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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9921421 / 2484쪽 213 x 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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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대만의 대표작가 우밍이가 선사하는 세월의 마술 사라진 타이베이의 랜드마크 ‘중화상창’ 그곳에서 펼쳐지는 열 편의 마술 같은 이야기 대만 최초로 2018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 우밍이 그의 첫 한국어판 소설집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는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 우밍이의 첫 한국어판 소설집으로 상가를 삶의 터전으로 하는 인간 군상들을 통해 생명력 가득한 80년대 타이베이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작품이다. 책에는 타이베이의 랜드마크로 불리다 1992년 사라진 상가 건물 ‘중화상창’을 배경으로 한 열 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 우밍이는 2018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었는데 후보 13명 중 아시아 작가는 한강과 우밍이 단 둘뿐이다. 우밍이는 대만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으며 이를 계기로 자신이 세계적인 작가임을 입증했다. 그의 책은 이미 9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서 우밍이의 작품은 에세이 한 권이 번역되어 나왔을 뿐, 소설은 정식 출간된 바 없었다.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를 통해 그의 소설이 처음 한국어로 번역돼 독자들과 만난다. 잔잔하고 따뜻한 필치와 몽환적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열 편의 이야기는 청춘 시절의 빛과 어둠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중화상창에 살았던 아이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비밀스럽게 털어놓고 그 성장통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발견한다.
중화상창中華商場은 총 여덟 동이었고 각각의 동은 충忠, 효孝, 인仁, 애愛, 신信, 의義, 화和, 평平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우리 집은 애동과 신동 사이에 있었다. 애동과 신동 사이에도 육교가 있었고, 애동과 인동 사이에도 육교가 있었다. 나는 애동과 신동 사이에 있는 육교를 좋아했다. 그 육교가 더 길었기 때문이다. 육교의 다른 쪽 끝이 번화가인 시먼딩西門町과 연결되어 있어 육교 위에 온갖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스크림, 아동복, 샤오빙燒餅, 와코루 속옷, 금붕어, 거북이, 자라, 심지어 ‘바다스님’이라는 이름의 파란 게를 파는 노점상도 있었다. _10쪽, <육교 위의 마술사>
맞은편 남자는 분필로 바닥에 둥근 반원을 그려놓고는 그 안에 검은 깔개를 펼치고 물건들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그가 무얼 팔러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포커, 쇠고리, 이상하게 생긴 공책 등등…. 누나에게 들으니 그 남자가 파는 것이 마술 도구라고 했다. 맙소사, 마술 도구를 판다고? 내 좌판의 맞은편에 마술 도구를 파는 사람이 있다니! “아냐. 난 마술사야.” 남자는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 물건들을 어디서 떼어 오느냐고 묻자 그는 “내 마술은 전부 진짜야”라고 말했다. 그가 제 짝이 아닌 듯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도마뱀을 닮은 눈으로 나를 힐긋 쳐다보자 저절로 뒷덜미가 선득해졌다. _12쪽, <육교 위의 마술사>
“그 전날 밤에는 옥상에 숨어 있었는데 내가 혼자 있는 걸 보고 마술사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어. 왜 그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얘기를 그 사람한테 다 털어놨어.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러더라. 정말로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어버리고 싶으면 그 변소 칸에 가서 99층 버튼을 누르라고.” _51~52쪽, <99층>
나는 그녀의 눈, 옆모습은 물론 그녀 몸의 다른 곳에도 매료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나의 첫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페이페이 방의 열쇠는 복제하지 않았다. 설령 열쇠를 복제하기만 하고 그 열쇠로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쁜 짓이었다. 페이페이 방의 열쇠는 오직 그녀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_79~80쪽, <돌사자는 그 일들을 기억할까?>
내 눈에 띄었다는 걸 알고 급하게 떠나버린 남자의 뒷모습이 우리 아빠를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그때 나는 그가 아빠라는 걸 확신했어. 어릴 적 아빠는 엄마와 싸울 때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매몰차게 몸을 돌려 나가버렸지. 그러다가 우리 둘만 남아 서로 대화를 하지 않게 된 후로 아빠는 나만 보면 불가사의할 만큼 단호하게 몸을 돌려 자리를 피했어. 그래서 얼굴을 보지 않고 뒷모습만으로도 아빠를 알아볼 수 있었지. 가끔은 얼굴을 보지 않을 때 상대의 슬픔을 더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어. 사람의 뒷모습은 앞모습보다 더 슬프고, 사람의 걸음은 눈빛보다 더 슬픈 법이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_100쪽.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이상하게도 그 후 얼마 동안 코끼리 분장을 할 때마다 만약 내 생활에 다시 개입한다면 거부하고 싶은 먼 기억
속 사람들이 자꾸만 내 앞에 나타났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주산 대회에서 내게 큰 상처를 주었던 수학 선생님, 고등학교 때 몰래 짝사랑했던 여대생, 초등학교 때 육교에 있던 그 추레한 행색의 마술사…. 내가 그렇게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줄은 나도 몰랐어. 잘라도 계속 또 자라는 머리카락처럼 자질구레한 일들을 말이야. 넌 그게 다 어디에 숨겨져 있었는지 생각도 못할 거야. _100~101쪽,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한번은 아허우가 양복점 앞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데 안경점 안에 있던 샤오란 누나가 밖으로 나와 치러우에 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안경점 안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몇 초마다 한 번씩 아허우가 있는 쪽을 흘끔거렸다. 나는 별안간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열한 살짜리 소년은 열아홉 살 남자와 경쟁할 수 없었다. 굴욕감이 나를 덮쳤다.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굴욕감이었다. 적어도 그 나이의 나는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_117쪽, <조니 리버스>
탕씨 아저씨의 양복점에는 다양한 색깔의 양복천이 있었지. 옷감 두루마리를 줄지어 세워놓았는데 각 옷감마다 작은 비닐 상표가 붙어 있었어. 제조사에 따라 디자인과 영어 글씨가 모두 달랐는데 우리 동 애들은 누가 더 희귀하고 근사한 상표를 모으는지 경쟁을 했어. 학교에 다녀오다가 탕씨 아저씨의 양복점 안을 휘 한 바퀴 돌며 아저씨에게 새 상표가 있느냐고 물었지. 하지만 새로 풀린 옷감이 없는 날에는 새로운 상표도 없었어. 흔치 않은 상표일수록 점수가 높았어. _190쪽, <탕씨 아저씨의 양복점>
아카가 귀국했을 때 중화상창은 이미 철거되고 없었어요. 중화상창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걸 아쉬워했죠.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기억들이 재가 되어 연기처럼 날아가버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더니 10년 전부터 중화상창의 미니어처를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그때 이미 아카의 폐는 화학 페인트를 너무 많이 흡입한탓에 병변이 시작되고 있었어요. 얼마 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자 아카는 모든 수입을 자신에게 쓸 수 있게 됐고 그때부터 벽돌, 기와, 점포 하나하나까지 직접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총 여덟 동 중 네 동 반밖에 만들지 못하고 작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_210~211쪽, <물처럼 흐르는 빛>
마술사가 옥상을 떠나던 날, 이른 새벽에 배가 아파서 일어나 변소에 똥을 누러 갔다. 변소 앞에 거의 다 왔을 때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코를 훅 덮쳤다. 그게 어떤 냄새였는지 지금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단, 그때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인 건 분명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술사가 변소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을 볼 수 있는 두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웃고 있는 듯 무표정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_238~239쪽, <자귀나무 아래의 마술사>
1. 육교 위의 마술사
2. 99층
3. 돌사자는 그 일들을 기억할까?
4. 햇빛이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5. 조니 리버스
6. 금붕어
7. 새
8. 탕 아저씨의 양복점
9. 물처럼 흐르는 빛
10. 자귀나무 아래의 마술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