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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4436762 / 96쪽 120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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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밝히는 ‘파리 테러’라는 비극,
기존의 사유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때!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밝히는 ‘파리 테러’라는 비극, 기존의 사유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때! “‘테러’라는 기표를 벗어던지기,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노호(怒號) 테러의 시대다. 폭력이라고 이름 붙여진 하루하루의 연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시대의 근간이 되어버린 무차별적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그 과잉된 폭력의 희생양이라는 주체성을 다시금 부여받는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이라...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밝히는 ‘파리 테러’라는 비극, 기존의 사유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때! “‘테러’라는 기표를 벗어던지기,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노호(怒號) 테러의 시대다. 폭력이라고 이름 붙여진 하루하루의 연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시대의 근간이 되어버린 무차별적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그 과잉된 폭력의 희생양이라는 주체성을 다시금 부여받는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 그리고 그 말을 일종의 추체험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우리에게, 이제 ‘테러’라는 말은 그 섬뜩한 이미지의 질감 외에는 아무것도 전해줄 수 없는 기표가 되었다. 문제는 이 헐거운 기표를 벗어던지고 ‘다시’ 주체의 문제로 돌아가야만 하는 오늘날의 정세이며, 이 주체(성)의 파국 속에 기생하는 국가-정치의 면면을 들춰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자국인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 정세에 개입하는 것을 자신의 사상적 특이점(singularity)으로 삼아 온 알랭 바디우는, ‘테러 이후’를 쉽게 재단하지 않기 위해 즉각적인 목소리를 낸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불과 열흘 만의 강연을 통해서였다. 이처럼 바디우의 강연은 2015년 11월 13일에 대한 언급으로부터 시작한다. 다만 바디우는 라캉이 말한 ‘증상의 상징화’라는 전략을 경유해 테러를 ‘참극’, ‘범죄’, ‘살해’, ‘대량학살’ 등으로 에둘러/새롭게 명명하면서, 테러라는 텅 빈 기표와 거리를 둔다. 그는 서두에서 분명한 어조로 “이 대량학살극을 현대 세계, 즉 세계 전체가 앓고 있는 중병의 여러 가지 현재진행형 증상의 하나”로 다룰 것을 주지하고 있다. 바디우에 의하면 이러한 증상은 “전례 없이 폭력적이고 대규모가 될 게 명약관화한” 것이다. 더욱이 불가해한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있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復?)의 관념, 즉 바디우가 언급한 것처럼 “정의를 복수로 변질시키는” 현재의 증상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인) “이제 우리가 살인한 사람들을 죽일 차례”라는 욕망만을 증식시킨다. 결국 복수의 관념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복수의 주체는 테러의 주체와 대칭 관계를 형성할 뿐이다. 그러므로 바디우는 하나의 원칙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 원칙으로부터 그는 ‘사유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기’ 위해 일곱 가지의 논점을 돌파하자고 제안한다. 첫째, 현대 세계의 객관적 구조를 통해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 둘째, 이러한 현대 세계의 구조가 사람들, 사람들이 지닌 다양성, 사람들 간의 관계, 그리고 이들의 주체성에 끼친 영향, 셋째, 앞에서 다룬 주체성(들)에 대한 논의와 이들 주체성의 구분, 넷째, 파리 테러를 일으킨 현대판 파시즘의 인물들, 다섯째, 각기 다른 요인을 통해 따져본 파리 연쇄 테러, 여섯째, ‘프랑스’와 ‘전쟁’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한 국가의 반응과 여론몰이, 일곱째, 앞서의 논점을 다루면서 규명될, 여론몰이의 영향권과 국가의 반동적 방향에서 벗어난 ‘정치의 회귀’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역사적 비극으로서의 테러, 혹은 지속된 실패로서의 공산주의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11월 13일이라는 참극의 상징을 해부하는 바디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도외시했던 고전적인 문제들에 대한 재검토가 왜 요청되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우선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자. 우리는 국가가 마르크스의 견해를 뛰어넘어 “자본의 대리인”이 되어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자본의 관리자(초국적 기업)들이 IS와 같은 무장 세력과 결합(협상)하는 것을 목도한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행태에 의해 파괴되고 해체된다. 이러한 무정부적 상태에서 살아가는 ‘인구’는 어떨까?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부(富)의 46퍼센트를 차지하는 극심한 불평등, 서구적 생활양식을 수호하려는 중산층, 그리고 자본에 의해 무(無)로, 일종의 공집합으로 산정되는 수많은 난민들. 자본은 현대 세계의 구조에 속할 수 없는 이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바디우는 이런 정황 속에서 “서구사회를 갈망하는 주체성과 복수의 허무주의적 주체성”이라는 한 쌍의 ‘반동적 주체성’이 함께 공전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같은 주체성의 출현은 파시즘이라는 죽음충동으로 귀결됐고, 테러의 주체들은 결국 이 같은 파시즘적 주체성의 유산을 물려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바디우가 강연 전체를 통해 밝히는 파리 테러의 근본적 원인, 즉 우리가 세계의 모순 속에서 고통받는 이유는 “자본주의의 내재성에서 분리될 수 있는, 전 세계적 차원의 정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강연의 말미에 라신의 비극 『페드르』의 한 대목 ? “나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 을 언급하면서, 파리 테러라는 비극이 “이민(자), 이슬람, 황폐화된 중동, 약탈로 몸살을 앓는 아프리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패”에서부터 ‘지속된’ 것임을 역설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지속된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해, 그리고 그 실패에 의해 촉발된 자본주의의 새로운 에너지에 대해 사유해야만 한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사유의 젖줄로 삼을 만한 일련의 성과가 “없지 않다”고 낙관하면서, 프롤레타리아 유목민, 지식인과 중산층, 그리고 청년층과 함께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언제나 “새로운 사유는 오직 뜻밖의 동맹, 일어날 것 같지 않은 동맹 속에서만 탄생”하므로.
나는 먼저 어떤 심경으로 이 잔혹한 참극에 대해 말해야 할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분명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 또한 언론과 당국이 위험하게 난타하고 있듯, 정동情動, affect과 민감한 반응의 기능은 이런 상황에서 불가피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9쪽)
분명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이런 유형의 범죄에서 복수의 유혹은 자연스러운 충동입니다. 일례로 항상 법치국가임을 자처하고, 사형을 거부하는 우리 서구에서 경찰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이 상황에서 — 시기적절한 이야기입니다만 — 어떤 소송도 없이 살인자를 발견하는 즉시 사살하고 있지만 이에 분노하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복수는 정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항상 잔혹함이 반복되는 서막임을 상기해야 합니다. 이미 오래전, 위대한 그리스 비극은 정의의 논리와 복수의 논리를 대립시켰습니다. 정의의 보편성은 가족, 지방, 국가, 정체성의 복수와 대립됩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의 근본 주제가 그것입니다. 비극에서 정체성의 충동은 살인자의 추적을 순수하고 단순한 복수의 추격전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습니다. (12~13쪽)
하나의 원칙에서 출발합시다. 인간이 행한 것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이해가 안 돼’, ‘결코 이해 못 해’,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패배를 뜻합니다. 어떤 것도 사유 불가능의 영역에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사유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에 맞서기를 바란다면, 사유의 임무는 그것을 사유하는 것입니다. 물론 절대적으로 비이성적, 범죄적, 병리적 행위가 있지만 이 또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사유의 대상이며, 그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사유 불가능의 표명은 항상 사유의 패배이며, 사유의 패배는 항상 비이성적, 범죄적 행태의 승리였습니다. (16~17쪽)
우리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가 지배하는 현대 세계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의 전략적 약화, 심지어 국가의 자본주의적 소멸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우리는 몇몇 경우 국가를 잘게 해체하거나 심지어 전멸시키는 것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새로운 제국적 행태를 갖고 있습니다. 일례로 리비아 파병의 진정한 이해관계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가정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국가를 완벽하게 파괴했고, 모두가 반대하는 혹은 반대하는 듯한 하나의 무정부 지역을 만들었지만, 결국 미국인들은 이라크에서,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말리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온갖 짓을 자행했습니다. (37쪽)
그러나 현재의 승자는 자본입니다. 자본이 승리했으므로 자본은 노동시간의 감축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마르틴 오브리[전 노동부장관]가 제안한 빈약한 35시간도 용인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이 틀 속에 들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을 대담하게 무無로 선포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세계에 무로 산정된 대규모 집단이 있는 것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실을 이해하려면 필히 감안해야 할 사항입니다. (48~49쪽)
나는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되고 촉발된 대중적 주체성을 일반적으로 ‘파시즘’으로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시스템의 심각한 위기 — 1930년대가 이에 해당됩니다 — 가 존재하고, 어쩌면 보다 근본적으로는 세계화로 인해 분명해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가 보다 명확해졌기 때문입니다. (65쪽)
그들의 행위 — 맹목적 대량 학살 — 는 테러가 아닙니다. 테러는 점령군 나치와 페탱주의 공범자들에게 항거한 레지스탕스가 조직했고, 더 나아가 명예로운 러시아 민중주의자들이 차르를 죽이기 위해 꾸몄던 것입니다. 실제로 11월 13일의 학살은 액면 그대로 보면 조직적, 군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의 유혈극, 그러나 비열한 유혈극입니다. 이는 젊은 파시스트들이 자신의 삶을 산정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74쪽)
목차
1부. 현대 세계의 구조 · 21
1. 글로벌 자본주의의 승리 · 25
2. 국가의 약화 · 32
3. 새로운 제국적 행태 · 33
2부. 인구에 미친 영향 · 39
3부. 반동적 주체성 · 53
4부. 현대적 파시즘 · 63
5부. 살인자들은 누구인가? · 79
6부. 국가의 반동 : ‘프랑스’와 ‘전쟁’ · 81
7부. 현대 세계의 흐름과 분리된 해방의 정치의 복귀 조건 · 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