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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889921 / 284쪽 13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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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사회주의는 현대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토피아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인간성이 늘 자리 잡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과학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지난 시대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었을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가브리엘 타르드는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젠 지나버린 과거... 사회주의는 현대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유토피아가 표시되지 않은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인간성이 늘 자리 잡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가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과학에 중독되다시피 했던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지난 시대에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었을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가브리엘 타르드는 “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젠 지나버린 과거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사회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가야 할 방향 “사회주의는 오랫동안,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유토피아이다.” 우리 시대는 유토피아를 잃어버렸고 더는 꿈꾸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진보적인 정치단체마저도 유토피아를 그리기보다는 하나의 현실을 개혁하는 데만 치중한다. 그 대안마저도 자본주의를 조금 인간적으로 바꾸는 선에서 멈춘다(그러나 ‘착한 자본주의’가 과연 존재할까?). 누구나 이 시대의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은 알고 있다. 바꿔야 한다는 것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의미로 유토피아를 그리고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은 드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추구하지 않는 건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추구했던 ‘정의로운 사회’ 같은 비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토피아를 더 열렬하게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현실의 부당함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갈망해야 할 곳’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유토피아적인 방식으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습관적인 연상을 깨는 능력, 즉 얼핏 압도적인 것처럼 보이는 평범하고 틀에 박힌 ‘정상normal’의 지배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약자의 불행과 가지지 못한 자들의 곤경에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유토피아 사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매우 고통스럽게 경험하는 사안들에 대답을 제시한다. 유토피아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정치가와 이론적 지도자들의 영역인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도 아니다. 유토피아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대답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우만은 사회주의를 ‘생동하는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지금도 여전히 현대의 유토피아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주의를 탐험하고 있다. 바우만은 인류 역사에서 사회주의가 실현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말만 사회주의였을 뿐 전체주의에 불과했다. 바우만에게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목표지점을 설정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모든 고통으로부터 ‘어제보다 더 많이’ 해방시키고자 영원히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경험적 실제라고 선언되는 순간 창조력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지 못하여,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상대화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새로운 지평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즉 바우만에게 사회주의란 목표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유토피아 사유를 멈춘 당신이 읽어야 할 책 이 책은 바우만이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 시리즈를 펴내기 전에 쓴 것이다(초판은 1976년에 나왔고, 2010년에 나온 개정판을 번역했다). 오래된 저작이지만, 전혀 옛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 필요한 말들이 너무나 많다. 또 바우만의 사상의 흐름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바우만은 원래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였고, 열렬한 사회주의자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런 바우만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며, 또한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바우만의 현대성 분석과 소비사회 비판이 왜 시작되었고,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맥락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 사회주의라는 ‘생동하는 유토피아’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탐험한다. 현대사회의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의 역할을 분석하고,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문화’로 제시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주의가 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바우만은 이 책을 더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사람들을 겨냥해 쓴 것으로 보인다. 즉 가장 주요한 대상은 지식인이다. 바우만은 여러 차례 본문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바우만은 그 자신이 지식인계급으로서 자본주의의 지배문화와 일대 전투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바우만은 지식인들이 더 대담하게 유토피아를 꿈꾸고 탐험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미래로 향하게 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며, ‘바로 지금 여기’라는 현실과 맞서 싸우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유토피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한때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가 이제는 언급조차 꺼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자극을 받을 것이다. 또 유토피아로서 사회주의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좋은 입문서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위한 지식인의 역할 “모든 중요한 가치로부터 소외된 민중을 억압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내면화한 민중 자신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일이 사람들 적성에 맞는지 묻는 대신 사람들이 그 일에 적합한지”를 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목적을 이루기보다 그것을 도구화하는 데만 열중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재화들이 불공평하게 분배되고, 사회적 행위의 수단도 평등하지 않으며, 약자는 계속 약한 위치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이미 운명처럼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노동자는 자신을 지배하는 자들과 그 체제에 스스로 복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도장을 찍고, 그것을 조직하는 데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일에 따르고, 월급봉투를 집으로 가져감으로써 매일매일 고용주의 권력을 옹호한다.” 바우만은 그람시의 용어인 헤게모니를 빌려 이 상황을 설명한다. 그람시는 계급 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했다. 즉 지배계급은 헤게모니를 통해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것은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의 문화생활 속에 존재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시대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좀처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바우만은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지식인계급을 특히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이란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도 아니고, 비판적인 시도에 가담하지 않기로 서약한 충직한 지식 노동자도 아닌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넓은 관점에서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사회의 부조리가 치료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 위치 탓에 사회주의의 선봉 역할을 하도록 보내진 집단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식인일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언제나 지식인들에게 할당하는 역할이다. 지식인들은 단지 자신의 경험
한 나라의 주요 정치 단체들이 국제수지와 바람직한 수준의 은행 금리를 두고 논쟁이나 벌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사실상 유토피아적인 생각의 저수지가 위험할 정도로 바짝 마르고 있다는 신호이며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17쪽
유토피아는 사람들이 매우 고통스럽게 경험하는 사안들에 대답을 제시한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대답하고자 하는 질문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도 아니고, 정치가와 이론적 지도자들의 영역인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도 아니다. 유토피아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라는, 아마도 칸트라면 ‘실천이성’과 ‘이론적 이성’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적법하지 않은 질문이라고 선언했을 골치 아픈 질문에 대답한다. -20쪽
사회주의는 다른 모든 유토피아들과 함께, 가능성의 영역에 살고 있을 때에만 생식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불편한 특성을 공유한다. 그것이 성취되었다고, 경험적 실제라고 선언되는 순간 창조력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지 못하여,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상대화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새로운 지평이 강력하게 요구된다. -64쪽
현재 사회를 불공정한 것으로 선언하고 공정한 사회를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의 가장 변함없는 특징이며, 현대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수행한 역사적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기도 하다. -95쪽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는 경제 운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소유권의 형태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대중의 행동에 관한 것이다. -141쪽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란 결국 계급사회에 의해 훼손되고 굴욕당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189쪽
목차
1. 유토피아와 현실 7
2. 유토피아와 현대사회 27
3.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반문화 67
4.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구조 89
5. 유토피아와 상식 119
6. 사회주의 실험 143
7. 문화로서 사회주의 187
8. 변화와 연속성 213
9. ‘저 너머’, 또 한 번의 대담한 탐험 249
옮긴이의 말 267
미주 273
찾아보기 281











































