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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원제 : The Prelude or Groth of a Poet's Mind
시리즈 : 대산세계문학총서 [104]

윌리엄워즈워스 저 | 김숭희 역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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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20211 / 425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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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문학의 이정표가 된 그의 대표작! 윌리엄 워즈워스의 대표작 『서곡』(대산세계문학총서 090)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워즈워스는 1843년 로버트 사우디의 뒤를 이어 영국 왕실에 의해 계관시인으로 추대된, 영국 최고의 낭만주의 시인이다. 『서곡』은 워즈워스가 스스로 “내 마음의 성장”에 관한 시라고 부른 자전적인 작품이다. 워즈워스는 인간, 자연, 그리고 사회를 아우르는 ‘철학적 시’를 써 훗날까지 전해질 명작으로 남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19세기 유럽 낭만주의 문학의 이정표가 된 그의 대표작! 윌리엄 워즈워스의 대표작 『서곡』(대산세계문학총서 090)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워즈워스는 1843년 로버트 사우디의 뒤를 이어 영국 왕실에 의해 계관시인으로 추대된, 영국 최고의 낭만주의 시인이다. 『서곡』은 워즈워스가 스스로 “내 마음의 성장”에 관한 시라고 부른 자전적인 작품이다. 워즈워스는 인간, 자연, 그리고 사회를 아우르는 ‘철학적 시’를 써 훗날까지 전해질 명작으로 남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그런 걸작을 쓸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자연과 교육을 통해 배운 것들이 과연 자신의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있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워즈워스는 1798~1799년부터 자신의 유년과 청년 시절을 주제로 하는, 두 부분으로 된 무운시를 썼다. 자신의 시적 역량을 가늠하기 위해서 쓰게 된 자아 성찰적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후 1803년 후반부터 다시 이 작품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해 1805년에 모두 13권으로 된 한 편의 장시로 완성했다. 이 작품을 자신의 “내 마음의 성장”에 관한 시라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워즈워스는 이 시에 제목도 붙이지 않았고, 출판도 하지 않았다. ‘철학적 시’ 『은둔자The Recluse』가 씌어지고 출판될 때까지 이 작품은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워즈워스가 매우 중요한 작품을 출판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고, 혹자는 “워즈워스가 무슨 권리로 동시대인들에게 그러한 작품을 읽을 권리를 주지 않느냐”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워즈워스 자신은 끊임없이 그 작품을 개정하는 데 몰두했다. 1829년경에는 대폭 개정을 시도하여 제10권을 두 권으로 나누기까지 했고, 개정판이 완성된 1839년 무렵에는 결국 개정을 거치지 않은 시행이 한 줄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완성된 최종 원고가 바로 『14권 서곡The Fourteen-Book Prelude』이다. 작품은 절친했던 친구이자 또 한 명의 위대한 시인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경험과 힘에 의해 자신이 시인이라는 소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이 시는 1850년 워즈워스가 사망하고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에 출판되었다. 그의 아내였던 메리가 제목을 『서곡, 혹은 어느 시인의 마음의 성장; 자전적인 시The Prelude, or Growth of a Poet? Mind; An Autobiographical Poem』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결국 워즈워스는 끝내 그 철학적 시를 쓰지 못한 채 사망했고, 그 서곡에 해당하는 이 작품만 남게 되었다. 비록 『은둔자』의 서곡으로 씌어진 거라고는 하지만, 『서곡』은 그 자체로도 뛰어난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다. 흔히 유럽 낭만주의 문학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작가와 독자들에 의해 인용되고 언급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저자 소개

1770∼1850.


1770년 4월 7일 영국 컴벌런드 호수 지방의 북서부 끝자락에 자리한 코커머스라는 유서 깊은 소도시에서 5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워즈워스는 펜리스에서 초등학교(여기서 그는 뒷날 아내가 될 메리 허친슨과 함께 공부했다)를 마친 후 코커머스 그래머스쿨에 입학했지만 채 여덟 살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31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열세 살 때인 1783년, 그의 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났다. 조실부모의 경험과 아끼던 누이동생 도로시와 이별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뒷날 자신의 시에서 빈번히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1787년에 워즈워스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칼리지에 입학했지만, 정규 교과과정보다는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일에 더 열중했다. 1790년에 그와 벗 로버트 존스는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여행했는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 여행 경험은 ≪서곡≫ 6권에서 상세히 서술된다. 대학 졸업 후 두 사람은 북웨일스를 거쳐 멋진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와이 강 계곡까지 걸어서 여행했다. 1791년 11월 워즈워스는 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프랑스로 건너갔다. 혁명 지지자였지만 왕당파 지지자들과도 어울렸고, 아네트 발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1792년 10월 말 프랑스를 떠나 12월 말에 영국에 도착했고, 그사이(12월 15일)에 두 사람의 딸 캐롤라인이 태어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선언한 상황에서 워즈워스는 발롱과 결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지만, 이후에도 그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795년 혹스헤드 그래머스쿨 시절의 벗의 동생인 레이슬리 칼버트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유산으로 남겨 준 900파운드 덕분에 그의 경제적 여건은 훨씬 나아졌다. 워즈워스와 도로시는 도싯 주 레이스다운으로 이주했고, 그는 이미 1793년에 알프스 산맥 도보 여행이 배경이 된 ≪저녁 산책≫과 ≪소묘≫를 발간함으로써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 가던 중이었다. 그는 이 시집들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1772∼1834)와 로버트 사우디(1774∼1843) 같은 시인들과 유니테리언파 신자인 출판업자 조지프 코틀을 브리스톨에서 만났다. 1797년 6월 자신들의 집을 방문해 몇 주간 머문 콜리지에게 호감을 느낀 워즈워스 남매는 당시 콜리지가 살던 네더스토이에 가까운 서머싯의 알폭스덴하우스로 이주했고, 두 시인은 ≪서정담시집≫을 합작해 발간할 계획을 세웠다. 1798년 워즈워스는 도로시와 함께 와이 계곡을 다시 찾았는데, 이때의 경험은 널리 알려진 <틴턴 수도원…>으로 결실을 맺었다. 워즈워스가 브리스톨로 돌아온 직후 쓴 이 시가 포함된 ≪서정담시집≫은 1798년 9월 코틀의 도움으로 익명으로 발간되었고, 두 시인의 ‘창조적 공생’의 성공적인 결실인 이 시집은 영국 낭만주의 시대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정담시집≫이 발간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워즈워스 남매는 콜리지와 함께 배를 타고 독일로 갔고, 워즈워스 남매는 작센 주의 고즐라에, 콜리지는 괴팅겐에 머물렀다. 도로시와 함께 혹독한 겨울을 고즐라에서 보내는 동안 워즈워스는 이른바 ‘루시 시편들’과 대표작이 될 ≪서곡≫ 1∼2부를 썼다. 이듬해 봄에 귀국한 워즈워스 남매는 1799년 12월 그라스미어의 더브코티지로 이주했는데, 이 집이 그가 호수 지방에서 거주하게 될 세 집 중 첫 집이었다. 이곳에서 지낸 8년은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생산적인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그는 ≪서정담시집≫ 2권을 추가했고, 이 시집은 여러 번 판을 거듭했다. 또 1805년에는 13권으로 구성된 자전적 장시인 ≪서곡≫을 완성했고, 또 다른 장시인 ≪소요≫를 쓰기 시작했으며, 1807년에는 ≪합본 시집≫을 발간했다. 1802년에 메리 허친슨과 결혼한 워즈워스는 1803년부터 1806년 사이에 세 자녀를 낳았다. 도로시의 생생하고 매혹적인 일기들은 이 행복했던 더브코티지 시절을 다루고 있다. 1808년부터 1811년까지 3년간 워즈워스 일가는 앨런뱅크에 거주했고, 이곳에서 자녀 두 명이 더 태어났다. 1813년에 워즈워스 일가는 앰블사이드와 그라스미어 사이의 라이덜마운트로 이주했고, 워즈워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1814년에 워즈워스는 장시 ≪소요≫를 발간했고, 첫 두 시집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 다른 시집들도 뒤따랐다. 1820년대부터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고, 성공의 보상들이 잇따랐다. 그는 1838년에는 더럼대학교로부터, 1839년에는 옥스퍼드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옥스퍼드대학교 학위 수여식에서는 “우레 같은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843년에 사우디의 뒤를 이어 영국의 계관시인으로 임명된 그는 1850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라스미어 교회 묘지에 묻혔다. 그는 13권으로 구성된 1805년본 ≪서곡≫을 생전에 발간하지 않고 평생 동안 끊임없이 다듬어 14권으로 재편성했는데, 그의 사후 아내 메리 허친슨은 이 1850년본 ≪서곡≫을 처음으로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역자 소개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북텍사스대학교(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성장 정지의 문제: 󰡔서곡󰡕과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비교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고백으로 본 문학: 󰡔서곡󰡕의 경우」, 「테니슨의 시에 나타난 신앙의 문제」, 「테니슨 시의 낭만적 특질」 등이 있고, 역서로는 󰡔문학으로 본 성서󰡕, 󰡔겨울사랑󰡕, 󰡔나가사키의 노래󰡕, 󰡔하늘의 하루, 땅의 천년󰡕, 󰡔서곡󰡕 등이 있다. 현재 강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목차

목차
제1권 서론-유년기와 학창 시절
제2권 학창 시절(속편)
제3권 케임브리지 체류
제4권 여름방학
제5권 책
제6권 케임브리지와 알프스
제7권 런던 체류
제8권 회상-인류 사랑으로 이어진 자연 사랑
제9권? 프랑스 체류
제10권 프랑스 체류와 프랑스혁명
제11권 프랑스(종결)
제12권 상상려고가 심미안, 얼마나 손상되고 또 회복되었는가
제13권 같은 주제(속편)
제14권 결론
옮긴이 해설-윌리엄 워즈워스 필생의 대작 \"서곡\"
작가 연보
기획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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