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신과 인간에 대하여 세계의 불확실성과 종교 내 공존에 관한 바우만의 대담
원제 : Of God and Man
지그문트 바우만, 스타니슬라우 오비렉 저 | 조형준 역 | 동녘 | 2016년 07월
ISBN : 9788972977735 / 252쪽 146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홍진기
-
박완서, 호원숙
-
신영준, 고영성
- 13,500
- 16,200
- 17,820
- 17,820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정치경제적 세계관에 저항하며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동반자가 될 ‘대화의 예술’을 담은 책” _강남순(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정의를 위하여》 저자) 세속화된 종교의 시대, 그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불확실한 세계와 희망의 근거에 관한 낙관적 무신론자 바우만과 회의적 유신론자 오비렉의 대화 《신과 인간에 대하여》는 폴란드의 사회학자이자 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 “정치경제적 세계관에 저항하며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놀라운 동반자가 될 ‘대화의 예술’을 담은 책” _강남순(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정의를 위하여》 저자) 세속화된 종교의 시대, 그 구원의 가능성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불확실한 세계와 희망의 근거에 관한 낙관적 무신론자 바우만과 회의적 유신론자 오비렉의 대화 《신과 인간에 대하여》는 폴란드의 사회학자이자 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에서 신학과 종교학을 강의하는 스타니슬라우 오비렉이 서로 다른 종교 간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궁구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희망에 대해 고민한 대담집이다. 노익장의 면모를 과시하며 활발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바우만은 30여 년 전 오비렉과의 인연으로 이 대담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당시 예수교 사제이자 학제 간 영역을 넘나드는 총망 받는 젊은 학자였던 오비렉이 편집자로 활약한 ‘신앙 없는 사람들’ 시리즈에 바우만이 글을 기고하며 세계적 지성들의 인연은 시작되는데,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불가지론’이라는 사상적 지향의 동일함을 목격하고 신과 세계에 관한 대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고민들,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상이한 지적·제도적 틀 속에서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각자의 전망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따르게 된 경로들의 논리, 또한 인생의 여정에서 겪게 되는 경험들은 제 생각으로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상이한 관점에서 출발했지만 그럼에도 같은 곳에 이르게 되었죠. _9쪽 묵직한 사유의 압축장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왜 다신론인가?》에서는 일신론의 한계와 다신론의 타당성을 개설하고, 2장 《이 종교는 어떻습니까?》에서는 종교 분과에 머무르지 않는 근본주의의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하며, 3장 《지식인들》에서는 신과 세계의 불확실성을 다룬 발군의 지성들의 저작을 살펴본다. 4장 《희망의 원천들》에서는 인간의 복수성에 근거한 유일신적 진리관의 한계를 파헤치고, 5장 《지평들의 융합》에서는 가다머의 주요 개념어에 착안해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연대에 대해 고민한다. 6장 《새로운 전통 창조하기》에서는 상호배타적인 진리의 추구가 아닌 공존 가능한 진리의 추구를 이야기하고, 7장 《신인가 신들인가?》에서는 필연적인 다신론의 가치를 설파한다. 각 장의 논의는 역사와 당대의 학자들이 고증한 권위 있는 사료에 근거해서 진행되는데 쿠체, 암스트롱, 레비나스, 퍼트남, 아렌트 등 각 학문 분과의 문제적 인물들과 그들의 주요저작을 호명하고, 국내에는 익히 알려지지 않은 보브로빈카, 콜라코프스키, 렘, 미슬리프스키, 슬룹스키 등 폴란드의 저명한 학자들을 소개한다. 독단의 잠에서 깬 사회학자와 종교 내 체제를 버린 신학자 비범한 지성들이 논하는 근본주의적 질서에 관한 안티테제 이 책의 주요한 문제의식은 근본주의적 신앙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데 있다. 근본주의는 《성경》《코란》과 같은 성스러운 문헌에 근거한 절대적 진리와 신앙의 근본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바우만과 오비렉은 유일신론을 근본주의 신앙의 대표적 사유로 지적하며 그 한계를 열거하고 비판한다. 근본주의적 사유는 종교뿐 아니라 정치, 사회, 역사 등 폭력적 세계관 곳곳에 존재한다. 저자들이 유일신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안하는 것은 다신론(혹은 다성음多聲音)이다. 진리라는 말 자체가 가진 불가지론적 속성에 주목하여 종교적 다원주의에 찬성하는 것이다. ‘한계’는 자기가 생각하는 진리의 참호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다른 어떤 진리나 자기의 진리와 충돌하는 모든 것, 자기가 믿는 진리의 무오류성과 도덕적 올바름을 확신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문을 닫고 반체제 분자들에게 저항할 권리를 거부하며, 다른 이념이나 신조를 고수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추방하고 궁극적으로 절멸시키는 사람들에게서 유래합니다. _14쪽 이 책의 강점은 ‘대화의 예술’의 진수를 담고 있는 데 있다. 낙관적 무신론자인 바우만과 회의적 유신론자인 오비렉은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고서 신, 인간, 진리, 세계에 대해 대화한다. 자신이 신앙하는 신, 도덕적 신념에 대한 절대적 확실성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신과 다른 타자들과 공존할 수 있다고 두 화자는 강조한다. 타자들과의 연대, 평화, 협동에 필요한 전제조건은 인간이 서로 지닌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의 절대적 확신에 대해 질문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확실성을 경계하고 불확실성을 두려워해야 한다. 불확실성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근거한 도덕이 태어나는 순간으로서 ‘자유와 도덕적 결정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 불확실성의 순간에 역설적이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인류의 어떤 희망이 싹튼다. 우리는 모두 종교의 다양성을 인류의 하나됨과 화해시키려는 바람에 이끌려 대담을 시작했습니다.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인간적 이익을 위해 인류가 가진 역설에 대한 실천적 해결책을 발견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입니다. 인류는 같은 운명을 살도록 선고받았지만 지각하고 경험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_232쪽
《성경》과 관련해 논쟁을 벌이던 두 해석자가 “내가 맞아. 내 《성경》 이해가 진리야. 실제로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야”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한바탕 소동과 드잡이로 이어질 것이다. …… 《성경》이 결국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 또 다른 방식들로 이해될 수는 없을까?
1장 왜 다신론인가? p.21
왜 다신론인가? 유일신론은 진리와 흡사하게 불가지론적 생각이며, 오직 끝까지 가는 투쟁이라는 맥락에서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진리라는 생각과 흡사하게 견해들의 복수성, 그것들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태어났으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동의라는 경우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하느님은 유일하게 한 분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다른 견해들을 불법화하려는 의도를 입증합니다.
2장 이 종교는 어떻습니까? 종교에 그치지 않는 근본주의의 위협에 대해 p.50
젊었을 때 우리는 다소 다른 불꽃에 손가락을 태웠으며, 다소 다른 화상에 입김을 부는 데 익숙해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신앙의 강요에, 저는 인간의 신격화에 말이죠. 우리는 겉으로는 적대적인 진영들에서 켜진 모닥불에 의해 화상을 입었습니다. 우리 중의 하나는 메시아 진영에 속해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프로메테우스의 야영지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두 진영의 불꽃 모두 인간의 한계라는 동일한 이단을 위해 쌓아올려진 장작더미 위에 붙여졌습니다.
3장 지식인들 p.98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이 실천될 수 있느냐는—또는 그와 정반대로 무시되고 간과되느냐는—오직 사람들에게만 의존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며, 하느님은 그렇게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신만 가질 수 있는 전지전능함을 갖고 장난을 치는 것은 피하기로 합시다. 우리는 신이 아니며, 단지 인간적인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 힘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을 소중하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충분합니다.
4장 희망의 원천들 p.117
“인간의 삶의 실천과 경험들이 합쳐지고 함께 짜이기 위한 토대입니다. 이렇게 합쳐지고 함께 짜여 지는 것은 신뢰, 우정, 존경, 협력에의 욕망에 의해 촉진됩니다. 지평들의 융합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세상의 소동으로부터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 속에는 세계의 구원, 적어도 변형을 위한 모종의 열쇠가 들어 있지 않을까요?
5장 지평들의 융합 p.160
종교는 가장 위대한 보물, 문명의 가장 강력한 모터로 함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양되어야 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 즉 죽은 텍스트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들과 유용한 행위들이다. 진정한 종교는 의지에는 힘을, 가슴에는 평화를, 지성에는 날개를 마련해준다. 이단 심문소 대신 그것은 관용을 대변한다. 분열 대신 공감을, 저주 대신 축복을 대변한다. 그것은 상이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하지 않는다. 상이한 신조는 그저 한분의 하느님에게 이르기 위한 다양한 경로일 뿐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학과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조만간 과학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진리들을 확인해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6장 새로운 전통 창조하기 p.207-8
레싱에게 논쟁의 종말은 인간성의 종말에 버금가는 것일 것입니다. 인간 존재에게서 창조적인—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양도 불가능한 본성을 이룹니다—모든 것은 인간의 다양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것은 인간의 다양성 때문이 아닙니다. 다양성을 거부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고집이 그것을 불러옵니다. 인간들 사이의 평화, 연대, 호의적 협력의 예비 조건은 인간적일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데 동의하고 그러한 다수성이 요구하는 공존 모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7장 신인가 신들인가? 다신론의 부드러운 얼굴 p.235
목차
서문_실천적 대화를 향해
1장 왜 다신론인가?
2장 이 종교는 어떻습니까? 종교에 그치지 않는 근본주의의 위협에 대해
3장 지식인들
4장 희망의 원천들
5장 지평들의 융합
6장 새로운 전통 창조하기
7장 신인가 신들인가? 다신론의 부드러운 얼굴
결론_결론 없는 결론
주 / 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