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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깊이

김명인 저 | 빨간소금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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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963836 / 284쪽 / 369g / 147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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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부끄러움이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지닌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아픈 표정이다.”
부끄러움을 잊은 시대를 향한 낮고 단단한 성찰의 언어들!


1980년대 ‘민족문학주체논쟁’을 이끈 문학평론가, 1990년대 ‘주례사비평’과 2000년대 ‘표절문학’ 논란에서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한 비평가. 문학평론가이자 인하대 교수, 계간지 《황해문화》 편집주간인 김명인을 가리키는 수식어들이다. 이런 그가 글쓰기 인생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익숙한 평론집이 아닌, 인생과 시대를 되돌아보는 산문집을 펴냈다. 1990년대부터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쓴 수백 편의 산문 가운데 70여 편을 엄선해 《부끄러움의 깊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은 것이다.
생활글을 비롯해 책에 실린 자유로운 형식의 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부끄러움'과 '성찰'이다. 작가는 글쓰기의 대상을 자기 안으로 가져와 성찰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글뿐만 아니라,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는 글, 신경숙 표절 사건을 비판하는 글, 메갈리아 논쟁에 관한 글들에서도 ‘나’는 삭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듦, 자기정체성, 문학, 혁명, 페미니즘’ 등 작가의 심연을 통과한 대상들은 낮고 단단한 언어들을 만나 ‘부끄러움’이라는 새로운 ‘깊이’를 얻는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부끄러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지닌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아픈 표정이다.”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 한갓 문필가의 삶이 왔고, 또 가난한 문필가의 삶조차 그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정어정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든” 한 지식인의 회한과, 그래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을 만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잊은 시대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저자는 “환우”의 감각으로 추모의 글을 쓴다. 신영복 선생이 통혁당 사건으로 모진 고초를 겪었듯이, 그 또한 ‘무림사건’으로 2년 8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한 사람으로서 신영복 선생과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다. 그는 신영복 선생의 삶과 저작의 모든 부면에서 자신이 그런 것처럼 부끄러움의 흔적을 읽었다고 고백한다. 대학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서예가로서 대중적인 애정과 관심을 크게 받은 분에게 부끄러움이 있었다니……의외다. 왜일까?
당시 “조직사건과 연루된 ‘좌익사범’ 딱지가 붙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검거와 투옥의 전 과정에 걸쳐 고문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대한 심각한 굴욕과 좌절을 격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굴욕과 좌절의 체험은 평생 ‘부끄러움’의 형태로 남아 전 생애의 그늘이” 되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자기를 향한 혐오와 타인을 향한 죄책감’으로 구성된 그 부끄러움의 깊이를 절대로 측량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일종의 환우의 감각으로 신영복 선생의 삶과 저작의 모든 부면에서 그 부끄러움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분은 비슷한 경험을 했으나 여전히 어두운 은신과 자폐의 삶을 살았던 다른 분들과 달리 대학교수로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서예가로서 대중적인 애정과 관심을 크게 받으며 출옥 뒤 30년 가까운 여생을 누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그런 셀러브리티에 가까운 명성과 발휘했으면 얼마든지 더 발휘할 수 있었던 영향력에 비한다면, 그분의 삶과 저작을 가로지르는 어떤 삼감과 겸허의 태도는 바로 그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라는 생애의 감각에서 오는 것이었다. 남들은 그것을 미덕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아픈 표정인 셈이다.
그분의 부음을 들으면서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분이 이제 그‘부끄러움’이라는 평생의 상처에서 놓여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133~135쪽)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은 시대이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니,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러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시대이다. 김명인은 지금 우리의 삶과 시대를 한번 진솔하게 되돌아보자고 낮고 단단한 성찰의 언어로 제안한다.

낮고 단단한 성찰의 언어들 : 인생에 대한 회한, 그래도 버릴 수 없는 희망

책에는 다양한 형식의 글들이 있다. 생활글, 시 같은 글, 비평 같은 글, 시사 칼럼 같은 글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잡문집’이라며 애써 낮추어 부르기도 한다. 생활글을 비롯해 책에 실린 자유로운 형식의 글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성찰’이다. 저자는 글쓰기의 대상을 자기 안으로 가져와 성찰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지나온 삶을 회고하는 글뿐만 아니라,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는 글, 신경숙 표절 사건을 비판하는 글, 메갈리아 논쟁에 관한 글들에서도 ‘나’는 삭제되지 않는다. 그에게 비평의 대상은 곧 자기성찰의 재료인 셈이다. 그리고 ‘나이듦, 자기정체성, 문학, 혁명, 페미니즘’ 등 작가의 심연을 통과한 대상들은 낮고 단단한 언어들을 만나 새로운 ‘깊이’를 얻는다.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 한갓 문필가의 삶이 왔고, 또 가난한 문필가의 삶조차 그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정어정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든” 한 인간의 회한과, 그래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50대 후반 병약해진 초로의 대학교수가 되어 이렇게 지난날을 돌아본다. 돌아보니 참 쓸쓸한 세월이었다. 혁명가의 삶을 살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 한갓 문필가의 삶이 왔고, 또 가난한 문필가의 삶조차 그대로 지키지 못하고 어정어정 대학교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한때는 부끄럽고 욕된 삶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으나, 모리배들 돈세탁하듯 인생과 인생에 대한 관점도 하도 여러 번 세탁을 하고 나니 이젠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과거의 무게만 여전히 무겁고 미래에는 도대체 기다릴 무엇이 없어 현재는 그저 매일매일의 연장일 뿐인 삶, 습관처럼 분노하고 습관처럼 우울하고 습관처럼 자각할 뿐이다.(22쪽)


문학평론가 김명인의 첫 산문집 : 신경숙과 메갈리아를 말하다

1980년대 ‘민족문학주체논쟁’을 이끈 문학평론가, 1990년대 ‘주례사비평’과 2000년대 ‘표절문학’ 논란에서 비타협적인 태도를 견지한 비평가. 문학평론가이자 인하대 교수, 계간지《황해문화》편집주간인 김명인을 가리키는 수식어들이다. 이런 그가 글쓰기 인생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익숙한 평론집이 아닌, 인생과 시대를 되돌아보는 산문집을 펴냈다. 1990년대부터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쓴 수백 편의 산문 가운데 70여 편을 엄선해《부끄러움의 깊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엮은 것이다.
1부 ‘저기 낯선 남자 하나’에서는 나이듦과 자기정체성을, 2부 ‘슬픔의 문신’에서는 시?소설?노래?영화에 대한 감상을, 3부 ‘우리는 인간인가’에서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그를 의도치 않게 20여 년 만에 다시 비평의 장으로 끌어낸 신경숙 표절 사건(꼭 문학이 아니라도 좋다’(249쪽), 이시영 선생님께(253쪽))과 메갈리아 논쟁(메갈리아와 전복의 언어(201쪽), 진보를 ‘참칭’하는 자들(213쪽)에 대한 글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성찰하고 변화하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지금 한국문학의 풍경 속에서 내가 낄 자리는 별로 없다. 그리고 거기 끼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니 작금의 표절 사태를 두고 그렇게 안타까워한다거나 분노한다거나 하는 것도 원래 내 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다. 어떤 욕을 먹건, 어떤 평가를 받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잘들 해먹을 수 있을 때까지 해먹어라. 어차피 적당히 폼 잡고, 적당히 수입 잡고, 그러면서 (신경숙처럼 악착같이) 살아남으면 되는 사업 아닌가, 문학이란 게. 이제는.(252쪽)

대신 오늘날 진보주의의 ‘착한 핵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나는 세상을 이렇게 ‘현 상태’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진보주의의 부정 정신은 기본적으로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아니 본래부터 타자는 없으므르 ‘타자화된 존재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고 해 두자. 그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든 모든 진보 이념의 출발점에는 이 타자화된 존재들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가로놓여 있다.(214쪽)

저자 소개

1958년, 강원도 도계의 한 탄광 사택에서 태어났으나 네 살부터는 내내 서울에서 살아왔다. 글쓰기의 재미와 함께 세상의 이치에 눈을 떠 가던 중학 시절부터 막연히 비평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한 첫해 1977년 봄부터 비합법 학생운동 그룹에 몸을 담아 박정희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투쟁을 시작했고 이어진 전두환 신군부세력에 대항하는 투쟁에 20대 청춘의 거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투쟁선언문이나 격문을 쓸 때마다 존재론적 고양감에 몸을 떨었고 그 뜨겁고도 휘황한 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인생은 일찌감치 무거워졌다. 1979년에는 짧게,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좀 길게 두 번의 감옥살이를 했다.
  늦은 졸업을 했던 1985년, 졸업논문을 요약한 글을 발표해서 평단에 이름을 올리고 비평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7년에 역시 격문을 쓰는 기분으로 발표한 「지식인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이라는 글로 이른바 ‘민족문학주체논쟁’을 일으켰고 그 파장을 보며 다시 한 번 글 쓰는 일의 엄중함과 그 그림자의 길이와 무게를 절감할 수 있었다. 
  1992년, 시대의 피로와 환멸에 지쳐 「불을 찾아서」라는 글을 남기고 비평을, 아니 비평을 통한 투쟁을 중단하고 대학원에 들어가 김수영에 대한 석사논문과 조연현에 대한 박사논문을 써서 1998년에 학위과정을 마쳤고, 2000년부터 다시 비평을 쓰지만 동시대의 문학과 문학장의 성격을 수락할 수 없게 되어 문학비평을 점점 멀리하다가 2005년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에 교수직을 얻은 뒤로는 후생을 가르친다는 일의 엄중함이라는 미명 뒤에 숨어 사실상 평단에는 폐업계를 내다시피 하였다.
  1999년부터 인천에서 나오는 시사문화계간지 󰡔황해문화󰡕의 편집주간으로 일해 오면서 문학 없는 비평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문학 없는 글쓰기가 때론 적막하긴 하지만 내 글쓰기가 바로 문학의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으로 환멸의 문학 혹은 문학의 환멸을 견디며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묶어 낸 책으로는 󰡔희망의 문학󰡕(1990), 󰡔잠들지 못하는 희망󰡕(1997), 󰡔불을 찾아서󰡕(2000), 󰡔김수영, 근대를 향한 모험󰡕(2002),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2004), 󰡔조연현, 비극적 세계관과 파시즘 사이󰡕(2004),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2007) 등이 있다.

책 속에서

난 여전히 부끄럽다. 젊은 시절엔 남 못지않게 야망과 결기로 똘똘 뭉친 삶을 살았고, 언제부턴가는 그걸 속으로 감추느라 부끄러움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젠 그 야망도 결기도 다 사라지고 부끄러움의 페르소나가 진짜 얼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들 저마다 제 몫의 삶을 사는 것이라 누군가에게는 후안무치의 뻔뻔스러움이 삶의 방법이 되어버리듯, 나는 어쩌다 보니 부끄러움을 내 삶의 방편으로 삼게 되었다 할까? 둘 다 원래의 삶이 소외된 결과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좀 뻔뻔스럽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내 등록상표로 써먹기로 한다.
-‘서문’ 중에서

왼쪽 눈에도 결국 1년 만에 메스를 댔다.
이제 내 눈에 원래 내 것이었던 수정체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내일 거즈를 풀면 눈앞의 세상은 밝아지겠지만
내 눈 뒤쪽에는 분명 지울 수 없는 그늘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늙는다.
서른 즈음에 요절할 기회를 놓치고 나면
그다음부터 삶은 이렇게 점점 구차하고 너절해진다.
-‘이렇게 늙는다’ 전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수연산방의 고즈넉한 마당으로부터 조금 생기가 돌아서 돌아와 이 글을 쓴다. 쓸쓸한 일이다. 막막함에 막막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오니까 조금 기분이 나아진다. 그게 쓸쓸하다. 하지만 이 쓸쓸함에도 쓸쓸함이라고 이름을 붙이니까 역시 조금 살 만해진다. 이름을 붙이고 나면 거기 조금 틈이 생긴다. 그 틈들이 나를 살게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사물에 마음에 느낌들에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일이다. 그러고 나면 살 구멍이 생긴다. 그 틈 혹은 잉여, 세상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을 것 같은 이 한낮의 짧은 외출이 만들어낸 이 좁은 틈새로 나는 겨우 숨을 몰아쉰다. 다시 살자. 이게 내가 사는 법이다. 비록 이 글의 마침표를 찍고 나자마자 다시 더 큰 막막함이 밀려들지라도.
-‘틈’ 중에서

그 핵심, 그것은 부끄러움이다. 당시에 체제에 저항해서 검거, 투옥된 적이 있던 모든 사람이 공히 겪은 것이긴 하지만, 특히 조직사건과 연루된 ‘좌익사범’ 딱지가 붙었던 사람들의 경우에는 검거와 투옥의 전 과정에 걸쳐 고문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대한 심각한 굴욕과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그것은 지금도 다시 떠올리기 힘든 생애의 가장 끔찍한 체험이다). 그리고 그 굴욕과 좌절의 체험은 평생 ‘부끄러움’의 형태로 남아 전 생애의 그늘이 된다. 감히 말하거니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자기를 향한 혐오와 타인을 향한 죄책감’으로 구성된 그 부끄러움의 깊이를 절대로 측량할 수 없다.
나는 일종의 환우의 감각으로 신영복 선생의 삶과 저작의 모든 부면에서 그 부끄러움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분은 비슷한 경험을 했으나 여전히 어두운 은신과 자폐의 삶을 살았던 다른 분들과 달리 대학교수로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서예가로서 대중적인 애정과 관심을 크게 받으며 출옥 뒤 30년 가까운 여생을 누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그런 셀러브리티에 가까운 명성과 발휘했으면 얼마든지 더 발휘할 수 있었던 영향력에 비한다면, 그분의 삶과 저작을 가로지르는 어떤 삼감과 겸허의 태도는 바로 그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라는 생애의 감각에서 오는 것이었다. 남들은 그것을 미덕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아픈 표정인 셈이다.
그분의 부음을 들으면서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분이 이제 그‘부끄러움’이라는 평생의 상처에서 놓여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부끄러움의 깊이’ 중에서

 

목차

서문 부끄러운 이야기

1부 저기 낯선 남자 하나
이렇게 늙는다
틈
세월
남은 사람들
오십 년이 지났다
저기 낯선 남자 하나
빚진 자의 혼잣말 ― 전태일 단상
취직했습니다
나의 영원한 배후, 이원주 형의 영전에
명령이 부족한 밤
무모한 희망
억압적 희망, 습관적 절망
하나하나 다가온다
궁극의 희생
이 불편함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관념적 래디컬리즘에 대한 변명
나는 좌파다?
몽상의 인문학, 비현실의 사회과학
중독
모두가 귀족이 되는 세상
얼치기 페미니스트의 변명
그대 언 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
비 온다
낮술
일몰

2부 슬픔의 문신
저건 내가 아니다
지친 낙타
지금 데려가 다오
개 같은 희망
떠도는 슬픈 넋의 노래
징벌의 시간
미안하다 영근아
부끄러움의 깊이
집에 가자
생의 진퇴유곡에서
강철로 만든 노래비 하나
고갈되어 가는 존재들
다시 노동문학
어떻게 계속할 것인가
반갑고, 고맙다
나 자신에게 승리한다는 것
꽃은 경계에서 피어난다
조지 오웰
그녀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
또박또박 따라 적을 것

3부 우리는 인간인가
조국은 없다
말 새로 배우기
어떤 반성
메갈리아와 전복의 언어
진보를‘참칭’하는 자들
분노, 혐오, 그리고 짜증
불륜, 매춘, 그리고 윤리 도덕
헬조선
좌우에서 상하로
문학으로?
나는 지금 조증이다
꼭 문학이 아니라도 좋다
이시영 선생님께
문제는 계엄령이 아니다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인가
이 깃발 아래서
어떤 만시지탄
그날은 언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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