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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해고하다

명인 저 | 삼인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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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4361399 / 208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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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삶의 자리가 달라질 때 얻을 수 있는 건, 지금 여기와는 확연히 다른 그럴싸한 대안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선 좀체 떠올리기 어려운 새로운 질문들이다. 도시의 삶이 잃어버린 질문을 되새겨주는 인문적 에세이 “부부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아이들은 학교까지 때려치우고 서울을 떠나 6년째 고흥에 살고 있다”면,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생각부터 하게 될까. 대개는 아이들에게 무책임하다, 이상주의다, 현실을 모른다, 얼마나 가나 보자, 한마디로 ‘미쳤다’? 아니면 나와는 뭔가 다른 사람들인가 보다, 대단하다, 부럽다 정도 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겉으로는 상반된 듯 보이는 두 반응에는 실은 공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는 통찰로 이 책의 첫 문단을 시작한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정치경제 ‘체제’로서도 굳건하지만 ‘삶의 양식’으로서도 완전히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좀처럼 상상조차 해보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귀농’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른바 생태적인 삶을 표방하며 점점 ‘가족’이나 ‘개인’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또렷한 어조로 말한다. 농민들의 삶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도시사람들에게 자주 화가 나지만, 도시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생태주의자들에게도 화가 날 때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나아가 비슷한 맥락에서 과학기술을 막연히 백안시하는 태도와 거리를 두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경계와 비판만큼이나 그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올레길을 걸으면서도 그 길을 같이 걸을 수 없는 장애인 벗들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그 까닭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도시에서 벗어나자’고 함부로 선동하지 않으며, 농촌에서의 삶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하지도 않는다. 여느 도시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동중독-소비중독에 치이다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고 도시 탈출이라는 쉽지 않은 결단으로 그 질문에 대꾸하긴 했지만, 그래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하기는커녕 ‘이러려고 시골에 왔나’라는 어쩌면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무거운 질문 앞에서 여전히 답을 찾아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저 정직하게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적어도 세상이 나를 바꾸진 못하게 하겠다며 서울을 떠났던 호기는 부끄러운 나 자신을 직면할 때마다 조금씩 꺾인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가 확신하던 모든 것들 앞에서 늘 멈칫거린다. 아니, 이제는 멈칫거림이 없는 모든 확신들을 의심한다. 흔들리는 것보다는 굳어진 것들이 더 두렵다.”라고 토로한다. 요컨대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농촌에서의 삶’이 아니라 그것이 저자에게 끊임없이 제기하는 ‘질문’들이다. 그리고 이 질문이 제기되는 방식은 섬세한 성찰을 기반으로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실천과 실험 속에 놓여 있다는 측면에서 지극히 문학적이다. ‘다람쥐 쳇바퀴’를 벗어나서야 떠올릴 수 있었던 질문들 종합인문교양지 ≪말과 활≫에 2013년 여름부터 2015년 가을까지 ‘남쪽으로 튀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9편의 글을 몸통으로 하여 책을 엮으면서 ‘에필로그’를 덧붙인 이 책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저자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깊어지고 넓어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떠나온 도시에서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핵발전소 새로 짓는 일에 밤낮 없이 몸 바치고 인터넷에선 핵발전소 반대에 서명하는”, “출근 전에 운동할 골프연습장 알아보면서 골프장 반대 투쟁에 후원금 보내는”, “우리 애들만은 자유롭게 자라라며 대안학교에 보내 놓고, 그 엄마라는 작자는 학원에서 열두시까지 남의 애들 잡아놓고 나도 왜 하는지 모르겠는 공부 시키는”, “사람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은 영혼을 팔아 번 돈으로 사서 때우는”……. 그리고 일단 이 노동중독-소비중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도시와는 전혀 다른 낯선 환경에 별다른 준비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면서야 비로소 그동안 어떤 질문들을 잊고 있었는지를 조금씩 새롭게 깨우쳐 나간다. 회사를 해고하고 도시를 탈출한 것은 결코 ‘답’이 아니라 정작 제대로 된 ‘질문’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동중독-소비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를 집요하게 질문한다. 따라서 그 질문들은 이른바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보다는 오히려 여전히 도시에 매여 ‘다른 삶’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다. 달리 말해, 끝없는 노동과 소비에 소진되어 가기만 하는 삶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어쩌면 흔히 착각하듯 도시화 이전의 ‘소박함’ 따위가 아니라 실은 삶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고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들을 도시 바깥으로 이끌어주는 친절한 안내자가 아니라, 도시에서 살든 그렇지 않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키면서 어떻게 그런 질문들이 만들어지는지 그 방법을 시범 보여주는 거울이다. 시골살이 6년째인 지금, 의식주의 생활로부터 노동, 교육은 물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이 직면한 문제들을 두루 훑어나가던 저자의 눈길이 닿아 있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여성’이다. 아무리 농촌이 예전과 달라졌다고는 해도 농사는 여전히 하늘에 달린 일이고 상호의존의 공동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더라는 데서. 매우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공동체가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는 배경을 짚어낸다. 그리고 전근대를 넘어서는 상호의존의 공동체, 그리고 근대를 넘어서는 평등한 개인의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화두를 떠올린다. 저자의 도시 탈출은 6년 전의 ‘과거완료’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 삶을 얼마나 망가뜨린 것일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은 고스란히 독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무엇 하나 명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오로지 더 발전되고 확장된 질문들로 더 풍성하게 변주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대체 자본주의는 우리 삶을 어디까지 얼마나 망가뜨린 것일까’라는 화두가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오며 ‘정말 이렇게 (지금까지처럼) 살아도 되는 걸까’를 더 자주 더 깊이 스스로 되묻게 된다. 그렇게 거듭되는 질문들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함으로써 ‘다른 상상력’의 토대가 튼튼해지고서야 우리는 더는 자본주의에 속박되지 않는 ‘다른 삶’은 과연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답할 실마리를 비로소 얻게 될 것이다. 지역에서 청소년 노동인권 분야의 활동가로 다양한 프로젝트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이 그 지난한 과정의 작은 디딤돌이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 소개

  • 저자 : 명인
명인
어릴 때부터 관심 분야가 다양해 열 재주 밥 굶는다는 지청구를 듣고 자랐다. 덕분에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는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가수, 뮤지컬 배우, 싱어송라이터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가 있는 풍경〉이라는 독집 음반을 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주로 배워서 남 주는 일로 먹고 살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노동교육을 연구하던 일을 끝으로 서울을 떠나 전남 고흥으로 이주했다.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인권교육활동가로 일하면서 지역의 교사들과 고민을 함께하기 위해 『교사와 손잡은 청소년노동인권』(공저)이라는 책을 썼다. 현재 한겨레에 〈지역이 중앙에게〉라는 꼭지의 칼럼을 쓰고 있는데 생각이 깊어지면 가끔씩 내가 중앙인지 지역인지 헷갈린다. 짓는 일과 사이를 잇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나이가 들면 오지랖을 줄이고 살림과 읽고 쓰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어왔는데 벌써 내일 모레가 오십이다.





책 속에서

시골에 와 살기로 한 우리의 결정은 벼락같이 내려진 편이지만, 그 이유나 과정을 굳이 되짚어보자면 참 멀리도 거슬러 올라간다. 내 나이 스물두 살.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나는 별안간 고학생이 되었고, 동시에 처녀가장이 되었다. 부모와 조모, 아직 어린 세 동생까지, 나말고는 아무도 우리 집에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과외, 학원 강사, 피아노 연주, 노래…… 투잡, 쓰리잡을 뛸 때도 있었다. 나는 당장 여기 막으면 저기 터지고 저기 막으면 여기 터지는 상황에 필요한 돈을 벌어야 했기에, 아직 학생 신분이라곤 해도 충분히 내 진로를 고민하고 준비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처지가 아니었다.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 받은 임금은 대기업 대졸 초봉에 비해도 훨씬 높은 편이었고 수입으로만 치자면 꽤 많은 돈을 번 셈이니 그나마 대단히 운이 좋았달까? 하지만 나는 근로계약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일했다. 나는 가끔씩 회식 자리에서 술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맞았고, 심지어 오빠라고 부르라는 호의(?)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건방지다며 술잔을 날려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나이, 학번, 군번…… 이런 것들로 만나기만 하면 순식간에 줄 세우기가 가능해지는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이 그 줄에 포함되는 길은 그런 방식으로만 가능하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해고를 각오하고 고소까지 하긴 애매한 성희롱은 일상다반사였다. 능력이 부족하면 무능해서 잘리고 능력이 뛰어나면 재수가 없다고 잘리기도 했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 사용자는 해고를 원치 않는데 줄 세우기에 달인인 남성 중간관리자들의 공작으로 이루어졌다. 억울하게 해고를 당해도 ‘부당해고’ 싸움은커녕 내가 ‘노동자냐, 아니냐’를 놓고 다퉈야 했고, 그런 싸움마저도 바닥이 드러난 통장잔고와 월세보증금 때문에 중도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다. 내 연봉이 얼마든 간에, 옆지기의 부양가족이 되기 전까지 4대보험 사각지대에 살았고, 실업급여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고백건대, 장기투쟁사업장에 연대하러 다닐 때 기나긴 그 투쟁의 처절함과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노조깃발을 갖고 있는 그들이 나는 부러웠다. 아이들이 생기니 그런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나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20대 땐 다른 사람보다 빨리 ‘프로’가 된 줄 알았던 나는 그저 흔하디흔한 미조직 비정규 여성노동자였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처지가 열악해지는 불안정 노동자였던 것이다.
p. 16-17

실시간으로 전 세계의 소식을 알 수 있는 정보화 시대, 우주를 탐사한다는 첨단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배가 기울면 무조건 갑판으로 뛰어올라가야 한다는 사실도, 구명조끼를 미리 입고 있으면 배에 물이 들어왔을 때 걸어서 탈출할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살고 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언급한 바 있지만, 구미에서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 위험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이 사고를 일으킨 회사도, 국가도, 고명하신 전문가도 아니고 한 사람의 ‘농민’이었다는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마을 이장이 소가 침을 흘리는 것을 보고 긴급히 마을 주민들을 대피하게 하였으나 국가는 엉뚱한 기준치를 적용해 안전 판단을 내렸고 주민들을 복귀시켰다고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새벽부터 밤중까지 학교로 학원으로 돌아치고 있지만 먹고, 입고, 쓰고, 살아가고, 위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는다. 오로지 몸으로 살 때만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더이상 우리에게 없다. 과학은 오로지 시험지에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 필요할 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우리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며 살 수 없고, 그 이치대로 살려면 하늘의 무늬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시골에 살아보니 과연 그렇다. 똑같은 밭에 농사를 지어도 해마다 결과는 완전히 다르고, 똑같은 바다라도 작년에 준 것과 올해 주는 것이 다르다. 아무리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사람의 무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매우 드물다. 사람과 마주 있어도 첨단 기계에만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돕고 기대야 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일엔 매우 무능하다. 관계의 실패를 제도에 기대거나 어떤 명분으로 뒤바꾸는 일도, 자기 말만 들어 달라는 징징거림을 공론화라 부르는 일도,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떠드는 일도 이제는 너무 흔한 일이 되었다.
자본주의는 정치경제적으로 확고부동해 보이는 ‘체제’임과 동시에, 우리의 24시간과 모든 공간을 지배하는 ‘삶의 양식’으로서도 굳건하다. 주로 후자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탈정치화 경향을 보일 때도 무척 답답하지만, 주로 전자에 도전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우리 삶의 양식을 바꾸는 일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엔 때로 절망감을 느낀다. P. 124~126

목차

프롤로그 : ‘다른’ 삶은 가능할까
‘귀농’도 ‘자발적 가난’도 아닌……
이 철부지들아
이 집은 먹는 거 하난 황제급이라니깐~
존경하다, 또는 다시 보다(re-spect)
내 인생 마지막 이사를 꿈꾸며
손이 전하는 말, 그리고 질문
돈, 돈? 돈!
밭에서 노동을 생각하다
꿈이 더 필요한 세상?
에필로그: 시골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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