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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6430187 / 288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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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희망은 무엇인가 ‘인간은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일이 앞으로 발생하기를 희망할 수 없다’ 기독교신자들은 신국의 출현을 확실성의 문제로 간주하면서도 신국의 출현을 기대하는 희망을 덕목으로 간?주한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는 관용어의 지극히 평범한 용법과 다르게, 그들은 앞으로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어떤 것을 신뢰한다. 사도 바울에게 희망은 메시아의 출현을 끈질기고 기쁘게 확신하면서 기다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의 희망은 그의 우주적 낙관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이라서 논쟁을 불허한다. 그의 관점에서 희망은 평온한 확신의 문제이... 희망은 무엇인가 ‘인간은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일이 앞으로 발생하기를 희망할 수 없다’ 기독교신자들은 신국의 출현을 확실성의 문제로 간주하면서도 신국의 출현을 기대하는 희망을 덕목으로 간주한다. “나는 그렇게 희망한다”는 관용어의 지극히 평범한 용법과 다르게, 그들은 앞으로 발생하리라고 확신하는 어떤 것을 신뢰한다. 사도 바울에게 희망은 메시아의 출현을 끈질기고 기쁘게 확신하면서 기다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라이프니츠의 희망은 그의 우주적 낙관주의에 기반을 두는 것이라서 논쟁을 불허한다. 그의 관점에서 희망은 평온한 확신의 문제이다. 알랭 바디우는 ‘비난을 불허하는 신학의 정통학설에서 희망은 확실성과 연관되며 신앙은 확신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제인 오스틴이 소설 『설득Persuasion』에서 희망을 “미래를 믿는 명랑한 확신”으로 지칭한 것도 그런 희망을 재현하는 것이다. 기독교경전 『시편Psalms』은 ‘희망은 꺾이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고 사도 바울은 ‘희망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어느 해설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관점에서 희망은 경솔한 낙관주의와 동떨어진 “확고부동한 신념과 설레는 확신”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희망이 ‘기원祈願하는 성질’뿐 아니라 ‘실행하는 성질’도 겸비한다. 어느 현대 사상가는 희망을 “어떤 목적의 바람직함과 실현 가능성에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헌신”으로 보면서 심리상태의 일종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오히려 활동의 일종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면 진정한 만족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런 희망소멸상태가 반드시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반대로 그런 상태는 절망을 치료하는 가장 강력한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 실행 불가능한 것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파멸을 예방할 수 있다. 희망의 반대는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용감한 체념정신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워는 ‘희망은 거짓기대감들로써 평정심을 교란하는 악惡의 근원이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간이 완벽해질 때까지 영생할 수 있다면 모든 결핍에서 해방되면서 모든 희망에서도 해방될 것이고 종국에는 모든 실망에서도 해방될 것이다. 희망은 단순히 목적론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이 희망을 상실할 수 있어도 절망을 상실할 수는 없다. 비극과 마찬가지로 희망은 ‘인간이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인간이 운명과 맺어야 할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적어도 ‘타인들이 나의 곤경을 보면서 교훈을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하는 희망을 언제나 미미하게라도 품을 수 있다. 더구나 희망은 문화나 교육 같아서 비록 희망을 상실한 인간도 자손에게 유산을 물려주듯이 희망을 물려줄 수 있다. 결국 이글턴이 감지하는 희망은 경박한 낙관주의에 오염된 희망을 정련하고 제련하는 것으로서 ‘희망과 욕망의 비극적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저평가되어온 희망의 가치를 상승시켜서 ‘희망과 절망의 역리적逆理的 관계’를 교차하고 융합한다. 그렇게 했을 때에만 이글턴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희망”의 여건을 조성하고 에른스트 블로흐의 허망하고 낙관적인 희망에 대항하는 ‘값지고 현실적인 희망’의 조건을 구성할 것이다. 그렇게 생성되는 희망은 욕망과 비극과 절망을 엄밀하게 직시하면서 낙관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희망이 될 것이다. * 책속으로 추가 * 최악상황은 다소 왜곡된 의미를 띠는 희망의 원천이다. 왜냐면 최악상황에 처한 사람은 그것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는 내몰릴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으므로 차라리 편안해질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황이 더 악화될 수는 없어”라고 단호히 주장하면 다른 사람은 “오 맞아, 그럴 수는 없지”라고 응답하는 뜬금없는 문답도 있을 수 있다.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낙관주의자이고 누가 비관주의일까? 에스파냐의 소설가 엔리케 빌라-마타스Enrique Vila-Matas(1948~)가 소설 『더블린 사람Dublinesque』에도 썼다시피, “인간은 최악처지에 내몰려도, 가장 비참해지고 가장 철저히 망각되어야 할 운명에 휘말려도, 언제나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비판Critique of Instrumental Reason』이라는 저서에서 ‘쇼펜하워는 정확히 완전한 희망부재상황希望不在狀況을 직면하므로 희망에 관해서 다른 어느 사상가보다 더 많이 안다’고 논평한다.블레즈 파스칼의 관점에서는 인류의 지독한 참상이 바로 희망의 아이러니한 원천으로 보이는데, 왜냐면 그런 참상을 개선할 수 있는 손에 인도되어야 할 ‘신의 은총에 쓰일 재료들의 종류’를 암시하는 것도 바로 그런 참상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예술역사학자 맬컴 불Malcolm Bull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도 워낙 굶주리고 탈진하여 살아있는 송장처럼 보인다고 무젤말Muselmann으로 지칭되던 재소자들은 희망을 아예 품지 못하므로 상처받을 수도 없는 “그들의 희망부재상황 때문에 구제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권력은 권력술책들을 감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에드거가 변장할 인물로 선택하는 부랑아처럼,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법에 대항하는 법』에 나오는 정신병자 같은 악당 바너딘Barnadine 처럼, 잃을 것을 전혀 소유하지 않은 남녀들은 전혀 두려워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으므로 위험하지도 않는 개인들로 판명될 수 있다. 자기박탈은 극한으로 내몰리면 거꾸로 뒤집혀서 기묘한 종류의 자유로 변할 수 있는데, 왜냐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태어나는 귀중하고 희귀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242-243쪽
독일의철학자프리드리히니체Friedrich Nietzsche(1844~1900)는『교육자쇼펜하워Schopenhauer alsErzieher』(1874)에서두가지명랑성을구별한다. 그중하나는 ‘끔찍한것들을비극적으로대면하는심성을분발시키는명랑성’인데, 이것은 ‘고대그리스인들의명랑성’으로서예시된다. 다른하나는 ‘돌이킬수없는것들을자각하는의식意識을희생하여낙천적기분을구매하는, 심성에찍히는피상적낙인’ 같은명랑성이다. -23쪽
(빅토리아시대의) 소설의목적은불만스러운현실을초래한중대한실책들을교정하는것이었다. 영어소설은계급이나인간관계나사회질서를존중할뿐아니라낙관적결말들을지독하게고집하는식으로현상유지status quo의버팀목을제공했다.- 40쪽
그래서우리는현재와미래뿐아니라과거마저다소모호하게나마책임질수있다. 사망자들은소생할수없다. 그러나희망의비극적형식이존재하는데, 그것은사망자들에게새로운의미를부여할수도있고그들을다르게해석할수도있으며 ‘그들스스로는예언할수없었던서사’에그들을엮어넣어서그들중가장평범한자의이름마저, 예컨대, 최후심판일에구원될자들의인명록같은것에등재시킬수도있다. 그들과우리사이에현실적연속성이전혀있을수없을지라도그들의해방투쟁들은우리의해방투쟁들에통합될수있는데, 그러면우리가살아가는시대에어떻게든수확할수있을어떤정치적결실이든 ‘그들의실패한기획들이지녔던정당성’을입증하는데유용하게쓰일수있을것이다. -70쪽
홀로집을지키는개는주인의귀가를막연하게기대할수는있어도, 예컨대수요일이나오후3시같은것의개념을모르는비언어적동물이라서, 주인의귀가일시를정확하게예상하지못한다. 이런관점에서 ‘오직언어를습득한동물들만이희망을품을수있다’고말해질수있다. 언어는창대한미래의가능성들을열어젖힌다. -114쪽
대체로희망은욕망과예상을겸비한다. 인간은욕망하지않으면서예상할수는있어도욕망하지않으면서희망할수는없다. 훌륭하면서도탐탁찮은것(예컨대, 자신이응원하는최우수선수가승리할지라도그승리가분명히응원하는자신의것은아닌것)을희망할수있는사람도있고유쾌하면서도불쾌한것(예컨대, 범죄자들에게부과되는형벌)을희망할수있는사람도있지만, 욕망을결여한희망은결코존재하지않는다. 절망은희망을부정해도욕망을부정하지는않는다. 왜냐면, 제인워터워스가강조하다시피, 절망에휩싸인사람은먼저죽은벗을재회하고파서현생을포기하고죽기를열망할수도있기때문이다.-125쪽
‘희망은현재와미래를상상력으로접합시키는과정으로보이는줄거리설정이나계획같은것을요구한다’는사실을알았고 ‘그런것들이희망의합리적측면들이다’는사실도알았다. -127쪽
최악상황은다소왜곡된의미를띠는희망의원천이다. 왜냐면최악상황에처한사람은그것보다더나쁜상황으로는내몰릴수없다고생각하며안심할수있기때문이다. 그는아무리노력해도자신의처지를바꿀수없으므로차라리편안해질수있다. 예컨대, 어떤사람이다른사람에게 “상황이더악화될수는없어”라고단호히주장하면다른사람은 “오맞아, 그럴수는없지”라고응답하는뜬금없는문답도있을수있다. 이두사람중에누가낙관주의자이고누가비관주의일까? 에스파냐의소설가엔리케빌라-마타스Enrique Vila-Matas(1948~)가소설『더블린사람Dublinesque』에도썼다시피, “인간은최악처지에내몰려도, 가장비참해지고가장철저히망각되어야할운명에휘말려도, 언제나희망을품을수있고두려움없이살아갈수있다.” 막스호르크하이머는『도구적이성비판Critique of Instrumental Reason』이라는저서에서 ‘쇼펜하워는정확히완전한희망부재상황希望不在狀況을직면하므로희망에관해서다른어느사상가보다더많이안다’고논평한다.블레즈파스칼의관점에서는인류의지독한참상이바로희망의아이러니한원천으로보이는데, 왜냐면그런참상을개선할수있는손에인도되어야할 ‘신의은총에쓰일재료들의종류’를암시하는것도바로그런참상이기때문이다. 잉글랜드의예술역사학자맬컴불Malcolm Bull은 ‘나치강제수용소에서도워낙굶주리고탈진하여살아있는송장처럼보인다고무젤말Muselmann으로지칭되던재소자들은희망을아예품지못하므로상처받을수도없는 “그들의희망부재상황때문에구제될” 수있었다’고말한다.권력은권력술책들을감지할수없는사람들에게어떤영향력도행사하지못한다. 에드거가변장할인물로선택하는부랑아처럼, 혹은셰익스피어의희곡『법에대항하는법』에나오는정신병자같은악당바너딘Barnadine처럼, 잃을것을전혀소유하지않은남녀들은전혀두려워하지도상처받지도않으므로위험하지도않는개인들로판명될수있다. 자기박탈은극한으로내몰리면거꾸로뒤집혀서기묘한종류의자유로변할수있는데, 왜냐면아무것도아닌것에서태어나는귀중하고희귀한것도있기때문이다.242-243쪽
목차
서문
1장 낙관주의의 진부함
2장 희망이란 무엇인가?
3장 희망철학자
4장 희망에 대항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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