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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317946 / 816쪽 145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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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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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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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20세기 초, 완고한 편견의 시대에 맞선 두 여성 인류학자의 비상한 사랑과 우정, 페미니즘, 학문적 성취의 연대기 문화인류학의 새 역사를 쓴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깊게 연관된 두 삶을 새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명한 최초의 평전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 의 주인공 모드 와츠는 말한다. “인류 절반의 손을 묶고, 입을 막을 순 없어요.” 이 영화는 여성 혐오가 만연하던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던 여성들의 잔혹한 투쟁기를 담고 있다. 같은 시기에 근본적... 20세기 초, 완고한 편견의 시대에 맞선 두 여성 인류학자의 비상한 사랑과 우정, 페미니즘, 학문적 성취의 연대기 문화인류학의 새 역사를 쓴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깊게 연관된 두 삶을 새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조명한 최초의 평전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개막작 의 주인공 모드 와츠는 말한다. “인류 절반의 손을 묶고, 입을 막을 순 없어요.” 이 영화는 여성 혐오가 만연하던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피와 눈물을 흘렸던 여성들의 잔혹한 투쟁기를 담고 있다. 같은 시기에 근본적인 변혁의 시기를 겪고 있던 뉴욕에도 ‘인류 절반’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학계에서 여성의 ‘유리천장’을 깨부수려 노력한 두 명의 여성 인류학자가 있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섬세한 시적 감수성을 학문에 접목해 『국화와 칼』이라는 놀라운 역작을 남긴 루스 베네딕트와, 문화인류학의 대모로 불리며 생을 마칠 때까지 사회활동가로 활약한 마거릿 미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는 두 사람이 읽고, 쓰고, 작업하고, 즐겼던 광범위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의 줄기 아래에서 그들의 삶과 사랑, 학문 그리고 20세기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 여성과 성에 관한 관념의 지형도, 즉 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을 탁월하게 그려 보여준다. 처음 공개된 서신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한, 깊게 연관된 두 삶의 궤적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에는 두 인류학자가 남긴 방대한 문서가 공개되며 새로이 밝혀진 연구 활동과 삶에서의 경험들이 담겨 있다. 저자 로이스 W. 배너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두 사람의 서신과 서류철을 총망라한 최초의 평전을 엮어냈고, 최근 수십 년간 출간된 레즈비언 역사와 퀴어 이론서도 폭넓게 활용했다. 두 사람은 인종과 양성의 평등, 문화의 상대성을 옹호한 선구자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자 연인, 사제(師弟), 마음의 의지처이기도 했다. 20세기 뉴욕 및 사모아, 뉴기니 등을 배경으로 그들이 함께했던 시대의 여러 학자들, 자유연애의 다양한 인간관계, 그 시대의 지적 풍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20세기 초 문화인류학이 그린 청사진을 통해 인간의 사상, 행동의 의미를 심리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가 펼친 주장과 두 사람이 맺은 관계를 세심하게 정리했다. 이 책은 20세기 초, 남성중심적이었던 문화인류학 분야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한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두 사람의 삶과 이론을 밝혀내어 문화적 담론으로서 조명한다. 저자 로이스 배너가 이 책의 주된 목표로 꼽는 것은 ‘젠더의 지리학’(geography of gender)이 두 사람의 삶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는 것이다. 젠더의 지리학이란 두 사람이 정치적, 사회적, 직업적, 가족적, 개인적 인생의 과정에서 헤쳐나간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복잡한 지형을 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자의 성 정체성을 결정하기까지 경유했던 심리적 행로 역시 포함한다. 빈틈없이 세밀하게 엮은 자료들을 통해 두 사람 인생의 상호 연관성은 물론, 두 사람이 우정과 욕망, 헌신, 불화의 범위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확대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여성의 권리의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두 여성이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천장을 깨부술 수 있었던 이유 두 사람의 조상은 식민화 초기에 영국에서 건너왔고 두 사람 모두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개척 정신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공통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개혁 운동에 참여했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저자는 두 집안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두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보았다. 베네딕트는 생후 18개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유년기를 대부분 엄마와 이모들 그리고 여자 형제들과 함께 보냈다. 그녀는 신경과민과 난청에서 오는 절망을 시작(詩作)으로 승화시켰고 그리스도 아래에서 새로운 ‘환상 세계’를 창조하여 그 안에 은신하기도 했다. 반면 미드는 신경질적인 아버지와 차갑고 냉담한 어머니보다 자애로운 할머니를 의지하며 자랐다. 학자였던 부모보다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서민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좋아했고 이런 취향이 후에 미국 문화를 강의하고 분석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여성들이 맺는 낭만적 우정은 복잡하고 섬세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빅토리아조의 성별 사회화 방식에서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여자들 사이의 ‘낭만적 우정 풍토’에 참여했다. 이성애가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필수 요소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다른 여자들과 낭만적 우정을 쌓는 것 역시 인정했다. 미드는 베네딕트의 딸이자 인류학 후배였고, 동반자이자 연인이었으며, 최고의 친구 그리고 나아가 베네딕트의 쾌활한 영혼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유연애 사상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이이면서도 서로의 다른 사랑들을 지켜보았고 때로는 연애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 책은 20세기 초 문화인류학 분야의 위대한 두 여성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 사상, 문화를 소개하면서 두 사람의 소설 같은 삶과 지식인으로서의 행보, 연구 업적들을 조망한다. 미드는 일곱 살 때부터 여자에게 ‘묘하게 끌리는’ 감정을 느꼈고 이는 대중문화, 특히 문학 작품의 영향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녀는 중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마저리 바버, 마리 블룸필드 및 여러 여학생들과 성애적 우정을 쌓았다. [특히 미드의 바너드 대학에서의 ‘스매시(여성들이 맺은 낭만적 우정)’ 활동은 완다 네프의 소설 『우리는 다이애나를 노래한다』의 주요 내용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때의 여학생들은 이성애를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필수 요소로 여겼고 결혼을 준비하면서 여자들과 낭만적 우정을 키웠다. 베네딕트는 유년시절에 예이츠, 산타야나, 니체, 월터 페이터 등의 작가들을 읽으며 ‘영혼을 되찾았다.’ 더 나아가 이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성별을 뛰어넘어 남성의 페르소나를 갖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는「보쿠 플랜트」(1916)와「메리 울스턴크래프트」(1918) 등을 지음으로써 남성의 권능에 저항하고 성별 횡단(gender crossing)을 찬양했다. 그리고 결혼과 모성을 찬양했던 ‘새로운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아 대학 시절 만난 스탠리와 결혼을 결심한다. 성적 반란의 시대에 몸소 보여주었던 자유연애 마거릿 미드는 바너드 대학으로 편입하면서 솔직하고 활달한 태도로 주도권을 장악했다. 레오니 애덤스, 데버러 캐플런, 엘리너 펠럼 코트호이어 등을 만나 ‘애시 캔 캐츠’(Ash Can Cats)라는 동아리를 만들었고 어머니 역할을 자처하며 동아리 성원들의 생활을 규율했다. 미드는 자신을 성 개혁 운동가로 묘사했다. 그 시기는 성적 반란의 시대였으며 자유연애 사상이 만연했다. 미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도주다. 이 음식 저 음식에 따라 좋은 포도주를 가려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그녀는 루서 크레스먼과 결혼 중에도 여러 여성들과 연애했고 그 이후에도 리오 포천, 그레고리 베이트슨과 결혼-이혼의 과정을 겪었다. 미드는 순간을 위해서 살았고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1922년 루스와 만난 이후부터 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졌고 2년 만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베네딕트는 “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해. 우울할 때도 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고 말이야.” 하고 자신의 깊은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미드 역시 “루스, 당신을 알게 된 일은 신이 존재함을 안 것과
베네딕트와 미드는 인류학자로서 스스로를 과학자라고 여겼다. 정확함이 그들의 규범이었다. 그러나 자료를 활용해 일정 수준의 추상 단계에 이르는 이론화 과정에서는 그들도 다른 학자들처럼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강조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두 사람 다 열정적이었고, 단호한 주장을 펼쳤으며, 과학적 진실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28~29쪽
미드는 두 권의 저술 모두에서 베네딕트의 의기소침한 은둔자적 면모를 강조했다. 반면에 자신은 정력적이고 외향적인 낙천가로 그리면서, 전형적인 자서전들에서 흔히 남성들이 누리는 행운까지 따랐다고 으스댄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더 복잡한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베네딕트가 감각적이고, 탁월한 운동 능력을 과시했으며, 낙천가이기도 했던 것처럼 미드 역시 삶을 두려워하고, 낙담하기도 했던 것이다.
117~118쪽
이런 서민 취향, 보통 사람들과 느끼는 일체감이 미드가 나중에 미국 문화를 강의하고 분석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감상적인 경향도 여기서 더해졌다.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소탈하고 편안하게 대중 강연을 하는 이야기꾼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녀는 제임스 휘트콤 라일리의 후예들과 서민의 지혜를 이야기했고 거기에 19세기의 윤리적 낙관과 미국 특유의 상상력에 대한 통찰이 보태졌다. 미드는 학교와 집에서 그리스 희곡, 셰익스피어, 밀턴, 19세기 영국 소설 등의 고전 작품을 읽었다. 그러나 베네딕트와 같은 부류의 지식인은 아니었다. 미드는 니체나 조지 산타야나를 재미로 읽는 사람이 아니었고 베네딕트처럼 추상적인 정신세계에서 살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사회과학자였고, 경험적 조사 방법을 중히 여겼으며 미드는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137~138쪽
빅토리아시대의 성별 체제에서는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이성애로써 성을 완성할 수 없게 된다. 이성애는 질서 정연한 사회의 필수 요소였다. 여자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다른 여자들과 낭만적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여자에게 힘겨운 청소년기를 안내해주는 나이 든 동성 조언자가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그런 조언자는 이상적인 어머니나 언니였다. 이런 스승이 가족 간의 긴장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이었다. 나이 든 스승들이 모범을 통해 학생들을 고취하는 소크라테스와 사포식 전통에서 여성들이 성장한 것이다.
163쪽
와일리와 벅은 진보적 개혁가로서 자연과 평범한 사람과 사회 계급들의 연대를 찬양하는 당대의 낭만적 유기체론을 옹호했다. 그녀들은 엘리트 개혁가들이 주도하는 민주적 교육과 지도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관점이 베네딕트의, 그리고 미드의 성인기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3쪽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1910년대에 활약한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은 당황스럽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하면 모성애와 가정에 관심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우리 식 정의는 1970년대에 벌어진 급진 운동의 유산이다. 그전 수십 년 동안 ‘페미니즘’이란 말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970년대에 전투적인 여권 운동 지지자들이 이 말을 살려내 자신들의 대의를 규정했던 것이다. 그녀들은 이 말이 더 이른 시기에 결혼 및 모성과 관계를 맺기도 했음을 몰랐다. 오늘날의 용어법에 비추어 보면 1910년대에 활약한 페미니스트들을 ‘포스트페미니스트’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들의 입장이 1970년대의 페미니즘 급진 운동에 비판적인 우리 시대의 더 젊은 여성들의 태도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214쪽
루스는 마거릿에게 캘리포니아 남부가 근거지인 세라노 족의 나이 든 추장 얘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이전 여름에 그곳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며 면접한 노인 얘기였다. 추장은 미국식 상업주의로 자신들의 문화가 파괴되는 상황을 책망했다. 그는 정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깡통에 담긴 음식을 사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고기를 사려고 정육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흥분이 고조되는 사냥 경험을 그리워했다.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옛 종교의 마법을 잊지 않고 있었다. 샤먼들이 ‘자기 눈앞에서 곰으로 변신하던’ 마법을 말이다. 그는 문화를 ‘흙으로 빚은 컵’이라고 설명했다. 조물주가 모든 민족에게 생명을 마실 수 있는 컵을 하나씩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라노 족의 컵은 깨져버렸다. 그들의 문화가 말살되었던 것이다.
- 296쪽
1900년쯤에 민족학자들은 ‘문화인류학자들’로 불렸다. 로버트 로위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일 때쯤에는 많은 대중이 ‘문화’라는 말을 탈엘리트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힘들고 지난한 투쟁이었다. 미드에 따르면 일부 사회학자들이 세기의 전환기에 문화라는 말을 그렇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보애스의 제자들 다수가 개념을 재정의하는 과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315~316쪽
보애스가 키운 남성 인류학자들은 그 한복판에 갑자기 등장한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그들 가운데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줄 만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보애스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들을 받아들인 것 같다. 실제로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민족학을 탐구해왔다. ……부족사회들은 서구인 남성들이 자기 부족 여성을 연구하는 것을 금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여성의 역할을 조사하려면 여성 인류학자가 필수적임을 깨달았다.
320쪽
내면의 남성적 측면과 여성적 측면을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로 파악된 공격적 남성성과 사회를 구원하는 요소로 파악된 합리적 남성성을 궁구하는 과제, 아리아드네와 비어트리스가 체현한 여성성에서 남성성을 발견해 이항으로 구성된 전반적 개념을 뛰어넘는 일, 울프가 제시한바의 남녀 양성되기. 루스 베네딕트는 인생과 학문에서 이런 것들을 주요한 과제로 추구했다.
341쪽
자유연애를 바탕으로 영성에 몰두하는 청춘의 신낭만주의와, 여성들의 낭만적 우정이라는 빅토리아시대의 성별 사회화 제도 속에서 그 타협이 가능했다. 그 속에서는 단란하게 함께한다는 정서가 육체관계보다 더 중요했다. 루스와 나오미가 나오는 성경 이야기도 그렇고, 쇼니 족 여자에 대한 에반젤린의 사랑을 영적 합일감으로 재구성한 루스 베네딕트의 이야기도 그렇다. 마거릿과 베네딕트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마음 깊숙한 곳에 존재했다.
441쪽
사실 두 사람은 이미 그들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설정한 상태였다. 그것은 성적 개입이 없는 관계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헌신했고, 함께 구축한 정신적·지적 유대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베네딕트는 마침내 질투를 넘어섰다. 그녀는 마거릿에게 자유를 주면서 자신도 자유를 얻는 곳으로 나아갔다.
457쪽
당대 또는 우리 시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베네딕트가 페미니스트였을까? 그녀의 얘기 속에서 여자들은 억압받는 존재이다. 베네딕트는 자본주의 아래 남자들이 아내들을 소유하고 보여주는 대상물로 여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썼다. 그녀는 모계 사회에서도 예외 없이 남자들이 권세를 누린다고 언급한다. 결국 모든 문화에서, ‘남자들의 특권이’ 여자들의 권리보다 ‘더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녀의 얘기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권위를 누린다. 그녀들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것이다.
- 496쪽
마거릿이 「요약적 서술」을 쓰고 나서 얼마 후 그들은 M과 F를 포기하고, 나침반의 네 방위, 곧 동서남북 및 그 방위와 결부되는 특성들로 옮아갔다. 평온한 동쪽은 관조적인 종교와 연결되었다. 서쪽은 창조력이 풍부하고, 개방적이었다. 북쪽은 차갑고, 남근적이며, 군림하려 드는 특성과 결부되었다. 남쪽은 뜨겁고, 온갖 종류의 섹슈얼리티가 가득했다.
534쪽
오히려 미드는 기질을 논하면서 베네딕트의 문화 결정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물학자들은 기질이 ‘기초대사’나 ‘내분비샘’을 통해 드러난다는 걸 입증하지 못했다는 게 베네딕트의 결론이었다. 미드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간 본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잘 변한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발 뒤로 물러선다. “인간 본성이 완전히 동질적이라면 …… 일탈자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 567쪽
베네딕트는 인종과 젠더 사이에 유사점이 있을 수 있음을 잘 알았다. 그녀는 에임럼 샤인펠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수 집단은 자기들이 받는 억압을 내면화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주장이다. 페미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도 아주 최근에야 이런 입장을 비교적 분명한 형태로 개진했음을 상기해보라.
625쪽
1939년 10월에 미드는 베네딕트에게 이렇게 썼다. 자기가 신문을 조사하고 인터뷰를 해서 대중의 태도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고 말이다. 그녀는 베이트슨, 고러, 베네딕트와 협력해 1년이 채 안 돼 국민성을 파악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이걸 ‘거리를 두고 문화를 파악하기’라고 불렀다. 전쟁으로 인해서 고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면담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가들이 선호되었다. 자기 재량으로 해당 국가, 곧 조국의 문화를 분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달러드의 생애사 연구와 에릭 에릭슨 같은 심리학자들의 통찰력에 기대를 걸었다. 개인의 발달과 국민성이 밀접하게 연결되며, 육아가 문화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규정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660쪽
미드가 식습관위원회 사무국장이 되었어도 인류학자들은 이른바 ‘식생활 습관’이라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쓴 자세한 아라페시 민족지를 보면 그 부족의 식습관과 의식을 분석한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드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식량의 생산과 분배와 영양 문제가 1941년에 아주 중요한 의제로 부상했다. ……문화적 관점을 채택한 미드는 식량 문제를 지역민과 민족들의 풍습, 습관과 연계된 것으로 보았다.
666쪽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심리 범주로 수치심과 죄책감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형태주의적 접근법을 수정해 사용하는데, 이는 랠프 린턴과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개발한 정교한 사회학 모형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기도 했다. 베네딕트는 신분, 계급, 성별, 나이의 위계에 헌신하는 것이 일본 문화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일련의 책임 교환과 위계제 속에서 헌신하는 것으로 일본 문화의 패턴이 형성된다는 얘기인 셈이다.
668쪽
목차
감사의 말
프롤로그 시빌
1926년, 로마
1부 조상
1. 선구자들
2부 유년기
2.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 루스 베네딕트의 유년 시절
3. 눈이 맑은 아이
- 마거릿 미드의 유년 시절
3부 자아를 찾?아서
4. 스매시
- 여성들의 낭만적 우정
5.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루스 베네딕트와 20세기 초의 페미니즘
4부 뉴욕에서 뉴기니로
6. 드포 대학교와 바너드 대학, 마거릿 미드의 형성
7. 일각수와 일출
- 인류학, 시, 젠더 그리고 루스 베네딕트
8. 자유연애와 사모아
9. 빵과 포도주
- 우정(1926~1931)
5부 지성과 감성
10. 활에 걸린 두 개의 시위
- 루스 베네딕트와 『문화의 패턴』
11. 세픽 강의 ‘구역’들
-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1부
12. 해노버 회의에서 발리의 마녀들까지
-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2부
13.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6부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
14.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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