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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김저운 저 | 예옥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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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241402 / 342쪽 146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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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말없음의 내부에서 말하기 1. 그러나 이 세상엔 드러난 것보다 은폐된 것들이 더 많지 않은가? 은폐된 것들, 즉 말없음표의 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굳이 판단이라는 걸 해야만 할까?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부분 어떤 종류의 말은 반어의 형태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말없음’ 또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말없음’이란 표기는 그곳에 원시적으로 ‘말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말이 부재하는 자리에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표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전지대는 언제나 위험지대... 말없음의 내부에서 말하기 1. 그러나 이 세상엔 드러난 것보다 은폐된 것들이 더 많지 않은가? 은폐된 것들, 즉 말없음표의 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굳이 판단이라는 걸 해야만 할까?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부분 어떤 종류의 말은 반어의 형태를 가짐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말없음’ 또한 그런 종류의 것이다. ‘말없음’이란 표기는 그곳에 원시적으로 ‘말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말이 부재하는 자리에는 애초부터 아무것도 표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안전지대는 언제나 위험지대에서 생성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므로 ‘말없음’이란 기호는 그 안에 본디 누군가의 발화가 자리하거나 자리하려 했지만 모종의 사유로 그것이 외부로 은폐되고 있다는 신호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말없음’이란, 억지로 만들어진 침묵, 무언가를 말하려다 제지된 것들, 본디 ‘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강제로 자리 잡은 ‘없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말없음’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 사유할 필요가 없다는 은밀한 억압의 기제로 작동한다. ‘말없음’의 내부에 자리한 또 다른 ‘말’들은 담론의 장을 구성하는 주도적인 원리에 의해 이미 무가치한 것 또는 공표되지 말아야 할 것으로 평가받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말 사이의 투쟁에서 패배한 그들의 서사는 ‘말없음’의 영역에서 아무도 알지 못한 채 무화되어 간다. 김저운의 소설이 사유하는 것은 이 말없음 내부의 소리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없음’이라는 표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갈 때 소설가는 오히려 표지를 들어내고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곳에서 소설가가 만나는 것은 소리 없는 자들의 소리들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 소리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리를 내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 자들의 소리가 그것이다.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설가는 현실의 표층위로 드러나지 않고 가라앉은 자들의 서사를 외부로 복원한다. 2. 「로그아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화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매일 저녁 인터넷을 헤맨다. 일상의 관계에서 상처 입은 그들은 현실의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인격과 배경을 구비한다. 상대에게 자신이 꾸민 사실이 드러날 우려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진정한 목적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의 말을 하기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혜는 ‘고니’라는 인격으로 ‘권태’라는 가명을 쓴 남자를 만난다. ‘고니’는 결코 자신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태 또한 마찬가지다. 그 또한 자신의 인격을 고니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니와 권태의 대화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그들의 만남은 연속된 분광의 형태가 아니라 선후가 없는 점과 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발화는 누적되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에 지나간 과거와 도래할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누군가가 그 말을 들어주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관계의 종료와 함께 그들은 깨닫게 된다. 지금껏 그들이 나눈 것은 대화가 아니라 무의미한 혼잣말이었다는 것을.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인격이 나눈 그들의 소리는 네트워크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사라지며 현실에서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고니와 권태의 대화는 고니가 로그아웃한 순간 소멸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명멸하는 관계들 사이에서 재방송을 보며 키들거리는 인혜는 여전히 자신의 공간에서 고립되어 있다. 「그들도 몰랐던 그들의 진실」에 등장하는 사내의 고립 또한 인혜의 고립과 유사하다. 한때 이름을 날렸지만 이제는 한물간 음악가인 사내는 “내 음악은 팔십 년대에서 끝났어. 내 인생은 구십 년대에서 차압당했고……”라는 말을 던지며 자신의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과거의 연인이었던 그녀를 찾는다. 사내는 그녀에게 그간의 사정을 시시콜콜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녀는 건성으로 듣기만 할 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녀는 대화를 통해 이제는 후회로 남은 그와의 관계가 복원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와 그녀의 대화는 고니와 권태의 대화처럼 서로의 내면에 다가가지 못하며 허공으로 비산한다. 이 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다음이다. 언제까지나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그녀 앞에서 사내는 정신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사내는 “나 좀 재워 줘요.”라는 아기의 흉내를 내며 그녀 앞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어떤 수를 써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결과 앞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곁을 떠난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그 무렵이다. 그녀는 왜 그런지 모르게 사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소설은 이렇게 무너지는 자들을 구원하는 해피엔드로 끝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결말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그토록 애타게 그녀를 찾던 사내가 그녀의 어깨를 부여안고 그녀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전화기를 남기고 떠나 버린 것이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어떤 휴머니즘을 완성한다. 김저운 식의 휴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 진정한 휴머니즘이란 무너진 사람의 육신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라는 것을. 무수히 많은 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철저하게 무화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개는 어떻게 꿈꾸는가」에서도 나타난다. 재산을 자신이 기르던 개, 모리에게 물려주려는 어머니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아들의 노력을 다룬 이 소설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언술은 자신은 사람을 “식별한다기보다 감각한다”는 모리의 진술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모리는 예전의 화려함을 잃어버린 마미의 모습에도 현혹되지 않는다. 모리는 언제나 마미의 본질을 감각한다. 하지만 아들은 다르다. 자신에게 닥쳐온 상속위기를 알려주는 친구에게 “법률가는 무슨 사무장 주제에…….”라고 타박하는 이는 그가 감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식별하는 사람이며 사람의 본질을 주어가 아닌 수식어에 방점을 찍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관계 형성에 실패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이성이 개입된 식별은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감각과 달리 필연적으로 관계 사이에 위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리를 제외한 등장인물은 모두 다른 층위에 서서 서로와 고립되어 있다. 오직 모리만이 모두를 평등하게 동일한 평면에서 감각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오늘날 위계로 인해 형해화된 인간관계에 대한 유쾌한 야유에 해당한다. 소설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덕목은 개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개가 가져야 할 것은 인간에게 있다. 인간이 꾸는 꿈이 곧 개의 꿈이고 개의 꿈이 곧 인간의 꿈이다. 우리 모두는 개와 인간의 시선이 전복된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3. 김저운의 소설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인물 유형은 목격자들이다. 사건의 외부에서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목격자는 소설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목격자들의 성격이 작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 있다. 잔혹한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는 목격자가 있는가 하면,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목격자가 있으며 사건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방관하는 목격자도 있다. 그중 도피하는 자를 먼저 읽도록 한다. 「소도의 경계」에서 오랜만에 귀국한 진이는 고향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다. 겉으로 드러난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와 달리 여행에 참가한 고향 친구 모두는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다. 화숙은 암

저자 소개

전북 부안 출생으로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삼십여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985년 《한국수필》에 수필, 1989년 《우리문학》에서 소설로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공저), 휴먼르포집 『오십 미터 안의 사람들』 등이 있다.
<전북수필상> <작가의 눈 작품상> 등을 수상하였다

목차

목차
개는 어떻게 꿈꾸는가 ○ 7
청학동 가는 길 ○ 39
로그아웃 ○ 83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 113
그들도 몰랐던 그들의 진실 ○ 1 43
소도蘇塗의 경계 ○ 1 69
연緣 ○ 207
거꾸로 흐르는 강 ○? 2 37
회문回文 ○ 2 69
해설 | 말없음의 내부에서 말하기 |김 대현 ○ 3 25
작가의 말 ○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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