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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3 1200~1400 성, 상인, 시인의 시대

원제 : Il Medioevo 3: Castelli, Mercanti, Poeti
시리즈 :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5]

움베르토 에코 저 | 김정하 역 | 시공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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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774248 / 1100쪽 179 x 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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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의 결정판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암흑기라는 표현에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한 문화적이고 물질적인 쇠퇴기를 떠올린다면 …… 이는 부분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 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 전체 서문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소개] 중세 Ⅰ(47...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의 결정판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암흑기라는 표현에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한 문화적이고 물질적인 쇠퇴기를 떠올린다면 …… 이는 부분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 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 전체 서문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소개] 중세 Ⅰ(476~1000):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중세 Ⅱ(1000~1200):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중세 Ⅲ(1200~1400): 성, 상인, 시인의 시대 중세 Ⅳ(1400~1500): 탐험, 무역, 유토피아의 시대(2018년 출간 예정)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은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중세의 모든 것을 다룬 인문 시리즈로, 시기에 따라 총 4권으로 구성된다. 역사와 철학에서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까지 현재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세의 다양한 사건, 사상, 제도, 문화, 예술 등이 촘촘하게 소개된다. 흔히 암흑기라고 알려진 이 시기가 사실은 얼마나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 왔는지, 또 근현대의 여러 분야가 정착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 왔는지를 알려 준다. 기획자와 집필자들의 국제적인 명성, 방대하고도 세밀한 자료 등에서 다른 책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중세의 결정판. [중세 3: 세부 내용] “오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중세, 가장 빛났던 천 년”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되었던 13-14세기의 중세, 움베르토 에코 사후 출간되는 첫 책! 중세 백과사전 속에 담겨진 빼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의 향연 신을 떠나 인간에게로 향한 1200년 이후의 중세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말하며 중세를 역병, 전쟁, 학살이 만연했던 어둠의 시대로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에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중세에도 황금기가 있었으며 어느 시대 못지않게 찬란했다. 특히 1200년 이후의 중세는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경험했다. 여러 군주국이 형성되고 진정한 시민 계급이 탄생했으며 단테, 조토, 아퀴나스 같은 수많은 철학가와 문학가, 예술가가 활동했다. 안경, 단추, 아라비아 숫자 등 현대의 우리도 사용하는 도구와 관습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은 중세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편견들을 깨고 그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우리 시대와는 무엇이 다른지를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 분야로 나누어 증명해 낸다. 그리고 근대를 거쳐 온 우리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어 나갈 지혜를 엿보게 해 준다. 중세 역사, 유럽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 13세기는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과 함께 열렸다. 그러나 십자군은 ‘신의 의지’를 제창했던 성전聖戰이 얼마나 변질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는데, 그럼에도 1291년까지 활동이 이어졌다. 이것은 프랑스의 필리프 4세 미남왕이나 신성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와 같은 교황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군주들이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력 팽창이라는 서로 다른 주체들의 같은 목적 때문에 13-14세기 내내 영토 전쟁이 벌어졌는데 유럽 세계의 군주들 외에도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이나 오스만 제국의 무라드 1세 또한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그리스도교 권력은 13-14세기에도 정치, 경제, 사회의 전 영역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조금씩 한계와 문제를 드러냈다. 세속의 정치에 관여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립하려 했던 교황들의 행동은 반목과 충돌에 휩싸였고,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새로운 탁발 수도회의 성립, 카타리파나 발도파와 같은 이단의 활동, 교황청의 아비뇽 이전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에서, 심지어는 흑사병 같은 질병에서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벌어졌으며 너무나 오랜 기간 때문에 이름조차 ‘백년전쟁’으로 불린 전쟁은 처음에는 봉건 전쟁으로 시작되었으나 확고한 정치적-사회적 기틀을 갖춘 두 국민 군주국을 탄생시키며 종식되었다. 여기에는 왕위 계승 방법, 용병, 기병과 보병, 신무기, 평화 조약, 국민 군주국 등과 같은 당대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두 나라를 필두로 여러 국가가 차례로 군주국의 모습을 갖추어 가며 법을 강화하고 군주의 권위를 높였다. 이탈리아만이 예외로 상업을 통하여 부富를 축적한 자치 도시들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르코 폴로를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는 동방 혹은 넓은 바다로의 활발한 진출도 지나치면 안 된다. 중세에 관한 오해 중 하나가 중세는 여성을 혐오했다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허약하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으니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여성의 상속이 관습법 차원에서 인정받았음은 물론 13세기부터 여성들은 통치자부터 수녀원장, 예언가와 이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여성의 섭정 관습도 이 기간에 확립되었다.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을 통합하여 칼마르 동맹을 만들었다. 또한 시에나의 가타리나와 스웨덴의 비르지타 등은 교회 개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상은 계속되었다. 주거와 관련해서는 도시 자체가 잘 방비된 하나의 거대 주택인 셈이었는데 사람들은 치안을 위해 성채 안 혹은 성문 입구를 따라 주거지를 마련했다. 영주들의 집은 크고 높았으나 가난한 이들의 집은 작고 초라했다. 온 가족이 이불 한 채를 같이 덮고 간소한 집기만 겨우 소유했다. 파스타의 확산으로 식생활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곡물 소비가 빠르게 증가했는데 이것이 질병 확산에 원인이 되기도 했다. 13세기부터 노동자와 부유층의 옷차림에 보다 큰 차이가 나타났으며 신분에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은 일종의 괘씸죄에 해당했다. 중세 철학과 사상, 아리스토텔레스 재발견의 영향 13세기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활동했던 기간으로, 신학 중심의 철학을 주창했던 스콜라 철학의 황금기에 해당했다. 스콜라 철학은 주어진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주장과 반론을 계획하고 분석하고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이들을 비교한 후에 최종 결론에 도달하는 ‘문답’을 통해 발전해 나갔다. 따라서 13-14세기 내내 사변적이거나 도덕적인 것부터 아주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묻고 반박하는 토론들이 이어졌다. 특히 고대 철학의 전통적 권위에 의존함으로써 이 기간에 아리스토텔레스 권위가 확립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술이 다시금 라틴 세계에 등장한 것은 번역과 주석 작업 외에도 사회, 문화, 과학 전 영역에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토미즘이 절대적이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반론의 여지가 있다. 프란체스코회의 철학자들은 토미즘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영국에서는 경험주의 사상을 통하여 자연 철학의 여러 문제에 다가서고자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큰 파급을 주지 못했으나 라이문두스 룰루스와 그가 제창한 ‘조합술’은 17세기 과학 혁명기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에게 강력한 영감을 준 것은 물론 현대의 컴퓨터 논리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공식적으로 가톨릭 철학이 등장했던 시기에 이단 논쟁이 뜨거웠다는 것

저자 소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의 저자이자 역사, 철학, 미학, 기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사상가다. 193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토리노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로 여러 대학의 강단에 서면서 미학, 철학, 시각 커뮤니케이션, 기호학 등의 이론서들을 발간하여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지적인 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장미의 이름』을 시작으로 『푸코의 진자』 등 여러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교 정교수로 기호학을 강의해 왔으며, 유럽과 미주의 대학들에서 43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전 세계로부터 많은 훈장을 수여받았다. Encyclomedia(74권의 전자책으로 구성된 ‘유럽 문명의 역사’에서 중세 부분을 담당했으며 현재 www.encyclomedia.it에서 온라인 판본을 이용할 수 있다)를 계획하고 추진했으며, Encyclomedia의 학술 분과를 담당했다. 
(Homepage: eliasp.net; E-mail: elias@catholic.ac.kr)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뒤,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중세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중세 철학 전공)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인문학부 철학과 교수이자 성심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중세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가톨릭철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중세 철학사’ 강의는 2012년 11월에 SBS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학 100대 명강의’로 선정되었다. 또한 SBS CNBC ‘인문학 아고라’ <어떻게 살 것인가>, EBS 특별 기획 <통찰> 등의 TV 방송 출연, 한겨레신문 연재, 다양한 강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중세에 대해 갖는 편견을 깨고, 중세 철학이 지닌 매력과 그 깊이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 《생각하고 토론하는 서양 철학 이야기 2: 중세-신학과의 만남》, 《철학의 멘토, 멘토의 철학》,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1-2권), 《생각사이-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라틴어 원문에서 번역한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신학요강》과 《대이교도대전 II》(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 등이 있다.

* 저자 강의 영상 맛보기
1. http://www.cpbc.co.kr/TV/8728/
가톨릭평화방송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만나다> 프로그램 소개 및 다시 보기
2. https://www.youtube.com/watch?v=5XcU7_bPrwM (2분)
가톨릭대학교 박승찬 교수 강의 소개_2012년 우수 강의 '중세 철학사'
3. https://www.youtube.com/watch?v=BeRZJGwYWtc (4분)
평화방송 <그리스도교 서양 문화의 어머니> '제14강 카를 대제의 문예 부흥과 수도회의 개혁' 무비클립
4. https://www.youtube.com/watch?v=-b-iBnXdeis (22분)
SBS 대중 강연 '너나 잘 하세요_고통의 미학' 1부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파사우 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중세유럽 여성의 발견』『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를 비롯하여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독일 ․ 폴란드 역사 화해의 길』(공저) 『서양 중세사 강의』(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중세의 빛과 그림자』『국가의 탄생-근대국가의 중세적 기원』(공역)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세의 이단과 여성」「중세의 사료 위조에 대한 심성사적 접근」「중세 문화 속의 그리스 신화」「필립 아리에스의 죽음관에 대한 연구」등이 있다. 


 

역자 소개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시에나 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중세문헌학, 기록물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기록물관리학 개론』과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치즈와 구더기』, 『고대 로마 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 『책공장 베네치아』 등이 있다.

책 속에서

 

프랑스 군주국은 필리프 4세의 치하에서 정치적 입장을 새롭게 정리했다. 중세에 기원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인종의 공존과 공동의 종교적-정치적인 원칙에 근거하여 유럽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이념의 실패에 따른 신성로마 제국의 몰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던 황제의 보편주의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것은 교회의 보편적 우월함을 주장했던 교황의 이념으로, 유럽 국가들이 자신들을 위한 공동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던 유일한 집적 요인에 해당했다. 이에 반反하여 필리프 4세는 14세기 초반에 세속 권력과 영적 권력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정책에 입각하여 로마법과 군주국 절대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재정리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1296-1303년에 교황과의 대립에 관련하여 여러 상황이 벌어졌다. 보니파시오 8세의 굴욕은 ‘아나니의 따귀 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리스도교 세계의 최고 권위에 적대감을 보인 핵심에는 프랑스 군주가 유럽의 정치와 사회를 통제하고자 했던 야심이 자리했다. 같은 해에 있었던 보니파시오 8세의 사망 이후 필리프 4세는 프랑스인을 새 교황으로 선출하게 했다. 클레멘스 5세는 몇 년 후 프랑스 군주의 모든 제안을 수용해야 하며, 교황의 전통적 거처인 로마를 포기하고 프랑스 군주와 고위 성직자들의 영향권에 예속되었다(1309).
-‘역사: 프랑스’에서

13세기 말과 14세기 초반에 대학 교육의 특징을 보여 주는 변화는 특히 신학 분야에서 주석과 대전의 유형에도 중요한 의미로 반영되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비평 기준과 방식들에 근거해 인식되었던 이상적인 신학으로부터 고유한 주제화의 형태를 보여 주는 독자적-자치적인 신학으로의 전환은 신학자들의 연구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신학 저술의 경우 주요한 장르로의 내부 발전을 조사하면 확실하게 드러난다. 13세기의 변화와 비교하면 철학은 더 큰 비중을 차지했고 토론에 동원된 문제 수는 급격히 줄었다. 13세기의 주석서들과 14세기의 새로운 신학자들의 주석서들을 비교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철학: 대학과 학문 체계’에서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는 발상은 인간이 (기본 구도에서 출발한 물레방아의 진화를 통해 확인된) 기계적 사고방식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대에 기원한다. 기계 기술은 이제 다른 차원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처럼 여겨졌다. 새로운 발명을 향한 추진력은 상당했다. 1338년에 베네치아에서 동방을 향해 출항한 범선에는 기계 시계도 실려 있었는데, 이는 서방의 기술적 우위를 다시금 확인하는 증거였다. 14세기에 기계 시계는 성당, 교회, 도시의 탑에 설치되었다.
-‘과학과 기술: 기계 시계’에서

단테 알리기에리는 중세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당대 문화의 집성이며 전체로는 시대를 대변한다. 젊은 시절에 운문과 산문을 혼합해 쓴 『새로운 인생』은 청신체의 심오한 의미를 충족시켰고, 여러 이론이 적용된 서정시에서도 이와 같은 특징이 반복되었다. 『속어론』에서는 수사학적-시적 연구를 보여 주었다. 전투적인 시인이었던 단테는 20여 년 동안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기도 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정치적인 성격의 『제정론』을 쓰기도 했다. 『신곡』에서도 드러나듯 단테는 사후 세계로의 여행을 이야기하며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식의 시에서 받은 영향을 포괄했고, 백과사전적인 성격의 시를 수단으로 하여 모든 현실을 대변했다.
-‘문학과 연극: 단테 알리기에리’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서명, 비문, 자료 등에 작품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남겨졌다. 니콜라 피사노와 조반니 피사노, 그리고 캄비오의 아르놀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유명한 인물(치마부에, 부오닌세냐의 두초, 시모네 마르티니, 조토, 피에트로 로렌체티와 암브로조 로렌체티)부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제자들까지, 익명의 관습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조반니 피사노는 1301년에 스스로를 ‘헛된 것을 시작하지 않는 자, 훌륭한 지식으로 행복한 니콜라의 아들’이라는 축원과 더불어 피스토이아 두오모의 (제단 관련) 양피지 문서에 서명했다.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개념과 고려가 급진적으로 변화되었음을 말해 주는 거대한 변화의 첫 단계였다.
-‘시각예술: 중세의 예술가들’에서

13-14세기에는 음악이 음악 악보, 즉 높이와 길이가 측정된 음과 작곡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세심하게 다루어진 음 기호 체계를 통해 표현된 음으로 말하는 언어라는 인식을 가졌다. 14세기 말의 연구서들은 이미 음악 ‘창조’가 작곡가의 기술과 능력에 의해 조형된 인위적인 산물이라는 인식을 지녔음을 보여 준다. 그로케오의 요하네스가 주장했듯이 작곡가들은 3학(문법학, 논리학, 수사학)의 용어를 빌려 악보에 ‘진정한 쓰기 기술’을 구현했다.
-‘음악: 중세 후기의 음악과 사회’에서

목차

목차
역사
-역사 서문(라우라 바를레타)
-사건들
-국가들
-경제
-사회
철학
-철학 서문(움베르토 에코)
-지식의 순환과 대학들
-철학과 신학
-지식과 전통의 비교
과학과 기술
-과학과 기술 서문(피에트로 코르시)
-수학
-물리학
-유럽의 연금술과 금속학
-신체, 건강, 치료에 대한 지식
-혁신, 발견, 발명
-유럽 밖으로
문학과 연극
-문학과 연극 서문(에치오 라이몬디, 주세페 레다)
-인문주의를 향한 중세의 여정
-라틴어와 속어의 종교 문학
-시의 승리
-서술의 취향
-산문의 형태들
-연극
시각예술
-시각예술 서문(안나 오타니 카비나)
-유럽의 성당들
-이탈리아 조각
-“라틴어로 그리스를 그리다”
-다양한 주제와 주인공들
-중세에 대한 향수
음악
-음악 서문(루카 마르코니, 체칠리아 판티)
-중세 후기의 음악과 사회
-음악적 관습
찾아보기
부록 I: 도판과 지도
부록 II: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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