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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시절

시리즈 : 비꽃 세계 고전문학 [18]

찰스 디킨스 저 | 김옥수 역 | 비꽃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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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393261 / 40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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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어려운 시절’은 몇 가지 측면에서 아주 독특하다. 우선, 디킨스 작품치고 분량이 아주 짧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다. 게다가 작가 서문도 없고 삽화도 없?다는 사실 역시 독특하다. 런던 이외 지역을 (영국 북부 공업 도시 코크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은 무엇을 심던지 자신이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둔다’는 내용에 근거해서 1권 ‘씨앗 뿌리기’, 2권 ‘수확하기’, 3권 ‘저장하기’로 나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찰스 디킨스는 1839년 초기에 맨... ‘어려운 시절’은 몇 가지 측면에서 아주 독특하다. 우선, 디킨스 작품치고 분량이 아주 짧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의 절반에 불과할 정도다. 게다가 작가 서문도 없고 삽화도 없다는 사실 역시 독특하다. 런던 이외 지역을 (영국 북부 공업 도시 코크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은 무엇을 심던지 자신이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둔다’는 내용에 근거해서 1권 ‘씨앗 뿌리기’, 2권 ‘수확하기’, 3권 ‘저장하기’로 나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찰스 디킨스는 1839년 초기에 맨체스터 공업지대를 방문해서 노동자들이 일하는 열악한 환경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결과, 끔찍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사람을 위해 “온 힘을 다해서 강력한 일격을 가하겠다” 결심하고 오랜 구상을 통해 ‘어려운 시절’을 집필한다. 그리고 공리주의를 본격적으로 비판한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서 이기적인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킨다는 사상으로 당시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념이었다. 하지만 찰스 디킨스는 공리주의를 “통계와 수치로 모든 걸 판단한다”고 비판하며, 이런 사회는 극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판단할 뿐, 속마음이나 감정 등 눈에 안 띄는 부분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만 중시할 뿐, 인간의 성실한 자세나 진정성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를 창시한 벤담 밑에서 일한 에드윈 캐드윅이 1834년에 빈민구제법을 만들면서 구빈원 생활을 일부러 최대한 불편하도록 구상한 게 좋은 사례다. 이런 자세는 본 작품에서 그래드그라인드가 동정을 베풀라고 호소할 때 비쩌가 보인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공리주의 핵심 이론가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여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철자법, 어원학, 구문론, 작시법, 전기문학, 천문학, 지리학, 일반우주형상학, 복합비율학, 대수학, 토지측량학 등 가혹할 정도로 많은 교육을 받다가 이십 대 초반에 신경쇠약에 걸리는 반면, 여주인공은 메마른 교육을 받은 결과 감정표현을 제대로 못 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든다. 그런데 디킨스가 놀란 건 이렇게 이기적인 철학을 학교에서 물질주의,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와 결합해 학생들을 달달 볶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 이름은 ‘아이질식 M’Choakumchild’다. 아이를 질식시킨다는 뜻을 선생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찰스 디킨스는 성격이나 본질이 드러나는 이름을 잘 사용한다. 그래드그라인드(Gradgrind)에는 ‘아이들을 맷돌에 넣고 기쁘게 갈아댄다’는 뜻이고, 바운더비(Bounderby)는 ‘비열한 인간, 졸부, 버릇없는 놈’이란 뜻이 있으며 스파싯(Sparsit)은 ‘싸움닭’이란 뜻이 있다. 반면에 성실하게 살다가 결국에는 물질문명에 치여서 죽는 인물에겐 ‘스티븐’이라는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이름을 부여하고 블랙풀(BLACKPOOL, 까만 웅덩이)이라는 암울한 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해방 이후 서양문화 특히 미국문화를 거의 비판 없이 수용했다. 그런데 현재의 미국문화는 영국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와 논쟁을 거치면서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은 영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며 새로운 사회로 나가게 한 사건이며, 이후, 서양 일반이 산업화 대열에 뛰어들면서 서양문화를 규정하고, 우리 사회 역시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우리 문화를 규정하는 계기로 작용한 사건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영국 산업혁명 시기를 정면으로 겪으며 다양한 삶을 분석한 찰스 디킨스 작품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 예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공리주의 명제 역시 지극히 올바른 것 같으며, 따라서 영국에서도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당연히 겉으로 드러난 수치와 통계를 중시할 뿐 거기에서 소외된 사람은 외면한다. 사람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상상력과 환상과 재미 등도 당연히 무시하고 개성도 무시한다. 그래서 학교는 지옥이 된다. 따라서 문제가 나타나는 만큼 사람들은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논쟁과 검증을 통해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면서 사회는 그만큼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전시 체제의 각박한 미국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니, 그건 우리 삶에 근거하지 않은, 아무런 뿌리도 없는 문화일 수밖에 없어, 기득권층은 통계수치를 마음대로 조작하며 이익을 추구하고 힘없는 사람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아니면 말고’ 식 주장으로 상대를 곤경에 몰아넣고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나면 모른 척하는 식이다. 이익만 챙기고 책임은 아무도 안 지려고 한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문화를 살찌우려면 우리 주변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고전은 우리가 비판 없이 받아들인 문화가 생겨나온 배경과 그 속에서 인간이 구체적으로 살아간 모습을 묘사하고, 우리가 이런 사회, 이런 문화에서 살아가게 된 원인을 보여준다.

저자 소개

디킨스는 1812년 영국 남단의 군항인 포츠머스에서 해군 경리국의 하급 관리인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의 팔 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존 디킨스로 인해 가세가 점점 기울어 디킨스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약 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여 형편없는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자서전적인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1849∼1850)에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찰스가 노동 계층으로 전락하여 느끼는 고통스러운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이후 그는 여러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게 되는데, 1834년 [아침 신문]의 의회 담당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필명으로 런던의 삶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고, 1835년 조지 호가스가 편집인인 [저녁 신문]에 [런던의 풍경] 등 여러 글을 기고했다. 디킨스는 조지 호가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딸인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고, 처제인 메리를 데리고 첼시에 정착하는데, 메리가 1837년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순수했던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1840∼1841)에서 어린 넬로 재현된다. 디킨스는 스물한 살 때부터 몇몇 잡지에 기고했던 단편 및 소품을 모아 [보즈의 스케치](1836)를 출판하지만 그의 명성을 확보해 준 것은 [픽윅 보고서](1836)였다. 이후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1837∼1839), [크리스마스 캐럴](1843), [돔비와 아들](1846∼1848), [황폐한 집](1852∼1853), [어려운 시절](1854), [작은 도릿](1855∼1857), [위대한 유산](1860∼1861), [우리 서로의 친구](1864∼1865) 등 많은 작품을 쓰며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디킨스는 가정적으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거듭된 과로로 인해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완성하지 못하고, 1870년 6월 9일 58세의 나이로 개즈 힐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역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저작권 중계회사 ‘임프리마 코리아’ 영미권 담당부장, 도서출판 ‘사람과 책’ 편집부장 등을 역임했다. 약 300여 종에 달하는 영서를 번역했다. 대표작으로는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위대한 유산1,2>, <두 도시 이야기>, <올리버 트위스트1,2>가 있다. 
학계에서 발표한 다양한 ‘번역 방법론’ 백여 편을 정리하고 25년에 걸친 번역 경력을 접목하여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3년 동안 번역방법을 강의하며 ‘우리말 살리는 번역방식’을 새롭게 정리했다. 현재는 풍자와 유머가 넘쳐서 난해한 소설로 유명한, 영미권 최고의 작가 ‘찰스 디킨스’ 대표작을 선정해서 우리말 어법에 맞게 원작의 풍미까지 그대로 담아내려고 애쓴다. ‘찰스 디킨스 선집’을 시작으로, 영미 고전문학 전체를 새롭게 번역하는 게 목표다. 앞으로는 ‘김옥수 번역교실’을 만들어서 우리말 살리는 번역방법을 후학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머리말

번역은 원문에 담긴 내용과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글로 옮기는 과정이어야 한다. 찰스 디킨스 작품은 다양한 인물을 풍자와 유머와 화려한 문장으로 재미있게 묘사하는 특징이 탁월하다. 따라서 문장은 어렵고 복잡한데,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은 한글 어법을 무시한 영어 사대주의에다 오역까지 넘쳐서 극히 어렵고 난해했다.

고전문학은 다양한 경쟁과 도전 속에서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며 백 년 이상 살아남은 작품이니, ‘재미와 감동’은 물론 ‘술술 읽히는 느낌’ 역시 어느 작품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기능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엉터리로 번역해서 독자를 괴롭히며 쫓아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문학은 독서가 시작이다. 고전문학을 제대로 해석해서 한글 어법에 정확히 담아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가꿀 원형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35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우리는 ‘일본어 중역 몰아내기 운동’을 했다. 35년이 또 지났다. 이제는 ‘우리말 살리는 번역운동’을 할 때가 왔다.

‘도서출판 비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한국어 어법에 합당한 번역을 추구하며, ‘찰스 디킨스 선집’을 필두로 고전문학을 새롭게 담아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면서 공동체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책 속에서

“저에게 생명을 주시고서 자잘한 일상사를 어떻게 모두 빼앗아, 죽음 같은 상태로 빠져들게 할 수 있나요? 제 영혼은 어디에서 은총을 받나요? 제 가슴은 어디에서 감정을 품나요? 여기 황량한 황무지에다, 꽃을 활짝 피워서 정원으로 가꾸어야 할 여기에다, 아, 아버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셨나요, 도대체 무슨 짓을!”
루이사가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내려치며 계속 말했다.
“여기에 꽃을 활짝 피운 적이 있다면 그 기억 하나로 저는 생활 자체가 진공상태로 모두 빠져드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거예요. 이런 말까지 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아버지, 우리가 지난번에 이 방에서 나눈 대화를 기억하세요?”
아버지는 지금 이런 말을 들을 준비가 전혀 안 된 터라 몹시 어렵게 대답했다.
“그래, 루이사.”
“당시에 아버지가 저를 조금만 도와주셨다면 지금 하는 말을 당시에도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아버지를 나무라는 게 아니에요. 나에게 가르치지 못한 건 아버지 역시 못 배운 거니까요. 하지만 아! 아버지가 오래전에 멈추기만 했어도, 아예 나를 내버려두기만 했어도,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익하고 행복하게 살았을 거예요!”
온갖 관심을 기울이며 키운 딸에게 이런 말까지 들으니, 아버지는 머리를 숙이고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앓는 소리를 절로 커다랗게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여기에서 대화를 나눌 때 –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을 모두 물리치려고 힘껏 싸우는 게 어릴 때부터 제가 한 일이니 – 제가 힘껏 싸우면서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았더라면, 다양한 감수성과 애정이, 장점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약점이, 인간이 지금까지 내린 모든 판단을 거부하고 창조주가 허용하신 이상의 산술 판단을 거부하는 약점이 제 가슴에서 꿈틀거린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았더라면…… 그래도 세상 무엇보다 증오하는 사람을 저에게 남편으로 맺어주시겠어요?”
“아니다. 아니다. 가엾은 우리 딸.”
“제가 서리와 마름병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며 모든 감각을 잃고 망가지도록 하시겠어요?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데, 세상을 좀 더 황량하게 만들 뿐인데, 제 인생에서 정신적인 영역을, 제 믿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과 화려한 여름을, 주변에 널린 더럽고 나쁜 것에서 제가 피신할 피난처를, 제가 좀 더 겸손하게 주변 사람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그래서 나로 인해 주변 사람 역시 조금이라도 좋아지길 바라며 살아가도록 공부하는 과정을 저에게서 빼앗으시겠어요?”
“아, 아니다, 아니야. 아니야, 루이사.”
“그래요, 아버지, 제가 눈이 완전히 멀었다면, 그래서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가야 한다면, 하지만 사물 표면과 모양새를 만지며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지금 이렇게 눈을 달고 사는 것보다 모든 점에서 백만 배는 현명하고 행복하고 사랑하고 만족하며 인간적으로 더욱 순결하게 살았을 거예요. 제가 애초에 여기에 온 까닭을 이제부터 말할 테니, 잘 들어보세요.”
아버지가 팔로 딸을 부축하려고 움직였다. 그러자 딸도 일어나, 두 사람은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딸이 한 손을 아버지 어깨에 올려놓고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단 한 번도 충족시킨 적이 없는 굶주림과 갈증하고 매 순간 싸우며, 줄자와 숫자와 사물에 대한 정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하고 매 순간 싸우며 지금까지 살았어요.”
“네가 그렇게 힘든 줄 조금도 몰랐구나, 아가.”
“아버지, 저는 제가 힘든 걸 언제나 알았어요. 끝없이 싸우는 가운데 저는 제 몸속에서 천사를 거부하고 파괴하며 악마로 만들었어요. 제가 배운 내용은 제가 모르는 내용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신하고 깔보고 경멸하도록 만들었어요. 제가 배운 황량한 지식은 인생이란 어차피 끝난다고, 굳이 힘들여서 노력할 정도로 중요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어요.”
“이렇게 젊은데, 루이사!”
아버지가 한탄했다. 불쌍히 여기는 어투다.
“그래요, 아주 젊지요. 바로 이런 상태에서 – 제 마음이 평소에 무감각하다는 상태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이나 편견 없이,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는 건데 – 아버지는 남편을 권하고 저는 받아들였어요. 지금까지 아버지나 남편 앞에서 제가 남편을 사랑하는 척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저도 알고 아버지도 알고 남편도 알아요. 물론 처음부터 관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톰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무모한 환상이란 사실이 서서히 드러났어요. 그동안 저는 톰만 바라보며 살았어요. 톰이 그렇게 된 건 제가 너무 가련하게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톰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아버지가 훨씬 너그럽게 생각하도록 도울 수도 있겠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바로 그걸 말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버지. 제 인생에 새로운 사람이 우연히 끼어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세상 물정에 밝고, 명랑하고, 세련하고, 느긋한 사람. 허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 모든 걸 얕잡아보고, 그래서 제가 속으로 약간 걱정하는 사람. 처음 만나고 얼마 안 돼서, 그 깊이와 방식은 모르겠지만, 저를 이해하고 제 생각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 저보다 나쁜 점은 찾을 수 없었어요. 우리 둘은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 유일하게 의심스러운 건, 세상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이 정말 나에게 이렇게 엄청난 관심을 쏟을 수 있는가였어요.”
“너에게, 루이사!”
아버지는 움켜잡은 딸을 본능적으로 놓을 것만 같았다, 딸에게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걸 못 느꼈더라면,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눈에서 매섭게 일어나는 불꽃을 못 보았더라면.
“그 사람이 자신을 믿어달라고 간절하게 요청했다는 사실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어요. 제가 그 사람을 어떻게 믿기 시작했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결국 저는 그 사람을 믿었으니까요, 아버지. 제 결혼에 대해서 아버지가 지금에서야 파악한 내용 역시 그 사람은 단번에 파악했으니까요.”
아버지는 얼굴이 잿더미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딸을 두 팔로 꼭 껴안았다.
“저는 그 이상 나쁜 짓은 안 했어요. 아버지 명예를 더럽히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을 사랑했는지, 지금도 사랑하는지 물으신다면, 그런 것 같다고 솔직하게 대답하겠어요. 아아, 모르겠어요.”
딸은 아버지 어깨에서 갑자기 두 손을 떼어내 자기 옆구리에 댔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서, 평소와 다른 얼굴에서, 자신이 할 말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결심하곤 가슴을 똑바로 편 모습에서, 오랫동안 억누르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오늘 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그 사람이 찾아와서 저를 사랑한다고 선언했어요. 지금 그 사람은 저를 기다리고, 저는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이 여기에 찾아오는 것밖에 없었어요. 지금 저는 이런 상황을 후회하는지도 모르고, 창피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고, 제 자존심을 깔아뭉갰는지도 몰라요. 제가 아는 건, 아버지 철학과 가르침은 저를 구할 수 없다는 거예요. 저를 이런 상태로 만든 사람은 바로 아버지예요. 그러니 이제 다른 방법으로 저를 구해주세요!”
아버지는 바닥으로 쓰러지는 딸을 재빨리 붙잡고, 딸은 끔찍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저를 잡으면 그냥 죽어버리겠어요! 바닥에 쓰러지도록 내버려두세요!”
그래서 아버지는 딸이 쓰러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품었던 자부심이자 자신이 세운 시스템의 결정체가 정신을 잃은 채 발밑에 쓰러진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통에 시달리다가도 가끔 정신이 들 때마다 별이 저 위에서 비추는 걸 깨닫고, 우리 구세주가 계시는 곳으로 나를 인도할 별이라고 생각했소. 바로 저 별이 그 별이라고 생각했다오!”
사람들은 스티븐을 조심스레 들고서 들판을 따라가고 오솔길을 내려가고 광활한 풍경을 지났다. 레이첼은 스티븐 손을 안 놓았다. 속삭이는 소리조차 없어 구슬픈 침묵만 가득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행렬 자체도 장례 행렬로 변했다. 별은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을 찾도록 빛을 비추고, 망자는 겸손과 슬픔과 용서를 통해서 구세주 품에 안긴다.

목차

목차
제1권  씨앗 뿌리기

1장  진짜 필요한 건 딱 한 가지 9
2장  죄 없는 어린애를 죽이다 10
3장  구멍 18
4장  바운더비 25
5장  기본 내용 34
6장  슬리어리 마장마술 42
7장  ?스파싯 부인 60
8장  절대 궁금해하지 마라 69
9장  씨씨가 공부하는 수준 76
10장 스티븐 블랙풀 87
11장 출구가 없다 93
12장 할머니 104
13장 레이첼 109
14장 위대한 제조업자 121
15장 아버지와 딸 127
16장 남편과 아내 137
제2권  수확하기

1장  은행에서 일어난 일 145
2장  제임스 하트하우스 선생 162
3장  건달 173
4장  노동하는 형제들 179
5장  노동자와 고용주 189
6장  사라지다 199
7장  화약 215
8장  폭발 233
9장  어머니 유언을 듣다 251
10장 스파싯 부인이 만든 계단 262
11장 밑으로 또 밑으로 268
12장 밑으로 280
제3권  저장하기

1장  또 필요한 거 한 가지 287
2장  아주 엉뚱한 제안 296
3장  단호하게 결심하다 309
4장  실종 320
5장  발견 333
6장  별빛 345
7장  건달을 잡아라! 359
8장  철학적인 사고방식 374
9장  끝 383
부록 - 작품해설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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