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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다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에게 바치는 헛소리 모음집

조지수 저 | 지혜정원 | 201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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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163039 / 240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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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풍자와 해학, 철학적 사유와 유머가 어우러진 인문 에세이! 유감스러운 것을 찾아보자면 유감 아닌 게 없어 보이는 세상이다. 먹고 사는 것은 날이 갈수록 팍팍하고 스트레스로 하루가 달리 늙어가는 것도 억울한데, 부와 성공은 이미 출생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는 사회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요건들은 차치하고 애당초 삶을 사랑하지 않고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의 탄생 또한 그러한 삶의 분투의 연장선에 있다. 인문학자이자 교수, 철... 풍자와 해학, 철학적 사유와 유머가 어우러진 인문 에세이! 유감스러운 것을 찾아보자면 유감 아닌 게 없어 보이는 세상이다. 먹고 사는 것은 날이 갈수록 팍팍하고 스트레스로 하루가 달리 늙어가는 것도 억울한데, 부와 성공은 이미 출생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하는 사회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요건들은 차치하고 애당초 삶을 사랑하지 않고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의 탄생 또한 그러한 삶의 분투의 연장선에 있다. 인문학자이자 교수, 철학자, 소설가, 에세이스트로서 활동하며 그간 방대한 인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통찰을 글로써 보여 왔던 저자가 스스로를 냉소적인 회의주의자이자 ‘찌질이’의 선두 주자라고 밝히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몽테뉴의 《수상록》과 같이 우리 삶 속의 여러 주제들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견해를 매우 정교하고 정련된 언어, 다양한 글쓰기 방식으로 담담히 풀어내며 읽는 즐거움과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풍자와 해학, 철학적 사유와 유머가 어우러진 아홉 가지의 이야기가 신랄하면서도 유연하게,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펼쳐진다. 출판사 서평 시니컬한 회의주의자의 시선에 담긴 우리의 자화상 조지수라는 필명을 쓰고는 있지만, 철학, 예술, 역사, 논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인문 분야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 분야에서는 이미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인문학자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서양철학사와 서양예술사를 전공한 교수이자 철학자인 그는 장편소설 『나스타샤』를 쓴 소설가이며, 산문집 『원 맨즈 독』을 낸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언어를 매우 정교하게 사용하기에 그의 글은 간소하면서도 풍부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간결체라고도 불리는 조지수만의 독특한 문체는 미사여구는 찾아볼 수 없고 무 주어 문장이나 간단한 명사나 형용사구만으로 세밀하게 결합시켜 표현을 하기에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며 저자 특유의 농축된 지성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모든 문학은 자서전”이라는 말처럼 단호하고 솔직 담백한 저자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신작인 《유감이다》에서도 그는 여전히 시종일관 망설임이 없고 냉정하며 날카롭다. 독자를 의식하며 독자의 입맛에 맞게 글을 쓰지 않는다. 책을 읽고 평가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스스로를 냉소적인 회의주의자이자 ‘찌질이’의 선두 주자라고 밝히는 저자는 그저 넋두리같이 혼자 지껄이는 헛소리를 모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 속에서 정작 보게 되는 것은 우리들의 얼굴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나는 무엇이 유감인가? 유감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자. 유감스러운 것을 찾아보자면 유감 아닌 게 없어 보이는 세상이다. 굳이 정치, 사회, 경제와 같은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 나의 일상만 살펴봐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매일 유감스러운 일은 화수분처럼 늘어만 난다. 서문에 나오는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우리 마음이 지옥인데 삶의 어디에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있을까 싶다. 저자는 ‘유감이다’라는 책 제목에 ‘어쩌면 이 책도’라는 말을 붙여 먼저 자신에게 냉소를 던진다. 냉소와 비판이 외부로 향하기 전에 자신을 향한다. 주저리주저리 시대착오적인 거대담론과 계몽서사를 읊어대거나 스스로가 무식한 것을 모르고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우수마발들에 빗대어 그동안 자신이 써 온 책들이 과오였다고도 말한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써왔지만 매번 실패를 했고 그래도 이번 책은 웃음과 재미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니 한 권쯤 사달라고도 한다. 물론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솔직하다 못해 적나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저자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것이 노골적이거나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솔직함과 간결함에서 느껴지는 명확함과 더불어 예리한 감수성이 글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갑게만 느껴질 거 같은 그의 냉소가 단순히 비판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서문만 읽어봐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삶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이 하루하루 새롭게 갱신하고 분투하는 것처럼 삶에 중독되어 보라는 것이다. ‘이 책도 끝까지 읽을 사람이 없을 거 같아 유감이다. 혹여 다 읽는다면 불편하게 만들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도 유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유감은 우리의 삶을 살아 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이 책은 마치 이렇게 묻는 듯하다. ‘지금 당신은 무엇이 유감인가? 그리고 그 유감을 위해 당신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삶을 예리하게 관찰한 인문 에세이!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에게 바치는 헛소리 모음집’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문적 소양을 함양하기 위해서라거나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말장난이나 어떤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표현들이 담긴 것도 아니다. 감상적이고 달달하며 의미로 범벅이 된 글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책 속에는 스스로 시니컬한 회의주의자라고 말하는 한 철학자가 자신이 속한 세상을 바라보며, 거울을 들고 그 세상 속의 자신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다. 그는 몽테뉴의 《수상록》과 같이 우리 삶 속의 여러 주제들에 대한 저자 자신의 견해를 매우 정교하고 정련된 언어로 담담히 풀어낸다. 풍자와 해학, 철학적 사유와 유머가 어우러진 아홉 가지의 이야기가 신랄하면서도 유연하게,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펼쳐진다. 《마스칼러지》는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에서와 같은 풍자와 해학이 느껴지는 글이다. ‘마스칼러지(Maskology)’라는 말은 저자가 새롭게 지은 명칭으로 가면(mask)에 대한 학문(-ology)적 연구, 즉 ‘가면학’을 뜻한다. 오만과 기만이라는 태도는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삶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는 언급으로 시작하여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가면 쓰기’에 대해 설명을 해나간다. 자신을 비밀의 베일로 덮어 드러내지 않으며 친근감을 경계하고 허영으로 위장을 하는 데 필요한 ‘신비화의 가면’, 아부와 연줄, 근엄과 과묵을 사용하여 출세하는 비결을 알려주는 ‘비굴의 가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을 고수하면서 상황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꾸는 변절의 현명함을 통해 사회적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모호성의 가면’, 모르는 것도 아는 척, 대단한 것을 가진 양 위장하는 것이 존경받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문성의 가면’, 골치 아프게 논리나 설득을 할 필요가 없이 소리만 질러대면 되는 효율적인 ‘권위의 가면’, 집단을 통해 어거지와 떼거지라는 이중 거지를 활용하여 외부로부터는 존경을 받고 내적으로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상징의 가면’, 양심과 진실 따위에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양심을 키워야 승리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의미의 가면’ 등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가면들에 대해 알려준다. 마치 수업을 듣는 것처럼 강의를 해나가는 저자의 글은 언어유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며, 함축과 은유가 풍부해서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서도 빼어나다. 《눈과 생각》은 관념과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저자 소개


오직 글로써 모든 것을 말하는 작가. 철학, 예술, 역사, 논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인문 분야를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이미 스무 권이 넘는 인문서를 집필한 비교적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첫 장편 소설 『나스타샤』는 사랑, 우정, 삶에 대한 성찰을 작가 고유의 단정하고 깔끔한 문체로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하여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소중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소설’이라는 추천 평을 받고 있다. 산문집으로 『원 맨즈 독』, 『유감이다』가 있다.


  

책 속에서


누차 이야기해온 바와 같이 삶 그 자체가 가면이다. “세상은 커다란 무대”이고 “인생은 방금 시작된 연극”이다. 물론 가면적 삶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가 어떤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고 공포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가지지 않은 것을 흉내 내기보다는 가진 것의 한계 내에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박하고 분수를 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능란한 가면 착용자의 것이다. 이 “논문” 역시도 그러한 선량한 사람들을 —가면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평생 짓밟히고 살아가는— 대상으로 했다.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을 담아 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애쓰고 있다. 선량하기 때문에 항상 악동들에게 맞고 들어오는 자기 자식에게 “왜 너는 같이 싸우지 못 하느냐!”고 소리치는 부모의 심정으로. ----<마스칼러지>에서

개의 사랑도 인간의 사랑과 경쟁할 수 있다. 모성애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어떤 요소가 있다. 종을 위한 개체의 희생이고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다. 자기희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자기 씨앗에 대한 이기심으로라면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것은 다른 개체들을 희생시켜서 자기 개체만을 득 보게 하는 시도이다. 인류라는 종에 대한 무관심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 가운데 있다. 엄밀하게는. 쓸모 있는 개인으로 성장하도록 애써 주는 외에 자식에게 해줄 일은 없다.
올바른 자기희생만이 의미 있다. 자기희생이라면 주인의 침대 위에서 종족을 번식시키고 분별없이 주인에게 으르렁대는, 자기 평생에 가장 소중한 것 —주인의 사랑과 보살핌— 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 집 강아지가 못할 것도 없다. “남을 이기기 위해 애쓰라”는 말보다는 “네가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배려하고 사랑으로 대하라”는 말을 할 줄 알고 자기 자식이라도 마땅치 않으면 따끔하게 혼을 내고 남의 자식이라도 훌륭한 점이 있다면 자기 자식 못지않게 대견하게 생각할 줄 안다면 개라는 종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모성애를 들먹이며 자기연민에 빠져 살 일은 아니다 ----<휠러>에서

의미 있는 의학적 진보가 의사에 의해서는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이 파스퇴르도 에를리히도 의사는 아니었고 하비조차도 개업의는 아니었다. 의사들은 항상 돈을 벌기에 바쁘고 취미 생활에 바빠서 의학적 진보는 자격증 같은 고귀한 것을 지니지 않은 생물학자의 손에 맡겨졌다. 의사들은 종두법에 관심도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개업 준비생인 에드워드 제너에 의해서였다. 어떤 의미 있는 법학도 직업으로서의 법관에 의해 개선된 적이 없고 이 분야의 가장 뛰어난 저작들은 한 번도 법관에 의해 쓰인 적이 없다. 더욱 비극적이게도 철학의 세계도 교수라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농사꾼(루소)이나 막일꾼(스펜서)이나 렌즈 깎는 사람(스피노자)에 의한 것이었다. 칸트는 그렇지 않았다고? 천만의 말씀. 그는 가르치는 내용과 자기 철학을 철저히 분리했다. 그는 교수직과 그 수행에는 관심도 없었다. 고고학적 발굴도 전문적인 고고학 교수에 의한 적은 없다. 하인리히 슐리만이나 아더 에반스 중 누구도 자격증을 지닌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이것이 쇼펜하우어로 하여금 “아카데미의 담장 안에는 학문이 없다.”라고 말하게 한 동기이다. ----<자격증 열기>에서

“요즘 읽는 책”은 없다. 왜 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질문자는 아마도 교양의 증진으로서의 독서의 의무를 전제하고 있겠지만 교양이고 뭐고 간에 재미없으면 하기 싫다. 두 가지를 하게 된다. 밥벌이와 관련된 일과 재밌게 할 수 있는 일. 교양이란 무엇일까? 사실 그것도 재미를 위한 것이다. 물론 재미를 위한다고 해도 주야장천 술에 절어 산다면 곤란하다. 삶을 망친다. 미래가 없다.
재미는 먼저 좋은 재미여야 한다. 좋은 재미는 남한테 폐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재미이다. 또한, 곧 권태스러워져도 안 된다.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재미있어야 한다. 이때 재미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교과과정의 많은 부분이 이 재미를 요령껏 얻어내는 데 집중되어 있다. 수학이나 과학이나 역사가 먹고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단지 건설적인 재미를 위한 것들이다. ----<독서유감>에서

목차

목차
Prologue
1. 마스칼러지(Maskology)
2. 눈과 생각
3. 발가락 때
4. 휠러(Wheeler)
5. 호오(好惡) 목록
6. 등산 이야기
7. 먼지
8. 자격증 열기(熱氣)
9. 독서유감(讀書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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