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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서휘 1-5권 세트

오세창, 서울대학교박물관 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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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617787 / 2736쪽 / 7,387g / 255 x 380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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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한국 전통서예 천년사의 보고, 근역서휘(槿域書彙) 영인본 출간 서울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역서휘(槿域書彙)》는 우리나라 서화사 연구의 선구자인 위창 오세창(1864~1953) 선생이 수집해 1911년에 엮은 고서첩이다. 이 서첩에는 통일신라에서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요 인물들의 필적 1,119점이 35책에 나뉘어 수록되어 있어 성균관대학교박물관 소장 《근묵(槿墨)》과 함께 우리나라 고서첩을 대표하는 유물로 알려져 있다. 이를 10년 이상의 준비작업 끝에 원본 필적 전체를 4권의 대형 도록에 옮기고, 탈초문과 국역문, 주석을 담은 해설서 1권을 묶어 총 5권으로 엮은 영인본을 출간했다. 통일신라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적 인물 1,107명의 원본 필적과 상세한 해설 수록 근역서휘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이기도 했던 오세창 선생이 우리 문화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편집한 것이다. ‘근역’은 무궁화 동산이라는 뜻으로, 오세창은 스스로를 “옛것을 좋아하는 자”라 칭하며 “강물이 흘러 한번 기울면 오늘을 쉽게 잃을 것” 같아서 “지금 좀이 먹어 흩어지고 떨어져 나간 것들을 취해서 일신(一新)하여 새로운 면목의 근묵이 나오게” 하고 “후래 사람들로 하여금 옛날을 좋아하기를 지금과 같게 하였다”고 쓰고 있다. 근역서휘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김생과 최치원, 고려의 강감찬, 김부식, 조선의 이이, 이황, 이순신, 허난설헌, 정선, 박지원, 김홍도, 김정희, 그리고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했던 최익현 등의 인물들 다수를 포함한 총 1,107명의 필적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조선의 국왕부터 중인, 천민의 필적까지 포함되어 있고, 서간(書簡)과 시(詩), 서문, 축화, 제 등 다양한 형식의 글씨가 담 겨 있어 가히 ‘한국 전통서예 천년사의 보고’라 부를 만하다. 근역서휘가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전체가 모두 원본 필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쇄된 책자나 탁본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으로, 예로부터 선현들이 직접 써서 남긴 필적은 수택(手澤)이라 하여 그 체취조차도 귀하게 여긴 바 있다. 이번에 발간한 영인본에는 필적 전체를 새로 고화질 촬영하여 책으로 옮겼으며, 수백 년을 지나왔음에도 생생한 묵(墨)의 질감을 최대한 남기기 위해 제작 공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필적의 탈초와 번역, 주석 작업은 해동경사연구소에서 10년 이상을 공들여 작업한 것이다. 공들인 번역문과 상세한 주석을 통해 해당 인물이나 시대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독자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 소개

역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 형편과 높은 학문의 분위기 속에 성장하였고, 8세 때부터 부친의 친구인 유대치(劉大致: 1831~?. 본명은 鴻基, 의원)를 스승으로 모셔 1879년(16세)에 역과에 합격하였다.


1882년(19세) 임오군란 직후 9월에 후원주위청영차비관(後苑駐衛淸營差備官)이라는 벼슬을 받아 창덕궁 후원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군사들의 통역을 맡았다. 1886년(23세)에 사역원직장에 임명되었다. 1894년에 군국기무처 총재비서관이 되었고, 이어 농상공부 참서관, 통신원 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 일본공사의 초청으로 동경외국어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1년간 체류하였다. 귀국 후 개화파 역모에 연루되어 1902년에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이때 손병희(孫秉熙)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4년 뒤인 1906년에 손병희와 함께 귀국하여 「만세보」를 창간하고 사장에 취임하였으니, 이때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애국계몽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게 되었다. 1918년에 근대적 미술가 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가 결성될 때 13인의 발기인으로 참가하였으며,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3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서울신문사명예사장·민주의원·대한민국촉성국민회장·전국애국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6·25동란 중 피난지 대구에서 사망하여 사회장(社會葬)이 거행되었다. 


일찍부터 서화골동의 가치를 인식하여 국외로 유출되는 서화를 동분서주하며 수천 점을 구입하였다. 또한 간송 전형필이 10만 석의 사재를 헐어 골동서화를 수집하는데 감식안을 제공하였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의 고서화 명품 가운데 상당수가 오세창의 감정과 평가를 거쳐 수집된 것이다.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수준 높은 감식안을 더욱 발전시켜 민족문화의 유산을 지키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서화의 수장뿐만이 아니라, 저술에도 많은 공적을 남겼다. 문집이나 국고문헌(國故文獻)에서 인명.미술사 자료를 두루 모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1928년)을 출간하여 한국미술사의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명화(名畵) 251점을 모아 <근역화휘(槿域畵彙)>를 만들었고, 우리나라 문인화가 830여명의 도장 3,930여방을 모아 <근역인수(槿域印藪)>(1937년)를 만들었다. 위창은 이런 여러 편의 대저(大著)를 만들어 불모지인 우리 미술사학에 기초적인 공적을 남겼다.

책 속에서

 

목차

근역서휘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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