75313 / 92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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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대한민국 1세대 대표 영문학자이자 시적 산문의 대가 피천득 그가 직접 번역하고 엮은 세계 명시 선집 ● 여유와 기쁨이 사라진 오늘을 사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피천득의 다정하고도 다감한 선물 피천득의 번역 시 선집 『착하게 살아온 나날』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본래 『내가 사랑하는 시』(1997)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나 이번 개정판에서 제목과 목록 구성을 바꾸고 미발표 번역 시도 수록했다. ‘착하게 살아온 나날’은 본문에도 수록된 바이런의 시 「그녀가 걷는 아름다움은」의 한 구절로, 피천득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시의 마음과 시인의 자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을 누르고 이겨야 할 수 있는 세계에서 시는 사실 잘 읽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오히려 시를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착하게 살아온 나날』은 피천득이 여유와 기쁨이 사라진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다정하고도 다감한 선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미소, 연한 얼굴빛은 착하게 살아온 나날을 말하여 주느니 모든 것과 화목하는 마음씨 순수한 사랑을 가진 심장 ―조지 고든 바이런, 「그녀가 걷는 아름다움은」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수필가로 알려져 있으나 피천득은 시로 문학을 시작했고, 그 기저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애송했던 동서양 유수의 시들이 있다. 피천득의 작품 전반에 드리워진 “순수한 동심”과 “맑고 고매한 서정성”의 발현은 그곳에서부터다. 1부 ‘천사도 아니지만’에는 피천득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가운데서도 가장 애송하는 시편을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것과 새롭게 윤문한 것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한국 정서에 맞게 14행 정형시를 3·4조와 4·4조로 번역한 ‘셰익스피어 소네트 다시 쓰기’는 피천득의 번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2부 ‘사랑이 기울 때’에는 피천득에게 시인의 꿈을 심어 준 바이런, 워즈워스, 예이츠, 디킨슨 등 서양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번에 추가된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 세 편과 마찬가지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명시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3부 ‘돌아가리라’에는 도연명, 두보, 보쿠스이, 타고르 등 동양 시인들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사사로운 감정을 제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행간들을 천천히 좇다 보면 마음에 와닿는 한 편의 여유와 한 줌의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자르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 산 공기가 석양에 맑다 날던 새들 떼 지어 제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진정한 의미가 있느니 말하려 하다 이미 그 말을 잊었노라 ―도연명, 「음주(飮酒)」 이처럼 “그 어떤 현실의 속리와도 결탁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며 위대한 정신세계를 구축”한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기 위해 피천득은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시인이 시에 담아둔 본래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을 것. 둘째, 우리나라의 시를 읽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번역할 것. 그는 ‘정서의 번역’을 염두에 두고 한국 독자들이 세계 명시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토착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정정호 중앙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는 피천득의 번역을 “영문학자나 교수로서보다 모국어인 한국어의 혼과 흐름을 표현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토착적 한국 시인으로서의 번역”이라고 평가하며 \"그는 번역을 부차적인 작업으로 보지 않고 문학 행위 자체로 보았다.\"라고 말했다. 번역 시를 읽고 있음에도 우리말로 쓴 시를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좋은 것은 모름지기 나눠야 한다는 깨끗하고 천진한 마음으로, 그는 ‘사랑의 수고’를 자처했다. ● 한국 시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세계시인선 1970-1980년대에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이에 차서, 우리 독자는 낯선 번역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언어 실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시문학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세계시인선이다. 민음사는 1966년 창립 이후 한국문학의 힘과 세련된 인문학, 그리고 고전 소설의 깊이를 선보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특히 민음사가 한국 문단에 기여하며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바로 ‘세계시인선’과 ‘오늘의시인총서’였다. 1973년 12월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고은),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김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김주연),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정현종) 네 권으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회장이 고 김현 선생에게 건넨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보는 외국 시인의 시집이라는 게 대부분 일본판을 중역한 것들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 신뢰가 안 가네. 현이(김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프랑스나 독일에 다녀온 이들 아닌가. 원본을 함께 실어 놓고 한글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 볼 생각이 없는가?” 대부분 번역이 일본어 중역이던 시절, 원문과 함께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시작함으로써 세계시인선은 우리나라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당시 독자와 언론에서는 이런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요, 또 책임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일이라 이제는 안심하고 세계시인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계시인선은 출판 역사상 가장 오랜 수명을 이어 온 문학 총서의 하나이자 시문학계와 민음사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숨어 있는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저자 소개

  • 저자 : 조지 고든 바이런 외
저자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년 1월 22일 영국의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의 빈축을 사 악명이 높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잭은 이런 바이런 집안의 전형적인 인물로 재혼을 한 후에도 다시 방탕한 생활을 하고서 가족을 버리고 프랑스로 도피해 거기서 비참하게 객사하고 말았다. 그러자 캐서린은 세 살 난 외아들 바이런을 데리고 그녀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애버딘(Aberdeen)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애버딘으로 가서 적은 수입으로 세를 얻어 살았던 그는, 절름발이라는 사실에 매우 민감했던 소년 시절에 애버딘 그래머 스쿨(Aberdeen Grammar School)에 다녔다. 그가 열 살 때 자식 없이 죽은 부도덕한 큰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남작의 작위를 물려받아 ‘바이런 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고 큰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자, 어머니는 그를 데리고 잉글랜드에 있는 본가인 뉴스테드(Newstead)로 돌아갔다. 변호사인 존 핸슨(John Hanson)의 도움으로 바이런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1799년 가을에 덜위치(Dulwich)에 있는 학교에 가기도 했다.
1801년에 바이런은 해로 스쿨(Harrow School)에 입학했고 곧이어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는데, 학창 시절 동안 학교 공부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시를 쓰고 소설과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또한 그는 선천적으로 불구인데도 운동을 좋아했고 술과 나쁜 친구와 천박한 여자들을 접하고 도박에도 손을 대 빚을 지는 등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휘그(Whig)당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1807년 여름 바이런은 그의 초기 시들을 묶어서 11월에 ≪덧없는 시편들(Fugitive Pieces)≫이라는 시집을 자비로 인쇄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에는 열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시집 ≪한가한 시간(Hours of Idleness)≫을 정식 출간했다. 하지만 이 시집이 <에든버러 리뷰(Edinburgh Review)>에 의해 혹평을 받자, 그는 1809년에 <영국의 시인들과 스코틀랜드의 비평가들(English Bards and Scotch Reviewers)>을 써서 비평가들을 통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해에 성년이 된 그는 1월에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귀족원의원이 되어 당시의 귀족 자제들의 관습에 따라 일찍부터 꿈꾸어 오던 유럽 대륙 여행길에 올랐다. 그는 포르투갈, 스페인, 몰타, 알바니아, 그리스, 콘스탄티노플까지 두루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체험하고 문학적인 시야를 넓힌 후 1811년 7월 14일 런던으로 귀국했다.
1812년 2월 27일에 바이런은 상원의원으로서 첫 연설을 했으며, 3월 초에 출간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는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1·2편은 2년간에 걸친 그의 유럽 여행에 대한 기행문인 셈인데, 이 시에서 주인공인 차일드 해럴드는 동방 제국을 순례하면서 보고 체험했던 이국의 풍물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래한다. 이 시는 바이런에게 “어느 날 아침에 깨어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뜻하지 않은 성공을 가져다주어서 미모의 청년 귀족 바이런이 휘그당 모임에서 명사 취급을 받도록 했으며, 영국 상류 사교계의 열렬한 갈채와 찬양을 받으며 여성들의 애모와 동경의 대상이 되어 그에게 무절제한 여성 편력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1813년에 ≪이단자(The Giaour)≫와 ≪아비도스의 신부(The Bride of Abydos)≫, 1814년에 ≪라라≫와 ≪해적(The Corsair)≫, 1815년에 ≪히브리 가곡(Hebrew Melodies)≫, 1816년에 ≪코린트의 포위(The Siege of Corinth)≫와 ≪파리지나(Parisina)≫ 등 수많은 걸작 시집들을 잇달아 출판하고 호평을 받았다.
바이런은 복잡했던 많은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안정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 1814년 9월 앤 이저벨라 밀뱅크와 1815년 1월 2일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되는 바이런의 가정적인 추문은 런던 사회 전체에 심각한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고 신랄한 비방을 자아내게 됨으로써 바이런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16년 4월 바이런은 이혼을 하고 유럽으로 떠나 스위스, 이탈리아의 도처를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는 생활을 했고,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유럽에서 지내는 도중 이탈리아 비밀 혁명 단체에 들어갔으며, 이탈리아인의 생활을 어느 때보다 가깝게 접하는 한편 신성동맹에 대한 반란 운동에도 참가했다. 그러면서 1816년과 1818년에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3·4편, 1816년에 ≪시용의 죄수 (The Prisoner of Chillon)≫, 1817년에 ≪베포(Beppo)≫와 시극 <맨프레드>, 1820년에 ≪단테의 예언(The Prophecy of Dante)≫과 ≪마리노 팔리에로(Marino Faliero)≫, 1821년에 ≪두 사람의 포스카리(The Two Foscari)≫와 시극 <카인(Cain)>, ≪심판의 계시(The Vision of Judgement)≫, 그리고 그의 필생의 대작인 ≪돈 주안≫을 1818년부터 1823년에 걸쳐 출간했다. 또한 시인 리 헌트(Leigh Hunt)를 계속 도왔고, 그가 편집하는 ≪리버럴(The Liberal)≫에 원고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1823년 4월 런던에 있는 그리스 위원회로부터 터키에 대항해서 독립 전쟁을 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을 돕는 요원으로 활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제 자유와 정의와 인류애를 위한 정치 운동에 정열을 불태우고자 했던 그는, 터키에서 독립하고자 하는 그리스의 독립 운동을 돕고자 스스로 원군을 조직해 7월 16일에 그리스를 향해 출범했다. 하지만 그는 1824년 1월 그리스의 미솔롱기(Missolonghi)에 상륙한 후 그리스 독립군 최고 사령관이 되어 터키와의 전투를 기다리던 중 불운하게도 열병에 걸렸고, 의사가 고집한 사혈 요법으로 인해 병이 더 악화되어 그해 4월 19일에 36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그리스 전체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곧 그는 그리스의 국가적 영웅이 되었다. 그의 유해는 영국으로 옮겨졌으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 안치가 거부되어, 7월 16일에 뉴스테드와 가까운 한 교회 묘지의 집안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45년 뒤인 1969년에 그를 추도하는 기념비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세워졌다.

역자 피천득
1910년 5월 29일 지금의 서울 종로에서 가죽신을 만들어 팔던 아버지 피원근(皮元根)과 어머니 김수성(金守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피천득이 태어나던 당시 부친 피원근은 한성(漢城)의 중심부, 즉 지금의 종각에서 종로 5가에 이르는 지역을 포함해 상당히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구한말의 거부(巨富)였는데, 피천득의 나이 여섯 살(1916) 때 사망하였다. 아홉 살 때 모친마저 세상을 뜬 이후 삼촌 집에서 성장했다. 모친을 여윈 1919년, 서울 제일고보 부속국민학교에 입학해 1923년 4학년을 수료하고, 같은 해 서울제일고보에 입학해 1926년 졸업했다.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뜻을 지닌 ‘금아(琴兒)’는 유년기부터 피천득의 집안과 교류가 있었던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호이다. 춘원의 권유로 16세 때인 1926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공보국중학교(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했는데, 이 무렵 평생의 정신적 스승이 된 도산 안창호를 만나게 된다. 1929년에는 상하이 후장대학(?江大學) 예과에 입학하고 이듬해인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처음으로 발표한 뒤 <소곡>(1931), <가신 님>(1932), 그리고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1931년에는 후장대학 영문과에 진학해 1937년 졸업한 뒤 귀국해서 미국계 석유회사 스탠다드오일사에 잠시 근무했다가 경성중앙상업학원 교사로 부임한다. 1945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수를 거쳐 1946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시를 강의했고, 1954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2007년 5월 25일 향년 9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선생은 1947년 ≪서정시집(抒情詩集)≫(상호출판사), 1959년 ≪금아시문선(琴兒詩文選)≫(경문사), 1969년 문집 ≪산호(珊瑚)와 진주(眞珠)≫(일조각),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사)을 출간했고 같은 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정음문고)을 번역·간행했다. 1980년에는 그간 발표한 산문과 시를 선해서 ≪금아문선(琴兒文選)≫과 ≪금아시선(琴兒詩選)≫(일조각)을 출판했고, 1993년에는 시집 ≪생명≫과 ≪삶의 노래≫(동학사), 1996년에는 수필집 ≪인연≫(샘터), 1997년에는 <피천득 문학 전집>, 2001년에는 영문판 시 수필집 ≪A Skylark≫(샘터)을 간행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1), 인촌상 문학부문(1995), 자랑스런 서울대인상(1999)을 수상한 바 있다.
부인 임진호(林珍鎬) 여사 사이에서 2남(세영, 수영) 1녀(서영)를 두었으며, 장남 세영은 연극배우 및 성우, 라디오 DJ로 활동하다가 캐나다로 건너가 30여 년을 살다 부친의 권유로 귀국해 경북 문경에서 수목원을 운영하고 있고, 차남 수영은 의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선생의 수필에 자주 등장하는 막내딸 서영은 도미(渡美)해 현재 보스턴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자 소개

수필가이자 시인이며 영문학자인 피천득 선생은, 1910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중국 상하이 호강대학 영문과를 졸업했습니다. 경성대학 예과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였고, 동심처럼 맑은 서정으로 주옥같은 작품들을 써왔습니다. 시집으로는 <서정시집> <금아시문선> <산호와 진주> 등이 있으며, 단 한 권의 수필집인 <인연>은 영원한 수필 교과서로, 스테디셀러로서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습니다.

목차

1부 천사도 아니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소네트』 29번
내 처지 부끄러워
『셰익스피어 소네트』 66번
그대를 두고 가지 않는다면
『셰익스피어 소네트』 73번
늦은 계절
『셰익스피어 소네트』 104번
미(美)는 이미 졌느니
『셰익스피어 소네트』 116번
사랑만은 견디느니
『셰익스피어 소네트』 130번
천사도 아니지만

2부 사랑이 기울 때
▶윌리엄 블레이크
『천진의 노래』―서시(序詩)
『천진의 노래』―유모의 노래
『천진의 노래』―양(洋)
▶윌리엄 워즈워스
외로운 추수꾼
그 애는 인적 없는 곳에 살았다
▶조지 고든 바이런
시용 성(成)에 부친 소네트
그녀가 걷는 아름다움은
▶알프레드 테니슨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
『인 메모리엄』 중에서
모래톱을 건너며
▶로버트 브라우닝
최상의 아름다움
피파의 노래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포루트갈 말에서 번역한 소네트』 23번
▶매슈 아널드
도버 해변
▶루퍼트 브룩
병사(兵士)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니스프리의 섬
하늘의 고운 자락
낙엽
수양버들 정원에서
그는 커류를 나무라다
굳은 맹세
▶랠프 월도 에머슨
콩고드 찬가(讚歌)
▶에밀리 디킨슨
나는 미(美)를 위하여 죽었다
나 황야를 본 적이 없다
▶크리스티나 로세티
이름 없는 귀부녀
내가 죽거든 임이여
올라가는 길
▶사라 티즈데일
수련(睡連)
잊으시구려
별

3부 돌아가리라
▶도연명
돌아가리라[歸去來辭]
전원(田園)으로 돌아와서
음주(飮酒)―제5수
▶두보
손님[客]
절구(絶句)
▶요사노 아키코
노래
▶이시카와 다쿠보쿠
노래
▶와카야마 보쿠스이
백조(白鳥)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기탄잘리』 36번
『기탄잘리』 60번

작품에 대하여: 날던 새들 떼 지어 제집으로 돌아온다(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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