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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2

이광수 저 | 방남수 역 | 시간여행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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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346465 / 288쪽 15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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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소설 원효대사》로 부흥기의 신라를 만나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하지만 불교와 화랑도를 통해 힘을 기르고, 외교와 군사를 활용하여 삼국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는 바로 그 과도기, 신라가 변화하고 성장하던 시대를 그린 소설이다. 사람들을 고통에서 건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고민하는 원효대사를 통해 사람과 공동체의 나아갈 길을 그린다.
주인공 원효대사는 누구나 쉽게 부처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화엄경 해설에 몰두하는 고명한 학승이다. 그러나 자신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진덕왕과 요석공주의 마음을 알고서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마음을 외면하고서 어떻게 모든 중생을 건지겠는가.” 하는 고민을 시작한다. 깨달음을 위한 원효의 여정은 끝없는 실천행으로 이어진다.
작가 이광수는 소설 《원효대사》를 통해 신라를, 그리고 우리네 옛 선조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화랑도로 갈고 닦인 용맹한 젊은이들, 맹장 김유신, 백성을 생각하는 진덕왕과 전략적인 지도자 김춘추. 자신의 소망과 신자의 도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요석공주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1500년 전 신라를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새롭게 출간하면서 요즘 독자들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편집에 공을 들였다. 불교문예학 박사인 엮은이 방남수가 경전 문구, 불교 용어를 우리말로 옮겼고, 다소 생경한 옛말이나 쓰임새가 달라진 말을 풀어놓았다.

한국 선불교의 시작 원효대사, 신라의 마음을 빚다.

소설 속 원효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타인’이다. 어려운 불법을 남들이 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화엄경의 해설을 쓰고, 경전 한 줄 염불 한 마디를 외워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명한 선사로서의 명예를 버리고 파계하여 요석공주와 아이를 갖는 것도, 요석공주의 마음을 건지려는 시도에서였다.

그는 무애(無碍), 즉 “아무 데도 구애받지 않는 마음”으로 어디든 간다. 전염병과 수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거지 떼를 이끌거나 도적의 무리에 섞여들어 같이 먹고 놀면서 부처님 이야기를 꺼낸다. 이러한 원효의 마음은 파벌과 신분제, 전쟁과 가난에 묶여 있던 신라에 스며들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의식이 사람과 공동체의 힘이 된다. 백제와 고구려의 끊임없는 침략에 고통받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함은 물론 당나라까지 이 땅에서 쫓아내어 융성한 나라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책에서 원효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화랑정신, 그리고 신라 고유의 선 수련법이다. 요석공주의 전남편 거진랑, 세속오계를 가르친 원광법사, 김유신의 비술 등 다양한 설화와 일화를 섞어 이야기에 풍미와 재미를 더함은 물론 불교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가 지향할 만한 가치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이 땅의 옛 모습, 특히 자연과 신라인들의 삶에 대한 묘사도 일품이다. 힘과 멋이 넘치는 문장들은 마지막으로 옛 조선을 산 세대이자 현대문학 첫 세대로서 이광수가 남긴 특별한 유산이다.

모두가 길을 모를 때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 원효

후대에 역사를 배운 우리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살았던 서기 600년대를 신라가 승리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시대는 신라에게 있어 백제와 고구려의 수없는 침략에 고통받고 당에게 외교 간섭을 받으며 쩔쩔매던 시기이기도 했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내가 살 길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을 깨울 방법을 찾아 여정을 떠난 원효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신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도약할 수 있었다.
변화의 바람이 불 때는 남보다 먼저 길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더 나은 공동체란 어떤 곳인가. 이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공유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 소설 속 원효와 함께 고민해볼 문제다.

저자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역자 소개

  • 역자 : 방남수
1958년 경북 울진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 박사를 취득했다. 청담선사 중창도량인 삼각산 도선사에 입산. 《문예한국》으로 등단하여 시인으로 활동 중이며, 월간지 《여성불교》 편집주간, 화남출판사 대표를 지냈다. 현재 청담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청담순호선사 평전》 시집 《보탕》이 있다.

책 속에서


길을 가다가 끼니때가 되면 원효는 어느 동네에 들어가 큰 집이라고 고르지 않고, 작은 집이라고 빼놓지 않고 골고루 찾는다. 딱, 딱, 딱, 뒤웅박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한다. 열 마디를 불러도 주인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집으로 가서 또 그와 같이 한다. 이렇게 여섯 집을 돌아서 얻어지는 것을 먹고 더 돌지는 않는다. 만일 여섯 집을 돌아도 밥이 얻어지지 않으면 그 끼는 굶고 지나간다.
원효는 애초에 목적한 대로 고향에 돌아가 예전에 살던 집터(지금은 절)와 분묘를 돌아보았다. 십여 년 전에 떠난 뒤로는 처음 고향에 온 것이다. 원효는 아는 사람을 더러 만났으나 그들은 원효를 알아보지 못했다. 원효가 천하에 소문이 나고 나랏님의 스승이 되었다고 들은 그들은 이 거렁뱅이가 원효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 2권 <방랑> 중에서

“노장님, 지금 원효대사라고 부르신 이가 누굽니까.”
“지금 저기 가는 저 스님이 원효대사요. 스님네들이 겨우내 원효대사가 지어 주시는 공양을 잡수셨으니 다들 성불하시겠소.”
방울스님이 웃었다. 겨우내 부엌에서 밥 짓던 중이 원효대사란 말을 들은 중들은 놀랐다. 천하에 이름이 높은 선지식을 옆에 두고 몰라본 것이 분했다.
“노장님 정말이오?”
한 학인이 방울스님께 물었다. 그의 이름은 의명이었다.
“그렇다니까. 스님네가 공부하시는 대승기신론소를 지으신 원효대사요.”
“노장님은 그이가 원효대산 줄 어떻게 아셨소?”
“내게 누룽지를 잘 주길래 원효대산 줄 알았소.”
방울스님이 또 웃었다.
의명은 곧 짐을 꾸려 가지고 원효의 뒤를 따라서 떠났다. 어디를 가느냐는 동무의 말에 의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원효대사 따라가오.”
- 2권 <방랑> 중에서

“나무아미타불.”
거지들이 원효 뒤를 뒤따르며 화답했다. 중들도 거지의 뒤를 따랐다. 원효는 서울 성중으로 대중을 끌고 들어섰다. 4백 명 대중이 나무아미타불을 합장하는 소리가 성중을 흔들었다. 원효는 대중을 끌고 홍륜사, 분황사 같은 큰 절과 호구 즐비한 시가로 순회했다. 사람들은 이 희한한 광경을 보려고 모두들 길옆에 나섰다. 어떤 사람은 같이 염불을 하며 행렬에 들기도 했으나 어떤 사람은 원효가 불교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대로 원효를 악담했다. 그래서 중들 중에는 슬몃슬몃 이 행렬에서 빠져나가는 자도 있었다.
팔백여든 절에서 저녁 쇠북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고달프던 중생이 편안히 쉬라는 쇠북이다. 원효가 걸음을 멈추고 합장하자 일동도 그와 같이 했다.
-2권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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