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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7년 5

시리즈 : 이순신의 7년 [9]

정찬주 저 | 작가정신 | 201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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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885856 / 292쪽 / 380g / 138 x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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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다. 임진왜란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외침의 피해가 막대한 참혹한 전쟁이었고, 이순신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찬주 작가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용맹함 이면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에 주목한다. 이순신을 이순신이게 한 당시의 선비, 장수, 승려, 천민들의 의기와 충절을 꺼내 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 군사 문화, 의식주 문화, 여러 지방 특히 호남 사투리와 음식과 풍속 등을 가늠케 할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이순신의 7년 5권은 청허대사의 격문으로 오천 명 승려들이 의승군으로 나서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사명대사는 삼천 의승군을 이끌고 군사훈련을 하지만 명의 심유경이 왜적과 화의를 도모하느라 평양성 공격은 미루어진다. 드디어 이여송이 오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오고 조명연합군은 의승군의 모란봉 점령에 힘입어 평양성을 수복하지만 명군의 노략질이 왜적 못지않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왜군의 퇴로를 끊어 섬멸하라는 유서를 내린다. 이순신은 의승군을 불러, 웅천 왜성과 포구의 왜선들을 한꺼번에 치는 수륙병진 작전을 편다. 원균은 전공에 집착하고 명군은 왜와의 강화를 위해 조선 수군의 작전권까지 통제한다. 한편, 진주성 성주의 목을 가져오라는 히데요시의 명으로 십만여 왜군이 진주성에 집결하니 김천일, 최경회의 의병군과 관민 육만여 명이 죽기를 각오한다.

작가는 10여 년의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하고 있으며, 『이순신의 7년』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2018년 2월 전 7권으로 완간 예정이다. 작가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이순신이 1591년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1598년 노량 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인간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새로운 역사소설을 써나가고 있다.

출판사 리뷰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다. 임진왜란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외침의 피해가 막대한 참혹한 전쟁이었고, 이순신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찬주 작가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용맹함 이면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에 주...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다. 임진왜란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외침의 피해가 막대한 참혹한 전쟁이었고, 이순신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찬주 작가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용맹함 이면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에 주목한다. 이순신을 이순신이게 한 당시의 선비, 장수, 승려, 천민들의 의기와 충절을 꺼내 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 군사 문화, 의식주 문화, 여러 지방 특히 호남 사투리와 음식과 풍속 등을 가늠케 할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이순신의 7년 5권은 청허대사의 격문으로 오천 명 승려들이 의승군으로 나서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사명대사는 삼천 의승군을 이끌고 군사훈련을 하지만 명의 심유경이 왜적과 화의를 도모하느라 평양성 공격은 미루어진다. 드디어 이여송이 오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오고 조명연합군은 의승군의 모란봉 점령에 힘입어 평양성을 수복하지만 명군의 노략질이 왜적 못지않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왜군의 퇴로를 끊어 섬멸하라는 유서를 내린다. 이순신은 의승군을 불러, 웅천 왜성과 포구의 왜선들을 한꺼번에 치는 수륙병진 작전을 편다. 원균은 전공에 집착하고 명군은 왜와의 강화를 위해 조선 수군의 작전권까지 통제한다. 한편, 진주성 성주의 목을 가져오라는 히데요시의 명으로 십만여 왜군이 진주성에 집결하니 김천일, 최경회의 의병군과 관민 육만여 명이 죽기를 각오한다. 작가는 10여 년의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하고 있으며, 『이순신의 7년』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2018년 2월 전 7권으로 완간 예정이다. 작가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이순신이 1591년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1598년 노량 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인간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새로운 역사소설을 써나가고 있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지는 지댈 디 ?는 백성덜의 신하가 되구 싶구먼유.” 『이순신의 7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변방의 장수로서 회한에 찬 이순신, 뛰어난 전략과 용맹함 이면의 불안과 두려움에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순신, 군사의 목숨을 책임진 장군으로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이순신, 전쟁에 쫓기고 굶주린 양민의 생계까지도 근심하는 이순신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순신의 모습은 충청도 아산 사투리에 묻어나면서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되살아난다.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 여덟 살부터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충청도 아산에서 살았던 이순신이 서울말을 쓰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호남의 의병군들이 당연히 호남 사투리를 쓰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나는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말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다. 임금과 대신들은 부끄럽게도 의주로 도망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당시 백성들의 분투를 복원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헌정하는 소설이 되게 하고 싶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위기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혼과 기백 “바람이 강할수록 파도는 더욱 살아난다.” 『이순신의 7년』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전운을 감지하고 병사들과 함께 전쟁에 대비하는 이순신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이야기의 절정만을 향해 치닫는 다른 소설과의 차이점이다. 이순신은 지인에게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소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 말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호남이 없었다면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며, 이 점에 주목하여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있게 한 선비, 장수, 승려, 천민 들의 의기와 충절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시대를 떠받들어온 조선 백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를 잠식한 패배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남도 백성들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의병장들은 물론이고, 관군과 의병장들에게 목숨을 맡겼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히어진 느낌이다.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화엄사, 흥국사 승려들로 구성된 의승 수군義僧水軍의 호국 의식이나, 대부분이 남도 출신인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피 끓는 충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색할 뿐이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눈부신 광휘光輝로 말미암아 그들의 진면이 퇴색해버린 것은 아닐까.” _작가의 말 중에서 10여 년의 취재와 철저한 고증!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더욱 풍부해진 이야기 『이순신의 7년』은 작가가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고, 역사서는 물론 문중의 족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기나긴 준비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설이다.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현장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군 체계 및 병사들이 사용하는 화살의 종류와 쓰임새, 무기나 장비들, 적의 조총과 활 공격을 막으면서 동시에 화포를 쏠 수 있는 돌격용 전선인 거북선 건조 과정, 물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전술 변화, 조정 대신들의 당파 싸움 및 명나라와의 역학관계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들이 생생한 지역 사투리로 말하고 닭장떡국, 퉁퉁장, 서대회 무침, 갓김치, 고들빼기, 벌떡게장 등 특히 호남의 음식 문화 및 풍속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의 빼어난 특장이다. 전 7권으로 2018년 2월 완간 예정이다. ▶ 5권 주요 내용 의승군의 활약과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수복 임진왜란을 예견했던 청허대사의 격문을 받고 오천 명 승려들이 순안 법흥사로 집결한다. 늙은 승려들은 후방 지원군으로 남고 사명대사는 삼천 의승군을 이끌고 자모산성에서 평양성 수복을 위한 군사훈련을 한다. 그러나 명나라 심유경이 왜적과 화의를 도모하므로 평양성 공격은 미루어지고 드디어 명나라의 이여송이 오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온다. 명나라 자국의 안위를 위한 파병이다. 도체찰사 유성룡이 평양으로 진군하는 이여송을 안주에서 맞아 평양의 지세를 알려준다. 3차 평양성 전투에서 칠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퇴한 조선 관군의 복수라도 되는 듯이 조명연합군은 4차 평양성 전투에서 의승군의 모란봉 점령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지만 명군의 노략질이 왜적과 진배없으므로 조선은 관민이 산중으로 도망하는 지경에 처한다. 명나라의 강화 협상과 이순신의 6차 출진 평양성이 수복되자 선조는 이순신에게 왜군의 퇴로를 끊어 섬멸,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는 유서를 내린다. 이순신은 웅포 앞바다에서 포구에 숨어 있는 왜선들을 유인하지만 왜적은 말려들지 않는다. 바다 싸움을 하지 말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왜군이 싸움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심 끝에 이순신은 의승군을 활용, 웅천 왜성을 치게 하고 함대는 포구의 왜선들을 공격하는 수륙병진 작전을 편다. 이순신은 원균의 전공에 대한 집착과 무책임한 방관으로 해상 전투의 어려움을 겪고 탄식하며 임금에게 자신을 죄주기를 청하는 장계를 쓴다. 한편, 명 장수 이여송과 병부 시랑 송응창

저자 소개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왔다.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쌍봉사 옆 이불재(耳佛齋)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이순신의 7년』 『천강에 비친 달』 『인연』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다산의 사랑』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다불』 『만행』 『대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다인기행』 『뜰 앞의 잣나무』 『불국기행』,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법흥사에 모인 오천 명의 승려들은 서산 청허와 유정이 거느리는 두 무리로 나뉘었다. 청허가 통솔하는 이천 명의 승려들은 늙은 노승들로서 군량미를 나르는 후방 지원군이 됐고, 유정이 지휘하는 삼천 명의 승려들은 직접 전투를 하는 의승군이 되었다. 물론 의승군의 총대장은 칠십삼 세의 노승 청허였다. 유정은 청허의 지시를 받아 휘하의 의승군들을 데리고 날마다 자모산성으로 올라가 군사훈련을 했다. 벌써 두 달째였다.
일찍이 청허가 임진왜란을 예견하고 제자 유정과 영규, 처영 등에게 병법을 가르친 일이 있었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임진년이 되자 왜적이 쳐들어와 왜장 고니시가 평양성에 들어와 있고, 가토는 함경도를 분탕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1쪽

“이보라우. 어케 첩자질을 했네?”
“말 시키지 말라우.”
“후회가 되니까 물어보구 있시다.”
“…….”
“말해보라우.”
“3차 평양성 전투 끝나구 눈깔이 돌아버렸시다.”
“미친놈이 어데 한 둘이간.”
강서 관군으로 3차 평양성 전투에 참전했던 김순량과 서한룡이 크게 낙담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왜군의 맹공격에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장수부터 사라졌다. 그런 상황이 되고 나면 관군들도 뿔뿔이 흩어져 갈팡질팡하다가 후퇴했다. 그때 김순량이나 서한룡의 생각은 똑같았다. 앞으로도 조선 관군이 왜군을 이긴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성싶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시다.”
“개죽음당할 거라고 생각하니 싸움이 무서워지지 않았갔어.”
-59~60쪽


명군 장수들 가운데 오유충이나 유정 등은 휘하의 군사들에게 군율을 엄중히 지키게 하여 민폐를 끼친 일이 없었다. 그러나 명군의 군단 중에서 북병은 남병보다 민폐를 더 끼쳤다. 북병들은 대체로 성질이 포악하고 절제하는 바가 없어 조선 양민들에 대한 횡포와 약탈이 심했다. 그들이 지나치는 마을은 텅 비어버렸다. 북병 중에서도 여진족 출신의 투항자들이 모여 만든 달자㺚子 부대는 악명이 높았다. 조선인을 만나면 약탈은 물론이고 목을 벤 뒤 머리털을 깎아 왜군의 것인 양 자랑할 정도였다.
-89쪽

초 8일(계사) 맑음. 배에 도착한 경상 우수사 원균이 전라 우수사에게 기한에 늦어진 실수를 탓하며 욕설을 퍼붓고는 바로 곧 먼저 출발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래서 내가 “오늘 한낮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애써 말렸더니 과연 정오에 전라 우수사 이억기가 돛을 나부끼며 왔는데 모두가 바라보고들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거느리고 온 배는 마흔 척이 채 못 되었다. 즉일 신시(오후 4시)에 발선해 초저녁에 온천도(칠천도)에 도착했다. 본영에 편지를 보냈다.
-133쪽


“저건 또 뭔겨!”
“진도 상선上船입니다요.”
진도 지휘선이 왜적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었다. 진도 지휘선도 이순신의 지시를 받지 않고 멋대로 나섰다가 왜적들에게 포위돼 있었다. 그러나 본영 우후 이몽구의 전선이 화포를 쏘며 달려가 진도 상선을 구해냈다. 이몽구의 전선 옆에 있던 경상 좌위장과 우부장은 진도 지휘선을 보고서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했다.
“장졸덜 기강이 문란해진 것은 확실혀.”
“원균 부하덜 작태는 눈 뜨고 못 보겄습니다요.”
“우덜이 승리혔으니께 저런 작태에 책임을 묻지는 않겄지만 그대루 지나가지는 않을 겨.”
이순신은 즉시 모든 전선들을 칠천량으로 물러서게 했다.
-166쪽

최경회 의병군이 입성한 이후 충청 병사 황진의 관군 칠백여 명이 달려왔고, 나주 의병장이자 창의사 김천일 의병군 삼백 명이 뒤이어 왔다. 그리고 전라 좌의병 부장에서 사천 현감이 된 장윤이 의병군 삼백 명을, 금산에서 순절한 고경명의 아들인 복수 의병장 고종후가 의병군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입성했다.
전라도 의병장들이 진주성에 다소 늦게 입성한 것은 장수들 간에 의견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경상도에서 전공을 세워 의주
목사가 된 의병장 곽재우와 순변사 이빈, 경상 우감사 김륵 등이 진주성 전투 작전을 의논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순변사 이빈은 진주성으로 들어가 수성 작전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244쪽

“물러서지 말라!”
“부사 나리, 물러서지 않겠십니더.”
감포 현령 송제화가 복창했다. 이종인의 군사가 죽기 살기로 버티자 우키다의 지휘를 받는 왜군이 주춤거리며 밀렸다. 동문
쪽의 무너진 성 위에도 왜군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러나 왜장 고니시의 왜군이 서문을, 가토의 왜군이 북문을 동시에 공격하자 김천일과 최경회의 의병군들이 방어 대오를 이탈하면서 흩어졌다.
-2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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