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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봉별기·단발

시리즈 : 종이섬 사진소설 [4]

이상 저 | 종이섬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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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368665 / 116쪽 129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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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가운데 장지로 두 칸으로 나뉜 방. 「날개」의 그 유명한 삼십삼번지의 풍경이 묘사되면서 푸르고 검은 두 개의 공간과 두 마리 물고기의 이미지가 파고든다. 한 달 동안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은 깜깜한 방의 노란 전구 한 알로 더 가까워진다. 아담한 분홍색 꽃송이와 핑크빛 셔츠로 이상과 금홍의 만남이 스크랩되고(「봉별기」), 소녀의 여리고 날카로운 결심은 해 질 녘 단발한 소녀의 뒷모습으로 영화가 된다(「단발」). 천재 소설가 이상(李箱)의 단편에 사진을 더하다 종이섬 사진소설 시리즈 2 -『날개?봉별기?... 가운데 장지로 두 칸으로 나뉜 방. 「날개」의 그 유명한 삼십삼번지의 풍경이 묘사되면서 푸르고 검은 두 개의 공간과 두 마리 물고기의 이미지가 파고든다. 한 달 동안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은 깜깜한 방의 노란 전구 한 알로 더 가까워진다. 아담한 분홍색 꽃송이와 핑크빛 셔츠로 이상과 금홍의 만남이 스크랩되고(「봉별기」), 소녀의 여리고 날카로운 결심은 해 질 녘 단발한 소녀의 뒷모습으로 영화가 된다(「단발」). 천재 소설가 이상(李箱)의 단편에 사진을 더하다 종이섬 사진소설 시리즈 2 -『날개?봉별기?단발』 고전 텍스트의 맛을 그대로 살린 편집 그 틈을 파고드는 우리 시대 이미지들 젊은 문학을 만들어 나가려는 출판사 종이섬에서 ‘종이섬 사진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을 펴냈다. 천재 소설가/시인 이상의 「날개」, 「봉별기」, 「단발」을 한 권으로 묶고, 각 작품에 사진을 더했다(‘종이섬 사진소설’ 시리즈의 첫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여학생』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이상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문장은 이상 마니아들에게 ‘역시 이상(李箱)’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제목과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가까이 두고 즐기기에는 어딘가 난해하게 느껴졌던 이상의 대표작 「날개」,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이라는 금홍의 노랫가락으로 끝을 맺는, 이상과 금홍의 특별한 사랑과 이별을 그린 「봉별기」, 이상의 유고(遺稿)이며 ‘더블 수이사이드(Double Suicide)’를 꿈꾸는 남자와, 그와 줄다리기를 하는 당찬 소녀의 짧고도 강렬한 이야기인 「단발」. 세 작품을 각 작품이 처음 수록된 잡지의 원문을 최대한 살려 편집했다.이는 띄어쓰기만 현행 표기대로 정리하고 당시 표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독자는 마치 번역 소설을 원문으로 읽듯, 초판 특유의 표현과 문장의 맛을 만끽할 수 있다(마침표 디자인 역시 당시의 표기를 그대로 살렸는데, 그 느낌이 일부러 의도한 듯 신선하고 감각적이다). 텍스트 편집이 ‘과거 지향’이라면, 텍스트 사이사이로 사진이 과감하게 끼어들게 한 이미지 편집은 ‘미래 지향’이다. 내용과 긴밀하게, 때로는 유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진들은, 우리와 고전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며 우리 문학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게 한다.

저자 소개

1910년 9월 23일 새벽 6시경(음력 8월 20일 묘시경)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에서 아버지 김연창(金演昌)과 어머니 박세창(朴世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3세 때 조부 김병복(金炳福)의 성화로 자손이 없는 백부 김연필(金演弼)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1917년 4월 인왕산 밑에 자리한 4년제 학교인 신명학교(新明學校)에 입학한다. 과목 중에 지리와 도화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뒤 불교 재단에서 경영하는 견지동의 동광학교(東光學校)에 입학한다. 하지만 해경이 입학한 지 4년째 되던 해 동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인수한 보성고보에 합병되어 4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그림을 잘 그렸으며, 교내 미술전람회에서 <풍경>으로 입선하기도 한다. 1926년 3월 5일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해경은 곧장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한다. 12명의 입학생 중에 조선인은 불과 3명에 지나지 않았으며, 해경은 3년 동안 수석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유지한다. 2학년 때에는 경성고공 회람지인 <난파선>의 편집을 주도했으며 여기에 삽화와 자작시를 싣는다. 
1929년 3월 경성고공을 졸업하고 그해 4월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취직한다. 그해 11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자리를 옮긴다. 12월 조선건축학회 기관지 <조선(朝鮮)과 건축(建築)>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된다. 이듬해 그의 처녀작인 ≪십이월 십이일≫을 ≪조선(朝鮮)≫에 9회(2월∼12월)에 걸쳐 연재한다. 이 소설은 그의 최초의 한글 창작 소설이자 최초의 소설이며, 또한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그해 여름에는 그를 죽음으로 내몬 첫 각혈을 하게 되어 건강이 쇠약해진다.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인연으로 이 잡지의 ‘만필(漫筆)’란에 일문 시 <이상(異常)한 가역반응(可逆反應)>을 발표한다. 시에 전념하면서도 해경은 그림을 놓지 않았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자화상(自畵像)>이 입선되기에 이른다.
그는 서양화가 구본웅(具本雄)을 알게 된다. 꼽추 구본웅과의 교류는 그의 집으로까지 이어진다. 당시 구본웅의 집은 당대의 시인, 소설가, 화가, 영화감독 등이 모여들던 문화 아지트(구인회)였다. 1934년에 여기에 가입하여 박태원,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김유정, 김환태 등과 교류한 전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류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백부의 죽음(1932년 5월 7일, 뇌일혈), 총독부 기수직 사임(1933년 3월), 금홍과의 만남과 다방 ‘제비’ 경영(1933년), 동거(1933∼1935년), 결별(1935년), 카페 ‘제비’·‘쓰루’·‘69’·‘무기’ 경영 실패, 결혼(1936년), 죽음(1937년)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생의 형언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허무의 심연이다. 이것은 생의 아이러니와 역설을 가능하게 하여 독화(毒花)로서의 미적 파토스를 발생시킨다. 생의 파멸(육체의 죽음)과 예술의 탄생이 아이러니하게 혹은 역설적으로 뒤얽혀 있는 것이다. 
1932년 3월과 4월에 소설 <지도(地圖)의 암실(暗室)>과 <휴업(休業)과 사정(事情)>, 시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는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꽃나무>(1933), <이런 시(詩)>(1933), <거울>(1933)을, 1934년 8월에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에 우리 시사(詩史)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오감도(烏瞰圖)>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독자의 거센 항의로 15회로 연재가 중단된 이 작품은 근대적인 삶과 예술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투성의 파괴와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의 한 표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1936년은 생의 한 정점을 이룬다. 무엇보다도 <지주회시>(6월), <날개>(9월), <봉별기>(12월) 같은 그의 생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 모두 이해에 쓰였다. 그의 생이 맞닥트린 생의 심연을 넘어서려는 강한 열망을 담은 소설이 <날개>라면 <종생기>는 여기에서 훨씬 더 나아가 죽음 이후의 생이라는 역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1936년 10월 중순경 동경에 건너가 동경부(東京府) 신전구(神田區) 신보정(神保町) 삼정목(三町目) 101의 4호의 니시카와가(西川家)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삼사문학(三四文學)’ 동인들과 교유하기도 하고, 김기림, 안회남, 동생인 김운경과 서신을 교유하기도 하지만 동경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1937년 2월 12일 일본 경찰에게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체포되어 니시간다(西神田) 경찰서에 34일간 수감되어 있다가 3월 16일 건강악화로 풀려난다. 결국 그는 1937년 4월 17일 새벽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책 속에서

나는 거기 아모 데나 주저앉어서 내 잘아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야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모 제목도 불그러저 나오지 안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였다. 나는 거이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나 디려다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 생겼다.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큰 놈은 큰 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나려 빛이는 오월 햇ㅅ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나려트렸다. 지느레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내인다. 나는 이 지느레미 수효를 헤여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어리가 따뜻하다.
_66쪽,「날개」중에서

헤어지는 한에도 위로해 보낼지어다. 나는 이런 양식 아래 금홍이와 이별했드니라. 갈 때 금홍이는 선물로 내게 벼개를 주고 갔다.
그런데 이 벼개 말이다.
이 벼개는 이인용이다. 싫대도 작구 떠맡기고 간 이 벼개를 나는 두 주일 동안 혼자 비어보았다. 너무 길어서 안됐다. 안됐을 뿐 아니라 내 머리에서는 나지 않는 묘한 머리 기름때 내 때문에 안면이 적이 방해된다.
나는 하로 금홍이에게 엽서를 띠웠다.
「중병에 걸려 누었으니 얼른 오라」고.
_84쪽,「봉별기」중에서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생에서의 영이별이라는 결론으로 밀려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 딱 치면서 내가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구비구비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버려라 운운」
_90쪽,「봉별기」중에서

「가량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물을 상 찌푸리지 않고 먹어보는 거 그래서 거기두 있는 「맛」인 「맛」을 찾아내구야 마는 거, 이게 말하자면 「파라독스」지. 요컨댄 우리들은 숙망적으로 사상, 즉 중심이 있는 사상 생활을 할 수가 없도록 돼먹었거든. 지성─ 흥 지성의 힘으로 세상을 조롱할 수야 얼마든지 있지,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생활을 「리─드」할 수 있는 근본에 있을 힘이 되지 않는 걸 어떻거나? 그러니까 선仙이나 내나 큰소리는 말아야 해. 일체 맹세하지 말자─ 허는 게 즉 우리가 해야 할 맹세지.」
소녀는 그만 속이 발근 뒤집혓다. 이 씨름은 결코 여기서 그만둘 것이 않이라고 내심 분연하였다. 이따위 연막에 대항하기 위하야는 새롭고 효과적인 엔간ㅎ지 않은 무기를 작만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두었다.
_107~108쪽,「단발」중에서

목차

날개 5
봉별기 73
단발(유고)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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