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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대사 산책 2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시리즈 : 북한 현대사 산책 [5]

안문석 저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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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9064243 / 340쪽 / 500g / 152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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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집필한 가장 객관적인 북한 현대사! 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

저자 소개

1965년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통일부, 국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로 외교·안보·북한 문제를 총괄했다. KBS 재직 중 영국으로 유학해 요크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워릭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하다가 재미가 붙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치를 깊이 파고 싶은 생각으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주요 관심사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외교정책을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의 내부 권력관계, 국제정치이론, 한국의 외교정책, 미국의 외교정책 등을 주제로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글로벌 정치의 이해》, 《오기섭 평전》, 《이제 만나러 갑니다》, 《김정은의 고민》, 《북한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한 한국》, 《노무현 정부와 미국》 등이 있다. 「북미 불신 구조의 형성 원인과 극복 방안」(《한국동북아논총》, 2016년 9월), 「A Nuclear South Korea?」(《International Journal》, 2014년 3월), 「How Stable is the New Kim Jong-un Regime: a Revolution in North Korea」(《Problems of Post-Communism》, 2013년 1월) 등 북한과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책 속에서

무기와 장비를 갖추고 소련과 중국의 동의까지 받은 북한은 6월 12일부터 38선 10~15킬로미터 지점으로 병력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명목은 훈련이었다. 이동은 6월 23일 완료되었다. 전선에 배치된 전력은 7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이었다. 전차는 T-34 258대였다. 당시 남한군은 38선에 4개 사단, 서울에 1개 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전차는 1대도 없었다. 공격 명령은 6월 23~24일에 하달되었고, 공격은 6월 25일 새벽 38선 전역에서 시작되었다. 소련의 군사고문단은 작전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기 때문에 7월에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장마였다. 7월이면 장마철이었다. 그래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의견에 따라 6월 말에 공격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제1장 6·25 전쟁 발발」 - P.23~24


북진통일을 지향하는 이승만에게 휴전회담은 있을 수 없었다. 북한이 남침하는 순간 38선은 사라진 것이고 북진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휴전 협상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더욱이 협상을 한다면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한다는 것인데, 그에게 공산주의자와의 협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해방 직후부터 이승만은 공산주의자와 협상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은 한반도를 적화하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민족 문제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 이승만은 다시 휴전이 된다면 북한은 언제든지 남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차제에 북진해서 통일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제2장 휴전의 모색」 - P.66


한미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합의함에 따라 8월 8일 존 덜레스(John F. Dulles) 미 국무장관이 남한에 와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함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을 하고 변영태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10월 1일 조약에 정식 조인했다. 한미 간의 상호방위조약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후 휴전 협상도 마무리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타결되었다. 공산 측은 미국인 3,314명, 한국인 8,186명 등 모두 1만 2,764명의 포로를 보내주었다. 유엔 측은 북한인 6만 9,000여 명, 중국인 5,000여 명을 송환하고, 한국인 7,800여 명과 중국인 1만 4,500여 명은 송환하지 않고 중립국송환위원회에 넘겼다. 중립국송환위원회는 인도가 의장국을 맡고,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휴전협정 서명은 이승만은 빠진 채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했다. 그때 3자가 서명해 만들어낸 휴전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제4장 휴전과 재건」 - P.123~125

목차

목차
머리말 · 4
제1장 6·25 전쟁 발발 : 1950년
전쟁을 위한 준비 15 · 스탈린의 조건부 승인 18 · 마오쩌둥의 소극적 동의 21 · 북한의 전면 공격과 미국의 신속한 개입 23 · 왜 서울에서 3일간 머뭇거렸는가? 26 · 중국의 참전 31 · 미국은 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35 · 북한의 작전권 이양 39 · 총정치국을 설치하다 42 · 김일성과 박헌영의 갈등 44 · 무정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47
조선인민군 특무상사의 1950년 · 52
제2장 휴전의 모색 : 1951년
김책은 왜 죽었을까? 57 · 중국과 미국이 휴전을 추진하다 61 · 이승만의 휴전 협상 반대 66 · 토사구팽 박일우 69 · 소련파 거두 허가이의 몰락 73 · 조선노동당 당원 배가운동 77
헝가리 기자가 본 1951년 · 80
제3장 수령의 탄생 : 1952년
개인숭배의 시작 85 · 군 장교의 전면 재교육 90 · 증산운동과 여성보잡이운동 93 · 농업집단화의 전조 96 · 행정구역 개편 99 · 터덕거리는 휴전 협상 102 · 인민들의 살아남기 투쟁 106
헝가리 의사가 겪은 1952년 · 109
제4장 휴전과 재건 : 1953년
박헌영 숙청 115 · 전 사회적 사상 단속 119 · 휴전의 성립 121 · 미국의 이승만 제거 계획 125 · 정전 체제와 평화 체제 128 · 전쟁이 남긴 상흔 131 · 김일성 권력의 공고화 134 · 사회주의 기반 강화 137 · 중공업 우선, 경공업·농업 동시 발전 전략 139 · 통일전선 사업 142
민주선전실장의 1953년 · 146
제5장 사회주의 본격화 : 1954년
경제 복구 3개년 계획 착수 153 · 농업협동화로 본격 사회주의화 155 · 농업협동화에 반대하는 사람들 159 · 개인 상공업의 협동화 162 · 군 장교 양성 체계화 163 · 제네바 회담 실패 165 · 북한식 철자법 공포 170 · 국내파를 당 요직에 앉히다 172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황장엽의 1954년 · 175
제6장 주체사상이 싹트다 : 1955년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육 강화 179 · 김일성 중심의 공산주의 역사 181 · 박헌영 재판 184 · 박헌영은 미국의 간첩이었는가? 188 · 주체사상의 맹아 192 · 정치적 색체가 약화된 문학 196
평양시 당위원장이 본 1955년 · 200
제7장 김일성 반대파의 도전과 실패 : 1956년
스탈린 비판과 ‘수령’ 칭호 실종 205 · 김일성으로 권력 집중 208 · 외교의 다변화 210 · 8월 종파사건 213 · 최창익은 어떤 인물인가? 215 · 연안파와 소련파 숙청 219 · 조선인민군 8만 명 감축 222 · 초등의무교육 실시 225 · 지방인민회의 선거 227 · 농업협동화 반대 운동 229 · 천리마운동의 시작 231
조선인민군 정치장교가 본 1956년 · 234
제8장 전 사회적 사상 검증과 숙청 : 1957년
집단지도 체제 239 · 소련의 반당그룹 축출과 중국의 정풍운동 241 · 전방위 사상 검증과 김두봉의 퇴진 245 · 김영주의 부상 250 · 연안파의 우군, 중국군 철수 합의 251 · 소련파는 소련으로 255 · 김두봉 출당과 숙청 본격화 257
동독 건축가가 본 1957년 · 261
제9장 경제발전의 본격화 : 1958년
평양 건설과 ‘평양속도’ 267 · 인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완성 270 · 중앙 숙청 총괄, 지방 숙청 시작 272 · 당대표자회와 당대회 274 · 군에 불어닥친 숙청 회오리 277 · 군에 대한 통제 강화 280 · 권력투쟁에서 사상투쟁으로 283 · 중국군 철수 285 · 평양외국어학원 개원 289 · 첫 자동차 ‘승리 58’ 생산 291
탄부의 1958년 · 294
제10장 전 사회의 감시 체제 : 1959년
어린 김정일의 활약 299 · 거대 예비군 노농적위대 출범 302 · 제2차 화폐개혁 304 · 5호담당제 실시 306 ·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사상의식 개조 308 · 공작기계 새끼치기 운동 312 · 교육 체계 전면 개편 314 · 재일 동포의 입북 316
소련파 고위 관료의 1959년 · 321
주 · 324
연표 · 329
찾아보기 ·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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