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사슴의 노래 [초판본] 1958년 한림사 오리지널 초판본

시리즈 :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220]

노천명 저 | 더스토리 | 2016년 03월

북트리

정가
$15.40
판매가
$8.47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17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7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91159031007 / 126쪽 146 x 202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7,820
  • 16,020
  • 17,820
  • 10,8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고독과 애수를 노래한 사슴의 시인 노천명 유고시집!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었던 사슴의 시인 노천명 유고시집 오리지널 초판본! 노천명은 모윤숙과 더불어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 여류시인으로, 고독과 애수가 깃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지성으로 절제된 시세계를 만들었고, 평생을 홀로 살다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생을 마감했다. 《사슴의 노래》는 노천명이 세상을 떠난 뒤 발견된 새로운 시들을 모아서 묶은 유고시집으로, 1958년 한림사의 오리지널 초판본 그대로 표지 디자인과 본문 등을 되살려 복간했다. 표... 고독과 애수를 노래한 사슴의 시인 노천명 유고시집!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었던 사슴의 시인 노천명 유고시집 오리지널 초판본! 노천명은 모윤숙과 더불어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 여류시인으로, 고독과 애수가 깃든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지성으로 절제된 시세계를 만들었고, 평생을 홀로 살다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생을 마감했다. 《사슴의 노래》는 노천명이 세상을 떠난 뒤 발견된 새로운 시들을 모아서 묶은 유고시집으로, 1958년 한림사의 오리지널 초판본 그대로 표지 디자인과 본문 등을 되살려 복간했다. 표지에 그려진 사슴은 시인을 표현한 듯 애잔하고, 뒤표지의 앙상하고 마른 나뭇가지는 날선 감성으로 부침이 많았던 시대를 산 시인의 고독한 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김광섭의 서문과 모윤숙의 글이 실려 있어 당대의 대표 문인들의 글을 읽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떠난 노천명 시인에 대한 동료 문인들의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세월을 건너뛰는 절대 고독과 구원 의지 감성과 감각이 뛰어난 노천명의 시는 지금 읽어도 전혀 진부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정에 휘둘려 시를 쏟아내지 않고, 고독과 슬픔의 시학을 특유의 절제미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노천명은 ‘고독’을 평생의 친구처럼 여기면서 오히려 고독을 사랑스럽게 묘사하고 비애를 즐기기도 했다. 특히 노천명의 시에서 절대 고독은 중심 주제로, 그녀의 시뿐만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단어이다. 고향의 전원적인 향토와 사람들을 소재로 삼아 시종일관 고독과 애수의 시상을 다루던 시인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여러 사건을 겪은 후, 구원 의지로 고독을 한 단계 승화시킨다. 특히 네 번째 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사슴의 노래》에 구원 의지가 더욱 잘 드러나 있다. 초기 시집인 《산호림》과 《창변》이 섬세한 감각과 비애 의식을 다루고 있다면, 《사슴의 노래》는 가톨릭교에 귀의한 후 노천명의 종교적 신앙과 참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성이 지나치면 문학성이 떨어질 수 있지만, 어쩌면 진정한 구원 의지 없이 문학은 위대해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저자 소개

1911년 9월 2일 황해도(黃海道) 장연군(長淵郡) 전택면(專澤面) 비석리(碑石里) 281번지에서 소지주이면서 무역으로 성공했던 아버지 노계일(盧啓一)과 서울 출신의 어머니 김홍기(金鴻基) 사이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17년 여섯 살 때 홍역을 심하게 앓다가 살아났는데, 하늘이 주신 명으로 살게 되었다 해서 천명(天命)으로 개명한 것이 호적명이 되었다. 
열아홉 살이 되던 1930년 4월에 이화여전(梨花女專) 영문과에 입학해 변영로, 김상용, 정지용 등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시 습작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다음 해 이화여전 교지 [이화] 3호(3월 4일 발행)에 시 [고성허(古城虛)에서], 수필 [삼오(三五)의 달 아래서], 단편소설 [일편단심]을 발표했다. 
1938년 1월 1일에 시 49편을 수록한 첫 시집 [산호림]을 자비로 출판, 김상용, 정지용, 변영로 등 이화여전 은사들이 주선해 남산동 경성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한국의 마리 로랑생'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1942년에는 조선문인협회에 모윤숙, 최정희 등과 함께 간사로 참여했는데, 이 협회가 조선문인보국회로 강화 개편될 때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 시기부터 친일시를 쓰는 등 친일 행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1945년 2월 25일 두 번째 시집 [창변(窓邊)](29편 수록)을 매일신보 출판부에서 간행했다. 
1950년(39세)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문학가동맹에 가입해 우익 문인들을 체포하는 일을 도왔다. 이로 인해 9 28 수복 후 10월에 반역문화인으로 서울시경 수사본부에 잡혀가서 부역자 처벌 특별법에 의해 20년 형을 받고 서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다시 부산으로 이감되었다. 1 4 후퇴 후 당시 대통령 비서실에 있던 김광섭(金珖燮)의 도움으로 출감하게 되었다. 
1953년(42세) 3월 30일 세 번째 시집 [별을 쳐다보며]를 희망출판사에서 간행했다.
마흔여섯 살이 되던 1957년, 3월 7일 오후 3시에 거리에서 쓰러져 청량리 위생병원 1호실에 입원했다. 병명은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얼마 후 회복해 퇴원했으나, 그 후 병세가 악화되어 6월 16일 새벽 1시 30분에 누하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사후 1년 만에 유고 시집인 네 번째 시집 [사슴의 노래](42편 수록)를 한림사에서 간행했다. 김광섭과 모윤숙이 서문을 썼다.


 

책 속에서

목차

목차
서문
사슴의 노래를 모으며
캐피탈·웨이 / 봄의 序曲 / 아름다운 새벽들 / 船醉 / 六月의 언덕 / 落葉 / 獨白 / 回想 / 불덩이가 되어 /
그네 / 南大門地下道 / 五月의 노래 / 悲戀頌 / 저바릴수 없어 / 秋?風에 부치는 노래 / 三月의 노래 /
꽃길을 걸어서 / 새벽 / 밤中 / 오늘 / 海邊 / 사슴의 노래 / 待合室 / 유관순누나 / 그대 말을 타고 /
내 가슴에 薔薇를 / 슬픈 祝典 / 어머니 날 / 芍藥 / 어머니 / 卷頭詩(一) / 卷頭詩(二) / 당신을 위해 /
哀悼 / 八一五는 또 오는데 / 五月 / 聖誕 / 晩秋 / 六月의 牧歌 / 哭矗石樓 / 나에게 「레몬」을 / 봄비
이 詩集을 내면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