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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삼열 자료집 3

시리즈 : 마포삼열 자료집 [4]

옥성득 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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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290225 / 954쪽 161 x 23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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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마포삼열 목사는 약관 26세인 1890년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1936년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평양을 중심으로 약 1천여 개의 교회와 3백여 개의 학교를 세웠고,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여 길선주, 한석진, 김익두, 주기철 등 8백여 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그의 이런 맹활약은 이른바 한국교회의 서북 교회권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으며 향후 한국교회는 서북권의 영향 아래 구도와 질서가 잡혀가게 된다. 따라서 그와 함께 동역했던 클라크 선교사가 마포삼열을 가리켜 “한국교회를 낳은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마포삼열 목사는 약관 26세인 1890년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여 1936년까지 한국에 머물면서 평양을 중심으로 약 1천여 개의 교회와 3백여 개의 학교를 세웠고,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여 길선주, 한석진, 김익두, 주기철 등 8백여 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그의 이런 맹활약은 이른바 한국교회의 서북 교회권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으며 향후 한국교회는 서북권의 영향 아래 구도와 질서가 잡혀가게 된다. 따라서 그와 함께 동역했던 클라크 선교사가 마포삼열을 가리켜 “한국교회를 낳은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는 평양을 세계 최대 선교지부로 발전시킨 20세기 최고의 선교사 중 한 명이자 한국교회의 영적 부모 및 스승이었던 것이다. 『마포삼열 자료집』 시리즈는 이제껏 한국교회에 공개되지 않았던 마포삼열 목사에 관한 엄청난 양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자신의 일생 전부를 한국 개신교 선교를 위해 온전히 바쳤던 위대한 신앙인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자료집은 마포삼열 목사의 며느리인 마애린 여사가 자기 가족이 한국에서 철수하여 미국으로 귀환한 후 짐을 정리하다 발견했으며, 그 후 마애린 여사가 20여 년에 걸쳐 직접 대학도서관에서 마이크로필름을 판독해가며 타이핑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런 헌신적인 수고의 열매로 탄생한 『마포삼열 자료집 제3권』이 올해 초 나온 1, 2권에 이어서 출간되었다. 한국교회 역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자료집을 통해 마포삼열 목사의 복음전도에 불타는 열정뿐 아니라 선교 지도자로서 그가 갖추었던 탁월한 통찰력과 식견 및 불굴의 의지 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초기 한국교회를 형성한 선교사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우리 민족을 뜨겁게 사랑했던 마음을 느끼면서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발을 딛고 살아갔던 한국 근대사의 굽이굽이 장면들도 함께 소개되며, 암울한 나라의 현실 앞에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하여 절망을 이겨내려고 했던 이 땅의 민초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마포삼열과 그의 가족 및 동료들이 남긴 편지와 선교 보고서, 언론 기사가 주를 이루는 이 자료집은 초기 한국교회사를 재구성하는 결정적인 1차 사료일뿐더러, 유실되어 더 이상 연구가 불가능한 광복 이전의 북한교회사의 실상을 가늠하게 할 수 있는 너무나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연대순으로 편집된 편지를 읽으면서, 인간의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실제로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얼마나 놀랍게 날줄과 씨줄로 직조되는 지를 경험하며 감동과 은혜를 누릴 것이다. 『마포삼열 자료집 제3권』은 1901년부터 1903년까지 마포삼열 부부가 뉴욕에 있는 미국 북장로회 해외선교부와 주고받은 서신, 한국선교회 연례 회의에 제출한 개인 연례 보고서, 잡지에 발표한 기사를 중심으로 연대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특히 마포삼열 목사의 아내가 질병으로 5개월간 미국의 부모 집에서 휴가를 보낼 때 마포삼열이 거의 매일 아내에게 쓴 편지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편지마다 마포삼열의 아내에 대한 뜨거운 사랑, 그의 헌신적인 평양 사역, 그리고 초기 한국교회의 역동적인 발전의 자세한 실상이 모두 담겨 있다. 그뿐 아니라 이 책에는 서울과 평양 주재 선교사간의 신학 및 선교정책의 차이로 인해 불거진 대형 병원 건립과 관련된 “병원 논쟁”에 관한 내용 등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한국교회의 성장과 형성과정에서의 산고를 가까이에서 느끼도록 해준다. 이 책은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는 전문 연구가 및 한국교회의 뿌리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목회자, 신학생, 신자 모두에게 주옥같은 자료가 될 것이다. 마포삼열(1864-1939) 평양을 세계 최대 선교지부로 발전시킨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 중 한 명이요 한국 장로교회의 영적 아버지다. 미국 하노버 대학과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26세에 내한하여 1890년부터 1936년까지 사역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1천여 교회와 3백여 학교를 세웠고,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설립하여 8백여 명의 목사를 배출했으며, 독노회 초대노회장과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3남인 마삼락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장과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를 역임했다. 마포삼열 목사 부부가 남긴 자료는 며느리 마애린 여사가 마이크로필름 등을 판독하며 20여 년간 타이핑 작업을 통해 정리한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작년 겨울 신실하게 출석한 한 젊은 여성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왔는데, 기독교인이 된 이후 친척 가운데 홀로 교인으로 지내면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처음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주일에 일하기를 거절하자 시어머니가 핍박했고, 교회에 계속 나갈 경우 7일 중 하루는 음식을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 교인이 자기 집에 초대한 두세 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4개월 동안 이 신실한 어린 여성에게 주일은 금식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친정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핍박은 받지 않았으나 온갖 조롱과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겨울 어느 수요일 오후에 교회 모임에 가다가 미끄러져서 팔을 심하게 다쳤고, 거의 두 달간 통증을 느끼는 것과 함께 팔을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집안사람들은 이런 불운을 가져온 것이 바로 기독교라고 보았으나, 양(梁) 씨 본인은 다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는 제가 얼마나 더 많이 공부하기를 원하는지 아실 거예요. 저는 이제 모든 모임에 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모든 모임에 왔습니다. 곧 집에서 일을 할 수 없는 동안 일주일에 4-5회 참석했습니다. 지금 그녀는 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며 정기적으로 시내 교회의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에 참석하고, 목요일에는 5월에 완성된 새 예배 처소에서 열리는 예배에 주변 이웃 여성들을 모아오는 일을 돕습니다. - 앨리스 피시 마페트의 1901년 9월 연례 회의 개인 보고서 중에서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와 국사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에서 신학 수업을 이어나갔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신학교(신학석사)와 보스턴 대학교 신학대학원(신학박사)에서 기독교 역사를 공부했다. 현재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임동순‧임미자 한국기독교학 석좌 부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근대사와 한국 종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한반도 대부흥』, 『대한성서공회사』(1,2권) 등이 있고, 편역서로는 『언더우드자료집』(전5권), 『대한성서공회역사 자료집』(전3권), 『목판화로 대조한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생애』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저는 연례 회의 이후 결정 사항에 대해 귀하께 편지를 쓰려고 했으나, 긴급한 일이 많이 일어났고, 두 번에 걸쳐 시골 여행을 했으며, 또 아내가 아파서 쓸 수 없었습니다. 올해 회의는 아주 좋았으며, 선교회의 보수적인 정책을 강하게 피력한 회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문제와 “부산”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두 가지 문제였습니다. 의료 문제에 대한 결정은 지혜롭고 시기적절했다고 증명될 것을 믿습니다. 필드 의사를 병원 외부 사역에 배정한 것과 병원에는 한 명의 의사만 있을 수 있다는 정책의 채택은 곤란하고 성가신 수많은 문제를 막아줄 것입니다. 반면 새 세브란스병원에 최고 수준의 장비 제공과 추가 간호원의 요청은 좋은 의료 시설을 위해 충분한 지원입니다. 에비슨 의사는 병원 부속 의학교의 설계도와 추가 의사 신청이 승인되지 않아서 심히 실망하고 있지만, 그의 설계도에 찬성한 자는 4명(에비슨 의사, 필드 의사, 무어 목사, 밀러 목사)뿐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공정하게 대면하고 자유로이 충분한 토론을 했을 때 선교회의 태도는 분명하게 정해졌습니다. 저는 작년에 그 주제에 대해 쓴 제 편지에서 선교회의 확신을 충분히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 마포삼열의 1901년 11월 30일 서신 중에서

나는 『차머스 전기』를 계속 읽고 있는데, 그 책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소. 엊그제는 마음에 와닿는 한 구절에 표시를 했는데, 그 구절이 지난주에 내가 세례 문답을 했던 한 남자에게 강조하려고 시도했던 바로 그 사상을 표현하고 있고, 또 우리가 자주 상기할 필요가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오. “나는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이 진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기독교인이라는 더 친밀하고 복잡한 이름을 능숙하게 부를 때 따라오는 평화와 기쁨과 즐거움은, 자신의 고결한 마음에 대한 자기만족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모든 것을 맡길 때 겸손히 순종하는 영혼이 신뢰하며 느끼는 평정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믿음 안에 있는 평화와 기쁨입니다. 그 평화는 우리의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크기 때문에 누리는 것입니다. 그 소망의 즐거움은 우리 가 스스로 성취한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초대의 진실성과 친절과 너그러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큰 곳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 마포삼열의 1902년 2월 3일 서신 중에서

헌트 목사와 미국 공사인 알렌 의사의 요청으로 언더우드 박사와 저는 이 도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저지른 탈법적인 행위에 대해 한국 정부가 명령한 조사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사제들로부터 보호를 받아 체포되지 않았던 가톨릭 신자들은 공포 통치 시대를 열었는데, 현감의 권리를 강탈하고 주민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고 고문하여 돈을 강탈했습니다. 그들은 순검이 자신들의 교인을 체포하면 석방시키고 순검을 구타하고 관리에게 도전하면서 모든 종류의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건물을 건축하기 위한 비용을 징수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모든 불법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제들로부터 보호를 받아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이 신부들은 제멋대로 주민들을 구타하고, 수감된 자들을 석방하며, 순검과 다른 관리들을 체포하여 끌고 와 처벌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강건한 개신교 신자들과 대결하면서 도를 넘었는데, 이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성당을 짓는 일에 돈을 내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고, 가톨릭 지도자들과 프랑스 신부들이 자신들을 체포하고 재판하며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8개월 동안 우리 기독교인들은 정식 한국 법원을 통해 공정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중앙 정부에 불만 사항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마포삼열의 1903년 2월 26일 서신 중에서

김종섭 장로와 방기창 장로를 심사한 후 공의회가 관리하는 목사 후보생으로 받았으며, 이로써 김 씨는 공부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얻고 목사의 조력자로서의 사역을 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직회는 그의 공부를 위해 그에게 여유 시간을 주기로 의결했고, 추가 조력자로서 길선주 장로의 시간의 절반을 확보하고 김 장로가 받던 월급 30냥의 반을 그에게 제공하며 나머지 반은 시골 교회에서 사경회를 인도하는 데 제공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제직회의 승인하에 국내 여전도회도 전도부인 신반석 씨가 다른 교회와 마을에 있는 여성들을 방문하고 지도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월급 10냥을 제공했습니다. 국내 여전도회가 급여를 책임지도록 승인받은 다른 여성들과 함께, 그녀는 7개 군에 있는 미조직교회 30여 곳과 많은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이 사역을 완벽하게 즐겼고, 시골 여 성들의 삶에서 일어난 복음의 승리에 대해 이야기하며 빛나는 얼굴로 매번 순회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 마포삼열의 1901년 9월 연례 회의 개인 보고서 중에서

작년 겨울 신실하게 출석한 한 젊은 여성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왔는데, 기독교인이 된 이후 친척 가운데 홀로 교인으로 지내면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처음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주일에 일하기를 거절하자 시어머니가 핍박했고, 교회에 계속 나갈 경우 7일 중 하루는 음식을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한 교인이 자기 집에 초대한 두세 번의 경우를 제외하면, 4개월 동안 이 신실한 어린 여성에게 주일은 금식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자 그녀는 친정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핍박은 받지 않았으나 온갖 조롱과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한겨울 어느 수요일 오후에 교회 모임에 가다가 미끄러져서 팔을 심하게 다쳤고, 거의 두 달간 통증을 느끼는 것과 함께 팔을 쓰지 못했습니다. 물론 집안사람들은 이런 불운을 가져온 것이 바로 기독교라고 보았으나, 양(梁) 씨 본인은 다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는 제가 얼마나 더 많이 공부하기를 원하는지 아실 거예요. 저는 이제 모든 모임에 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모든 모임에 왔습니다. 곧 집에서 일을 할 수 없는 동안 일주일에 4-5회 참석했습니다. 지금 그녀는 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며 정기적으로 시내 교회의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에 참석하고, 목요일에는 5월에 완성된 새 예배 처소에서 열리는 예배에 주변 이웃 여성들을 모아오는 일을 돕습니다.
- 앨리스 피시 마페트의 1901년 9월 연례 회의 개인 보고서 중에서

목차

간행사
기념사
편역자 글
서언과 감사 1
서언과 감사 2
서문
일러두기
약어표
서신
보고서
기사
가계도
연대표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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