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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윌리엄 워즈워스 저 | 유종호 역 | 민음사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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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75214 / 124쪽 14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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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 ―윌리엄 워즈워스 “워즈워스는 셰익스피어와 밀턴 다음가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 ― 매슈 아널드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스의 목가적인 대표 시편들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김소월과 함께 워즈워스의 이름쯤은 알고 있다. 「무지개」와 「수선화」의 작자인 자연시인으로 혹은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란 명언의 토로자로서 말이다. 초서를 별격으로 친다면 셰익스피어와 밀턴 다음가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라는 매슈 아널드의 워즈워스 평가는 반드시 비평적 일...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 ―윌리엄 워즈워스 “워즈워스는 셰익스피어와 밀턴 다음가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 ― 매슈 아널드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워스의 목가적인 대표 시편들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이면 누구나 김소월과 함께 워즈워스의 이름쯤은 알고 있다. 「무지개」와 「수선화」의 작자인 자연시인으로 혹은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란 명언의 토로자로서 말이다. 초서를 별격으로 친다면 셰익스피어와 밀턴 다음가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라는 매슈 아널드의 워즈워스 평가는 반드시 비평적 일치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수용되고 있다. ―유종호, 「해설: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에서 19세기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자 자연주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의 대표작을 묶은 시선집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가 출간되었다. 익히 알려진 「수선화」부터 「틴턴 사원 위쪽에서」, 그리고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구로 유명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짤막한 서정시들로 유명하며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 등 많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1843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여기까지가 비평적 일치를 얻고 있는 워즈워스의 잘 알려진 면모이다. 그러나 워즈워스 자신이 『서정담시집』의 재판에 부쳤던 「서문」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신고전주의의 시론을 전복하려 한 혁명가에 가까웠다. 먼저 그의 시편은 ‘사건 및 상황을 평민의 생활에서 취하려’ 했다. 이전까지의 비극이나 서사시 등에서 제왕과 귀족만을 다루었다면 워즈워스의 시에서는 농부와 어린이와 죄인과 불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서(15쪽)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 또한 그는 시어들을 가능한 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쓰는 말에서 가져와 서술 혹은 묘사하려 했다. 시에 고유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면 특수한 시어나 수사적 장치를 통한 시적 허용에의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 두었던 고전주의의 암묵적 전제를 거부한 결과였다. “모든 훌륭한 시는 강력한 감정이 저절로 넘쳐흐르는 것.”이라는 그의 지론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를 쓰는 것은 ‘어떤 상상의 색채를 입혀서 평범한 사물들이 비범하게 비치도록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목적 하에 쓰인 시들은 그대로 워즈워스의 작가관을 반영한다. 보라! 들판에서 홀로 가을걷이하며 노래하는 저 고원의 처녀를, 멈춰 서라. 아니면 슬며시 지나가라, 홀로 베고 다발로 묶으며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귀 기울여라! 깊은 골짜기엔 온통 노랫소리가 차 있구나. ―「가을걷이하는 처녀」에서(27쪽) 이 세 가지 특성은 또한 1789년 프랑스혁명을 열렬하게 찬미했던 워즈워스의 민주적 이념이 담긴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시인이란 무엇인가? 누구에게 그는 말을 거는 것인가? …… 시인은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1789년의 정신세계를 물려받은 시인의 시 세계에서 엿보이는 ‘자연 사랑’이 결국 ‘인간 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임은 그가 ‘평민의 생활’을 다룬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시에 내장된 이데올로기는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다는 예술적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 1973년 시작한 역사적인 [세계시인선] 44년간 가장 긴 생명력을 이어온 시리즈 민음사 50주년 기념 리뉴얼 발간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 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 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품은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저자 소개

1770∼1850.


1770년 4월 7일 영국 컴벌런드 호수 지방의 북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코커머스라는 유서 깊은 소도시에서 5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워즈워스는 펜리스에서 초등학교(여기서 그는 뒷날 아내가 될 메리 허친슨과 함께 공부했다)를 마친 후 코커머스 그래머스쿨에 입학했지만 채 여덟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열세 살 때인 1783년, 그의 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났다. 조실부모의 경험과 아끼던 누이동생 도로시와 이별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뒷날 자신의 시에서 빈번히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1787년에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정규 교과과정보다는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일에 더 열중했다. 1790년에 그와 벗 로버트 존스는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여행했는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여행 경험은 ≪서곡≫ 6권에서 상세히 서술된다. 대학 졸업 후 두 사람은 북웨일스를 거쳐 멋진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와이 강 계곡까지 걸어서 여행했다. 1791년 11월 워즈워스는 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프랑스로 건너갔다. 혁명 지지자였지만 왕당파 지지자들과도 어울렸고, 아네트 발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792년 10월 말 프랑스를 떠나 12월 말에 영국에 도착했고, 그사이(12월 15일)에 두 사람의 딸 캐롤라인이 태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선언한 상황에서 워즈워스는 발롱과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지만, 이후에도 그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795년 혹스헤드 그래머스쿨 시절의 벗의 동생인 레이슬리 칼버트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유산으로 남겨 준 900파운드 덕분에 그의 경제적 여건은 훨씬 나아졌다. 워즈워스와 도로시는 도싯 주 레이스다운으로 이주했고, 그는 이미 1793년에 알프스 산맥 도보 여행이 배경이 된 ≪저녁 산책≫과 ≪소묘≫를 발간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 가던 중이었다. 그는 이 시집들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와 로버트 사우디(1774∼1843) 같은 시인들과 유니테리언파 신자인 출판업자 조지프 코틀을 브리스톨에서 만났다. 1797년 6월 자신들의 집을 방문해 몇 주간 머문 콜리지에게 호감을 느낀 워즈워스 남매는 당시 콜리지가 살던 네더스토이에 가까운 서머싯의 알폭스덴하우스로 이주했고, 두 시인은 ≪서정담시집≫을 합작해 발간할 계획을 세웠다. 1798년 워즈워스는 도로시와 함께 와이 계곡을 다시 찾았는데, 이때의 경험은 널리 알려진 <틴턴 수도원…>으로 결실을 맺었다. 워즈워스가 브리스톨로 돌아온 직후 쓴 이 시가 포함된 ≪서정담시집≫은 1798년 9월 코틀의 도움으로 익명으로 발간되었고, 두 시인의 ‘창조적 공생’의 성공적인 결실인 이 시집은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정담시집≫이 발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워즈워스 남매는 콜리지와 함께 배를 타고 독일로 갔고, 워즈워스 남매는 작센 주의 고즐라에, 콜리지는 괴팅겐에 머물렀다. 도로시와 함께 혹독한 겨울을 고즐라에서 보내는 동안 워즈워스는 이른바 ‘루시 시편들’과 대표작이 될 ≪서곡≫ 1∼2부를 썼다. 이듬해 봄에 귀국한 워즈워스 남매는 1799년 12월 그라스미어의 더브코티지로 이주했는데, 이 집이 그가 호수 지방에서 거주하게 될 세 집 중 첫 집이었다. 이곳에서 지낸 8년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서정담시집≫ 2권을 추가했고, 이 시집은 여러 번 판을 거듭했다. 또 1805년에는 13권으로 구성된 자전적 장시인 ≪서곡≫을 완성했고, 또 다른 장시인 ≪소요≫를 쓰기 시작했으며, 1807년에는 ≪합본 시집≫을 발간했다. 1802년에 메리 허친슨과 결혼한 워즈워스는 1803년부터 1806년 사이에 세 자녀를 낳았다. 도로시의 생생하고 매혹적인 일기들은 이 행복했던 더브코티지 시절을 다루고 있다. 1808년부터 1811년까지 3년간 워즈워스 일가는 앨런뱅크에 거주했고, 이곳에서 자녀 두 명이 더 태어났다. 1813년에 워즈워스 일가는 앰블사이드와 그라스미어 사이의 라이덜마운트로 이주했고, 워즈워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1814년에 워즈워스는 장시 ≪소요≫를 발간했고, 첫 두 시집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다른 시집들도 뒤따랐다. 1820년대부터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고, 성공의 보상들이 잇따랐다. 그는 1838년에는 더럼대학교로부터, 1839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옥스퍼드대학교 학위 수여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843년에 사우디의 뒤를 이어 영국의 계관시인으로 임명된 그는 185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라스미어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는 13권으로 구성된 1805년본 ≪서곡≫을 생전에 발간하지 않고 평생 동안 끊임없이 다듬어 14권으로 재편성했는데, 그의 사후 아내 메리 허친슨은 이 1850년본 ≪서곡≫을 처음으로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공주사범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거쳐 2006년 연세대학교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함으로써 교직 생활을 마감했다. 지은 책으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외에 『시란 무엇인가』,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아이리스 머독의 『그물을 헤치고』, 『이솝 우화집』 등이 있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인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만해학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책 속에서



그대 소중한 벗이여
이 아름다운 강 언덕에
내 그대와 함께 있으니
내 귀하고 소중한 친구
그대의 목소리에서 나는
내 지난날의 심금의 언어를 잡고
그대의 야성의 눈길의 예기(銳氣) 속에서
내 지난날의 기쁨을 읽는다.
―「틴턴 사원 위쪽에서」에서(99쪽)


무연(撫然)히 홀로 생각에 잠겨
내 자리에 누우면
고독의 축복인 속눈으로
홀연 번뜩이는 수선화.
그때 내 가슴은 기쁨에 차고
수선화와 더불어 춤추노니.
―「수선화」에서(9쪽)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에서(15쪽)



목차

수선화 I Wandered Lonely As A Cloud
삼월 Written In March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외진 곳에서 She Dwelt Among The Untrodden Ways
낯모르는 사람 속을 I Traveled Among Unknown Men
선잠이 내 혼을 A Slumber Did My Spirit Seal
그녀는 기쁨의 환영 She Was A Phantom Of Delight
가을걷이하는 처녀 The Solitary Reaper
노고지리에게 To The Skylark
뻐꾸기에 부쳐 To The Cuckoo
가엾은 수전의 낮꿈 The Reverie Of Poor Susan
루시 그레이 Lucy Gray
웨스 트민스터 다리 위에서 Composed Upon Westminster Bridge, September 2, 1802
아름다운 저녁 It Is A Beauteous Evening
다시 고토(故土)에서 Composed In the Valley Near Dover, On The Day Of Landing
홍진에 묻혀 The World Is Too Much With Us
런던 1802년 London, 1802
결의와 독립 Resolution and Independence
틴턴 사원 위쪽에서 Lines Composed a Few Miles Above Tintern Abbey
작가 연보
작품에 대하여: 평범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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